소설리스트

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63화 (63/120)

〈 63화 〉 후유증, 그리고 준비 (1)

* * *

“뭐하냐. 너희.”

갑자기 들려온 소니아의 목소리에 나는 눈을 뜨게 되었다. 소니아는 문 앞에서 나와 노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엘은 나와 입술이 마주칠 정도로 가까이 있었는데, 내가 눈을 떠서 그녀를 바라보니 다시 떨어졌다.

뭘 하려고 했던 걸까…?

뚜벅뚜벅—

노엘의 행동에 궁금했던 것은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소니아는 말없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평소 여유 있던 걸음걸이와 다르게 빠르고, 절제되지 않은 걸음걸이였다.

나는 딱히 잘못한 것도 없었지만 괜스레 긴장이 되어 몸이 살짝 굳어 버렸다.

소니아가 내 앞에서 이렇게 화난 모습을 보인 적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나를 처음 만났을 때를 제외하면 이 정도까지 화난 적은 없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였다.

“뭐하냐고.”

소니아는 노엘을 보며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

노엘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노엘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소니아를 향해 조롱하듯 말했다.

“보면 몰라?”

“허.”

노엘의 말이 끝나고 소니아의 헛웃음이 나왔다. 두 명 모두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결코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진짜 사람 기분 좋같게 하네.”

“네가 기분이 좋같다니, 다행이네.”

둘의 대화는 서로 친구가 맡기는 한 건지 의심될 정도였다. 대체 뭐가 문제길레 이렇게 싸우는 걸까.

처음에는 그다지 알고 싶지 않았지만, 이렇게 싸워대니 이제는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노엘과 소니아의 싸움은 단순히 말싸움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 둘은 곧이어 서로의 마나로 신경전을 펼쳤다.

인간은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마나를 다룰 수 있다.

다만 마나를 변형시킬 수 없을 뿐이다.

단순히 마나를 응집시키고 발산하는 것뿐이라면, 어느 정도 숙달이 된 인간은 마법진이 없이도 가능한 일이다.

마나 자체는 다른 존재에게 해가 되지는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마법사의 경우에는 달라진다.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된 마법사는 다른 인간들과는 한 차원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다.

만약 경지에 이른 마법사가 살의를 가지고 마나를 발산한다면, 그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은 중력이 몇 배나 가중된 것처럼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어째서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마나가 어째서 살아있는 것처럼 의지를 갖추게 되는지는 많은 세월을 쌓아놓은 엘프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느 정도로 경지에 이른 마법사 둘이 마나를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예전부터 궁금했던 질문이었지만 이제는 그 정답을 알게 되었다.

정답은 ‘새우등이 터져 나간다.’였다.

노엘과 소니아의 기 싸움의 결과는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둘의 싸움으로 내가 죽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경지에 이른 마법사 둘이 맞붙어 치니 주변의 모든 것들이 그 둘을 선으로 편을 이루듯 갈라졌다.

나는 애석하게도 그 둘의 중심에 있었기에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 같은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내 힘이 조그만 힘이 좋았다면 한쪽이 있는 곳으로 벗어났겠지만, 나에게는 그럴 힘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노엘이 소니아와 이 정도로 대등한 대결을 펼칠 줄은 몰랐다.

노엘을 연금술사라고 살짝이나마 무시했던 나를 때리고 싶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 사태가 되게는 안 만들었지.

분명 내 앞에 있는 이들은 수많은 역경을 헤쳐 나갔던 주인공과 그 동료였다. 그런데도 이 둘은 내가 알 수도 없는 유치한 이유도 싸우고 있었다.

나는 그만두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주변에 있는 책상에 눌려 있었다. 중력가속도 시험을 치르는 것 같이 나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많은 힘이 있어야 했다.

온몸의 혈관이 바닥으로 내려가려는 감각은 앞으로 절대 잊을 수 없을 만할 정도로 요상한 기분이었다.

단순히 요상한 기분이었다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내 머리와 상체는 피가 부족해져 파랗게 질려버렸다.

옛날에 철봉에 오랫동안 거꾸로 매달려 있을 때 느끼던 감각이었다. 그런 감각을 이제 와서 한 번 더 느낄 줄은 몰랐다.

귀가 먹먹했다.

내 앞에 있는 둘이 무언가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나에게는 잘 들리지는 않았다.

높은 산에 갔을 때 먹먹해지던 것처럼 내 귀에는 모든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가끔 나무 바닥이 부러지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몸은 철근에 깔린 듯 움직여지지는 않지만, 귀는 뭐가 막힌 듯 잘 들리지도 않았다.

순간적으로 그냥 편하게 눈을 감아버릴까 싶었다. 지금 괜히 내가 버티고 있는 게 아닐까. 안 그래도 짜증이 나는 일 투 성인데, 그냥 편하게 감을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내 앞에서 기 싸움을 하는 둘이 너무나 거슬렸다.

나는 곁눈질로 노엘과 소니아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서로를 사납게 노려보면서 점점 더 발산하는 마나의 양을 늘리고 있었다. 이대로 몇 분만 가면 나는 기절해 버릴 것 같았다.

나는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자기들은 기 싸움이나 하는 것이 너무나 짜증이 났다.

그렇게 나를 아껴주는 척이라도 했으면 나를 한 번이라도 봐줘야지. 몸이 힘드니까 평소에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나쁜 생각까지 마구잡이로 솟아올랐다.

…..원래 이런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었는데.

나 스스로 그녀들이 나를 바라보기를 바란 것 같았다. 그동안과 같이 똑같이.

그러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알고 있다. 남의 호의와 사랑에 기대기만 하면 한계가 닥쳐온다. 내가 살면서 비웃었던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사그라져갔다.

사랑이라는 것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사람에게 처음 접해보는 사랑이라는 것은 독과 같았다.

나 자신보다 남에게 의지하게 했다. 지금은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가만히 기다리는 것에서 한 발짝 벗어나는 게 최선이었다.

나는 오른쪽 손을 들어 그나마 가깝게 맞닿아있던 소니아를 향해 팔을 뻗었다.

“......?”

소니아에게 팔을 뻗어 그녀의 소매를 붙잡는 것에 성공했다. 소니아도 무언가 이상한 감각을 눈치챘는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소니아가 나를 바라보는 것을 보고 나는 눈을 감았다. 이 정도 했으면 둘이 알아서 해결하겠지.

아까까지만 해도 힘들어 죽을 것 같았지만, 눈을 감으니 훨씬 편해졌다. 괜히 힘을 주던 온몸에 힘을 빼고 중력과 마나의 압박에 몸을 맡겼다.

“자스민……!”

누군지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동안 귀가 막혀 잘 들리지도 않았는데 이제야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모르는 천장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단조로운 패턴의 하얀색의 천장은 내가 처음 보는 곳이었다.

나는 순간 내가 천국에 온 것만 같았다. 내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하얀색이었기에 가능한 착각이었다.

하지만 곳 몰려드는 온몸의 압박감에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 이 정도로 죽었으면 진작에 죽었지.

알고 있었지만,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아…….”

나는 한숨을 쉬며 상황을 복기했다.

분명 나는 소니아의 소매를 잡은 뒤에 정신을 잃었었던 것 같은데……

노엘과 소니아가 나를 여기로 옮겨온 걸까.

내가 앉아있는 침대와 침대를 둘러싸고 있는 칸막이를 보니 여기가 어딘지는 금방 알 것 같았다.

이런 생김새를 한 곳은 하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의 양호실이었다.

소설에서의 묘사뿐이었지만, 워낙 특이한 곳이었기에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오늘 하루는 너무나도 바쁜 하루였다. 하루가 채 지나지도 않았지만, 그사이에 벌어진 사건은 너무나 큼지막한 일이었다.

조원 선정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뛰어나간 노엘과 소니아, 그 뒤에 나한테 불만을 표시하러 온 다니아와 엘,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기 싸움을 하던 소니아와 노엘.

정말로 다이나믹한 하루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로 인해 죽을 것 같았지만.

노엘이 사이다처럼 엘을 바닥에 처박아 놓았지만 그런다고 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결국에 내가 조별 과제를 같이 하는 사람은 다니아와 칼 엘이였다. 내가 아무리 부정해도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가 과연 그들과 과제를 잘 수행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장담하건대 절대 그렇지 않을 게 분명했다.

아마 그들은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과제를 진행하겠지.

사실 결과만 보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비록 노엘에게 쳐 발렸다고는 해도 칼 가문의 여식이다. 그 정도의 마물을 상대로 쩔쩔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는 싫었다.

나라는 존재가 그저 짐으로 취급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비록 마법진을 만들어내지도 못하는 사람이지만, 이대로 짐짝으로 전락하는 건 사절이었다.

누군가에게 나라는 존재가 쓸모도 없는 존재로 각인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죽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내가 이 세계에 처음 왔을 때에는 평판 같은 건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나는 이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잘 모르겠다.

내가 누군지도,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도, 내가 과연 자살하고 싶은 건지도.

……..허무하네.

촤악—

그때, 칸막이가 열렸다.

“.........”

칸막이가 벗겨진 곳에는 소니아와 노엘이 앉아있었다. 둘 다 침울한 상태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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