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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62화 (62/120)

〈 62화 〉 중간고사 (6)

* * *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나로서는 그 결과밖에 보지 못했다.

바닥을 뚫고 박혀있는 엘의 머리말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팔팔하게 움직이던 엘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뻗어버린 그녀의 모습을 보니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진짜 죽은 건 아니겠지….?

“엘!!!”

이런 위기감을 느낀 건 나 뿐만이 아니었다. 다니아는 엘의 이름을 외치면서 엘을 향해 달려왔다.

“엘….! 괜찮아?”

다니아는 엘의 몸을 마구 흔들면서 그녀를 깨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런다고 엘이 깨어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 또한 엘이 죽지는 않기를 바랐기에 엘이 정신을 차리기를 빌었다.

“아이고……. 귀청 떨어지겠네.”

그때 노엘이 귀를 후벼파며 다니아에게 말을 걸었다. 노엘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는 별 뜻이 없는 불평이었겠지만, 다니아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ㅇ, 아…….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어. 안 그래?”

그렇게 말하며 웃는 노엘의 모습은…… 솔직히 말하면 악당의 웃음 같을 정도로 소름이 끼쳤다.

그나마 나였기에 그녀의 행동에 별다른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지,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아마 그녀를 악마처럼 보지 않았을까 싶다.

콰악—

노엘이 엘의 다리를 잡아서 엘을 뽑아내었다. 사람의 머리가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풍경은 뭐랄까…… 끔찍했다.

머리카락이 피에 젖어 빨간색처럼 보였다. 딱 봐도 그녀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피로 적혀진 머리가 내 눈앞에 존재감을 과시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누군가가 이렇게 다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까.

나는 그녀의 모습을 끔찍해 하면서도 마음속 어딘가에 담아두게 되었다.

“친구야. 아직 안 죽었으니까 그렇게 울상인 표정은 짓지마.”

노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엘을 다니아에게 맡겼다. 다니아는 처음에는 당황한듯했지만, 곧이어 엘의 몸을 꽉 부여잡았다.

나는 몰랐지만 다니아에게는 엘이 꽤나 중요한 인물인것 같았다. 다니아는 엘의 몸을 계속해서 관찰하면서 다친 곳이 없나 보고 있었다.

“친구야, 죽지는 않았거든? 그렇게 뚫어지게 살펴보지 않아도 돼.”

“저, 정말인가요?”

“내가 너한테 왜 거짓말을 하겠어. 안 그래?”

노엘의 말에 다니아는 엘의 몸에 얼굴을 박고 조금씩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큰 소리는 아녔지만 이 공간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의 소리였다. 그녀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뭔가 우리가 죄인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이 사이에 노엘의 옷가지를 잡아당겨서 그녀가 나를 보게 만들었다.

“왜 친구야.”

“........빨리 나가자.”

“왜?”

“왜는 무슨. 빨리 따라 나와.”

나는 노엘을 강제로 끌고 나왔다. 내가 노엘을 강제로 끌고 나오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사실 그냥 이 공간에서 일 분이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어질 뿐이었다. 이 공간은 내게 최악의 공간이었다.

나를 지켜보는 수많은 눈과 나를 시험하려는 이들. ‘나’라는 존재에는 너무나 끔찍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노엘은 내가 하자는 대로 잘 따라와 주었다. 그녀가 가기 싫다고 말하면 어쩔까 싶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카데미의 교실에서 나와 걷던 중 나는 빈 교실을 발견했다. 저기라면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노엘을 끌고 그곳으로 데려갔다.

나와 노엘은 서로 마주본 상태로 여러 질문을 했다.

“일단……. 죽인 건 아니지?”

“누굴.”

“엘 말이야.”

바로 알아들었지만 다 시한 번 더 물어보는 그녀가 어이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물론이지. 내가 그런 애들 상대로 얼마나 힘 조절을 해왔는데.”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내가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다. 내가 확인을 하는 것보다 의사가 확인하는 것이 훨씬 빠르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믿는 것 뿐이었다. 노엘이라는 사람을 믿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큰 일이었다.

“....너는 괜찮아?”

“뭐가?”

“너 몸 상태 말이야.”

노엘이 다친 것 같지는 않아 보였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기에 나는 노엘에게 물어보았다.

노엘이 진짜로 다쳤다면 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푸핫, 별걸 다 걱정한다.”

다행히도 노엘은 괜찮은 것 같았다. 그녀는 오른쪽 팔을 빙빙 돌리면서 자신이 괜찮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런 풋내기한테는 다칠 일은 절대로 없어.”

노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자신감에 차 있는 그 얼굴을 볼 때마다 든든했지만, 어딘가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은 이 정도로 넘어가지만, 나중에도 괜찮을까.

나는 엘의 말대로 강자에게 빌붙는 기생충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말이다.

방금 같은 상황에도 나의 힘으로 이겨낸 것이 아니라 노엘이 와 주었기 때문에 해결할 수 있었다.

과연 내가 나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타인의 온기를 알게 된 이후에 내가 너무나 온기에 익숙해 진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지금이야 노엘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다지만, 나중에는 어떨지 모른다. 몇 년만 지나도 그녀들은 나를 지키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그 전쟁이 다시 벌어진다면 내 상상은 현실이 될 게 뻔했다. 물론 그 전쟁이 다시 벌어질 확률은 희박하지만….

짝—

“친구야.”

“어……?”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 알았지?”

노엘은 내 양 볼을 잡고 그렇게 말했다. 노엘의 배려에 나는 배시시 웃으면서 아까 썩혔던 고민을 넘길 수 있었다.

“....그래.”

“하아………”

나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조가 발표된 이후로 뭔가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된 느낌이었다.

조가 발표되고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며칠이나 지난 기분이었다.

생각해 보니 결국에는 그들하고 조별 과제를 치루게 된다는 것이 아닌가. 무서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숨을 쉬고 있으니 노엘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친구야. 왜 그래……?”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약간의 불안감이 들어있었다. 아까만 해도 두려운 게 없었는데 왜 갑자기 두려워하는 걸까.

이번에는 너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닌데.

노엘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기에 지금처럼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이 너무나 신선한 반응이었다.

그녀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아까의 붉은색의 어디로 갔는지 그녀의 눈은 평소에 보았던 청록색의 눈으로 돌아와 있었다.

역시 노엘은 붉은색 눈 보다는 지금 이 눈 색이 제일 어울렸다.

“아니야. 아무것도.”

나는 그렇게 말하며 묵혀두었던 숨을 내뱉었다.

결과가 어쨌든 노엘은 나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비난을 들으니 분노해 주었고, 그녀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 주었다. 물론 그것이 정당한 방법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그러면 그녀에게 뭐라고 탓을 하기보다는 그녀를 향해 칭찬을 해 줄 말을 찾았다.

나는 그녀를 칭찬할 여러 말을 찾았지만 결국에는 단순한 칭찬을 할 수밖에는 없었다. 부끄러웠다.

“.....고마워.”

“어?”

“내가 욕을 먹는 걸 보고 화를 내줬잖아. 갚아준 방법이 잘못됐다고 생각은 하지만, 네가 나를 위해 해 준 행동에는 너무나 고마웠는걸.”

나로서는 진심이 담긴 감사였지만 반응은 너무나 잠잠했다.

노엘은 내 감사에 얼떨떨한 건지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놀라움과 욕망이 섞인 눈빛이었달까. 그녀의 눈빛을 계속해서 보는 건 살짝 부끄러웠기에 나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빛을 피했다.

“이런 점이었나………….”

“? 미안 못 들었어.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아니야.”

노엘이 무언가 말을 한 것 같았지만, 노엘은 나에게 그 말이 무엇이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무언가 찜찜했지만 나는 그녀의 반응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뭐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

“자스민.”

“어, 어?”

노엘은 나를 불렀다. 평소와는 달리 내 이름을 불렀다.

그동안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른적이 없었기에 나는 침을 삼키며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조금씩 움찔거리는 입은 살짝씩 만 움직일 뿐 그럴듯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가만히 있어 봐.”

“가만히?”

“어. 그대로 눈도 감고.”

나는 그녀의 말대로 가만히 있었다. 노엘의 말에는 그동안과는 다르게 어딘가 힘이 실려 있었다.

물론 그것뿐인 것은 아니었다. 과연 그녀가 무엇을 할지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살짝이기는 했지만.

노엘은 천천히 내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더욱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얼굴이 내게 점점 다가와 이제는 나와 종이 몇 장 차이로 가까워지는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녀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끄러움에 자연스럽게 눈을 살짝 찡그렸다.

“뭐하냐. 너희.”

“소니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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