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중간고사 (4)
* * *
“내 이름은 칼 엘 이야. 네가 벨리타 자스민 맞지?”
나는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한 명은 강인하고 전사 같았고, 한 명은 전형적인 악역 영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말을 건 사람은 칼 엘 이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원작에서도 살짝 언급된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칼 엘.
브레토니아의 유명한 가문 중 하나인 칼 가문은 브레토니아에서 굉장히 명성을 크게 얻고 있는 가문이었다.
마법보다는 순수한 무력을 추구하는 가문이라고 알고 있었다.
마법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법보다는 인간 자신의 힘을 중시하는 가문이었다.
자스민의 아버지는 ‘존나 피곤한 가문.’이라는 평을 내린 적이 있을 정도였다.
과연 벨리타 가문의 수장다웠다. 칼 가문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알아차리다니.
지금도 나를 싫어한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나를 혐오하는 눈빛과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고 모를 수가 없었다.
아마 나를 강자에 빌붙어 다니는 박쥐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칼 가문이 가장 혐오하는 부류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남의 시선으로 보면 그 시선에 내가 부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 태도를 바꾸고 싶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지금 한번 만나본 것뿐이지만, 바로 알 수 있었다. 내 앞에 있는 칼 엘이라는 사람은 엄청나게 귀찮은 인간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뚫어진 듯한 시선을 피해서 고개를 돌렸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내 절망감이 더해지면 더해졌지, 덜해지지는 않았다.
칼 엘의 옆에 있는 인물은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인물이었다.
바로 자스민이 악역 영애일 시절에 자스민과 같이 다녔던 인물이니까.
다니아 라는 이름들 들었을 때부터 이상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얼굴을 보게 되니까 바로 알 수 있었다.
자스민 패거리 중에서는 가장 존재감이 없었지만, 소설 삽화에서 다니아의 작화에 이상하게 힘이 들어가 있어서 기억이 났다.
자스민이 악역 영애 역할을 하지 않으니까 다른 곳에 붙어서 지내는 건가.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섣불리 추측하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 내가 벌써 결론을 내리는 것은 이르다고 생각했다.
물론 추측은 추측이고 나는 그 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내 조 편성이 망했다는 것 정도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딱 봐도 나를 싫어하는 칼 가문의 여식 하나랑 자스민 패거리였던 귀족 영애 하나.
나에게는 이보다 최악일 수가 없었다.
그게 아니면 나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나는 그녀들의 질문에 나름대로 정성껏 대답했다.
“네, 네. 맞아요……….”
“너 마법진을 만들 수 없다는 게 진짜야?”
“엘, 그만해.”
“왜. 너도 궁금했었잖아.”
“그래도. 그래도 당사자 앞에서 그러면 안 되지.”
그 둘 중에서 칼 엘 쪽은 곧바로 내 심장을 후벼팠다. 나는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고, 그런 그녀를 제지해 주는 것은 다른 조원이었던 다니아였다.
물론 그녀도 나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녀들의 얼굴을 보니 알 수 있었다. 그녀 둘 다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둘 다 경멸하고 있다는 것에 더 가까웠다.
그녀들이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아마 귀족 영애인 내가 소니아와 노엘같은 평민들과 친하게 지낸다는 것이 그녀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겠지.
“뭐, 반응을 봐 보니 맞는 것 같은데.”
“엘.”
“다니아. 너도 궁금했잖아. 그 소니아가 같이 다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그녀들은 소니아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들이 소니아에 대해 얘기를 할수록 힘 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너, 벨리타 자스민 맞지?”
“네……. 맞는데요.”
나에게 질문을 한 것은 엘 이라고 불린 사람이었다.
그녀의 인상을 되짚어보면 차가운 물 같았다.
차가운 그녀의 표정을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말도 낮아지게 되었다.
“우리는 네가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서 보러온 거야.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돼.”
반면 그 옆에 있었던 다니아는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면 과연 그녀가 하는 말이 전부 진심 같지는 않아 보였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다니아는 자스민의 패거리 중 하나였다.
지금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 같기는 해도 나는 손쉽게 믿을 수는 없었다.
내가 과연 그녀들은 믿어도 될지 의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지금 벨리타 자스민이었으니 말이다.
“어떤 사람인지 보러왔건만, 이 정도로 겁쟁이 일 줄이야.”
칼 엘의 날카로운 일침이 날라왔다.
나는 그녀의 말에 따지고 싶었지만, 그녀의 뚫어지게 쳐다보는 눈빛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엘…….”
“왜. 내 말이 틀려? 강자한테 붙어 다닐 때부터 알아봤어.”
다니아는 엘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하였지만 우리 칼 가문의 아가씨는 멈출 줄을 몰랐다.
“강자에게 빌붙고, 눈빛은 나약하고, 내가 말한 것 가지고 기가 죽어있고.”
“벨리타 가문의 여식이라고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엘……!”
그녀는 내 앞에서 내가 싫은 이유를 몇 분 동안 설파했다.
내 눈앞에서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는 연설을 듣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나는 멍하니 엘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사실 별생각은 없었다.
누군가가 나를 싫어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동안 해 왔었다. 솔직히 남의 시선으로 보면 나는 강자에게 붙는 박쥐 같은 인물일 수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기에 나는 엘의 말에 아무런 반론도 하지 않았다.
내가 신경이 쓰이는 것은 아직 교실을 나가지 않은 다른 학생들의 눈빛이었다.
그들은 엘의 신경이 쓰이는 건지 아까부터 우리 쪽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너무나도 노골적이었기에 나는 애써 고개를 숙였다.
몇몇 학생들은 꼬시다는듯이 나를 보며 비웃고 있었다. 아마 그들에게 칼 엘은 나에게 일침을 날린 학생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 내가 나쁜 놈이지.
둘의 눈빛까지는 괜찮았지만 다른 학생들의 눈빛까지 합쳐지니 내 어깨는 계속해서 작아져만 갔다.
이 정도 되니 내 자살 충동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그동안은 잘 억눌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다시 깨워지다니.
내 앞에 밧줄이 놓여있다면 나는 바로 자살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엘…. 그만해.”
“........”
다행히 다니아의 계속되는 중재로 엘은 말을 멈추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그냥 지금은 하하 웃으면서 빨리 이 집을 뜨고 싶을 뿐이었다.
“미안해… 엘이 말이 조금 심했지?”
조금이 아닌데. 조금만 더 내뱉었으면 처량하게 울 자신도 있었는데.
“아, 아니야……. 나는 괜찮아.”
나는 괜찮지 않았지만, 그 생각을 마음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일단 이 장소를 뜨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둘과의 관계는 관심 없고 일단은 대충 수긍하는 척을 했다.
다니아는 내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엘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엘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허.”
그러나 엘에게는 내 행동이 오히려 역효과였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뱉었다.
왜 또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이쯤 되면 내 존재 자체가 문제인가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진짜 꼬리만 개새끼만도 못하네. 실망이다. 벨리타 자스민.”
“엘…! 그만해.”
갑자기 시비를 걸고 실망했다니.
마음속이 점점 끓어오르고 있었다. 짜증 났다.
나를 얼마나 봐 왔다고 그런 평가를 하는 것일까.
여러 생각들이 내 머리를 스쳤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내 몸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나 자신이 엘에 대한 화로 가득 찰수록 내 머리는 점점 더 내려갔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내 다리는 움직이질 않았다. 고개를 들어서 사과하라고 쪼아 붙이고 싶었지만, 내 머리는 수확 철의 벼처럼 푹 숙이고 있었다.
내 앞에 있는 존재에 대한 분노만큼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도 같이 커지고 있었다.
그녀가 딱히 틀린 말은 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꼬리만 개만도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 나는 그녀들의 강함에 빌붙고 있는 것일 수 도 있다.
한번 그렇게 생각하게 되니 계속해서 내 머리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짜증 났다. 그녀의 말이.
하지만 그보다 더 화가 났던 건 그녀의 말에 딱히 반론을 할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나에게는 너무나 비참했다.
나는 그들이 어서 내게서 떠나기를 바랐다. 내 경험으로 봐서 대충 불만 몇 번 더 내뱉다가 제 풀에서 지쳐서 떨어지겠지.
시험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부딪쳐야 하겠지만 일단 지금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하……. 됐다.”
그들은 내 예상대로 얼마 있지 않아 나를 쪼아대는 것을 포기하고 떠나가려고 했다.
그때—
“뭘 됐긴 됐어 이 새끼들아.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돌아온 노엘이 강의실에 돌아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