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58화 (58/120)

〈 58화 〉 중간고사 (2)

* * *

필기시험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걱정한 것 치고는 나름 괜찮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동안 들려왔던 아카데미의 시험 난이도에 비하면 훨씬 쉬운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을 느낀 것은 나뿐만은 아닌 듯 다른 학생들도 빠른 속도로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었다.

시험시간을 꽤 많이 남겨두고도 모든 문제를 풀었다.

혹시 틀린 곳이 있을까 싶어서 다시 한번 더 꼼꼼하게 살펴보았지만, 딱히 틀린 것은 찾지 못했다.

보통 아카데미 같았으면 시험문제를 다 풀면 바로 퇴실할 수 있게 하겠지만, 어째서인지 시험문제를 다 풀어도 시험시간이 끝날 때까지 앉아있으라고 지시가 내려왔다.

나는 의문을 느끼면서 책상 위에 엎드렸다.

엎드린 상태로 왼쪽을 바라보니 노엘도 나와 같이 엎드린 상태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노엘은 나와 눈을 마주치자 씩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 풀었어?’

노엘은 입 모양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직접적으로 답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끄덕여 내 의도를 전달했다.

‘거봐,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했지?’

내 대답에 그녀는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노엘의 말대로 내가 엄청나게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말을 그대로 긍정하기에는 그동안 해왔던 내 행동이 살짝 쪽팔린 감이 있었다.

아까만 해도 쪽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아등바등 한 것을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그녀에게 너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노엘의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환청이겠지…….

이번 시험에는 나와 노엘이 같이 시험을 보았다. 소니아는 듣지 않는 과목이었기에 다른 시험을 치러 갔다.

시험을 치는 자리가 정해져 있지는 않았기에 나와 노엘은 당연하다는 듯이 붙어서 앉게 되었다.

노엘은 시험문제를 쓱 훑어보고는 5분도 되지 않아서 모든 문제에 답을 적고 엎드렸다.

그녀의 그런 행동을 보고는 처음에는 살짝 어이가 없었으나 이내 노엘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똑같은 시험을 두 번째 보는 것은 지겨운 행동이겠지.

시험시간이 끝나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이 마찬가지였다.

내 앞에 있는 교수는 우리는 한번 쭉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시험 수고하셨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마법진을 만들었다. 그가 마법진위에 손을 얹자 학생들이 시험을 쳤던 시험지가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우리가 보았던 시험지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학생들은 처음 겪어보는 일에 꽤 놀랐는지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설에서 읽었었기에 그렇게까지는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덤덤한 것은 아니었다.

책 속에서 글로만 읽는 것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었다.

이미 한번 경험했었던 노엘만 무덤덤하게 반응할 뿐이었다.

“여러분에게 전달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교수는 입을 열어서 우리를 집중시켰다.

“이번 실기시험은 1차 2차로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충격적인 정보였다. 그동안 아카데미의 시험은 모두 1차와 2차 시험으로 나누어졌기에 더더욱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이 처음 듣는 정보였는지 다들 옆자리 사람과 수군거렸다.

“1차 시험이 없는 대신에 2차 시험을 조별로 시행합니다.”

어……?

교수의 말은 내 사고를 정지시키기에 충분했다.

조별 과제라니.

내가 생각했던 수 중에도 없었던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3인 1조로 구성될 것입니다. 조원은 무작위로 정해지며, 필기시험이 끝나는 내일 조별 인원을 확정 드려 안내해 드릴 겁니다.”

시발.

노엘은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노엘이 짓고 있는 표정이 너무나 짜증이 나서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노엘. 너 알고 있었어?”

“뭐……. 대충?”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들썩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목이 땅겼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말했다.

“알면 말해주지, 그랬어.”

“내가 왜?”

“어휴……. 됐다.”

나는 그녀에게 더 이상 따지는 것을 그만두었다.

차라리 소니아라면 나았을 텐데 노엘은 무리였다. 표정을 바라보아도 항상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니 그녀의 심리를 알 수가 없었다.

뭐랄까. 노엘의 웃음은 정치인들이 흔히 짓는 가식적인 웃음 같았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은 그렇지 않은 느낌이랄까. 항상 그런 웃음을 짓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카데미에서는 거의 항상 그런 웃음을 짓고 있었다.

…..별 상관은 없었지만, 가끔은 그녀가 좀 더 편하게 표정을 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퇴실하셔도 됩니다.”

교수의 말에 학생들은 다 같이 최면이 걸린 것 마냥 자리에서 일어나 강의실 바깥을 나갔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끼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노엘도 나랑 같은 생각인지 나와 같이 앉아있었다.

슬슬 사람이 거의 다 빠져나가자 나는 노엘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갈까?”

“그래, 지금이 딱 좋네.”

노엘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면 가실까요, 아가씨.”

“으아…… 느끼해….”

쓸데없이 느끼한 노엘의 말에 나는 질색을 하면서도 그녀의 손을 잡았다.

혼자 일어나는 것 보다는 누군가 끌어주는 것이 더 나으니까.

“그러면 이제 밥이나 먹으러 갈래?”

“......그래. 그게 낫겠다.”

다음 시험까지는 꽤 시간에 여유가 있었기에, 아직 점심을 먹기에는 살짝 일렀지만 노엘의 말을 따랐다.

혼자서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것도 서글프니까.

“근데, 노엘.”

“응? 왜.”

“조원은 무작위로 선정하는 게 아니지?”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딱히 확실한 이유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별 의미 없이 찔러본 것이었다.

하지만 평소와 같지만, 살짝 굳은 노엘의 얼굴을 보니 내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짜야….?”

“..........”

내 물음에 그녀는 쓴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기본적으로는 무작위야.”

“기본적으로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은 교수들이 회의해서 결정하지. 아마 우리 친구는 별 상관은 없을 거야.”

노엘의 답변을 들었지만, 딱히 상쾌해지지는 않았다. 아마라면서 말끝을 흐리는 것을 보아 나도 안심할 수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찌 보면 다행인가.

모르는 사람과 같은 조가 되는 것보다는 소니아 노엘과 같은 조가 되는 게 더 좋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에게는 좋은 이야기였지만, 안타깝게도 내 심장은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크게 뛰고 있었다.

나는 심장의 고동을 무시하며 노엘과 밥을 먹으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돼서 이번 시험은 조별 과제래.”

노엘과의 식사를 마치고 나는 모든 시험을 끝마쳤다.

시험은 처음 보았던 것 같이 모두 내 생각보다는 훨씬 낮은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에 점점 적응이 돼서 나중에는 편한 마음으로 시험을 칠 수 있었다. 정말 내 실력을 시험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시험을 치니 기분이 싫지 않았다.

그러고 옥탑방에 와서 나는 엘리사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사실 털어놓았다기보다는 내가 심심해서 입을 여는 것에 더 가깝지만.

여전히 엘리사가 내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날 있었던 사소한 일이라도 그녀에게 말했다. 그게 계속해서 지속되다 보니까 어느새 하루의 일과같이 되었다.

이런 대화가 내 일상에 자리잡게 되자 엘리사도 내 말에 조금 더 호응을 해 주게 되었다.

나로서는 이보다 좋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아가씨……. 괜찮으시겠습니까.”

엘리사는 살짝 불안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시험에 대한 깊은 불안감이 내재되어 있었다.

“괜찮아. 담당 교수님들도 계시는데 위험할 일은 없을 거야.”

아카데미에서 안전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조별 당 하나의 담당 교수를 두었다.

아카데미의 교수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하나같이 뛰어난 인물들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보였다. 아마도 말이다.

“하지만…….”

엘리사는 내 말에도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는지 말을 살짝 흐렸다.

그녀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내가 가서 치르게 되는 수업은 마물의 사냥 방법이었다.

소설에서의 사건을 기억하고 있으면 더더욱 실기시험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세계는 한번 회귀한 후의 세계니까 괜찮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위험했다면 노엘과 소니아가 조처를 했겠지.

“......”

엘리사는 잠시 어딘가로 가더니 무언가를 챙겨왔다.

그녀의 손에 들은 게 무엇인가 궁금했는데 금방 알 수 있었다.

“아…. 그거.”

엘리사가 가져온 것은 그녀가 내게 주었던 목걸이였다.

분명 엘리사와의 그 일이 있고 버려두었던 그 목걸이 말이다. 잠깐 다시 찼던 적도 있으나 금세 다시 치워두고 말았다.

“아가씨. 이번 시험 도중에는 반드시 목걸이를 차고 계셔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엘리사의 진지한 눈빛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비해 두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엘리사의 손길을 느꼈다.

엘리사는 조심스럽게 내 목에다가 목걸이를 채워 주었다.

그녀의 손이 내 목에 닿을 때는 살짝 움찔거리기는 했으나 움직이지는 않았다.

“.....고마워. 엘리사.”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엘리사를 바라보았다.

“네……. 아가씨.”

푹 숙인 엘리사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