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중간고사 (1)
* * *
아카데미의 중간고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필기와 실기.
필기는 내가 그동안 수없이 쳐왔던 시험들과 다른 것이 없었다. 물론 난이도의 차이는 존재하나 그리 익숙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실기였다.
아카데미의 실기시험은 어렵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1차로 연무장에서 시험을 보고 2차로 테오도르의 밖에 나가 여러 마물을 사냥하게 된다.
물론 지도교사가 감독을 보기 때문에 심각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왜냐하면 원작 소설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이었다.
소설에서는 2차 시험을 치루던 도중 지나치리만큼 강화된 몬스터때문에 주인공은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주인공을 비롯한 여러 인물의 활약 덕분에 넘기기는 했으나 시험 도중에 사망한 학생도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실기시험을 치르고 싶지 않았다.
규정상 하인을 데려가지도 못하니 엘리사도 데려가지 못한다. 몰래 따라오라고 하고 싶지만 마르셀린에게 금방 들킬 게 뻔했다.
엘리사는 치유마법을 제외하고는 마법에 조예가 없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2차 시험은 다 같이 모여 진행한다는 점이었다.
그 말은 소니아도 노엘도 나와 같이 시험을 본다는 것이었다. 그 점만은 나에게 더없이 좋은 소식이었다.
그 둘이라면 나 하나 정도는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침대 위에서 겨우 잠을 청했다.
좁디좁은 방이었으나 그 정도로 작은 방이었기에 훨씬 더 빠르게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온기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내 옆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엘리사의 것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엘리사와 거리를 두었다.
딱히 엘리사를 미워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엘리사가 살짝 거북해진 것 뿐이었다. 그래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동안 엘리사와 같이 잤던 내가 엘리사의 온기를 그리워하게 되는되에는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침대에서 엘리사는 바닥에서 잤었다.
나는 처음에는 엘리사가 내 곁에 없다는것에 만족했지만, 갈수록 만족하기보다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항상 내 곁에서 있던 누군가가 없어진다는 것은 내 생각보다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꽈악—
애꿎은 베개를 터트릴 듯이 꽉 안아도 내가 원했던 온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온기는 사람의 체온이었다. 한번 맛을 보니 나는 떨어질 수가 없었다.
이런 면에서는 마약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떨어지려고 해도 매일 밤 외로워서 미칠 것 같으니 말이다.
“엘리사…………. 올라올래?”
그렇기에 나는 엘리사를 다시 불러들였다.
“............”
엘리사는 내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엘리사는 지금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엘리사가 누워있던 바닥 쪽을 바라보았다.
엘리사는 자는 척을 하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잘 때까지 깨어 있었으니까.
나보다 먼저 잘리가 없지.
나는 그렇게 확신하고 그녀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엘리사. 일어나 있는 거 다 알고 있거든?”
“........”
“진짜 안 일어나?”
하지만 엘리사는 내 말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누가 보면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비칠 정도로 엘리사는 훌륭하게 연기했다.
나한테 통하지는 않았지만.
“하…………”
“.........”
“잠도 오지 않는데 소니아집에나 가야 하나…….”
“.......!”
내 혼잣말에 엘리사의 팔이 살짝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금세 자신의 실수를 자각하고 다시 평정을 되찾으려고 했지만 이미 내 눈에는 다 보인 뒤였다.
거봐. 결국에는 들킬 거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슬며시 웃었다.
엘리사가 나와 소니아의 관계를 질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아직 나에게 그런 감정을 품고 있었구나……
꽈악—
나는 이불을 걷고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러고 엘리사를 꽉 껴안았다. 내 기준에서 으스러질 정도로 말이다.
“아, 아가씨…?”
당황한 듯한 엘리사의 목소리가 일품이었다. 싱긋 웃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역시 안 자고 있었잖아.”
“..............”
엘리사는 아차 싶은 듯 다시 목소리를 죽였지만 이미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엘리사.”
“........”
나는 엘리사를 껴안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잘 때는 같이 침대에서 자면 안되? 계속 혼자 자니까 외로워……”
엘리사는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품에 몸을 더욱 밀착하면서 말을 꺼냈다. 그녀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있었기에 제대로 전달이 될까 걱정했다.
“네가 했던 모든 행동을 용서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아직 네가 필요해….”
나는 아직도 그녀가 했던 행동이 무서웠다.
나는 덮치려고 했던 인간을 내가 어떻게 며칠 만에 용서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것은 한번 맛보았던 온기가 나와 떨어진 채로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한 상태로 나는 방바닥에서 잠들었다.
하지만 그 후에 내가 일어난 곳은 침대 위였다. 혹시 나 엘리사가 나만 올린 것인가 생각했지만, 내 옆자리가 아직도 따뜻했던 것을 생각하면 엘리사가 나와 같이 잤었던 것 같았다.
내가 일어났을 때 엘리사는 내 곁에 없었으니 확실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의 체온이 내 곁에 남아있는 기분이 들었기에 나는 만족할 수 있었다.
엘리사와 일이 있었다고 해도 중간고사가 밀리지는 않았다.
나에게는 남은 시간이 그리 풍족하지 않다고 느꼈다. 물론 그런 느낌은 모든 학생이 느끼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조금 특수하다 할 수 있었다.
마법진을 만들지를 못해서 그 이유를 파악하고 연구하느라 다른 공부를 할 시간이 부족했다.
원래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볼 것만 같은 시험이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어려운 시험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법진에 미련을 버릴 걸 그랬나…….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내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는 한 사람으로서 마법진을 마나로 그려서 사용하고 싶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툴툴거리면서 필기해놓은 것을 보고 있는 것 뿐이었다.
“친구야. 뭘 그렇게 보고 있어?”
그런 나를 노엘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나와 같은 신입생이면서 아무런 걱정이 없어 보이는 그녀를 보자, 살짝 서글퍼졌다.
나도 내가 수능 쳤던 해로 돌아가면 잘할 수………. 있나?
아무튼 나보다는 훨씬 유리한 환경에 놓여있는 것 만큼은 확실했다.
“시험 범위 공부.”
“뭘 그렇게 공부해? 그냥 대충해 대충.”
“너는 그래도 괜찮겠지만 나는 아니거든?”
노엘의 말에 살짝 짜증을 내면서 나는 내가 필기를 해둔 것에 집중했다.
곳 있으면 시험이 시작되었다.
그전에 하나라도 더 머릿속에 박아둬야 했다. 그것도 얼마 가지는 못하겠지만 벼락치기로 공부할 때는 이것만 한 것이 없었다.
“흐응.”
노엘은 그런 나를 흘겨보더니 내가 보던 쪽지를 빼앗았다. 나는 내 손에서 쪽지가 없어지자마자 노엘을 노려보았다.
“.....노엘.”
“친구야. 그렇게 짧은 시간에 외우는 건 쉽지 않아.”
“알거든. 그래도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잖아.”
나는 노엘에게 대꾸하며 그녀가 뺏은 쪽지를 되찾으려 했지만, 그녀는 돌려주지 않았다.
노엘은 내가 아는 여자 중에 가장 키가 컸기에 내가 점프한다고 해서 그녀의 손에 닿을 수는 없었다.
“그럴 시간에 내 얼굴이나 보는 게 더 도움이 될걸.”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내 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노엘의 얼굴은 예쁘다기보다는 잘생겼다는 쪽에 더 어울리는 외모였다. 그런 인간이 싱글벙글 웃고 있었으나 내 마음속에는 열불이 났다.
진짜 쓸데없이 잘생겼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노엘의 한쪽 볼을 꼬집으면서 말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쪽지나 되돌려 주지 그래.”
“아야야야…….”
노엘은 아파하는 것 같았지만, 그 속에서도 계속해서 미소를 짓는 것을 보니 연기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친구야. 내 말 좀 들어봐 봐.”
“.....뭔데.”
나는 노엘의 말에 그녀를 꼬집던 손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내가 꼬집었던 곳을 문지르면서 말했다.
“중간고사는 크게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으로 나뉜다는 것은 알지?”
“당연히 알지….”
“그럼 그중 어떤 시험이 성적에 크게 반영되는지 알아?”
“그야…….”
노엘의 말에 나는 머리를 굴려 보았다. 두 가지의 시험 중에 어떤 것이 더 비율이 높은지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저 비슷하겠거니,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비슷한 거 아니야….?”
“원래는 네 말이 맞아.”
“......원래는?”
“하지만 이번 학기는 조금 특별하게 진행될 거거든.”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그녀의 말을 듣고 내가 숙지하지 못한 공지사항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그런 것은 없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필기시험을 준비하는 것보다 마음을 편히 갖는 게 중요하다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노엘은 내 허리에 팔을 둘렀다.
나는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이내 한숨을 쉬고 그녀의 발걸음에 내 발걸음을 맞춰 걷기 시작했다.
어차피 같이 시험 보는데 나쁠 것은 없겠지.
필기시험 자체는 별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그 후에 있었다.
“이번 실기시험은 조별로 진행합니다.”
시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