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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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어났을 때 그들은 급하게 자리를 정리했다.
그때에는 정신이 없어서 소니아가 말하는 데로 넘어갔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를 빼고 무언가에 관해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그것에 대해 정확하게 알수있을리가 없었기에 내 생각은 그저 추측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나라는 인간의 감각은 그들이 내 생각보다 더 엄청난 이야기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그 생각에 반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찬성하는 쪽이었다.
깨어났을 때 당황하던 소니아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나를 잠시동안 잠재운 건 아마 이사벨라겠지. 소니아의 동의도 있었을 것이고.
딱히 상관없었다.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없었으니까.
그들의 사이에 내가 껴들어 갈 틈새는 없었다. 내가 이사벨라의 관계에 대해 소니아에게 묻는다고 해도 그녀는 그동안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내뱉겠지.
당연하다. 당연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어딘가 충족되지 않은 찜찜함을 느꼈다.
나는 마법진을 찾아내는 것에 실패했다.
이사벨라의 말에 의하면 나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마법진을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뭐……. 예상한 답변이었다.
나는 벨리타 자스민이 아니었으니까. 그녀의 몸에 들어가 있는 내가 마법진을 찾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예상했던 답변이었지만 그렇다고 실망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마음속 어딘가에는 나만의 마법진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모두 헛소리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도서관에 갔던 날 이후로 몇 번이나 시도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마법진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내 절망감을 넘겼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었다.
내 약점은 나만의 마법진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것만큼은 지금 당장 고칠 수 없는 분명한 약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마법을 아예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마법진만 주어진다면 마법은 괜찮게 사용할 수 있었다.
설령 그게 남의 마법진이라 해도 말이다.
이 부분이 내가 나에게 다시금 기대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내가 남보다 못하는 점이 있더라도, 나 자신이 남보다 앞서가는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진의 사용. 남의 것까지 마음대로.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엄청난 가능성이었다.
나는 이 현상을 더욱 완벽하게 알기 위해서 엘리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지금 엘리사와는 사이가 그렇게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 나에게는 엘리사와의 관계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호기심이 더 중요했다.
“엘리사. 여기에 마법진을 만들어 볼래?”
“.....마법진 말이십니까?”
“어.”
“......네. 알겠습니다.”
엘리사의 마법진 자체는 어렵지 않게 받아낼 수 있었다. 그녀의 마법진의 모양이 문제였지만.
그녀의 마법진은 다른 사람의 마법진보다 들쑥날쑥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보통 마법사들의 마법진은 좌우가 대칭인 경우가 많았다.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인간의 역사에 족적을 남긴 마법사들은 모두 마법진의 모양이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보았던 소니아와 노엘, 마르셀린 마법진은 모두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엘리사의 마법진은 제멋대로였다.
어디 하나 대칭이 맞는 곳이 없었고 규칙성이라는 것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엘리사를 부르던 ‘광견’이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뒤죽박죽이고 송곳니같이 솟은 삼각형의 모양을 보면 누구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분명 마법진의 모양이 정갈하고 복잡할수록 마나의 재능이 높은 거라고 하던데. 이는 소설에서도 지나치듯이 언급되던 정보였다.
아마 소니아의 마법진의 모양을 보고 여러 인물이 놀라는 장면이었지. 지금은 소니아가 수업에 빠져버려서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엘리사 신기한 거 보여줄까?”
“네?”
“자 봐봐.”
그렇게 걱정되었던 엘리사의 마법진도 나는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마법진에 비하면 마나가 소비되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하기는 했지만, 마법을 시전하는데 어려움을 주지는 않았다.
이로써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남의 마법진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남의 마법진이 일정 거리 안에 있기만 하면 나는 그 마법진을 이용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거리가 멀어질수록 마법의 위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졌다.)
“아가씨. 방금 그것은….”
엘리사는 내가 그녀의 마법진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아……. 어쩌다 보니까 되더라고….”
“아가씨…….”
그런 나를 보는 그녀의 표정은 어째서인지 정말 슬퍼 보였다.
어째서일까. 나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재능, 특성을 가졌는데. 어째서 그녀는 이리도 슬퍼 보이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것일까.
나는 그녀에게 왜 내 재능을 알아주지 않냐고 짜증을 내지 않았다.
폭우와도 같던 그녀의 눈빛을 보면 그녀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 메이드였다.
내가 눈을 뜨고 지금까지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사실 중 하나였다.
요즈음 그녀와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의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녀의 마음보다 그녀의 행동에 두려움이 생겼을 뿐이다.
“아가씨…… 방금 그 행동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엘리사?”
“이 세계에서 아가씨의 재능은 아가씨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줄 겁니다.”
“어째서…?”
“..........”
내 물음에 그녀는 뚜렷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분명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이 있는 거겠지.
이런 의견은 단순히 엘리사 한 명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똑같은 대답을 했다.
“자스민. 우리를 제외한 다른 사람 앞에서 타인의 마법진으로 마법을 시전하지는 마.”
“에엑.”
소니아도 그랬고.
“그래, 친구야. 소니아 말이 맞아. 지금은 가만히 있어.”
“........너까지 그러는 거야?”
“뭐, 어쩔 수 없잖아. 그 정도로 네가 보여준 광경은 충격적인걸.”
노엘도 같은 말을 했다.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그녀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그녀들은 이 세계를 나보다 훨씬 많이 살아온 사람들이다. 나 하나의 생각보다는 그녀들의 일관된 판단이 옳을 게 당연했다.
나는 그녀들을 믿었다.
여러 사람의 일관된 의견으로 나는 남의 마법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숨기게 되었다.
나는 별로 상관이 없기는 했기에 딱히 주눅이 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 문제에 적극적으로 해결을 하려 한 사람은 의외로 마르셀린이었다.
그녀는 여러 책을 읽으면서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헤치려고 했다.
“하……. 너는 왜 그러냐…….”
“모르겠는데요…….”
“그러겠지…….”
그녀는 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내 마법진을 위해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헛된 시간을 쓰고 있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에게 ‘저는 이 몸과 영혼이 맞지를 않아서 마법진을 찾을 수가 없어요.’라고는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의외였던 그녀의 친절을 불편하게 받아드릴 수 밖에 없었다.
내 생각보다 마스셀린이 나의 문제를 진지하게 해결하려 했기에 나는 점점 그녀에 대해서 미안함의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마르셀린은 아무리 시도해 보아도 내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를 않자 일단은 뒤로 물러섰다.
“너……. 오늘부터 공용마법진으로 하루에 최소한 마법을 5회 이상 사용해.”
…..추가 과제를 주기는 했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아카데미 생활을 하면서 별로 문제가 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아예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나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아카데미에서 마법진을 찾아내지 못하는 학생은 없었다.
그렇기에 마법진을 찾아내지 못한 나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거였다.
그동안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던 사람들이 나에게 보내는 눈초리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다행히도 그들의 눈빛은 호기심과 의문의 눈빛이었다.
어째서 마법진을 만들지 못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같은 의문들만 가득할 뿐 그들 중 누구도 나를 대놓고 깔보지는 않았다.
그 이유에는 자스민이 귀족 영애인 것도 있지만 내 곁에 언제나 소니아와 노엘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이 둘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수군거리는 게 느껴지면 소니아는 바로 그쪽으로 다가가 그들을 제압했다. (눈빛과 약간의 마법으로)
노엘은 소니아처럼 그들에게 바로 다가가지는 않았다. 다만 다 들릴만한 소리로 그들에게 꼽을 주었을 뿐이다.
소니아와 노엘 덕분에 나는 아직은 다른 이들의 괴롭힘 같은 것을 겪지 않았다.
만약 그들 없이 나 혼자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기에 나는 그들과 더욱 붙어 다녔다.
그들도 요즈음 학생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알기 때문인지 거절하지 않아 주었다.
내가 시간을 어영부영 보내는 동안 어느새 아카데미의 첫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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