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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55화 (55/120)

〈 55화 〉 마나

* * *

“뭐하냐?”

마나.

정확한 기원이 알려지지 않은 수수께끼의 힘.

아직도 그 힘에 관하여 완벽하게 알고 있는 존재는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그 말도 이제는 오래된 이야기였다.

이제는 이 세계의 법칙을 깨며 마나를 지배한 자가 생겨버렸으니 말이다.

그때의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해졌다고 해도 그녀가 행했던 지배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

그녀의 의지에 따라 마나 들이 사납게 움직이고 있었다.

동그란 원이었던 것이 이제는 모두를 해치는 다각형으로 변했다.

그녀의 검은 눈이 초거성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보아하니 그녀 자신도 대충 넘어갈 생각 같은 것은 없는 것 같았다.

몇 번이나 봐 왔던 광경이지만 그녀는 볼 때마다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평생을 찾아 헤맸던 광경이었기에 더더욱 그녀는 그 광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주위의 마나는 그녀의 의지를 따라 이사벨라에게 적의를 들어내고 있었다.

아마 이 대륙 아니, 이 세계에서 그녀 보다 마나를 잘 다루는 존재는 없을 게 분명했다.

이런 광경은 황홀하기는 해도 그녀 자신이 죽는 걸 담보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은 아직 봐야 할 것이 많았기에.

“소니아씨 진정하세요. 제가 건 마법은 단순하게 잠이 들게 할 뿐이었어요.”

“..........”

이사벨라의 말에 그녀, 소니아의 감정이 누그러진다.

아마 소니아 스스로 자스민의 상태를 살펴보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을 내렸기에 그런 것이었다.

“애 하나 잠들게 했다고 전우였던 존재를 이렇게 압박까지 해야 해요?”

이사벨라의 말은 그녀를 향한 질타 같은 거였다.

도대체 그녀가 무엇이길래 전우였던 그녀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건지.

이사벨라가 그녀의 행동으로 실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호기심이 일었을 뿐이었다.

도대체 그녀가 무엇이길래 그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하는 거냐. 라는 순수한 호기심.

“내가 아는 당신은 그것 하나 가지고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그녀를 여기까지 이끌었고 그런 질문을 이끌어 내었다.

그녀는 엘프였기에 호심이 생기면 그것을 해결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남들의 시선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여전히.

“재 생각 외로 그녀가 중요하신가 보네요.”

“..........”

말 하나하나에 주변의 마나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금방이라도 찌를 것같이 뾰족하던 마나는 이내 끊임없이 내리는 빗물처럼 축 처지고 말았다.

한 사람의 감정에 따라 마나또한 감정이 생긴 것처럼 성질이 변화한다.

‘진짜 귀찮네.’

이사벨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표정을 살짝 구겼다.

이 사단의 원인은 어디까지나 자신 때문이었으나 그녀는 벌써 잊어버린 듯 했다.

소니아가 바꿔놓은 이 주변은 잠깐 전까지와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어이없을 정도의 현상. 이 정도면 권능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할 정도였다. 시간이 바뀌어도 바뀌지를 않는구나.

지금은 이 도서관 정도지만 조금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다시금 그녀가 제어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이사벨라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 강경하게 대응할 정도라니. 최근에 누군가에게 긁혔나 봐요?”

“........”

정답인가.

다시 점점 사나워지는 마나를 보며 이사벨라는 말했다. 아까부터 입을 열 때마다 상황이 악화되는 것 같았기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제는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계속해서 이 상태를 유지하면 주위에 있는 책들의 상태가 나빠질 수 있었다.

이 주변의 책의 안위 같은 것은 별 상관은 없었으나, 이 책들이 이 도서관에 있는 그것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다.

“화난 건 알겠는데 그만 진정하시죠.”

파악—

그녀는 주변의 마나를 갈무리했다.

소니아 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녀도 어였한 엘프였다. 이 정도는 충분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하아……. 그래…. 그래야지.”

다행히 효과가 있었는지 소니아는 한숨을 쉬며 기세를 가라앉혔다. 그녀는 안고 있었던 자스민을 다시 의자에 앉히고 자신은 그 옆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 지랄까지 한 거냐.”

“.......너무 말이 심하신 거 아니에요?”

“닥쳐.”

“에휴…..”

이사벨라의 한숨이 들려왔지만 소니아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실 별일은 아닌데, 아까 자스민씨가 신기해서요.”

“.....뭐가.”

“마법진 말이에요.”

“아……”

이사벨라의 말에 아까의 일을 떠올렸다. 분명 자스민이 여러 마법진을 사용했었지.

그때의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이사벨라가 끼어들었다.

“겨우 ‘아’ 한마디에요? 좀 더 놀랐다는 반응이라도 해주시죠.”

“내가 왜.”

“쯧.”

혀를 찬 이사벨라 덕분에 순간적으로 몸이 움찔했으나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아까의 일 때문에 몸에 피로감이 가득했다.

“소니아씨도 알잖아요. 이거는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란 걸 말이에요.”

“.........”

“지금까지 인간들은 다른 사람의 마법진에 간섭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모두 수포가 되었죠. 저희 엘프들까지 시도해봤지만, 결과는 같았고요.

그런데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남의 마법진을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이 있다?

이거는 알려지면 이 대륙이 뒤집힐 일이에요.”

이사벨라는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 학자인 그녀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자스민씨는 왜 타인의 마법진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마법진을 찾아내지도 못하면서도 말이에요.

이유는 대충 짐작하고 계시죠?”

“.........내가 모를 리가 없지.”

“뭐, 모르실 리가 없겠죠. 당신이면 자스민씨를 대면하는 순간 알아차렸을 테니까요.”

“그렇지………”

회귀를 하고 나서 자스민과의 첫 만남이 생각났지만, 그때의 기억은 치워두었다.

“아까 자스민씨하고 얘기를 나눠 봤는데 흥미롭더라고요.”

“...무슨 얘기를.”

“그냥 뭐. 이름이 뭐냐, 어떻게 살아왔냐, 어떻게 그 몸에 들어오게 됐냐. 같은 거요. 나중에는 패닉에 빠져서 제 말을 듣지도 못하더라고요.

결국에는 정중하게 거절당했고”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설마 했지만 그렇게 대놓고 물어볼 줄이야. 배려심 같은 걸 조금이라도 기대한 자신이 멍청이가 된 기분이었다.

“하아…. 안 그래도 요즘 힘든 애한테 그런 걸 대놓고 물어보냐.”

“그럼 너무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데 어떡해요.”

그녀의 지식욕은 보통의 엘프들보다 높았다. 가끔 그녀의 지식욕은 광기의 영역에까지 이른 것 같아 보였다.

“그래도 알아낸 것은 있어요.”

“뭔데.”

“지금 자스민의 몸에 있는 사람은 피해자에 가깝다는 거?”

“피해자?”

“네. 이 세계, 저 몸에 원해서 들어간 것은 아닌것 같더라고요. 이 세계도 딱히 좋게 보는 것 같지도 않고요.

어째서 저 몸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힘들게 살지 않을까요.”

고개를 돌려 소니아는 자스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불편하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것을 보아 지금 앉아있는 게 불편해 보였다.

“으응…….”

자스민은 앞으로 고개를 떨궜다. 그 모습을 본 소니아는 그녀를 자기 어깨에 기대게 했다.

아까보다는 편해 보이는 자스민의 얼굴을 보며 소니아는 미소를 지었다.

“아이고 참…….”

그런 광경을 보고 있는 이사벨라는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그동안 소니아가 해온 짓들을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녀의 어이없는 시선에 소니아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니아 자신도 지금 자기 행동에 살짝 부끄러웠는지 시선은 살짝 내려가 있었다.

“뭐. 어쩌라고.”

“반했어요? 아주 그냥 좋아 죽으려 그러네.”

이사벨라는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소니아에게 질문했다.

“뭐?”

“아니, 제가 아까부터 당신 눈에서 꿀 떨어지는 거 보는 게 얼마나 괴로웠는지 아세요? 진짜 닭살 돋아서 못 볼 정도에요.”

“.........지랄하지 말고 닥쳐.”

“노엘씨가 당신을 보면 놀랄 거랬는데………. 그렇게 차가웠던 사람이 태양처럼 따뜻해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소니아는 이사벨라에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입에서 맴도는 말을 내뱉었다 간 그녀의 말을 인정하는 꼴이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아낸 건 아까 말한 게 끝이야?”

그래서 그녀는 화제를 돌렸다. 평소 누군가와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어색했지만 이사벨라는 넘어가 주었다.

계속해서 놀리다가 아까와 같은 재난은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스민씨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이상 마법진을 찾을 수 없다는 것?”

“.......”

“자신이 벨리타 자스민의 몸 안에 들어가 있는 이상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문제죠.”

“그래. 그 외에는.”

“지금까지 알아낸 건 여기까지예요.”

“별거 없네.”

“뭐요?”

“엘프의 눈을 사용한 결과치고는 별로 소득이 없는 건 맞잖아. 안 그래?”

“허.”

이사벨라는 그녀의 말에 주먹을 꽉 쥐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소니아에게 자신이 있다고 말한 것 치고는 상당히 초라한 결과였다.

이대로 소득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 넘기기에는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가 입을 열려고 할 때 뜻밖의 인물이 둘 사이의 대화에 참여했다.

“소니아……?”

“자스민?”

자스민은 비몽사몽 한 상태로 소니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니아는 금방 일어난 자스민에 당황한 듯 이사벨라를 노려보았다. 왜 벌써 일어나냐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아, 아니 벌써 일어날 리가 없는데…..”

한 시간 정도는 누가 세게 때리지 않는 이상 깰 리가 없을 텐데 그녀는 10분도 안 돼서 스스로 일어나 버렸다.

어째서?

이사벨라는 머릿속에서 들이닥치는 의문이라는 행복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방금 일어난 저 존재는 자신에게 끊임없는 의문을 안겨 주었다.

“이사벨라씨….?”

지금 당장 알아내고 싶은 게 산더미였지만 그녀는 일단 뒤로 물러섰다. 오래 연구하려면 오래 사는 법을 알아야 했다.

“아, 안녕하세요. 자스민 씨 많이 졸리셨나 보네요.”

“그런가 보네요…”

“소니아씨도 대화 즐거웠어요. 나중에 꼭 한 번 더 들려주세요.”

“.......?”

소니아는 갑자기 바뀐 그녀의 태도에 의아했지만 이내 그녀의 의도를 파악했다.

“일어나자.”

“어, 어….”

소니아는 자스민을 데리고 도서관을 나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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