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영혼
* * *
자살하고 싶다.
“그……. 그게 무슨 소리에요.”
내 목소리는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고 있었다. 지금 내 간절한 소원이었다. 그녀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기에 불가능한 일이지만.
아까 자기소개를 한 마당에 그녀가 궁금한 것은 자스민의 이름 같은 게 아니었다.
그녀가 궁금한 것은 ‘나’에 이름이었다.
어떻게?
그녀가 나에 관한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생각해보았다. 급한 상황이라서 그런지 머리 회전이 빨라지는 것 같았다.
눈.
그래. 엘프의 눈.
엘프의 눈으로 무언가 눈치를 챈 것이 아닐까. 엘프의 눈에 관해서 아까 들은 설명에 의하면 여러 가지를 볼 수 있다고 하니까.
지금으로써는 이게 가장 타당한 가설이었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그녀가 어떻게 나의 정체를 알아내었는지에 대해 가설을 세웠다고 해서 그녀의 행동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냥 지금 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 하나? 소니아를 부를까? 불러서 뭐 어쩌지?
“저기요.”
“네, 네?”
“지금 저는 당신을 협박하는 게 아니에요.”
이사벨라는 웃으면서 그렇게 말해왔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가 나를 협박을 하는 게 아니라면 참 좋겠지만, 그녀의 빛나는 두 눈은 그렇지 않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크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협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녀의 두 눈을 마주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이미 큰 협박이었다.
“하아……”
내가 계속해서 눈을 내리깔고 있자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요. 뭐, 이름을 말하기 싫을 수도 있죠. 제가 이해할게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녀가 눈을 감자 나에게 주어지던 압박도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눈을 뜬 것 뿐이겠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왔다. 나는 내리깔았던 눈을 더욱 내리깔았다.
“그러면 당신. 다른 세계에서 온 거 맞죠?”
“.........”
“맞나보네요.”
이사벨라는 내가 대답하지 않았음에도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가 말한 답들이 모두 들어맞는 것이었기에 나는 입을 닫고 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이 세계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요?”
그녀는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질문을 날렸다. 나는 고개를 내리깔은 채로 그녀의 질문을 뒤로 한 채로 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 어째서 그런 것들이 궁금하신 건가요.”
나는 처음 인사할 때와 비교해도 엄청나게 작아진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분명 그녀는 내가 마법진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건에 대하여 상담해 주기로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녀에게 전생에 대해 심문을 받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나에게는 너무나 혼란스러웠고 힘들었다.
나는 전생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이 거북했다.
정확히 말하면 불안했다.
그때의 기억을 다시 내 머릿속에서 꺼내고 싶지 않았다.
좋은 기억 같은 건 없었다. 평생을 힘들게 살다가 죽은 것 뿐이다.
내 삶에 그 이상의 가치는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때의 기억을 다시 꺼내서 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전생에 더없이 초라한 인물이라는 것을 그들이 알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니아가 전생의 나를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엘리사, 노엘은. 그동안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내 기억 한구석에 품어놓은 채로 다시는 풀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인생은 그렇게 녹록지 않은 것 같았다.
“......별거 있겠어요. 그냥 호기심이죠.”
“......호기심이라고요?”
이사벨라의 대답은 내 예상보다는 평범한 이유였다. 사실 가장 그럴듯한 이유 중 하나였지만 그동안 너무 비이상적인 인물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인지, 그녀의 목표가 너무나도 건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의 분위기로 보아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거짓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기에 내 의문을 더욱 증폭될 뿐이었다.
“그래요. 이 세계에서 볼 장을 다 봐서 질려있던 찰나, 제가 하나도 알 수가 없는 영혼을 가진 인간이 들어왔다니.
제가 흥미를 느끼지 않을 이유가 없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푸른 두 눈을 빛냈다.
생각해보니 그녀는 엘프였다. 인간이 아닌 엘프. 그녀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오랜 시간 자극 없이 살아왔었던 것 같다.
“아, 물론 아까도 말했다시피 당신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어요. 아직 죽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러니 대답해 주시면 안 될까요? 당신의 삶에 대해서.”
그녀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사벨라는 내 생각보다 나쁜 사람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입장에서만 심각한 일이지 그녀 입장에서는 별거 아닌 일이라고 생각한 걸 수도 있었다.
나 또한 그곳에서 별일이 없었으면 이렇게 과민반응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죄송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그곳에서의 일을 말하지 못했다.
이사벨라의 시선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때의 일은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발언으로 미루어보아 내가 웬만큼 이상한 짓을 하지 않는 이상 나에게 해를 끼칠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지금 이사벨라에게는 내가 왜 마법진을 찾아내지도, 만들어내지도 못하는지 알고 싶어질 뿐이었다.
“........그래요. 그래. 지금은 당신의 의견을 존중할게요. 다른 수도 없으니.”
지금은? 다른 때에는 의견을 존중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을 가속할수록 몸에 소름이 돋을 것만 같아 그만두었다.
이사벨라의 그 말을 끝으로 우리 사이의 특별한 말은 오가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아, 생각해보니 당신은 마법진을 만들지 못해서 여기까지 온 거였죠?”
“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에 그녀는 드디어 내가 이곳에 왔었던 목적을 떠올렸다.
나는 진작에 목적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치를 보느라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내주었기에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칠 수 있었다.
“당신이 마법진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당신은 벨리타 자스민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
“지금 당신, 자신의 이름을 말해보라면 말할 수 있어요?”
“....아뇨.”
“그것 봐요. 당신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않는 이상 당신의 마법진을 만들 수는 없을걸요.”
그녀의 말은 어느 정도 예상했었던 말이라 그렇게 충격이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망감이 어느 정도 맴도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남의 마법진을 사용할 수는 있어요.”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나는 내 두 귀를 의심했다.
마법진은 인간 개개인에게 주어진 증표 같은 거였다. 남의 마법진을 이용한다는 것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일이었다.
“네….?”
“제가 당신에게 마법을 계속해서 시켰던 건 당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였는지 알기 위해서였어요.
당신에게 준 마법진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의 마법진이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저야 모르죠.”
내 물음은 그녀는 단칼에 자르고 말을 이어갔다.
“처음 보는 현상이라 제가 뭐라고 조언해 드릴 수는 없지만, 꽤나 활용하기 좋은 현상이니 그 능력에 대해 잘 알아두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아…. 감사합니다……”
내가 말을 끝마치자 나와 이사벨라 사이에는 또다시 침묵이 맴돌았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과 단둘이서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죽을 맛이었다. 특히 그 대상이 내 비밀을 파헤치려 하는 사람이기에 더더욱.
그녀는 잠잠히 있다가 의자에 몸을 기대면서 말했다.
“그럼 이제 소니아씨를 다시 불러볼까요?”
“아, 저기……”
나는 그녀의 행동을 제지했다.
이사벨라가 소니아에게 지금의 일을 말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소니아도 내가 자스민과는 달라졌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것 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녀에게 내 일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소니아씨에는 당신의 영혼에 관해서는 얘기는 하지 않을 거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뭘요.”
이사벨라가 손가락을 움직이자 그녀가 휘저은 손가락의 괘도에 따라서 선이 그어졌다. 그녀는 그녀 스스로 그었던 궤적을 주먹을 쥐어 사라지게 했다.
무언가 장치가 되어있는 건가 궁금했지만, 그 의문은 금방 풀어지게 되었다.
그녀가 주먹을 쥔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소니아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역시 이사벨라가 했던 행동은 알람과 비슷한 마법인것 같았다.
“소니아아…….”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녀에게 가까이 갈수록 몸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이겨 내려고 해도 내딛는 발에는 힘이 빠지고 몸은 고꾸라졌다. 거기에 눈까지 감겨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