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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51화 (51/120)

〈 51화 〉 잠

* * *

새벽에 종종 공원을 가로질러 갈 때가 있었다.

야밤의 공원은 평소보다 어둡고 차가웠다. 나는 그 분위기가 좋았기에 꽤나 자주 지나가는 편이었다.

하지만 좋았던 것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가로등에 날아다니는 벌레 들과 날카로운 바람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싫어했던 것이 있었는데, 벤치에 누운 노숙자들이 그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냄새를 풍기며 벤치에 앉아 잠을 자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들의 무기력한 모습이 나에게는 거울을 보는 것과 같아 더욱 몸서리를 쳤던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무기력한 사람이란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사실을 저런 사람들을 통해서 알고 싶지는 않았을 뿐이다.

그렇게 그들을 혐오했던 나였지만, 지금은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하던 것처럼 나는 벤치에 누워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짓궂게도 말이다.

내 오른쪽 손에는 아직 전에 받았던 종이를 놓지 않고 있었다.

“하아………”

내 한숨을 들은 건지 차가운 바람은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햇빛도 잘 들지 않을 정도로 빽빽이 자란 나무가 있는 곳이었기에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졸렸다. 그리고 힘들었다.

벤치에 한참을 누워있던 내 감상이었다.

몸에 힘은 들어가지 않아 축 늘어져 있었고 눈은 반쯤 감고 있었다.

깜빡하면 잠자리에 들어버릴 것 같지만, 아직도 눈꺼풀을 잡고 있었다. 그 이유는 날카로운 바람 때문일 것 같기도 했고, 내 머리를 어지럽히는 좀 전의 기억 때문인 것도 같았다.

아마도 후자 때문이겠지만.

원래 기분이 좋지 않으면 바로 옥탑방에 가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지금 나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특히 엘리사나 소니아, 노엘같은 사람들은 더더욱.

나와 친분이 있는 사람일수록 이번 일을 들을 때마다 나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이 그러지 않을 거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믿고 있다는 게 더욱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모르겠다. 지금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하려고 한 거지?

아, 그래.

나는 마법진을 만드는 것에 실패했다. 아직까지도 말이다.

강의실에서 나가고도 꽤나 시간이 흘렀다.

밥을 굶으면서까지 종이를 잡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분석해보고 알아내었다. 하지만 그 노력의 결과는 얻을 수 없었다.

여러 가설을 세워보고 다시 해 보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무언가에 대해 열심히 노력한 만큼 그에 대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았을 때의 허탈감은 배가 되는 것 같았다.

처음 마법을 시전했을 때만 해도 나는 내가 남들에게 뒤처지지는 않을만한 재능을 갖고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오산이었다. 아니, 오만이었다.

재능 같은 게 있을 리가, 그냥 운이었던 거다.

이번에 그 운이 다해버린 거고.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뚫린 것 같았다. 안 좋은 의미로 말이다.

하늘을 보고 있던 몸을 뒤틀었다.

위를 향하던 내 시선은 벤치의 벽을 보게 되었다. 누군가가 나를 보면 새우잠을 자는 것 처럼 보이겠지.

이 공원이 사람의 발길이 적은 공원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테오도르의 외각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지나가지 않았다.

내가 비참하게 누워있는 꼴을 아카데미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나와 제대로 말 한번을 섞어 본 적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입에서 내 이름이 다시 한번 오가는 것은 사양이었다.

나는 등으로 전해져오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 눈을 감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았는데 몸을 뒤트는 것만 했는데도 내 눈은 피곤하다며 아우성이었다.

안 그래도 요즈음 계속해서 힘든 일만 일어나기는 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거는 이런 게으른 낮잠일 수도 있었다.

내가 보았었던 노숙자들이 왜 벤치에서 잠을 청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도 나도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이다.

내가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것을 그들도 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처럼 나도 벤치에 누워도 되는 걸까.

그래, 나도 피곤하니까. 상관없겠지.

“후우……”

존나 피곤해. 그녀의 감상이었다.

저번의 실수를 갚는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 도시를 뒤적거리니 눈은 제발 좀 자라고 난리였다.

그런 아우성을 애써 무시하며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원으로 가는 이유는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항상 여기서 벤치에 앉아 나무들을 바라봤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부터 그랬다.

그동안 이곳을 밥 먹듯이 찾다 보니 이제는 지금 살고있는 집보다 익숙해 진 것 같았다.

연기를 내뿜으며 공원을 걷고 있는데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다.

남부의 노숙자들처럼 벤치에 누워있었는데, 웃긴 점은 그 와중에 신발은 벗어 벤치 아래에 놔두었다는 점이다.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모습이었기에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자스민?”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 튀어나왔다.

얘가 여기에 왜 있는거지.

벤치에서 새우잠을 잘 애가 아닌데.

자스민과 함께 지내면서 알게 된 거지만 자스민은 의외로 까탈스러운 면이 있었다.

특히 잠을 자는 것에는 엄청나게 까다롭다고 할 수 있었다.

자스민은 아무리 졸려 해도 소파나 의자에서 잠을 청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좋은 침대 위에서만 잠이 들었다.

광견 년도 그걸 아는지 자스민의 집에 있는 침대는 최고급이었다. 막상 자신은 자각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자스민이 벤치 위에서 잠을 자고 있다는 거였다.

치익—

일단 피고 있던 담배를 비벼서 껐다.

자스민은 담배 냄새를 싫어하니까. 특히 정제되지 않은 것은 더더욱.

그녀를 깨울까 싶었지만, 곤히 자는 모습을 보니 그러고 싶은 마음은 금방 사라졌다.

“.......?”

그녀의 오른쪽 손은 무언가 쥐고 있었다.

종이?

평범한 종이는 아니다.

평범한 종이보다 누런색을 가지고 있는 걸 보니 아마 머크나무로 만든 종이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마법진을 발견하는 수업을 한다고 했었지.

어제 자스민이 내게 말해 주었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쥐고 있는 종이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지 않았다.

어째서지?

아무리 마법에 재능이 없다고 한들 마법진을 만드는것 까지는 문제없이 되는것이 보통이었다.

자스민이 이런 곳에서 자고있는게 이것 때문이었나.

대충 퍼즐이 맞춰져 가는 것 같았다.

이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지.

순간, 담뱃갑에 손이 갔지만 경이로운 인내심으로 참아내었다.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난 것 같지는 않았다.

이 공원이 나무가 무성해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무거운 눈꺼풀은 시간이 그리 많이 지나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잠이 들기 전보다 더 피곤해진 느낌이다.

그냥 옥탑방에 갈 걸 그랬다. 괜히 엘리사의 얼굴을 보고 싫다고 오기를 부린 것 같았다.

몸이 무거웠다.

머리는 물론이고 팔과 다리도 아령에 깔린 듯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으으……”

신음을 내뱉으며 팔에 힘을 주었다.

뚜두둑 소리를 내면서 가까스로 움직이는 팔을 이용해서 몸을 일으켰다.

“아, 일어났나 보네.”

“........?!”

갑자기 오른쪽에서 들려온 말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았다.

소니아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30분 전?”

소니아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평소처럼 대답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입을 열어서 말을 하고 싶었지만 굳은 입과 과부하 된 머리가 합쳐지자 정상적인 말을 할 수 없었다.

“어…. 그……. 안녕….?”

내가 내뱉은 말은 항상 하던 인사였다. 그것이 지금 나에게는 최선이었다.

“그래, 안녕.”

소니아는 내가 누워있었던 벤치에 앉았다.

“왜 여기서 자고 있었어.”

“어…… 그냥.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렸어.”

거짓말은 아니다. 내가 자게 된 것은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니아에게 아까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하는 것은 쪽팔리기도 했고……

“흐응….”

소니아는 옆에서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말했다.

“이제 일어나. 가볼 데가 있어.”

“....어디?”

“네가 마법진을 쓰게 만들어줄 곳.”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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