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49화 (49/120)

〈 49화 〉 아공간

* * *

“......그래서 어떻게 됐어?”

“네가 알아서 뭐 하게.”

소니아는 내 말에 까칠하게 반응했다. 보아하니 그녀가 원하던 것처럼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음날, 수업이 모두 끝나고 나와 소니아는 음식점에 와 있었다.

수업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진도를 빠르게 나갔다.

진도를 빠르게 나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어젯밤 일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아 집중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어찌저찌 수업을 끝내고 나는 소니아를 찾았다.

소니아는 나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 반대였다. 나는 소니아를 끌고 음식점에 데려갔다.

저번에 노엘과 간 곳처럼 룸이 있는 곳으로 골랐다. 앞으로 물어볼 질문들을 교실에서 그냥 말하기는 조금 꺼려졌기에 이런 조용한 장소가 필요했다.

노엘도 있으면 좋겠지만 노엘은 내가 물어보기 전에 이미 자러 가버리고 말았다.

어젯밤, 소니아와 노엘을 보내고 나는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과연 그들이 카밀라를 제압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희망을 안고.

단순히 실력으로 보면 그들이 카밀라에게 밀릴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주인공과 그녀의 동료가 아닌가. 소니아가 만든 방어벽을 카밀라가 뚫지는 못했던 것을 보면, 카밀라가 소니아보다 강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노엘은…… 살짝 애매했지만, 그녀의 물약은 분명 소니아에게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물론 그렇다고 카밀라가 쉽게 잡힐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와 만난 적은 두 번밖에 없지만, 그 두 번의 만남 동안 그녀가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엘리사와 대등한 전투를 펼쳤다는 것부터 그녀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엘리사는 소설에서,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근접전에서는 가장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엘리사와 근접전에서 대등하게 겨루고, 엘리사를 바닥에 눕혔다는 것을 보면 카밀라 역시 만만찮은 사람임은 틀림없었다.

그래서 의문이었다. 아침에 보았던 노엘과 소니아의 모습에는 잔 상처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옷으로 상처를 감추고 있는 건가 생각해 보아도 그럴 리가 없었다.

노엘과 소니아가 어젯밤에 입고간 옷은 교복이었다. 만약 그녀가 몸쪽에 상처가 났다면 옷이 먼저 찢어졌을 것이다.

물론 치유마법으로 상처를 치유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아는 한 소니아는 치유마법에는 별 관심이 없었기에 연구하지 않았었다.

카밀라가 약해져 있다고 했으니 상처 없이 그녀를 잡은 걸까.

아쉽게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나도 카밀라가 잡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내 옆에서 똥 씹은 표정을 하는 소니아 덕분에 카밀라는 잡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카밀라를 잡았으면 저렇게 표정에서 ‘나 짜증 났소’라고 말할 리가 없지 않은가.

과연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알면 좋잖아. 안 그래?”

“안 좋아. 하나도.”

소니아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내가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겨도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보통 이렇게 몇 번 하면 돌아봐 줬는데…….

대체 어젯밤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내 의문은 깊어져 가고 있었지만 내 물음에 대답해줄 사람은 침묵을 고집하고 있었다.

“소니아아……. 조금만이라도 알려주면 안 돼?”

“하아……….”

소니아는 한숨을 쉬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표정은 심란해 보였다.

나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그녀에게 지어 보였다.

전부터 느낀 거지만 소니아는 내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부탁을 하면 웬만하면 모두 들어주었다.

나 자신도 그것을 악의적으로 이용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번 한 번만 하면 괜찮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 표정을 보고 고개를 돌려 피하려고 했다. 언제나 그대로인 패턴이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잡아 내 얼굴을 바라보게 했다. 소니아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아하니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조금만. 어?”

“알았어, 알겠으니까 얼굴 좀 치워봐.”

그녀의 말에 나는 그녀의 얼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이 정도면 굉장히 만족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전부 말할 수는 없어.”

“알아,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어.”

소니아가 내게 전부 말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카밀라는 회귀자다. 그것은 그동안 카밀라의 행동과 말로 증명되었다.

아마 지금 내게는 알려줄 수 없는 중요한 무언가가 있는 거겠지.

그것들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소니아는 재촉할 수는 없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카밀라가 어떻게 되었는지와 카밀라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였다.

그 안에서 알아낸 다른 것들은 중요순위에서 한참은 밀렸다.

카밀라가 테오도르에 있는 것은 무슨 목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테오도르에 위협이 될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소니아는 머리를 쓸고 입을 열었다.

“어젯밤, 나하고 노엘은 카밀라의 은신처의 입구를 찾아 나섰어. 테오도르안 어딘가에 카밀라의 은신처로 향하는 입구가 있는 건 확실했으니까.”

“그걸 어떻게 알아?”

“카밀라는 아직 테오도르라는 도시에 볼일이 있으니까. 카밀라가 해야 할 일이라는걸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단시간에 할수있는건 아닐 거니까.

볼일이 끝났으면 아마 어제 너를 두고 가는 게 아니라 데려갔을걸.”

소니아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아마 나를 데려가는 카밀라를 상상한 것 같았다.

“마법으로 생성한 아공간은 무조건 입구가 하나 이상 존재해야 해. 그동안 써왔던 입구는 저번에 들켰으니까 다른 곳에 새로 만들었겠지.”

“.....물론 카밀라의 아공간은 한 차원 위의 공간이지만, 원리는 비슷해.”

“카밀라랑 잘 아는 사이야?”

“......왜?”

“카밀라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아서…….”

소니아는 카밀라를 잘 아는 것처럼 말했다.

둘 다 회귀를 한 사람이니 서로 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지만, 둘이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했기에 소니아에게 물어보았다.

“......전에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어. 그렇게 많이 만난 건 아니라 잘 아는 건 아니야.”

소니아는 그렇게 말하고 어젯밤의 상황을 이어 말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돌아다닌 뒤에야 입구를 찾을 수 있었어. 저번에 너를 잡아갔던 곳 근처더라고.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딱 그 꼴이었지.”

소니아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소니아는 방금 도착한 술잔을 들어 입에 갖다 댔다.

“......술은 왜 먹는 거야.”

“.........먹지 말까?”

소니아는 내가 말하자 입에서 술잔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어째서인지 살짝 불쌍해 보였다.

“아, 아니. 괜찮아.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친구의 술까지 통제할 정도로 나는 못돼먹은 사람은 아니었다. 술은 나도 가끔 즐기는 편이니 싫어할 이유도 없었다.

소니아는 다시 술잔을 입술에 갖다 댔다. 술을 물처럼 마시던 소니아는 결국 술잔에 든 술을 전부 마시고 2잔을 더 시켰다.

그냥 먹지 말라고 할 걸 그랬나.

“입구에는 간단한 보호 마법이 있었지만, 강도는 나무판자 정도였어.

아마 보호의 의미보다는 누군가 들어왔다는 알림의 의미 같았지.”

식사가 도착해도 우리의 대화는 끊기지 않았다.

나는 먹으면서 소니아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아공간 안은 무척이나 넓었어. 내가 저번에 왔을 때와는 구조가 맞지 않아졌더라고.”

“어쨌든, 곳곳을 샅샅이 뒤졌지. 대부분은 쓸데없는 공간이었지만 몇몇 곳은 들린 가치가 있었지.”

소니아는 내게 작은 구 형태의 공을 보여주었다. 유리같이 투명한 공이었다. 바지 주머니에 들어가기에는 살짝 컸지만 작은 가방 안에는 몇 개나 넣을 수 있을 정도였다.

“뭐야 이게?”

“폭탄.”

소니아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마나를 공으로 흘려보냈다.

“우악!”

그러자 공 안쪽에서 주황빛이 점점 뿜어져 나왔다. 순간적으로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밝아진 공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룸 안이라 망정이지 평범한 식당에서 했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렇게 마나를 흘려보내면 터지는 폭탄이야.”

“....놀랬잖아.”

소니아는 내 눈을 살짝 피하고 말을 이었다.

“이런 게 몇 개나 있더라고. 다른 것들도 많이.”

“어디다 쓰려는 걸까?”

“글쎄. 어디에 쓰든 이 도시에 이득이 되는 방향은 아니겠지.”

“그런가…….”

나는 음식을 입에 넣으면서 폭탄의 사용처를 생각해 보았다. 딱히 의미 있는 행동은 아니었지만.

“카밀라는 만났어?”

“만났지.”

별로 좋았던 기억은 아닌지 소니아는 얼굴을 찌푸렸다.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 것 같았다.

“전에 너를 구출했던 그 방에 있더라고. 나하고 노엘이 들어온 거는 이미 알고 있었어.”

“우리가 들어오자마자 입을 터는데 씹고 잡으려고 했지. 근데 그 시발련이…………”

시발련 나왔네.

소니아의 입에서 누군가에 대한 진심이 담긴 욕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엘리사였고 카밀라는 이번 두 번째였다.

대체 카밀라가 무슨 말을 했길래 소니아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나중에 카밀라를 만나게 된다면 물어봐야 하나.

“못 잡았나 보네.”

“하아……. 그래…… 못 잡았지. 나 때문에.”

소니아는 몇 번째인지 모르겠는 술잔을 들이켰다.

나는 그녀의 움직이는 목울대를 바라보며 음식이나 먹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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