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담배
* * *
소니아는 그 말에 노엘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그냥 마침 담배가 다 떨어진 참이라 부탁한 거야. 너도 알다시피 담배는 귀한 물건이라 얘한테 말하는 게 가장 간단하거든.”
“아하……”
소니아는 어딘가 숨기려는 것이 있는 것처럼 말이 빨라졌다. 진짜 그런 것 같지는 않아 보였지만, 소니아가 이렇게 말이 빠르게 하는 것을 처음 봐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연기에서 담배 냄새가 그대로 나는 거야?”
“어……?”
“그동안은 과일 향이 나는 담배를 폈었잖아.”
그동안 소니아와 같이 다니면서 소니아가 담배를 피는 것을 꽤 봐왔었다.
내가 담배 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걸 소니아도 알았기에 내 앞에서는 그렇게 많이 피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끔 못 필때가 있었는데, 그때 담배 연기에서 나는 향은 모두 과일 향이었다.
그나마 과일 향이 나서 소니아가 담배를 피울 때 자리를 피하지 않을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알던 담배 냄새였다면 나는 소니아가 다 피울 때까지 떨어져 있었겠지.
…...어쩌면 그 후에도.
그동안 계속해서 과일 향 담배를 피우길래 그런 담배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아니, 그게.”
소니아는 살짝 당황한 듯 말을 살짝 끊었다.
“여기에 왔을 때 노엘이 아까 폈던 담배를 만들고 있더라고. 그런 담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한번 펴본 것 뿐이야.”
“무슨 개— 컥!”
“이 새끼한테는 과일 향이 나는걸 만들어 달라고 했으니까 걱정할 것 없어.”
“........그래?”
소니아의 해명에도 어딘가 찜찜한 기분은 남아있었다. 딱히 소니아를 의심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좀 더 깔끔한 진실을 원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노엘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묘하게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노엘, 소니아 말이 맞아?”
“어……….”
노엘이 고개를 슬쩍 돌려 소니아 쪽을 보려 하길래 얼굴을 잡고 나를 바라보게 했다.
어딜 보려고.
노엘은 몇 번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내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사실……. 소니아 말이 맞아.”
“엑.”
노엘은 한숨을 쉬면서 소니아의 말이 맞다고 긍정해 주었다. 나는 무언가 더 비밀이 있을 것 같았는데, 내 착각이었나 보다.
나는 소니아에게 사과했다. 내 감만으로 소니아의 말을 믿지 못한 건 소니아가 보기면 불쾌했을 것 같았다.
“.....미안 소니아. 너 말이 맞았는데…. 의심해서 미안.”
“.........아냐. 괜찮아.”
다행히도 소니아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넘어가 주었다. 그녀의 배려심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친구야. 하나 물어봐도 돼?”
노엘은 내 목에 팔을 감았다. 원래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지금은 불편했다.
어젯밤의 기억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노엘의 옷에서 나는 매캐한 담배 냄새 때문이었다.
사탕을 먹고 있어서 그럭저럭 버티고 있는 건데 내 앞에 담배 냄새가 짙게 밴 옷을 들이미니까 참을 수가 없었다.
“알았으니까 팔은 치워줘……”
“그러지 뭐.”
노엘은 시원하게 내 말을 듣자마자 팔을 치워주었다. 이럴 때 시원시원한 면이 노엘의 좋은 점이었다.
“이제 물어봐도 되지?”
“물론이지.”
“별건 아니고, 오늘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어지간히도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 것 같아서.”
‘뭐……. 그렇지.”
“담배냄새는 왜 싫어하는거야?”
“......그냥, 냄새 자체가 불쾌하고, 찝찝해. 솔직히 아까도 문 앞에서 돌아갈 뻔했어.”
“아하……. 그래?”
노엘은 내 대답을 듣자마자 소니아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소니아는 왜 쳐다보는 거지?
소니아는 노엘의 얼굴을 보자마자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다. 소니아의 얼굴을 보니 짜증이 서려 있었다.
노엘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소니아의 욕을 가볍게 씹었다. 노엘에게는 소니아의 욕은 일상이 된 것 같았다.
“그럼 나도 친구를 위해 방금 그 담배는 피지 말아야겠네.”
“아니,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담배 냄새를 싫어한다지만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취미를 잃어버리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차라리 내가 담배 냄새에 익숙해지는 것이 훨씬 나았다.
“아냐. 나는 원래 담배를 많이 피우지 않았으니까 별로 상관없어.”
“그리고 친구 사이인데 친구가 불쾌해 하는 것을 굳이 할 생각은 없어. 아마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지 않을까?”
“너……. 이 새끼….”
“그렇지? 소니아.”
“하…. 그렇지.”
노엘은 소니아에게 고개를 돌리고 대답을 요구했다. 소니아또한 노엘의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나를 배려줄려고 하는 모습들은 내게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친구야, 너는 여기에 어쩐 일이야?”
노엘은 나에게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여기에 왜 왔는지는 말하지 않았구나.
“...별 이유는 없어. 벌써 집에 가기는 싫어서.”
“그래?”
노엘은 내 대답을 들으면서 과자를 가지고 왔다.
연구실 중앙에 있는 책상은 꽉 차 있었기 때문에 다른 책상을 가지고 와서 그 위에 과자를 늘어놓았다.
사실 이렇게까지 될지는 몰랐다. 잠깐 수다나 떨고 돌아가려고 했지만, 나머지 둘은 그러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연구실 안을 가득 채웠던 담배 연기는 대부분 빠져나갔다. 물론 아직도 노엘과 소니아의 옷에서는 냄새가 짙게 났지만, 그것은 불가항력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 날씨에 목티를 입었네.”
“아……”
노엘의 말에 나와 소니아는 얼어붙었다. 노엘에게 악의는 없었겠지만, 나에게는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느낌이었다. 소니아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 왜 그래.”
노엘도 이상한 기류를 눈치채고 나에게 물어보았지만 나는 선뜻 대답해줄 수 없었다.
나와 소니아가 입을 굳게 닫고 있는 모습을 보고 노엘은 입을 열었다.
“.........뭐, 나중에 말해줘.”
노엘답다면 노엘다운 반응이었다. 노엘은 가볍게 지금 이 주제를 넘기고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그녀의 능숙한 대처에 우리는 침묵에서 벗어나 다시 얘기를 꽃피울 수 있었다.
전처럼 마음속이 정말로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시간은 잘만 갔다.
나는 초콜릿을 입에서 녹이면서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티 없이 푸르던 하늘은 노르스름해져 갔고, 구름도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들의 수다는 계속되었다.
각자 자기 분야의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한번 전공분야에 대해 입을 열면 닫힐 줄을 몰랐다.
특히 노엘같은 경우에 단순히 연금술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에 숨겨진 비밀 같은 것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이 대륙의 신비한 이야기를 실감 나게 전해주었다.
대화의 지분 5할 이상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노엘이 잠깐 자리를 비운 지금 이 공간에는 나와 소니아만이 남아있었다.
우리 둘 사이에는 그럴듯한 대화는 하나도 오가고 있지 않았다.
이유는 알다시피 전에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내가 과민반응을 한 것 같았는데, 소니아가 너무 미안해해서 내가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굳게 닫고 있었던 입을 열고 소니아에게 말을 걸었다.
“소니아, 미안해.”
“뭐?”
소니아는 내 말을 듣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 없는 것 같았다.
“전에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한 것 같아서…….”
“아니.”
소니아는 단호하게 내 말을 끊었다. 그녀의 음색은 평소보다 살짝 내려간 것 같았다.
“내 잘못이야. 너는 잘못한 것 없어.”
소니아는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굉장히 답답해하는 게 여기까지 느껴졌다.
“과민반응이 아니라 그게 정상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지 마.”
“알았어……”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머리로 이해했다기보다는 그녀의 답답함과 죄책감이 내 고개를 내려가게 했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들 재밌게 하실까.”
그때, 노엘이 미소를 지으며 돌아왔다. 그녀의 능글맞은 웃음을 보고 소니아는 바로 짜증을 내며 말했다.
“네 알 바 아니야.”
“그래?”
노엘은 자리에 앉아 물을 마셨다. 그녀는 소주 광고에 나오는 연예인처럼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캬하 같은 소리를 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볼 때는 우리 친구가 가린 목이랑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내 말이 틀린가?”
대뜸 노엘은 핵심을 짚어내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 아까 나중에 말해달라고 하지 않았냐?”
“네가 알고 있으면 얘기는 다르지. 너도 아는데 뭐.”
소니아는 빈 과자 상자를 노엘에게 던졌다. 소니아가 진심으로 던진 것은 아니었기에 노엘도 손쉽게 피했다.
“나도 몰라.”
“그래?”
“그래 이 새끼야.”
그들이 얘기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서 나는 나 나름대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들과 얘기를 하다 보니 내가 지금 숨기고 있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졌기 때문이다.
처음 얘기할 때의 쪽팔림을 제외하면 나에게 손해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이대로 숨기고 살아봤자 큰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둘이니까.
나는 목 티를 아래로 내리고 둘에게 말했다.
“저기, 애들아. 사실…….”
"가면녀, 그러니까 카밀라한테 덮쳐졌어."
"뭐, 시발?"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