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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46화 (46/120)

〈 46화 〉 연기

* * *

노엘의 연구실은 중앙에 있는 책상을 제외하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편이었다.

연금술의 특성상 요상한 냄새가 많이 나는 편이었지만, 노엘의 연구실에 크게 창이 나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자랑은 아니지만 노엘의 연구실에 청소한 내 덕이기도 했다.

정성을 다한 내 청소가 아니었으면 연구실 책장은 거미줄로 뒤덮였을 것이다.

…..사실 자랑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귀찮다고 청소를 등한시하던 노엘도 최근에는 스스로 약간이나마 청소를 시작하게 할 정도니까.

그 정도로 자부심이 있었는데………

노엘의 연구실 문 앞.

평소와 달리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부터 불쾌한 냄새가 진동했다.

꾸덕꾸덕한 쩐내와 불순물을 태우는 냄새. 어디선가 많이 맡아보았던 냄새였기에 역겨움은 배가 되었다.

순간 그냥 집에 갈까 생각했지만, 생각을 고치고 문고리를 잡았다.

아니다.

이 안의 공간은 내가 땀을 바쳐 정리한 공간이다. 최소한 무슨 일인지는 알아보고 가고 싶었다.

침을 삼키고 확 문을 잡아당겼다.

“콜록, 콜록, 콜록!”

문을 열자 연막탄이 터진 것처럼 회색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기에 기침이 터져 나왔다.

진짜 이 정도면 심각한데…….

나는 코를 막은 채로 회색 연기 속으로 돌진했다. 중요한 작전을 수행하는 특수부대같이 말이다.

뿌연 연기 속에 희미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아마 노엘의 모습이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걸어가는데 또 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누구지?

내 발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 있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친구야?”

노엘의 목소리였다. 역시 노엘이 맞았다.

아는 목소리가 들리자 긴장했던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코를 막고 있었기 때문에 말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손을 위로 휙휙 저으면서 반가움을 표시했다.

“푸핫, 친구야, 뭐해?”

노엘은 내 모습이 우스웠는지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그녀의 손에는 하얀색의 짧은 원통형의 물체를 들고 있었다.

담배. 정확히 말하면 궐련이었다.

어쩐지. 이 냄새가 익숙했던 이유가 있었다. 어디서나 손쉽게 맡아볼 수 있는 담배 냄새라면 몇 번이나 지겹게 맡아보았으니까.

이 세계에 오고 나서 담배를 보는 건 드문 일이었다. 전에 골목길에서 소니아와 피고 있는걸 본 후로 처음이었다.

분명 그때 노엘 본인의 입으로 과일 향이 나게 했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왜 지금은 내가 알던 담배 냄새가 나는 걸까.

나는 그대로 방향을 틀어 창문으로 다가갔다. 굳게 닫혀있는 창문을 보니 뒷골이 땅기는 것 같았다.

최소한 담배를 필 거면 창문을 열어야 하는 거 아닌가.

창문을 활짝 열자 밖의 시원한 공기가 연구실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밖으로 쭉 빼고 그동안 참았던 숨을 쉬었다. 연기에 질식할 것만 같았는데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친구야.”

노엘은 내 등을 툭툭 쳐 자신을 보게 하더니 내게 동그란 사탕을 건넸다.

하늘색의 투명한 사탕이었는데 만졌을 때 끈적함이 느껴지지 않았으면 구슬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걸 먹으면 좀 괜찮아질 거야.”

노엘의 말에 사탕을 입에 넣고 씹었다. 그러니 상쾌한 맛이 확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코와 입이 얼얼해질 정도로 말이다.

전에 자주 먹었던 목캔디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훨씬 강도가 센 것 같다는 점이랄까.

코가 얼얼해지니 코로 들어오는 담배 연기도 공기와 차이가 없게 느껴졌다.’

이러니까 그나마 괜찮네.

나는 창가에 등을 대고 노엘에게 이 참상의 원인에 관해 물어보았다.

“.....노엘. 이게 다 뭐야.”

연구실은 엉망이었다. 원래도 엉망이었던 책상은 물컵 하나 놓을 장소가 없을 정도로 꽉 차 있었다.

책장의 책들은 바로 앞의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바닥은 알 수 없는 용액들로 젖어 있었다. 어떤 책장은 엎어져 있기도 할 정도였다.

하루 만에 이렇게 변할 줄이야…….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아 조금 서글퍼졌다.

“아하하……. 그게…….”

노엘은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옆으로 향했다.

그녀의 시선은 의자에 앉아있는 다른 인물에게 향했다. 그러고 보니 연기 속에서 노엘 말고도 다른 사람을 봤지.

지금 내 시선에서는 의자의 등받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늘씬하게 뻗은 다리로 여자겠구나, 하고 추측할 뿐이다.

노엘은 그녀에게 계속해서 일어나라고 눈치를 주었다.

이윽고 그녀는 손에 들고 있었던 담배를 의자에 비벼 끄고(노엘은 이때 질끈 눈을 감았다.) 의자에서 일어나 나를 바라보았다.

“.......소니아?”

“...........”

의자에 앉아있던 인물은 다름 아닌 소니아였다. 갑자기 나타난 의외의 인물에 나는 할 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소니아도 마찬가지인지 그녀는 내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까 내게 했던 행동 때문에 그러는 걸까.

정말로 그것 때문이라면 내가 더 미안할 따름이었다. 소니아의 행동은 지금 생각해 보면 심한 행동은 아니었다.

내 행동 때문에 소니아가 상처를 받은 것 같아 내가 더 미안할 따름이었다.

“어…. 하여튼, 여기 계신 소니아씨가 담배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말이야. 나는 만들어 주고 있었던 거지.”

“.......그거랑 엎어진 책장과 바닥은 무슨 상관이야?”

“어……. 시행착오?”

무슨 개소리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더 이상 파고들지는 않았다. 연금술사에게 과정의 이유를 물어본다고 한들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나는 접이식 의자를 하나 가져와 펴서 앉았다. 창가에 계속해서 서 있기에는 다리가 아팠다.

내가 여기에 왜 왔더라.

나는 머리를 잡고 내가 여기에 왔던 이유를 되짚어 보았다.

내가 여기를 왜 온 거지?

아 포션. 그러고 보니 노엘이 마시라고 주었던 포션에 관해 물어보려고 했지.

나는 바로 노엘에게 그 포션에 관해 물어보았다.

“노엘. 어제 나한테 줬던 포션은 뭐였던 거야?”

“아, 그 포션?”

노엘은 포션이 언급되자마자 무릎을 굽혀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진중해지자 나도 같이 진중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게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친구야, 어젯밤에 내가 준 물약을 먹고 이상한 일이 있었어?”

“이상한 일……?”

“어. 이상한 일. 몸이 가벼워졌다든가, 시야가 활짝 띄었다든가.”

어젯밤에 그런 일이 있었나?

스스로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그런 일은 없었다. 처음에는 카밀라가 쳐들어온 일을 말하는 건가 싶었지만, 노엘이 이어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딱히 그런 일은 없었다.

카밀라하고 엘리사가 싸웠을 뿐이지 내 몸에는 딱히 이렇다 할 변화가 있지는 않았다.

“딱히….? 내 몸에 이상한 변화 같은 건 없었는데?”

“.........그래?”

노엘은 안심했다는 듯이 무릎을 피고 일어나 소니아를 보며 말했다.

“들었지? 네가 생각하는 최악의 경우는 아니었어.”

“에?”

고개를 돌려 소니아를 쳐다보았다.

소니아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로 천장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갑자기 진행된 대화에 이해가 되질 않아 노엘을 쳐다보았다. 노엘은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챈 건지 나를 바라보면서 설명해 주었다.

“네가 마신 건 일종의…… 보험이랄까?”

“보험?”

“말 그대로의 의미야. 네가 목숨에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으면 너를 지켜줬을 거야.”

노엘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뭐, 그런 일은 없어서 다행이지만.”

노엘은 소니아의 맞은편에 있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효능이 있는 물약이었다니…….

노엘에게는 언제나 고마울 따름이었다. 에너지 드링크 같은 건 줄 알고 있었는데 그런 효능을 가진 포션이었다니.

연금술사의 물약은 꽤 귀한 물건이었다.

이 대륙에 연금술사라는 사람들이 적은것도 한몫하기도 했지만, 포션이 연금술사의 정수 같은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연금술사는 함부로 포션을 제조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제작하기도 어려운 까닭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창난 가성비 때문이다.

보통 연금술사가 치료에 도움을 주는 포션을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치유포션을 만드는 데에는 사람 몸무게만큼의 재료가 필요했다.

그 정도의 가성비를 가지고 있었기에 많은 연금술사는 삶의 마지막에야 포션을 제작했다.

자신이 죽기 전 모든 재력과 실력을 쏟아부어 자신의 일생이 전부답긴 포션을 만들고 죽었다.

막상 그렇게 만들어진 포션은 너무나 강력한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포션의 가격도 엄청났기에 실제로 사용하지는 못하고 경매에만 출품될 뿐이었다.

….그런데 그 정도로 엄청난 포션을 나한테 먹으라고 했다고?

나는 기껏 해봐야 에너지 드링크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이 정도로 엄청난 효과를 가진 포션이었다니.

“그렇게 엄청난 걸 내가 먹어도 되는 거야……?”

“뭐, 어때. 그런 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니. 노엘의 말은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연금술사가 포션을 만들어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려준 장본인이 그런 말을 하니 충격이 배가 되는 것 같았다.

“........분명 전에는 포션을 만드는 일은 굉장히 복잡하고 효율이 나오지 않는 일이라 하지 않았어?”

“맞아. 하지만 나는 다르거든.”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펴는 노엘을 보니 몸에 힘이 빠지는 눈빛이었다.

뭔가……. 허무하네…….

“그래도 고마워. 근데, 소니아가 담배는 왜 만들어 달라고 한 거야?”

“아……. 그게……”

노엘이 입을 열려는 순간 소니아가 입을 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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