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노크
* * *
“어서 오십시오.”
식당 안에 들어가자 직원이 인사를 건넸다.
내 눈에 보이는 직원들은 모두 정갈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확실히 고급스러운 곳이라는 게 체감되었다.
나에게 이런 고급스러운 곳은 살짝 부담스러웠다. 내가 들어와도 없는 사람처럼 무심하게 반응해 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았다.
이 세계에서 귀족으로 지금까지 살았다면 슬슬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아직 나는 외형을 제외하면 그대로였다.
행동거지, 습관, 피해의식, 가치관, 인생의 목적까지 말이다.
“두 명이야, 안쪽 자리로 부탁해.”
노엘은 직원을 거의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평소와 같이 늘어지는 말투이기는 했지만 나에게 말할 때와는 달리 살짝 차가운 말투였다.
공적인 대화를 할 때는 이런 느낌이구나….
처음 보는 노엘의 모습은 내게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알겠습니다.”
직원은 그렇게 말하며 우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식당의 가장 위층에 있는 작은 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다른 방에 비하면 작다는 것이지 객관적으로 보면 나름 큰 방이었다.
이 방의 창가로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슬슬 노을이 져가고 있었기에 창가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방 위에 달린 은은한 조명은 이 방의 분위기를 더욱 고급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뭐라 해야 하나… 딱 연인들이 오기 좋은 곳 같았다.
“친구야, 뭐해? 빨리 앉아.”
노엘은 멍하니 망상에 빠진 나에게 말을 걸었다. 노엘은 어느새 의자를 빼고 앉아있었다.
노엘은 꽤나 이 식당에 익숙해 보였다. 보통 이렇게 고급스러운 식당에 들어오면 주변을 둘러보는 게 보통일 텐데 노엘은 자기 집 안방처럼 식당을 헤집고 다녔다.
노엘의 원래 성격 덕분에 그런 걸까 생각해 보았지만, 이 식당의 구조까지 손바닥 보듯이 알 정도면 이 식당을 몇 번이나 와본 것 같았다.
회귀자니까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노엘이 이런 고급스러운 식당을 많이 와봤다니, 어째서인지 신기한 느낌이었다.
그동안 내가 봐온 노엘이란 사람은 아카데미를 갈 때를 제외하면 모든 시간을 실험실에 때려 박는 사람이었다.
연금술이라는 학문의 특성도 그녀의 동선에 영향을 끼쳤겠지만, 연금술을 제외하더라도 그녀는 어딘가에 오랜 시간 있는 것을 좋아했다.
가끔씩 시장을 다녀올 때는 있지만, 그것도 긴 시간 동안 실험실에 처박혀 있기 위한 준비 같은 거였다.
실제로 저번에 시장가에서 노엘을 만나기도 했고.
이런 식당은 이미지만 보면 소니아한테 더 어울리는 것 같은데. 노엘에게는 실례가 될 수 있는 생각이지만….
“........여기 많이 와봤어?”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노엘에게 물어보았다. 내 입장에서는 많이 고민하고 뱉은 질문이었지만 노엘은 피식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왜, 나랑 안 어울려?”
“아, 아니. 평소에 이런 식당은 잘 안 갔잖아. 근데 뭔가 익숙해 보여서…….”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전에 한번 와봤는데 음식이 괜찮더라고. 그때부터 단골이 됐어.”
“아아….”
굉장히 그럴듯한 이유였기에 나는 자동으로 고래를 끄덕였다. 내가 괜히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구나. 반성하게 되는 일이었다.
“알았으면 메뉴나 골라.”
노엘은 내게 메뉴판을 들이밀며 말했다.
메뉴판에는 여러 음식이 적혀 있었기에 나는 한참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이 식당에 왔을 때부터 고기를 먹으려고 결정했지만, 메뉴판에 있는 육류의 종류는 너무나 많았다.
이런 건 전문가에게 물어야지.
나는 메뉴판을 살짝 내리고 노엘에게 물었다.
“....여기 뭐가 맛있어?”
“다.”
“아니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꼬치랑 스테이크. 그거 두 개가 제일 맛있어.”
“그래? 그럼 두 개다 시킬래.”
“알았어.”
그렇게 말하고 노엘은 테이블에 있는 종을 울렸다. 소리는 크지는 않았지만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실례합니다.”
노엘이 종을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이 들어왔다. 이 정도 시간이면 방 앞에 대기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
직원은 들어와서 테이블에 물잔과 물통을 내려놓았다. 마침 목이 말랐는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꼬치 두 개랑 스테이크 하나. 그리고…….”
노엘이 이것저것 시키는 동안 나는 창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이 세계에서 이 정도로 높은 곳은 흔하지 않았기에 창밖을 보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사람이 개미처럼 보이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보인다는 것에 만족했다.
“알겠습니다.”
직원은 작은 수첩에 노엘의 주문을 모두 기록하고 인사를 한 후 나갔다. 철저하구나…
“음식이 올 때까지 수다나 떨자 친구야.”
노엘은 그렇게 말하며 내 물잔에 물을 채워 주었다. 나는 물잔을 들어 물을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엘과의 수다는 하며 시간을 보내니 시간은 금방 흘렀다. 별로 중요하거나 심각한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건만 시간을 누가 끌어당기듯이 빨리 흘렀다.
지금 내 앞에는 스테이크와 꼬치가 놓여있었다.
스테이크는 겉은 바싹하게 구워졌지만, 단면을 보니 안에는 어마어마한 육즙을 숨기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꼬치는 큼지막한 고깃덩어리와 채소가 번갈아서 끼워져 있었다. 한입에 먹을 수 있을지 모를 정도였다.
보고 있기만 해도 행복감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입에 군침이 흐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서둘러 꼬치를 들어 고기와 채소를 한입에 넣어보았다.
내 입에 너무 많은 게 들어와서 처음에는 씹는 것이 여의찮았다. 하지만 턱을 움직일수록 터져 나오는 고기의 육즙을 느낄 수 있었다.
고기가 그렇게 많으면 기름질 만도 하지만 채소가 기름진 맛을 잡아주었다.
한창 꼬치의 맛을 느끼고 있을 때 시선이 느껴져 노엘쪽을 보니 그녀는 나를 보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뭔가 동물원 안에 있는 귀여운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었기에 딱히 맘에 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아니라 쪽팔렸다.
“......왜.”
항의의 뜻을 담아 그녀를 쳐다보니 그녀는 한참을 웃더니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다. 하도 웃어서 눈물까지 나올 정도라니. 뭐가 그리 웃긴 걸까.
“미안미안. 그냥 귀여워서 그랬어.”
“......그래도 너무 웃는 거 아니야?”
“네가 먹는 모습을 너 스스로 보면 그런 말 못할걸?”
“.........”
이상하게 당당한 노엘의 말에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노엘의 귀엽다는 칭찬은 진심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더 이상 투덜거릴 수가 없었다.
음식도 맛있으니까 뭐……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나머지 음식을 입에 갖다 댔다.
푸짐했던 꼬치는 나무막대기밖에 남지 않았고 스테이크 또한 빈 그릇만이 남아 있었다.
꼬치를 반 정도 먹고 먹었던 스테이크는 내 인생 최고의 스테이크라고 칭할 만 했다.
고기는 입 안에서 녹아 없어지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고 소스는 밍밍하지도 짜지도 않은 딱 적당했다.
이런 훌륭한 음식을 다 먹으니 후식으로 음료수가 나왔다.
이런 게 귀족의 삶일까. 대부분을 놀고먹으면서 살고, 가끔 밖에 나와 맛있는 음식점에 가는 삶.
행복하구먼.
내가 간절히 원하던 삶이 이렇게 허무하게 주어지다니. 이러면 지난 몇십 년간 내 노력은 뭐였을까.
알 바는 아니지. 행복하면 됐지. 뭘 더 바래.
“뭔 생각을 그렇게 해. 친구야?”
“아…… 별거 아냐.”
“그래? 그럼 말고.”
노엘은 대답하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밖에서는 잔잔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나는 기분 좋게 바람을 맞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노엘의 얼굴은 점점 굳어져 가는 것 같았다.
노엘은 어딘가를 계속 주시하는 것 같았는데 나로서는 뭐가 이상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친구야. 오늘 돌아갈 때 바래다줄게.”
“왜? 뭐 이상한 게 있어?”
“느낌이 안 좋네.”
느낌?
노엘의 저 표정은 그냥 감으로 이루어진 표정이 아니었다. 분명 근거가 있을 게 분명했다. 노엘이라는 사람은 그냥 감으로 움직일 사람일 리가 없었다.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녀가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일어나자.”
“.....그래.”
나는 음료수를 빨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짝 아쉬움이 느껴졌지만 이래야 한 번 더 오는 동기가 되는 거겠지.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노엘의 뒤를 따랐다.
“엘리사가 근처에 있는 거 맞지?”
“맞아.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하아…….”
노엘은 나를 옥탑방까지 바래다주었다. 노엘은 오는 도중에도 주위를 계속 둘러보면서 왔다. 그리고 나와 노엘의 거리가 조금 멀어지면 그녀는 나를 끌어왔다.
노엘은 내게 작은 병을 주었다. 병 안에는 알 수 없는 액체가 들어 있었는데.
“일단 이거 마셔.”
“이게 뭐야?”
“소화제……. 랑 여러 가지.”
여러 가지가 뭔지 굉장히 신경 쓰였지만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나한테 해가 되는 걸 주진 않았겠지.
나는 병을 따서 바로 마셨다. 양은 많은 편이 아니라 마시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다른 문제가 있다면 바로 맛이었다. 정말 엄청나게 맛이 없었다. 어렸을 때 먹던 딸기 약 맛이었다. 거기에 홍어를 재운 맛이랄까.
“맛없어…….”
“약은 원래 맛이 없는 거야.”
무슨 의사 선생님 같은 말을….
“하여튼 난 이제 갈게. 꼭 문 닫고 자라.”
노엘은 그 말을 하고 실험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갈 때는 쿨하게 가는 게 노엘답다 싶었다.
노엘을 보내고 나는 나 혼자 방 안에 앉아있었다. 노엘이 심각한 표정으로 경고한 것과는 다르게 딱히 별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혹시나 해 엘리사도 불러보았지만 엘리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뭐 대답할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똑똑—
책을 읽으며 전에 먹은 저녁을 소화하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누구세요?”
문 앞에 서서 말을 걸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잘못 들은 건가?
애초에 이 옥탑방으로 올라오는 계단에 있는 문은 내가 잠가두었다. 엘리사는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니까 잠가두어도 상관없었다.
환청인 것 같네.
요즘 힘든 일이 너무 많기는 했지. 하필이면 노엘이 무서운 말도 해서 그런가.
똑똑—
침대로 돌아가려는 순간, 다시 한번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누구시냐니까요…….”
엘리사일 가능성은 없을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엘리사는 이 방의 문을 마음대로 여닫을 수 있는 유이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내가 잠들었을 때 몰래 안에 들어와서 음식을 주기도 했었고 말이다.
설령 죄책감에 들어오지 않고 내가 들여보내 줄 때까지 기다린다고 쳐도 문제는 남아있었다. 엘리사는 저렇게 무섭게 노크만 하지 않는다. 서럽게 내 이름을 부르면 몰라도 말이다.
철컥철컥—
몇 분 동안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은 문을 열려고 시도했다.
단순히 문고리를 돌리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실제로 문을 파괴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나는 두려움에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문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공포 장르에 취약한 몸인데 집적 겪게 되니 죽을 맛이었다.
다행히도 의문의 인물은 소니아의 마법을 뚫지 못했다. 그래, 주인공의 마법인데.
바로 부숴버리면 벨붕이지. 그럼.
꽤나 시간이 흐르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사라졌다.
이제 안전한 건가. 소리는 잠잠해졌지만 나는 침대에서 나오질 않았다.
순간적으로 문을 열어서 한번 확인해볼까 싶었지만, 곧바로 그만두었다. 내가 문을 열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동안 침대 위에서 벌벌 떨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움직였다.
옷을 파자마로 갈아입고 이빨을 닦았다. 물론 이 행동들은 이불과 함께했다.
빨리 침대에 누워 잠으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아까의 충격 탓인지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아까의 상황이 떠올라 눈을 뜨게 했다.
소니아와 노엘이 보고 싶었지만 딱히 연락할 수단도 없었기에 나는 천장만을 바라보며 잠이 오길 빌 뿐이었다.
똑똑—
그때, 한번더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아까의 노크 소리랑은 어딘가 달랐다. 아까의 노크 소리에는 힘이 실렸다면 지금의 노크 소리는 힘이 없었다.
“아가씨…….”
엘리사.
이 목소리는 엘리사였다. 나는 반가움에 바로 이불을 발로 차고 일어났다.
안 그래도 무서워 죽겠는데 엘리사라도 안에 들이면 훨씬 덜 무서울 게 뻔했다.
잠도 안 오고 있는데 엘리사와 그동안의 일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아니겠는가.
나는 바로 문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녕 꼬마 아가씨?”
“........어?”
내 앞에 나타난 건 엘리사가 아닌 나를 납치해갔던 가면녀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