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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37화 (37/120)

〈 37화 〉 지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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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으로 돌아오고 나서 며칠은 잔잔한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동안 내게 힘들었던 일들만 있었던 것 같아서 옥탑방 밖에 나가지 않았던 게 컸다. 사실 초반에만 해도 히키코모리처럼 집안에 박혀있을 줄은 몰랐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엘리사 덕분이었다. 그날 이후 엘리사는 내 앞에 모습을 비치지 않았다. 다만 옛날 전래동화같이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소니아와 함께 옥탑방으로 돌아온 다음 날, 침대에서 일어난 내 눈앞에는 이상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분명 벽에 기대어져 있던 접이식 식탁이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식탁 위에는 따끈따끈한 아침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 버릴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소니아는 어젯밤에 집에 갔으니 내가 몽유병이 있었나 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먹지 말까 라고 잠깐 생각했으나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음식들의 유혹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당연하지만 엘리사의 음식인 만큼 맛은 기깔나게 맛있었다.

그 후로도 식사 시간마다 엘리사는 식사를 만들어서 내게 대령했다. 처음에는 식사가 살짝 간소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갈수록 자신감이 붙었는지 식사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제 점심에 등갈비가 나올 정도니 말 다 했다고 볼 수 있었다. 대체 어디서 만들고 어디서 설거지를 하는 걸까. 등갈비의 살을 발라 먹으며 생각해 보았지만,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하루는 내가 밖에 있는 소파에 앉아 있으면 어떡해 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온종일 루프탑에서 빈둥거려 보기로 했었다.

점심 시간대를 지나도 변한 건 없었기에 역시 엘리사라도 이건 안되나 하고 한순간, 계단 쪽에 소리가 들려 찾아가 보니 계단에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우렁각시냐고…….

그때 내가 느꼈던 어처구니없었던 감정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정도면 그냥 내 앞에서 요리 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엘리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허공에 대고 ‘엘리사!!! 이제 괜찮으니까 얼굴 좀 보여줘!”라고 외쳐도 엘리사는 자기 모습을 보이질 않았다.

아니……. 아무리 자기 잘못을 뉘우친다고 해도 이 정도면 슬슬 나타날 때도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도 엘리사의 결심은 쓸데없이 굳세어서 내가 엘리사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며칠 동안 옥탑방에 있어 지루할 만 했지만,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 소니아도 자주 놀러 와 주었기 때문이다.

소니아는 내 설명을 듣고 어이없어 했지만 엘리사의 행동에는 흥미를 느낀 것 같았다. 소니아에게 그 말을 해주고 나서부터 소니아는 종종 놀러 오면서 내게 맛있는 점심 식사를 만들어 주었다.

사실 이게 엘리사가 준비한 식사에 힘이 들어간 이유 중 하나 같기도 했다. 실제로 소니아가 가져온 식사와 엘리사가 준비한 식사가 겹쳤을 때, 나는 배가 더부룩할 것을 참고 둘 모두의 음식을 먹기도 했다.

잔잔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 치고는 상당히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심각한 사건들은 아니었기에 마음의 짐은 훨씬 떨어지는 것 같았다.

특이한 점이 있었다면 내가 여기에 자체적으로 감금되는 도중 노엘이 보이질 않았다는 점이다.

왜 그러는지 궁금해서 소니아에게 물어보았다. 노엘은 지금 중요한 실험이 있어서 연구실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말해 주었다.

애초에 연금술이라는 학문은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몇 년 동안 연구실에 처박히는 것도 당연시되는 학문이라 그런지 이상한 풍경은 아니었다. 단지 그동안 보이던 인물이 보이지 않으니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소니아는 아카데미에 가게 되면 싫어도 보게 될 거라 했으니 그 말을 믿으며 노엘에 관한 것은 무의식 저편으로 날려 보냈다. 어차피 나중에 만나게 될 건데 지금 걱정해 봤자 손해니까 말이다.

그렇게 옥탑방에서 인생을 충실하게 허비하고 있을 때 아카데미에서 편지가 날아왔다. 편지는 누군가 먼저 개봉한 듯 뜯어져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항상 차려져 있는 식탁 위에 놓여져 있던 거지만…

편지의 내용은 단순하게 말하면 지원금을 받으러 오라는 안내 편지였다. 그러고 보니 슬슬 가야 할 때가 되긴 했지.

그런데 지원금을 어떤 식으로 줄까. 화폐로 지급하면 큰 상자가 필요할 텐데. 그냥 수표로 주겠지?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밖에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오래간만의 외출이라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떨리는 원인에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설렘도 그에 못지않게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엘리사에게 쪽지라고 쓸려고 했지만, 곧 편지가 뜯어져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엘리사가 미리 본 것이겠지. 그렇다면 굳이 쪽지를 남길 필요는 없어 보였다. 내가 외출하는 것을 알아차리면 아카데미에 가시는구나 하겠지.

“.....다녀올게.”

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엘리사가 지금 여기에 있는지, 이 말을 들을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내 입은 잘만 움직였다. 내가 왜 중얼거렸는지는 모르지만 말을 내뱉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인적이 드물고 좁은 골목길은 위험한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기에 나는 대로변으로 향했다.

대로변에는 사람이 많은 만큼 활기가 넘쳐났다. 나로서는 그 활기에 주눅이 들 정도였다. 이래서 골목길로 가는 건데…. 하지만 이상한 객기를 부리다가 큰일이 나는 것보다는 났다고 생각하며 길을 걸었다.

행정실로 가기 전에 기숙사가 있던 곳을 들르고 싶어져 한번 보러 걸음을 옮겼다. 내가 마지막으로 볼 때 까지만 해도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연기는 물론이고 불이 났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을 정도로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다.

깨끗한 바닥은 기숙사에 살던 사람이 아니면 이곳에 원래 무엇이 있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저번부터 느낀 거지만 이 아카데미는 엄청나게 일 처리가 빨랐다. 특히 변수가 발생했을 때의 대처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기숙사가 있었던 터를 구경하고 행정실로 걸음을 옮겼다. 행정실 내부는 여전히 바빠 보였다.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는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차이는 없었다.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 때문에 그런가 싶었다. 말로는 지원금이라고 하지만 날아간 기숙사비까지 돌려주는 거니까 더 복잡하겠지.

나는 그때와 같이 가장 앞에 있는 직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기…. 지원금을 받으려고 왔는데요.”

“아……. 네.”

그렇게 말한 직원은 의자를 뒤로 빼고 몸을 숙여 책상 아래에 있는 서류 더미를 가져왔다. 직원은 그 중 몇 장을 뽑아내게 건넸다. 또 서류인가….

“그 서류에 서명해주시면 됩니다.”

뒤의 책상에 앉아 또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니. 조금 진이 빠졌지만 내 앞의 직원은 거의 죽으려고 하고 있었기에 얌전히 책상으로 향했다.

서류의 내용은 별것 없었다. 이런 종이 뭉치들이 늘 그렇듯 당연한 것을 어려운 말로 꼬아놓은 게 대부분이었다. 이런 서류들과의 싸움은 늘 해오던 것이었기에 서류의 중요한 부분만 서둘러 볼 수 있었다.

서류에 서명하고 직원에게 갖다주니 직원은 수표 한 장을 내게 건넸다. 지원금을 어떡해 지급하나 했더니 역시나 수표로 지급하는 것 같았다.

“이 수표를 은행에 가서 제출하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나는 직원에게 꾸벅 인사를 건네고 행정실에서 나왔다. 내 손안에 이런 거금이 있다고 생각해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 돈으로 뭘 해야 하지….

건물에서 나와 목적 없이 아카데미 안을 걸었다. 그동안 움직이질 않았기에 안전한 아카데미에 온 김에 기분 좋게 산책을 즐겼다.

아카데미의 규모는 상당히 컸다. 정말 큰 건물들이 정말 많았기에 머리로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둘러보니 그 규모가 체감되었다. 간단하게 한번 둘러보려고 했는데 규모가 크다 보니까 산책이 아니라 등산을 하는 것 같았다.

그냥 노엘이나 보러 갈까. 산책을 이어가기에는 내 체력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이럴 거면 노엘의 연구실에 가서 소파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것이 더 좋아 보였다.

그렇게 결정하고 나는 바로 방향을 바꿔 노엘의 연구실로 향했다. 소파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을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 같았다. 순간 빈손으로 가기엔 좀 그렇지 않나 라고 생각했으나 생각을 그만하기로 했다. 나중에 사 가자. 나중에.

연구실은 지금 내가 있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생각보다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문을 살짝 열고 방 안을 훔쳐보았는데, 노엘은 실험대에서 내가 알 수 없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노엘이 다른 곳에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노엘에게 방해가 될까 봐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했으나 노엘은 내가 문을 열자마자 나를 발견해 버렸다.

“친구야, 오랜만이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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