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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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와의 외출이 있고 바로 다음 날, 드디어 아카데미로 등교할 수 있었다. 사실 내가 느끼기에는 하루밖에 쉬지 않았지만 몸은 오랜만의 등교에 긴장해 있었다. 엘리사가 다려놓은 교복을 입고 기숙사를 나섰다.
엘리사가 주문했던 목걸이를 차고 싶었지만, 슬롯을 넓히는 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해서 아쉽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엘리사가 넣을 마법은 무엇일까? 최근에 있었던 사건을 생각해보면 상식적으로 보호마법인 프로테고일 가능성이 제일 크다. 하지만 의외로 마도구에 들어간 프로테고라는 마법은 약점이 있다.
프로테고는 본래 반영구적인 보호막을 펼치는 마법이지만 마도구에 들어가게 되면 지속적인 마나 공급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일회성 보호마법으로 변화에 넣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본래 마법과 달리 정신계 마법을 막지 못하게 된다. 착용자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가는 물리적 타격과 마법들에 한해서 작동되게 되므로 전처럼 내가 납치당하는 상황에서는 별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마나를 다룰 수 있다면 마나를 집어넣어 발동시킬 수 있지만 그럴 거면 보호마법을 직접 배워서 시전하는게 효율이 더 높다. 물론 내가 마나를 다루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엘리사가 알아서 잘 해주겠지. 엘리사옆에 붙어 다니면 뭐 웬만하면 다 괜찮을 거다.
"친구야. 뭐해."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교실 문 앞까지 와 있었다.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노엘이 내 옆에서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어……. 안녕?"
"무슨 생각을 하길래 정신 나간 것처럼 다니냐."
그녀는 내 뒤에 있던 사람이 들어갈 수 있게 문 앞에 있던 나를 잡아서 자신 쪽으로 옮겼다. 그녀는 연금술이 전공이라 힘이 세지 않을 것 같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나는 깃털처럼 가볍게 끌려왔다. 놀라움에 노엘을 쳐다보니 그녀는 씩 웃으며 내 볼을 툭툭 건드렸다.
"왜 그래 친구야. 내가 보통의 연금술사들처럼 힘이 약할 줄 알았어?"
"어……. 조금?"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네. 아, 너 어제 말했던 거 잊지 않았지?"
"물론이지. 안 그래도 연금술사는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한 참이었어."
어제 노엘의 일일조수가 되기로 약속을 했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연금술사는 무슨 연구를 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노엘의 제안이 반가웠다. 엘리사는 살짝 불만이었던 것 같지만 해가 완전히 지기 전까지 기숙사로 들어오는 걸로 합의를 봤다.
"기억하고 있다니 다행이네. 나는 또 버려지나 했지."
"앗."
갑자기 그때 일을? 노엘의 표정을 보면 장난이라는걸 알 수 있지만 그래도 미안한 감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기에 고개는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갔다.
"아무튼, 수업 끝나고 보자."
그녀는 이런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자신의 반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그녀가 자리에 앉는걸 보고 나서야 내 반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드디어 마법을 실제로 써볼 수 있는 수업이었다. 그동안의 마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용 마법진이 그려진 종이 위에 물방울을 생성하는 간단한 마법을 해보는 수업이다. 문제가 있다면 나는 수업을 2일 정도를 빼먹었다는 점이었다. 다른 애들은 교수의 수업을 듣고 곧잘 잘 이해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알고 있던 원작의 설정으로 겨우 따라가는 게 고작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마법 구경은 좀 걸리겠는데 싶을 때 내 옆에 누가 앉았다.
소니아. 원작의 주인공이자 최근에 엘리사와 신나게 쌈박질을 했던 인물은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았다. 멍하니 옆을 쳐다보니 그녀는 나를 쳐다보고 입 모양으로 내게 말을 건넸다.
`왜`
`아, 아니 그냥 반가워서."
내 말에도 그녀는 고래를 다시 앞으로 돌렸다. 뭐…….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나도 고개를 돌려 마르셀린 교수의 수업을 어떻게든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제가 가르쳐 드린 대로 물방울을 만드시면 됩니다. 완성하신 분은 제 확인을 받고 먼저 퇴실하시면 되겠습니다."
마르셀린 교수의 말 이후 학생들은 하나둘 물방울을 만들어 퇴실하기 시작했다. 나는 갈피도 잡지 못하고 마법진이 그려진 종이 위에 손을 얹고 있을 뿐이었다.
옆을 바라보니 소니아는 물방울이 아니라 물로 용들을 만들어서 가지고 놀고 있었다. 두 용이 춤추듯 날아다니다 싸우기 시작해서 결국 둘 다 흙이 돼버리는 스토리텔링까지. 나는 내 과제도 잊고 그녀가 만든 물방울들에 빠져들었다.
"후우……. 넌 뭐하고 있냐."
그때, 마르셀린 교수가 소니아에게 말을 걸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소니아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퇴실한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좀 쉬었다고 해도 좀 쪽팔린데.
"연극."
"연극 같은 소리하네. 뭘 하려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건데."
마르셀린 교수의 질문에 소니아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내가 뭘 했나? 오히려 소니아가 뭘 했는데.
"저게 너랑 뭔 상관인데."
마르셀린에 말에는 가시가 돋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마르셀린은 원작에서 자스민에게 꽤나 큰 피해를 당한 사람이었다. 그동안 나를 미칠 듯이 째려보기는 했었지. 알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타인에게 저렇게 선명한 악의를 받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몸이 움츠러드는 기분이었다. 이럴 때는 자스민이라는 캐릭터가 악역이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내가 지은 죄가 아니지만, 이 몸의 주인으로서 나도 부담해야 할 짐이겠지. 떨려오는 손을 진정시키려고 해봐도 쉽지 않았다.
"그만해. 내가 말했잖아."
마르셀린을 막아준 건 소니아였다. 소니아는 한쪽 손으로 내 손을 잡아주며 나는 변호해 주었다.
"지금 이 자스민은 네가 알던 사람이 아니라고."
"그게 무슨 상관인데."
"뭐?"
"지금 기억이 없어도 언젠가는 돌아올 수도 있잖아. 그럴 바에 지금 죽여놓는 게 맘이 편하지 않아?"
어우. 무서운 이야기를 왜 당사자 앞에서. 다행히도 소니아가 잡아준 손 탓에 아까보다는 심적으로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게 되면 내가 책임질게. 그때까지는 내버려둬."
"허, 네가 그런 말을 해? 그래. 네 말대로 해줄게. 네 선택에 대한 결과는 알아서 감당하고."
그렇게 말하고 마르셀린은 남은 학생들은 내보내고 자신도 강의실을 나갔다. 그 후 나와 소니아는 잠깐동안 가만히 있었다.
"...........어디서 막힌 건데."
먼저 말을 꺼낸 건 소니아였다. 그녀는 내게 아까 일은 없었던 일인 듯이 내게 수업 과제에 대한 질문을 했다.
"마나를 마법진에 넣는다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겠어."
"마나를 느끼는 것까지는 할 수 있어?"
"어……. 거기까지는."
이는 내가 전생에 마나가 없는 세상에 살아온 것이 컸다. 이 세상의 인물들에게는 마나란 숨을 쉬듯 당연한 거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신기하고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는 내가 남들은 하루 만에 느끼는 마나를 5일이 넘어서야 겨우 느끼게 해주었다.
"그럼, 마법진이 그려진 종이 위에 손을 얹어봐."
그녀의 말대로 종이 위에 손을 얹자 그녀는 내 두 손에 자신의 손을 얹고 말을 이었다.
"눈을 감고 잘 느껴봐."
눈을 감자 내 몸에 무언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이게 `마나` 겠지. 마나가 몸에 흐르자 몸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마치 수냉 컴퓨터같이.
"네 몸에 흐르는 마나를 손바닥에 내뿜는다고 생각해봐."
그동안 느끼는 것만 가능했던 마나가 내 의지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 소니아가 도와준 덕분이겠지.
"한꺼번에 쏟아붓지 말고 일정량을 천천히 내뿜는 거야."
천천히……. 그녀의 말대로 내 손바닥에서 마나가 빠져나가는 게 점점 느껴지기 시작했다. 해방감과 탈력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감각은 내가 느끼기에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제 눈 떠봐."
눈을 뜨자 내 앞에 동그랗게 떠 있는 물방울이 보였다.
"하, 하하……."
헛웃음이 나왔다. `나` 라는 존재는 이 세계에서 외부자일 수밖에 없는 내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니. 달콤한 성취감은 목말라 있던 나를 취하게 만드는 데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잘 됐네."
소니아의 무심한 반응이 내게는 그 무엇보다 기뻤다. 아까 나를 위해 변론해준 것도 물론이고.
"소니아, 진짜 고마워."
"흐, 그래? 뭐가."
"그냥……. 전부다. 나랑 같이 나가준 것도 아까 나 변론해준 것도 마법을 가르쳐준 것도. 전부다."
"..............그래."
소니아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게 물방울을 한 번 더 만들어 보라는 숙제를 던져두고. 나는 기쁘게 웃어 보이고 다시 마법진에 내 마나를 집어넣는 것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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