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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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의 손에 이끌려서 미스티 거리 골목 사이사이를 지나다 보니 골목의 끝에 도달했다. 나는 가쁜 숨을 고르면서 내 앞에 있는 엘리사를 노려봤다. 나는 누구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운동을 했는데 당사자는 너무 멀쩡해 보였다. 물론 새빨간 얼굴은 현재진행형이었다.
"하악, 학"
이렇게 열정적으로 뛰어다닌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내 몸은 갑작스러운 자극에 깜짝 놀랐는지 갈대처럼 후들대고 있었다. 이대로는 바닥에 주저앉을 것 같아 엘리사와 맞잡은 손으로 후들대는 몸을 겨우 지탱했다.
"하아…. 엘리사 우리 이제 그만 쉬자."
내 말에 엘리사는 이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주위를 둘러보더니 손으로 자신을 얼굴을 덮었다. 그래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잘 알고 있구나. 나는 엘리사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나를 보게 만들었다.
"아가씨…."
"엘리사. 뭐가 그리 급했길래 이렇게 뛰어온 거야?"
"............"
대답을 얼버무리며 엘리사는 입을 꾹 닫아버리고 내 시선을 피했다. 이런 상황은 많이 겪어봐서 잘 알 수 있었다. 저 상태가 돼버린 엘리사에게 대답을 듣기는 하늘의 별따기 였다. 대충 보니까 부끄러움이 원인인 것 같은데 그 이상까지는 파고들 필요는 없어 보였다.
"뭐…. 그건 그렇고 여긴 어디야?"
우리가 도착한 곳은 미스티 골목의 가장 안쪽이었다. 한낮이지만 주변에 가게들에 가려져 생각보다 음산한 기운을 풍겼다. 이곳에 있는 가게는 기둥과 천장이 굵은 나무뿌리로 되어있는 묘한 가게뿐이었다. 간판도 보이질 않아 무엇을 파는지 알 수 없다는 점까지 더하니, 마치 마녀들의 은신처 같았다.
엘리사또한 그 가게를 보고 생각에 잠긴 듯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아마 마도구를 파는 공방인 것 같습니다."
"마도구?"
"네. 저 기둥과 문을 비롯한 저 가게는 마법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 정도 수준으로 마법을 깃들게 하는 게 가능하다면 마도구를 제작하는 장인일 가능성이 크겠죠."
"헤에. 한번 들어가 볼까?"
내 말에 엘리사는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사 또한 그 공방에 대해 흥미가 생긴 듯 가게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공방 안에는 각종 마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법한 물건에서부터 책으로만 볼 수 있었던 유물들까지. 그 종류는 내 기대를 웃돌 만큼 다양했다. 마치 박물관에 온 것만 같은 착각이 일 정도였다.
공방을 자세히 둘러보고 있는데 문득 소파에 앉아 시가를 피고있는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흔히 마녀라고 말하면 떠올리게 되는 복장을 입고있는 그녀는 이 세계에서 보기 드문 흑발에 흑안을 가지고 있었다. 날카롭고 도도해 보이는 얼굴은 그녀의 퇴폐미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우리의 존재에는 관심이 없는지 우리 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허공을 보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나무가 타는 냄새가 가게를 가득 메워 내 코를 찔렀다.
"저…. 안녕하세요."
큰 용기를 내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네보았지만 그녀는 내 쪽을 슬쩍 바라보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뻘쭘한 상황에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렇게 면전에 대놓고 무시당한 경우는 처음이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머리가 새하얘졌다. 나는 도와달라는 의미로 옆에 있는 엘리사를 쳐다보았다. 엘리사는 나와 잠깐 시선을 교환하더니 내게 물었다.
"아가씨. 목걸이와 팔찌 중에 어떤 것을 더 선호하십니까."
"어…. 목걸이?"
나는 팔찌를 차고 있으면 계속 신경이 쓰이기 때문에 둘 중에 하나를 고를 거면 목걸이를 고르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 질문을 왜 하는 걸까.
엘리사는 진열장에 놓여져 있었던 목걸이 중에 하나를 집어 들었다. 간단한 은색 체인에 작은 보석이 달려있는 목걸이였다. 화려하지는 않은 목걸이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엘리사는 그 목걸이를 들고 그녀에게 내밀며 말했다.
"여기에 슬롯 하나만 더 추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엘리사의 질문에 그녀는 호기심이 생겼는지 엘리사를 바라봤다. 슬롯. 마도구를 제조할 때 핵심적인 개념이다. 평범한 물건에 마법을 그냥 깃들게 할 수는 없다. 평범한 물건에 특별한 가공을 해 슬롯이 생겨야지만 마법을 깃들게 할수 있다. 보통 마도구에는 슬롯 하나가 최대인데 하나를 더 추가하다니. 그녀가 정말로 실력이 있다는 게 실감 나는 것 같았다.
"왜 마법까지 추가하지 않지?"
"제가 추가할 겁니다."
엘리사의 대답에 그녀의 입가에는 호선이 그어졌다. 내가 말할 때는 관심도 없더니만. 나는 마음에 안 들어서 엘리사의 옷깃을 잡았다.
"카운터에 놓아놔. 내일까지 끝내 놓을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시가를 물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엘리사는 카운터에 목걸이를 놓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마 더 구경할지 물어보는 거겠지. 나는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구경은 충분히 했다. 남은 시간은 시장가에서 군것질이나 하고 싶었다.
우리는 가게에서 나와 평범한 시장가로 왔다. 정중앙에 있었던 해는 어느새 서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지만, 해에 움직임을 보아 거리에 나온 지 꽤나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긴 생각보다 즐겁긴 했지.
원래라면 급식실로 가 조금 일찍 저녁을 먹었겠으나 지금은 딱히 그러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엘리사."
"네. 아가씨."
"군것질이나 할래?"
"....원하시는 대로."
엘리사의 동의를 받고 나는 꼬치와 음료수를 샀다. 테오도르의 물가는 상당히 높은 편이었으나 다행히도 벨리타 가문은 돈이 많은 편에 속했기에 이 정도는 아무 문제 없었다. 나는 꼬치를 엘리사는 음료수를 든 채로 테오도르의 대표적인 공원인 그리피스 공원에 도착했다. 평일임에도 드문드문 사람들이 자리를 펴 앉아있었다. 나는 엘리사와 조용한 나무 밑에 자리를 잡았다.
나무 아래에서 보는 공원의 전경은 꼬치의 반찬으로 과분할 정도였다. 꼬치를 물자 아삭거리는 채소의 식감과 소스가 발라진 고기의 풍미가 느껴졌다. 목이 막힐 때마다 마시는 음료수의 탄산은 내 목을 쉽게 뚫어주었다.
귀족 영애로 빙의해 학교에 들어가 친구들을 사귀었다. 나는 진심으로 위하는 이들이 있고 전생에 매달렸던 돈은 차고 넘쳤다. 내가 침대에서 상상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어서 내 앞에 나타났다.
행복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각하고 나자 실소가 터져 나왔다.
"하."
엘리사와 소니아가 나를 가면녀에게서 구해냈을 때 내 마음 한쪽 구석에는 안도감이라는 감정이 고개를 들었었다. 그들, 특히 엘리사와 함께한 나날들이 너무나 따뜻했던 모양이다. 한순간이나마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아가씨?"
내 실소에 엘리사는 걱정이 되는 듯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쪽을 바라봤다. 난 몸에 힘을 빼고 엘리사에게 몸을 기댔다. 엘리사는 처음에는 움찔했으나 이내 내가 편하게 기댈 수 있게 자세를 바꿔주었다.
"엘리사."
".........네. 아가씨."
"고마워. 항상."
"........."
나는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엘리사와 나는 한참 동안 저무는 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엘리사."
"네. 아가씨."
"그 목걸이 나 주려고 주문한 거 맞지?"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으응, 아니. 너무 맘에 들어. 진심이야."
"근데 추가한 슬롯에는 무슨 마법을 추가할 거야?"
"그건…. 완성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후후, 그래 완성되면 네가 목에 걸어줘."
".............네?"
"싫어?"
"아닙니다."
"그럼 잘 부탁해."
"네.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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