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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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낮의 거리는 저녁에 봤던 것과 달리 밝고 화사한 느낌을 풍겼다. 평일이라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들의 수는 전보다는 적었지만, 사람들의 표정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사람들이 적어서 그런지 보지 못했던 거리의 풍경이 눈에 잘 들어왔다.
이 도시의 중심이 되는 큰 도로임에도 그런지 도로에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단순히 쓰레기뿐만이 아니라 바닥과 쓰레기통의 상태를 보아도 관리가 주기적으로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번에 본 하수처리시설도 그렇고 판타지 소설치고는 놀라운 것들이 많았다. 뭐…. 가장 놀라운 건 내 옆에 있는 탐지마법을 써대며 두리번대는 메이드지만.
".....엘리사 그렇게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된다니까."
"하지만 아가씨…."
"괜찮다니까. 설마 대낮에 큰 도로에서 날 건드리지는 않을 거 아냐?"
내 말에 엘리사는 마법을 거두고 나를 쳐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나를 지키려고 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마법진을 숨겼다 하더라도 이렇게 큰 도로에서 웅웅거리면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엘리사."
"네, 아가씨."
"원래 내 뒤에서 걷지 않았어?"
그동안 엘리사는 항상 내 한 발짝 뒤에서 걸어왔었다. 본가에서 자스민의 아버지가 지날 때 하인이 그 뒤를 쫓아가는걸 본적이 있었기에 엘리사의 행동에 딱히 의문을 가지지는 않았다. 아카데미에서 종종 보이는 하인들도 제 주인의 뒤에서 걷는 게 보통이었으니까. 그런데 엘리사는 지금 자연스럽게 내 옆에서 걷고 있었다.
"혹시, 불편하신가요…?"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불안한 얼굴로 물어보는 엘리사에게 재빠르게 아니라고 정정했다. 신기해서 그 이유가 궁금했을 뿐이지 딱히 엘리사를 질책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러신가요? 다행이네요."
"이게 다 아가씨를 지키기 위해서니까요."
그렇게 환한 미소를 짓고 스스로 다짐하는 엘리사는 굉장히 믿음직스러웠다. 그래, 엘리사가 있으면 괜찮아. 내 사심을 반 정도 담아서 엘리사의 손을 잡았다. 사실을 그냥 사심이지만 엘리사를 위한다는 걸로 반을 채웠다.
"아, 아가씨?"
"혹시 불편해? 불편하면 그만둘게."
"아, 아뇨. 절대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래? 그럼 계속하고 있자."
시작은 작은 심술이었다. 그런데 엘리사의 반응이 너무 귀여워서 나 또한 엘리사에게 에너지를 얻어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엘리사와 손을 잡은 채로 테오도르 이곳저곳을 탐방했다.
이번에 들린곳은 테오도르의 미스티 거리였다. 이 거리는 마법과 관련된 물품들을 파는 거리었다. 마치 해리포터의 다이애건앨리 같달까. 물론 다이애건앨리와 달리 공개되어 있다는 점이 차이점이지만.
그곳에서 나는 마법에 관심에 많았기에 마법책에 관련된 가게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 약초 가게 쪽에서 한쪽 손에 약초 가방을 들고나온 노엘과 눈이 마주쳤다.
"어…. 어?"
내가 내버린 소리에 노엘을 고개를 돌려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병신인가. 그대로 그냥 모른 척 했다면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내버린 소리에 그만 어그로가 끌려버리고 말았다.
"오, 친구야. 안녕?"
아 좆됬다.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노엘 입장에서 나는 자신을 버린 씹새끼가 아닌가. 나는 그녀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장승처럼 서 있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노엘또한 내가 미안해하는 걸 느꼈는지 실실 웃으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친구야, 잘 지냈어? 며칠 동안 의식불명이었다며?"
"미, 미안해!"
그녀가 뭐라 말하기 전에 나는 빨리 머리를 박았다. 아무리 소니아가 꼬셨다 해도 넘어간 거에는 내 잘못도 분명히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재빠르게 머리를 박았다.
"하아…. 친구야. 내가 그 정도로 너한테 뭐라 할 것 같았어?"
"어…. 어?"
"그 당시에는 화나 나기는 했지만 네 사정도 다 아는데 내가 널 뭐라 할 수는 없지."
사실 만나면 나한테 고문용 물약을 먹이고 인체실험을 자행할 것 같았다. 노엘은 물약으로 몸을 굳게 만들고 효과를 알아보겠다고 칼로 피부를 쨀 것 같아서 무서웠다. 실제로 원작에서는 비슷하게 인체실험을 한 적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노엘의 반응은 내 생각보다 훨씬 온건했다. 어떤 인물이 그녀에게 변화를 일으킨 것일까. 아니면 회귀가 그녀에게 영향을 끼친 것일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에게는 그나마 다행인 상황이었다.
"그…. 그래?"
"그 대신에."
"어?"
"일일 조수나 해라."
"조수?"
조수라니. 나는 연금술에 대한 지식이 뛰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원작에서도 그녀의 조수들은 한 달을 못 가고 바뀌었다고 들었는데….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냥 잡일이니까 그렇게 걱정할 것도 없어."
노엘은 그렇게 말하며 내게 같이 다닐지 물어보았다.
"이왕 만난 김에 같이 다닐래?"
"아뇨."
그렇게 말하며 말을 끊은 건 엘리사였다. 엘리사는 노엘을 경계하는 걸 보아 소니아처럼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하, 네가 뭔데 껴드냐?"
".......저는 아가씨의 하인입니다."
"지랄, 누가 보면 연인인 줄 알겠네. 됐다. 자스민, 그럼 내일 보자."
노엘은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넘기고 인사를 하고 우리를 떠나갔다. 여전히 이상한 사람이네. 소니아였다면 여기서 끝까지 싸웠겠지. 나는 내심 여기서 만난 사람이 노엘임에 감사했다.
"어…. 그럼 갈까?"
나는 내 옆에서 부들대고 있는 엘리사의 팔을 잡고 말을 이었다.
"아, 아. 네. 그렇네요."
엘리사는 노엘에게 들은 말이 분했는지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내가 엘리사와 눈을 마주치려고 해도 그녀는 내 눈을 피했다. 그러더니 내 손을 잡고 미스티 거리의 내부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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