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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16화 (16/120)

〈 16화 〉 친구

* * *

테오도르. 데우스 대륙 안에서 가장 발전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왕국답게 시내의 거리도 마법과 과학의 산물로 넘쳐났다. 빽빽이 존재한 거리를 환하게 밝혀주는 가로등은 내 말에 증거가 되어주었다.

테오도르 왕국의 가로등의 특별한 점은 다른 도시와 달리 마법으로 구성되어있다는 점이다. 저런 가로등 하나에도 마법진을 설치해서 불을 밝힐 수 있다는 사실이 다른 도시와의 차별점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는 테오도르 왕국의 규모가 작다는 점도 한몫했지만.

이러한 기술력은 가로등뿐만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지어진 건물들과 도로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언뜻 보면 자유로워 보이지만 계획적으로 지어진 건물들과 깨끗이 유지되고 있는 도로와 하천들은 이 왕국의 기술력이 엄청나다는 반증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엄청난 기술력을 가진 도시의 시내에서 소니아와 데이트를 하는 중이었다.

시간은 몇십 분전. 레오나드 교수님에게 `뜨거운 사랑`이라는 말을 듣고 알게 모르게 험악한 표정을 짖고 있는 소니아와 헤어지고 기숙사에 가기 위해 작별인사를 했다. 그때, 소니아는 갑작스럽게 시내로 놀러 가자는 제안을 했고, 시내라는 말에 나는 일단 긍정의 대답을 해버리고 말았다.

내가 이 왕국에 오고 나서 시내를 구경하기에는 여러 이유로 힘들었었다. 예를 들면 소니아와의 첫 만남이라던가 엘리사와의 관계 같은 거 말이다. 어찌 되었든 그러한 이유 덕분에 시내라는 장소는 내게 꼭 가보고 싶은 장소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무지성으로 대답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뭐해? 멍하니 서서."

"어, 어? 아, 미안."

"놓치지 않게 조심해. 내일이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으니까."

"알았어……."

멍하니 서 있던 나를 소니아가 어깨를 툭툭 치면서 깨우고 앞으로 나아갔다.

드디어 시내에 왔다는 기쁨과 같이 온 대상이 소니아라는 혼란스러움이 겹쳐 사고가 정지해버리고 말았다.

거리에는 많은 사람이 제각각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내일이 주말이라 그런지 거리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다행히 소니아의 키는 상당히 큰 편이라 소니아를 찾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 틈에 끼어서 원만히 지나가는 건 다른 문제였다. 이대로 아까처럼 멍하니 있다가는 소니아를 놓쳐버릴 것 같아 소니아를 소매를 꼭 잡았다.

소니아는 뒤를 돌아 나를 한번 보더니 한숨을 푹 쉬며 소매를 잡은 팔을 털어냈다.

"......이래서는 가게까지 한참을 걸릴 것 같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다."

"뭘?"

내 질문에 소니아는 대답 대신 손깍지를 끼는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에?"

갑작스럽게 전해진 손의 온기에 그녀를 올려다 보았지만, 그녀는 앞만을 보며 걷고 있었기에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뒤에서 살짝 보이는 얼굴은 평소와 그리 다른 것 같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너무 어벙벙했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며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거센 파도와도 같던 수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가면서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도 그녀의 손만을 의지하며 헤쳐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메모리어`라고 써진 작은 간판이 세워진 가게 앞에 도착해 있었다. 언덕 위에 벽돌로 쌓여있는 건물에 큼지막한 폴딩도어, 그 아래 방금 물을 받은 듯 물방울이 매여있는 식물들까지. 보기만 해도 따뜻하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원작 소설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소니아는 이 식당에 무언가 추억이라도 있는 건지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로 가게의 간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시야를 내려 가게 안에 카운터를 보고 있는 여성을 보자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하지만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쓸쓸함과 아련함까지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녀가 이런 표정을 지은 적이 있었던가. 소설 속의 그녀는 언제나 차가운 사람이었다. 곁에 사람을 두는 것도 효율을 중시했기에 소니아와 깊은 관계를 맺는 인물들은 드물었다. 그렇기에 지금 그녀가 보이는 쓸쓸함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녀의 행적에 미리 겁을 먹어 사소한 행동에도 두려움을 느꼈던 건 아니었을까, 같은 생각 말이다. 사실 그녀는 내 생각보다 훨씬 정이 많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첫 만남이 너무 화끈하긴 했지만 말이다.

뭐라도 말을 걸어볼까—

라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말주변이 없다는 걸 알기에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이었다.

소니아는 숨을 한번 크게 고르고 문을 열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띠링—

"안녕하세요!"

문을 열자 문에 달린 도어벨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우리를 보고 인사를 건넸다.

가장 먼저 보이는 특징은 주황색 곱슬 머리카락이었다. 어깨까지 오는 머리카락은 마치 포근한 노을 같았다. 전체적으로 시골소녀 같다는 인상이었다.

"두명이신가요?"

"어."

소니아는 무심하게 대답했지만 역시나 그 속에는 나름 상냥함이 들어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면 2층에 창가 쪽은 어떠신가요? 밤이 되면 야경이 끝내주거든요!"

"그래……. 혹시 나, 본적 없어?"

"흐음……. 죄송하지만 처음 보는 것 같은데요?"

".....그래? 착각한 모양이네. 미안 실례했어."

그렇게 말하는 소니아의 얼굴은 울적해 보여 내가 다 걱정될 정도였다. 이런 이미지였나?

"아, 아니에요. 저 이래 봬도 흔한 얼굴이고요!"

주황색 머리카락을 달고 있는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소니아를 위한 말이라는 걸 알았기에 입을 열지는 않았다. 소니아는 직원에 배려에 익숙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상냥한 직원은 그렇게 말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첫인상대로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녀의 뒤를 소니아와 따랐다.

그녀의 뒤를 따라 도착한 2층에서 보이는 이 도시의 야경은 내 예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언덕 위에 지어진 가게라 그런지 2층에 불과하지만, 학교기숙사보다 야경이 잘 보였다. 게다가 가게의 한산한 분위기까지 겹쳐서 그런지 고급 레스토랑을 전세를 낸 느낌이었다.

"여기에 앉으시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창가 구석에 있는 한 자리로 안내했다. 이 가게의 자리 중에서 가장 크고 고급스러워 보인 자리였다. 손님이 없다고 해도 2명인데 이런 자리에 앉아도 되는 걸까, 싶어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햇살과도 같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이 가게 손님도 없으니까요! 걱정 안 하셔도 되요!"

그렇게 대놓고 말해도 괜찮은 거냐…….

"그리고 풋풋한 커플한테는 이런 자리가 아깝지 않거든요!"

"네?"

이건 또 무슨 말이란 말인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꾹 닫고 있었던 입이 열려버리고 말았다. 소니아와 커플이라니. 아무리 상냥한 면이 있다고 해도 소니아는 소니아였다. 원작에서 플래그를 세우나 싶으면 세운 상대들을 다 죽여버린 주인공이었는데, 사랑이라니. 오늘은 레오나드 교수님부터 시작해서 이상한 농담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이런 저의는 그녀에게 닫지 않았다. 그녀는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살짝 기분 나쁜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두 분 이 가게에 오실 때부터 지금까지 손잡고 계시잖아요? 보통 친구 사이에는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다고요."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옆을 보니 소니아와 손깍지를 끼고 있는 내 손이 보였다. 이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얼마나 오래 잡고 있었는지 손을 떼자 어색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손을 아직 잡고 있었다고?

사람들 사이를 헤쳐나갈 때부터 잡고 있어서 손을 잡고 있는 줄도 몰랐다. 소니아도 마찬가지였는지 어벙한 얼굴이었다.

"아, 아니 이건 인파로 가득찬 거리를 지나가기 위해서—"

"아~ 뭐 그러시겠죠. 두 분 모두 화이팅이에요!"

아. 사람 말을 듣지를 않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좋은 시간 보내세요 같은 소리를 하며 1층으로 내려갔다. 착한 사람인 것 같은데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소니아는 아직 멍한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그게 맘에 안 들어 소니아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자리로 이끌었다. 소니아는 `아`라는 짧은 단말마만을 내뱉고 자리에 앉았다. 도대체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식탁에 놓여있던 메뉴판을 들어 메뉴를 보았다.

메뉴판에는 여러 메뉴가 작은 그림과 함께 자신들을 뽐내고 있었다. 야경이 멋진 가게에 왔으니 음식도 맛있는걸 먹고 싶었기에 유경험자라고 생각되는 소니아에게 말을 걸었다.

"소니아. 여기 메뉴 중에 뭐가 맛있어?"

"어, 어 뭐라고?"

소니아는 내 말에 정신을 차린 듯 내게 한 번 더 질문을 요구했다. 아니 왜 이러지? 유독 사랑 같은 소리만 나오면 사람이 고장이 나버렸다. 물론 지금은 저녁 메뉴가 더 중요했기에 소니아에게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이 가게 메뉴 중에 추천할만한 거 있어?"

그제야 소니아는 내 손에서 메뉴판을 가져가서 메뉴판을 쓱 훑고 메뉴판을 내려놓고 말했다.

"육류는 좋아하지?"

"그야 물론이지."

"그럼 둘 다 돼지고기 카레로 할게."

"그래."

내 말에 소니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메뉴를 통일했다. 돼지고기 카레라 이름만 들어도 벌써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이 도시가 지어진 곳인 이티니움호 주변에는 많은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었다. 특히 이곳에 돼지고기는 명물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체험하게 될 줄이야.

그런데 메뉴를 시키려고 호출 벨을 찾았지만, 이 가게에 호출 벨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래 내려가서 시켜야 하나?

소니아는 이런 내 모습을 보더니 씩 웃고 메뉴판에 돼지고기 카레라 적힌 메뉴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그러자 메뉴가 써진 글씨가 밝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소니아는 익숙하게 돼지고기 카레라 적힌 메뉴를 한 번 더 누르고 뒷장으로 넘겨 사이드메뉴도 시키기 시작했다. 역시 경험자라 그런가 행동에 자연스러움이 묻어나와서 멋졌다.

잠깐의 기다림의 시간을 인내하자 간단한 사이드메뉴와 음료가 먼저 나오고 곧이어 돼지고기 카레까지 나와 내 식탁을 빛냈다.

먹음직스러운색감과 식욕을 돋우는 향기는 내 입안에 침을 고이게 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잘 먹을게."

나는 소니아에게 짧은 감사인사를 하고 숟가락으로 카레를 떠서 입 안에 넣었다.

"와……."

내 입에서 나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감탄이 흘러나왔다.

촉촉하게 젖어 씹을 때마다 사르르 녹아내리는 고기와 카레 소스와 함께 많은 시간을 함께했지만 아삭함을 잊지 않은 채소들, 마지막으로 먹을 때마다 감탄이 흘러나오는 카레 소스까지. 내 인생을 통틀어 먹은 카레 중 으뜸이었다.

감동의 눈빛으로 소니아를 쳐다보니 그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싱긋 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면 나를 때리려 한 것도 용서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맛있다. 소니아가 같이 시킨 음료를 마시며 먹는 저녁은 너무나 행복했다.

어느새 카레는 싹 비워버리고 사이드 메뉴만 남아있었다. 해는 이미 다음을 위해 저편에서 힘을 비축하고 있었고 그 빈자리를 달과 별들이 수놓으며 채우고 있었다.

밤에 간단한 메뉴와 함께 음료를 먹는 다라. 뭔가 안주에 술을 먹는 느낌이라 느낌이 묘했다.

그때, 주황 머리 직원이 맥주를 들고 와서 우리 테이블에 놓았다.

"고마워."

짧게 말하며 소니아는 술잔을 받아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밥을 먹고 있을 때 따로 시킨 모양이었다.

직원이 다 먹은 그릇들은 치우고 1층으로 내려가자 우리 테이블은 어엿한 술집 같았다.

이 세계는 담배 같은 것들은 20세 이상부터 필수 있지만 어째서인지 술은 15세 이상이면 누구나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18세부터 먹는게 일종의 불문율이었다. 물론 소니아에게는 이런 규칙을 적용하는 건 멍청한 짓이기에 나도 태클을 걸지는 않았다.

"너도 먹을래?"

"아냐, 나는 괜찮아."

무심하게 물어보는 소니아. 솔직히 먹고 싶기는 했지만 나 스스로 내 주량에 자신이 없었기에 참아냈다. 저녁도 소니아가 사는 건데 술을 먹고 떡이 된 나까지 감당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소니아도 예상했다는 듯이 술잔을 입에 갖다 댔다.

나는 사이드로 온 감자튀김을 음료와 함께 먹으며 술을 먹는 기분만 내었다.

몇 잔이나 비웠을까. 소니아앞에는 맥주가 빈 잔으로 5잔이 놓여있었다. 이 세계의 맥주는 꽤 도수가 세다고 했는데 그걸 증명하듯 소니아의 두 볼은 불그스름해졌다. 나 또한 술자리 분위기 때문인지 살짝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음료 3잔만 먹었는데 말이야. 왜 이런담.

그래서였을까 평소보다 말이 술술 나오는 느낌이었다.

"소니아아아……. 오늘 시내에 왜 놀러 가자고 그런 거야?"

".......그냥 그러고 싶었어."

"그래에?"

아 위험하다. 이건 분명 술을 먹었을 때에 기분이다. 머리가 멍해지고 그만큼 멍청해진다. 이 구름 속을 떠다니는 기분은 다른 걸로는 흉내 낼 수 없었다. 언제 술을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은 좋으니 됐나.

"소니아야."

".....왜."

"왜에 나를 처음 볼 때 때리려고 했어?"

"뭐?"

아, 이건 묻지 말걸 그랬나. 뭐 어때 술 먹었는데. 이 정도는 이해해주지 않을까. 그래 우리 상냥한 소니아씨는 이해해주겠지. 물론 긴장되는건 어쩔 수 없는지 꼬인 발음이 오히려 정상으로 되돌아갔다.

"항상 궁금했단 말이야. 나를 대하는 거 보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 같을 때가 있단 말이야아. 왜 그런 거야?"

"허어."

내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물어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소니아는 살짝 당황한듯했다. 그러나 금방 추스르고 나를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사실 처음에는 네가 너랑 굉장히 닮은 외모의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근데 넌 그 사람이랑 다른 사람이더라고."

".......많이 닮았어? 나랑 닮았다던 사람이랑?"

"어.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담담하게 고백하는 소니아는 어딘가 후련해 보였다. 그리고 그 후련함은 나도 느끼고 있었다. 사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소니아의 입에서 그 사실을 들으니 새로워 보였다. 그렇기에 난 한 발자국을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럼 언제까지 나를 그 사람이랑 겹쳐—"

"지금부터."

"어?"

"넌 그 사람이랑 다른 사람이야. 그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받아드리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어. 지금부터는 그러지 않을게."

소니아는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가장 물어보고 싶었던 마지막 질문을 꺼냈다.

"고마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 이건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소니아는 말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살짝 들었고 그 사인을 보고 나는 말을 이었다.

"엘리사가 주인을 물 거라는 게 무슨 소리야?"

그 말에 소니아는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은 아까와는 다르게 약간의 혐오감과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건 그 말 그대로 일뿐이야."

단호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더 캐물을 수가 없었다. 불타는 그녀의 눈동자가 그걸 허락하지 않을 게 뻔했기에.

"안녕히 가세요~"

"고마웠어 키아라."

"네? 제 이름은 어떻게?"

가게를 나서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엘리사와 관련된 대화를 끝내고 소니아와 나는 가벼운 대화로 주제를 돌려 수다를 떨었다. 평범한 친구 사이에 할법한 그런 대화 말이다.

소니아는 나오면서 직원의 이름을 말하며 나와 직원이 당황해 했던 일을 빼면 딱히 큰일은 없었다.

지금 난 소니아와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소니아는 기숙사에 살지 않지만 나를 바래다주겠다고 했고 나도 거절하지 않았다.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술에 취해서 머리가 어지러웠기에 소니아의 배려는 내게 큰 도움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한산한 골목길을 걸어가던 도중 나는 의외의 인물과 조우했다. 어쩌면 지금 상황에 만나면 가장 무서운 사람이었다.

"아가씨."

"엘리사.........."

기숙사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내 메이드 엘리사가 나와 소니아 앞에 나타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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