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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고 싶은 악역 영애님-11화 (11/120)

〈 11화 〉 준비

* * *

노엘 필립스. 원작에서 주인공의 동료 중 한 명으로 나오는 인물이다. 마법 실력도 기본적으로도 뛰어나지만 연금술 부분에서는 누구도 넘볼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기도 했다. 안경 캐릭터라 그런지 책도 엄청나게 좋아해서 그녀의 집에는 책이 산더미만큼 쌓여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이케맨스러운 얼굴은 그녀의 매력을 한층 더 높여주었다. 그녀의 인기는 시원한 성격까지 합해져 소니아 만큼이나 인기 있는 캐릭터기도 했다.

그녀는 나와 소니아를 보고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물론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자스민과 소니아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놀랄 일이기는 했다 만 노엘의 말에는 비웃음과 놀라움이 반씩 섞여 있었다.

비웃음이라니, 대충 예상은 갔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어차피 내 문제일 게 뻔하니.

소니아는 노엘의 말이 불쾌했는지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 노엘을 향해 날카롭게 말했다.

".......시비 걸려고 온 거면 꺼지지?"

"시비? 그럴 리가. 그저 신기한 광경이라 그런 것 뿐인데, 이 광경을 보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어."

노엘의 말에 소니아는 머리를 쓸어올렸다.

아 화났네. 원작 소설에서도 소니아가 화날 때마다 습관적으로 머리를 쓸어올린다는 묘사가 나와서 알 수 있었다. 나는 소니아의 옆에서 살짝 떨어졌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친구야, 뭔 생각하고 있길래 눈을 굴려대?"

내가 둘 사이에서 눈을 굴리고 있자 노엘을 내 볼을 툭툭 건들이면서 말했다. 내가 괜히 소니아 옆에서 멀어진 게 노엘의 관심을 끌어버린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소니아 옆에 가만히 붙어 있을 걸 그랬다.

노엘의 말 자체는 상냥해 보일 수 있지만, 말의 어조는 그렇지 않았다. 이 말투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했다. 하라구로 같이 속이 검은 질문들을 던져대는 것 말이다. 마치 일진이 인간 의자 하고있는 꼬봉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랄까?

다시 말해 존나 무섭다는 뜻이었다. 싱긋 웃으면서 압박해오는 게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나는 어느새 노엘의 눈을 피해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무언가 반론을 해보고 싶었지만 내 본능은 가만히 있으라고 나를 타일렀다.

"거기까지 해. 얘는 네가 알던 애가 아니니까."

그때 소니아는 내 어깨를 잡아 자기 쪽으로 끌고 오더니 노엘을 쏘아보았다. 나는 감동한 눈으로 소니아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진실을 알고 나니까 지켜주는구나. 아무리 그래도 주인공은 주인공이었다.

"무슨 소리야 그건?"

"이따 둘이 있을 때 얘기해줄 테니까 일단은 가만히 있어."

소니아의 말에 노엘은 나를 한번 쓱 훑더니 씩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이 먹잇감을 한번 훑는 것 같아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 그러지 뭐. 오랜만에 밥이나 같이 먹자."

그 말을 들으니 내 배가 아파져 오는 기분이었다. 이 잠깐의 시간 동안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그걸 또 겪는다 생각하니 머리까지 어질어질했다.

급식실 안은 시장바닥인 듯 마냥 시끌벅적했다. 아무래도 신학기라 그런지 서로 알아가는 신입생들과 오래간만에 만나는 재학생들의 얘기 소리로 꽉 차 있었다.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을 제외하고 말이다.

"이야~ 이거 네가 좋아하던 거 아니야? 여기서 밥은 오래간만에 먹어보네."

소니아는 아까부터 불편한 기색을 풀풀 내며 말없이 밥을 먹고 있었고, 노엘은 뭐가 그리 웃기는지 실실 쪼개며 밥을 먹고 있었다. 소니아의 고의적인 무시는 노엘에게 기분이 나쁠 수 있었지만 노엘은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소니아에게 말을 걸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한두 번 무시당한 게 아닌 것 같았다.

"여기 밥은 진짜 맛있단 말이야. 네가 같이 가자고만 하지 않았으면 졸업해도 여기서 살았을걸?"

노엘은 소니아에게 말을 계속 걸기는 했지만 소니아는 단답형으로 대답하거나 무시할 뿐이었다. 노엘은 혼자서 계속 추억을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상쾌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공포라는 감정으로 다가오기만 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이 둘이 서로 동료였다는 게 거짓말 같으면서도 이해됐다. 노엘은 살갑게 대하는 것 같은데 소니아는 진심으로 질려하는 것 같달까. 두 명의 관계를 한꺼번에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물론 나는 둘 사이에서 눈칫밥만 죽어라 먹고 있는 중이었다. 둘의 맞은편에 앉아 밥만 퍼먹고 있긴 하지만 그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는 모를 정도였다. 그 와중에 밥은 너무나 훌룡한게 다행이랄까.

근데, 노엘은 회귀했다는 거 너무 티를 내는 거 아닌가? 아무리 소니아가 옆에 있다고 해도 너무 하는데..... 아마 노엘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나는 상관도 안 쓰는 게 맞겠지. 뭔가 울적해지는 기분이었다. 엘리사가 보고 싶었다.

지금 회귀했다고 생각되는 사람만 벌써 4명째다. 아주 그냥 개나 소나 회귀하는구만. 이쯤 되면 나 빼고 전부 회귀한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내 메이드도 주인공도 교수도 주인공 동료도 회귀했으면 회귀를 하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게 어 빠를지도 몰랐다.

"친구야?"

"......네?"

갑자기?

훅 들어온 노엘의 질문에 머리 회전이 멈추는 느낌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둘만의 세계였기에 나에게 질문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방금 뭐라고 한 거지? 딴생각하느라 못 들었는데.

"네 꼬봉, 그러니까 엘리사였나? 걔는 아직도 데리고 다녀?"

다행히 노엘은 한 번 더 말해주어서 대답을 준비할 수 있었다. 나는 노엘의 배려에 감사하면서 대답을 생각했다. 그나저나 엘리사는 왜? 노엘과 엘리사 사이에 무슨 접점이 있었나?

소니아와 첫 만남때부터 생각한 거지만 소니아와 노엘은 엘리사와 무언과 접점이 있던 것 같았다. 어쩌면 저 둘이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

특히 엘리사에게 했던 광견이라는 말도 생각해보면 의미심장했다. 왜 엘리사에게 광견이라는 칭호가 붙였을까. 아니 생각해보면 광견은 칭호라기보단 낙인에 더욱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예상보다 훨씬 인과관계가 복잡하게 꼬여있는 느낌이었다.

"네…. 엘리사하고 다니고 있어요. 엘리사하고 아시는 사이신가요?"

"뭐?"

노엘의 눈썹이 살짝 움찔하더니 옆에 앉은 소니아를 쳐다봤다. 노엘의 반응을 보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인 것 같았다. 그러자 소니아는 가볍게 답하며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었다. 소니아는 나와 노엘에 이미 관심은 없고 그냥 밥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잖아. 네가 알던 애가 아니라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달라진 거 아닌가? 회귀는 안 했는데 인격은 다른 사람처럼 달라졌다라…. 이거 신기한데?"

"에…?"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노엘. 그 얼굴에는 앎은 경계심을 포함한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노엘은 소설에서 가장 과학자다운 면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바꿔 말하자면 흥미로운 대상이 생기면 그 이유를 알아내기 전까지는 주위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 위험하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지금 노엘과 엮이면 해가 땅에 떨어지더라도 나는 기숙사에 가지 못할 게 분명해 보였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소니아와 노엘한테 인사를 하고 식판을 들고 식판 보관대로 향했다.

“친구야 어딜 가려고.”

노엘이 나를 잡아세울려고 했지만 소니아는 그런 노엘의 행동을 막아 주었다. 노엘은 소니아에게 반항했지만 그 이상 투덜대지 않았다. 나는 소니아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하고 떠났다.

등교했던 길을 역순으로 걷는 하굣길. 아침에 보았던 광경과 그리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건만, 단순히 시야의 방향과 태양의 위치로 풍경은 처음 보는 듯 달라져 있었다.

저녁의 햇살은 다른 사람이 말하던 어머니의 손길, 그래 아마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나는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손길이었기에 이런 식으로 상상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비참하지는 않았다. 비참함을 느끼는 건 중학교 때 이후로는 한 번도 없었다.

나를 이천 년 초반에 떨궈놨던 세상은 이번에는 인간의 창작물에 떨궈놨다.

잠들지 않던 도시는 잠들었고 잠들어야 했던 나는 잠들지 못했다.

지금 와서 이런 생각들 한들 무슨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오늘 아침부터 긴장돼있던 어깨를 풀리게 한 포근한 햇빛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도착하려는 곳에 있는 어떤 인물 때문일까.

기숙사 정문에 도착한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에 문을 열었다.

큰 다짐을 하며 문을 열었지만, 계단을 하나, 하나 올라갈 때마다 기껏 풀렸던 어깨에 다시금 짐이 지어지는 기분이었다.

마침내 내 방문 앞에 도착하자 긴장감은 배가 되었다. 문고리에 손을 갖다 대려다 땐지 몇 번이나 되었을까.

벌컥──

그때 문을 허무하게 열려버리고 말았다. 엘리사에 의해서.

".....아가씨?"

엘리사는 살짝 놀란듯했다. 떨리는 손은 가려버리고 떨리는 동공은 내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된다. 그렇게 다짐하며 나는 입을 열었다.

"엘리사, 얘기 좀 하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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