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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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은 불과 몇백 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용한 강의실에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집중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마르셀린 엠마. 아카데미의 최연소 교수인 그녀는 원작 소설에서도 나름대로 비중 있는 조연으로 등장했다. 아카데미 학원장의 딸이면서 마탑의 차기 탑주라는 위치 때문인지 작품이 진행될수록 비중이 늘어났었다.
그리고 자스민을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기도 했다. 사실 가장 자스민을 싫어하는 사람을 세 손가락 안에 뽑는다 그러면 그녀가 들어갈 정도였다. 하지만 괜찮았다. 아직 마르세린은 나를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설마 소니아처럼 회귀를 했다든가 하진 않았겠지. 설마…….
"마법은 엘프나 드래곤같은 이 종족의 전유물이었고,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죠."
그녀는 학생들을 한번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그러나 최초의 마법사라 불리는 아이리스는 인간도 마법을 쓸 수 있도록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그녀는 싱긋 웃더니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사람만 한 크기의 원형의 마법진이 나타났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마법진이 해결책이 되어주었습니다. 인간은 마나를 감지할 수는 있지만 마나를 자체적으로 변형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법진을 활용해 마나를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유롭게는 무슨.”
소니아는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마르셀린을 가소롭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론 꼬마의 이상론을 들은 30대 중반의 삼촌 같은 반응이었다. 서울대를 당연하다는 듯이 갈 거라는 초등학생의 말을 들은 것처럼 말이다.
마르셀린은 마법진 위에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마법진에 불빛이 빛나더니 불과 얼음의 조각들이 나와 강의실을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불과 얼음 조각들은 각자가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웠다. 그런 조각들 여러 개가 한꺼번에 날아다니니 아름다움이 배가 되었다.
조각들은 여러 곳을 날아다니다가 마르셀린의 주변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의 손바닥으로 조각들이 모여들었고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마르셀린이 손을 쥐었다 피니 조각들은 어디 가고 얼음으로 된 조각상이 놓여 있었다.
마르셀린의 화려한 마술에 주변의 학생들은 환호로 답해주었다. 그녀도 뿌듯한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녀가 보여준 광경에 놀라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소설 초반 마르셀린은 차기 탑주로서의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어서 상당히 과묵하고 진중한 캐릭터였다. 소니아가 마르셀린에게 압박감에서 벗어나라는 조언을 할 정도로 주변의 기대에 너무 자신을 가두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마르셀린은 여유가 충분하다 못해 넘쳐흘렀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말이다. 점점 생각할수록 마르셀린도 회귀를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마르셀린도 회귀한 게 맞았다면 개나 소나 다 회귀하는 거 아니야?
옆을 바라보니 소니아도 그녀가 달라진 점을 눈치챘는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주인공이라 그런지 눈치채는 게 빨랐던 것 같다. 눈치를 챈 게 아니라 원래 알고 있었던 건가?
마르셀린도 소니아를 눈치챘는지 그녀를 보고 싱긋 웃어 보였다. 소니아도 그녀의 시선을 눈치채고 마주 웃어 보였다. 그러나 옆에 있는 나를 보고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네가 어지간히 싫은가 보다.”
“저는 딱히 한 것도 없는데요…….”
“전생에 죄를 지었나 보지.”
소니아도 그걸 알아차리고 나를 비웃었다. 전생은 무슨 전생. 전생에서 죄를 지은 거라고는 빌딩 위에서 떨어지고 나서 내 시체를 치울 사람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 뿐이다. 억울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그래 다 업보지 뭐. 내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스민의 몸으로 살아가면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마주칠지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익숙해져야 했다. 잘 돼 가는 것 같지는 않지만.
마르셀린의 히트 비전을 계속해서 한 번씩 맞으니 수업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첫날이라 중요한 것들이 나오지는 않았기에 나는 딴청이나 피웠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니 학생들은 마르셀린에게 인사를 하고 하나둘씩 강의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확실히 첫날이라 금방 끝나는구나. 멍하니 사람이 빠져나가는 강의실을 바라보고 있는데 소니아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야, 너 일정 있냐?"
"네?"
갑자기? 일진이 찐따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느낌으로 물어보니까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딱히 일정은 없긴 한데요…."
"그럼 나랑 다니자."
"....왜요?"
내가 또 무슨 짓을 했나? 옆자리에 있는 것도 엄청 신경 쓰였는데 단둘이 다니자니. 내게는 너무 가혹한 권유였다.
"왜요라고?"
그녀는 헛웃음으로 어처구니없어했지만 내 얼굴을 보더니, 표정을 관리했다. 진짜 회귀 전에 소니아가 자스민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녀는 한참을 생각하다 입을 열었지
"너 이 학교에 대해 잘 모르지? 내가 알려줄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책상에 턱을 괴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거절을 못 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느껴지는 태도였다. 마음 같아서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두려워 선뜻 말할 수가 없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원래 아카데미의 구조가 궁금하기도 했고, 졸업 경험자인 소니아가 학교 구조를 잘 알려줄 수도 있으니 괜찮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괜찮을 거다.
"알겠습니다…."
내 걱정과 달리 소니아는 꼼꼼히 학교를 소개해 주었다. 신기한 속임수가 있는 강의실과 비밀정원들, 심지어 소설에도 나오지 않았던 비밀통로까지 내게 보여주었다.
원작 인물에게 아카데미를 설명받고 있다니. 어쩌면 지금 나는 소중한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닐까.
첫 만남 이후에는 나에게 딱히 폭력을 가하려고 한 적도 없고, 역시 근본은 선한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런 걸 어떻게 아시는 거예요?"
"......알아서 뭐 하게."
.......아닐 수도 있지만.
학교 구석구석을 열심히 둘러보고 나니 어느새 하는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와 소니아는 작은 정원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기묘한 침묵. 예전과 같았으면 이런 상황 자체가 매우 불편했겠지만, 지금은 훨씬 더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소니아 또한 나를 딱히 의식하지 않고 편안하게 정원을 구경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소니아와 자스민의 관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원작 소설에서도 둘의 관계는 굉장히 평면적이었고, 많이 다루어지지도 않았다.
소니아는 자스민을 괴롭혔지만 자스민에게 적의를 갖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데 왜 소니아는 나를 때리려고 했는지는 의문이었다.
"소니아씨, 실례일 수도 있는 질문이긴 한데…."
"그럼 하지 마."
너무 매몰찬 거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차가운 대답에 고개는 자동으로 내려갔다. 진짜 너무하네….
이런 내 모습이 꼴사나웠는지 그녀는 내 머리를 툭 건들고 말했다.
"하아…. 질문이 뭔데. 해봐."
"제가 뭘 잘못했나요?"
"뭐?"
"같이 다녀보니까 소니아씨가 나쁜 분이 아니라는 것은 알 것 같아요. 근데 처음에 만났을 때 저한테 심하게 대하셔서 제가 뭘 잘못했는지 궁금했어요."
내 말에 그녀는 말이 막힌 듯 입술을 움찔움찔 움직이기만 할 뿐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그래, 그 반응을 원했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소니아는 결국에는 주인공이었다. 지금 소니아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를 회귀 전에 나쁜 놈이었다고 괴롭히는 꼴이었으니까 말이다.
한번 장난식으로 던져본 것인데 이렇게 잘 먹힐 줄 몰랐다. 진짜 자스민이 소니아한테 잘못한 게 있긴 한 걸까? 라는 생각이 들 때 그녀는 내 고개를 그녀 쪽으로 돌리고 말을 이었다.
".......그냥 비슷한 사람하고 착각한 거야.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진짜요?"
"그래, 진짜니까."
거짓말이지만 진실이었다. 비슷한 사람이라는 건 내가 빙의하기 전에 자스민을 말하는 거겠지. 둘의 사연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파고들기에는 겁이 나서 더 물어보지는 않았다.
"근데 너 아까부터 배고파하던데 밥이나 먹으러 가자."
"에…. 에?"
"`에`는 무슨 아까부터 배 쓰다듬는 거 훤히 보이더라."
그 와중에 그런 걸 보고 있었단 말인가. 얼굴에 열기가 차오르는 게 느껴질 정도로 쪽팔렸다.
소니아는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고 말을 걸었다.
"여기 식사가 굉장히 맛있으니까, 먹으러 가자."
"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그녀가 가는 방향으로 따라갔다.
아카데미의 급식실은 흔히 알던 급식실이 아니라 레스토랑 같았다. 호화로운 조명과 장식품들, 들어가자마자 풍기는 맛있는 냄새.
여기가 천국인가?
"이야~ 하필이면 이 둘이라니 이건 또 의외네?"
내가 감탄하고 있을 때 소니아와 내 앞으로 누군가가 찾아왔다.
은색 머리카락, 둥근 안경, 까불거리는 언행. 이 소설의 주연 중 하나이자 주인공의 동료 중 하나인 노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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