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자살
* * *
침묵. 내 질문에 대한 엘리사의 답이었다. 엘리사의 방황하는 동공을 보니 엘리사 또한 이 대답이 자신이 원하던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가씨….”
그놈의 아가씨는. 엘리사의 말에 염증을 느끼며 나는 다른 대답을 재촉했다. 나는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니라 제대로 된 대답을 듣고 싶었다. 엘리사는 세계관에서도 최강자 라인에 드는 존재다. 그런 사람이 어째서 자스민 같은 별것도 아닌 존재를 지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가를 듣고 싶었다.
“엘리사. 내가 질문했잖아.”
“왜 내 자살 시도를 막는 거야?”
“저는 아가씨의 시종이지 않습니까. 시종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아니다. 이 대답은 내가 원한 게 아니다. 지금 엘리사의 대답은 도피하는 것 뿐이다. 나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느낄 수 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인생에 대하여 도피를 해 왔던 자로써 말이다.
“엘리사. 그건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야.”
“......”
“왜. 나 같은 존재를 살리겠다고 너라는 존재가 버둥거리는 건지 모르겠어.”
“아가씨….!”
자스민이라는 존재를 내려 깔며 말하니 엘리사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소설에서도 엘리사는 자스민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냥 신분상으로 주인이니 챙겨준다는 느낌이었지 지금 이렇게 자스민이라는 존재에 엄청나게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랬던 사람이 지금 자스민이라는 존재에 자신의 삶을 갈아가면서까지 지키려 하고 있다. 소설을 봐왔던 사람으로선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기도 했다. 그저 악역 영애일 뿐인 자스민에게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엘리사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소설에는 마법을 쓰지 못했던 인간이 지금은 치유마법을 남발하면서 내가 죽으려는 걸 온 힘을 다해 막고 있었다. 소설 상에 개연성으로도 개인적인 이유로써도 이해할 수 없었다.
엘리사는 내 대답을 듣고 화가 난 것 같았지만 금세 화를 참아내고 평정을 찾았다. 엘리사는 내 왼쪽 손을 잡아 왔다. 엘리사가 직접적인 스킨십을 해온것은 처음이었기에 이번엔 내 쪽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엘리사는 내 손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 손길이 너무나 따뜻해서 오른손으로 맞잡고 싶을 정도였다.
“아가씨. 저는 아가씨께서 이 세계를, 아가씨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이라. 나에게 가장 어려운 걸 요구하는구나 엘리사. 나는 이 세계를 사랑할 수 없었다. 대학생 작가가 썼던 부산물에 그친 이 세계를 내가 어떻게 사랑한단 말인가.
나는 이 세계를 눈에 담을 여유도 없었다. 내 목적은 오직 자살뿐이었다. 내 시야에 다른 것이 잡히질 않길 원했다. 다른 것들이 시야에 잡히길 시작하면 자살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도 머뭇거릴 것 같았다.
그래서 자살이란 목표에 눈이 먼 것처럼 집중해 왔다. 그런데 엘리사는 변수는 끊임없이 나를 방해해 왔다. 엘리사. 그동안 이 세계를 많이 알아 왔지만 너는 아직도 모르겠어. 나, 자스민이라는 존재는 너에게 무슨 의미인 거야.
“.........왜? 나 같은 게 뭐라고 왜 그렇게 신경 쓰는 건데.”
말을 내뱉고 알 수 있었다. 지금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쪽팔리게. 떨리는 건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내 손도 마찬가지였다. 엘리사가 손을 잡아주고 있으니 알 수 있었다. 내 손도 목소리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떨리고 있다는 걸 말이다.
지금 내가 왜 이러는지는 잘 알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니 잘 알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자신밖에 없으니 말이다.
질투였다. 질투. 내 떨림의 원인은 추잡한 질투가 원인이었다. 내 삶에는 나를 걱정해주는 존재 따위는 없었다. 고아가 된 이후로 언제나 혼자 살아왔다. 학창 시절에도 이런 성격으로는 어떤 그룹에도 섞일 수 없었다. 사내 생활도 마찬가지다. ‘나’라는 인간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인간은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악역 영애인 자스민은 이렇게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냥 이 사실을 직접 격고 나니 너무나 슬프고 짜증이 났을 뿐이다. 내 삶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너의 삶에는 너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었구나.
썩어빠진 동기로 출발한 질투가 정의로울 리가 없었다. 내가 항상 시도하던 자살은 어쩌면 엘리사의 대한 시험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자스민이라는 존재를 언제쯤 포기할지 알아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엘리사는 자스민을 포기하지 않았다. 잠을 설쳐가면서까지 자스민을 지키려 했고 자스민이 가고 싶다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데려다주었다.
그게 싫었던 거다. 다른 이에게 사랑받는다는 감각을 알아버리니 나 자신도 주체할 수 없었던 거였다. 그래서 자스민이라는 가치를 나 자신이 깎아내렸다. 지금은 내가 자스민이니까.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놈이니까.
“아닙니다. 아가씨.”
엘리사는 단호하게 내 말을 부정했다. 그 강인함이 내 시선을 그녀에게 계속 향하게 했다.
“아가씨는 그 누구보다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분입니다.”
엘리사는 내 왼손을 쓰다듬었다. 그 행동은 정성스러웠지만 어째서인지 엘리사의 손길이 야릇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엘리사의 손짓에 움찔거리며 몸을 비틀었다.
“아가씨께서 이 세상에 관심이 없으신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셨다면 이렇게 계속해서 자살을 시도하지 않으셨겠죠.”
“허나, 저에게, 이 세계에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는 아가씨께서 이 세계를 조금 더 알아가고 체험하시면서 종국에는 이 세계를 사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가씨라는 고귀한 분이 이렇게 저버리시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엘리사의 말은 내 얼굴을 뜨겁게 만들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저 이야기가 내게 하는 이야기가 아닌 것은 안다. 저 이야기는 내가 아닌 자스민에게 하는 이야기겠지.
알고 있었지만 엘리사와 눈을 마주치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부끄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엘리사. 네가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는 알것같아.”
“아가씨……!”
“그런데 아직 대답을 안 한 게 있어. 이 대답 여하에 따라 내 대답도 바뀔 수 있을지 몰라.”
“..................”
“왜 그렇게 나, 아니 자스민을 소중히 여기는 거야.”
엘리사는 내 말을 듣고 한동안 가만히 내 눈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숙여 내 왼손 약지에 키스했다. 나는 갑자기 일어난 엘리사의 행동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엘리사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연덕스럽게 내 손과 팔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올려 나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을 경애하고있다고 하면……. 이해해 주실 건가요?” “
거짓이다. 엘리사의 눈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런 건 단순한 경애 따위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깊은……….
“그래……. 알았어…… 지금은……….”
깊게 내려가는 생각을 가까스로 끌어올렸다. 아직은 경애라는 감정으로 충분했다. 그 이상 파고드는 것은 내가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환하게 미소를 지은 엘리사는 일어나 굳게 닫혀있던 창문을 열었다. 창문을 열자 불어오는 바람은 내 몸을 가볍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갑자기 창문은 왜 여는 거야…….”
“그야 당신이 자살을 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잖습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리람. 나는 엘리사를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허나 엘리사는 내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엘리사는 내 다리부터 종아리까지 손으로 쓸어올렸다. 나는 몸을 움찔거리면서 거부감을 표했지만,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듯 신경을 쓰지 않고 손을 점점 내 쪽으로 쓸어올렸다. 전부터 느낀 거지만 엘리사의 손길은 너무나 야릇했다.
평소 이성과의 접촉이 없던 나로서는 엘리사의 이런 행동에 면역력이 없었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줄 수밖에 없었다.
“당신께서 좀 전에 제 경애라는 감정을 이해해 주신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그랬지.”
“그럼 자살을 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과 같은 말이 아닙니까.”
“어째서 그렇게 되는데………”
논리의 비약이 너무 심했다. 엘리사의 말에 혹시 내가 방금의 대화에 빠진 것이 있나 기억을 되짚어볼 정도였다. 대체 엘리사의 경애라는 감정을 이해한 것과 내 자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제가 그동안 아가씨의 자살 시도를 막아온 이유는 제가 아가씨를 경애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가씨께서 이 세계를 사랑하시게 되길 원한다고도 말씀드렸죠.”
“그랬지……….”
“대답 여하에 따라 아가씨의 대답이 바뀔 수 있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건 그럴 수 있?”
“아가씨. 한 번만 제게 기회를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당신을 지키고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엘리사의 얼굴은 나와 엎어지면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엘리사의 눈을 피하려고 고개를 내렸지만 엘리사의 손에 의해 그것도 제지당하고 말았다.
지금 엘리사의 눈은 위험했다. 엘리사의 눈에는 어떡하든 내 자살을 막겠다는 사명감과 욕망이 일렁이고 있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
“단, 잠시뿐이야. 네가 말한 대로 내가 이 세계를 사랑하거나 행복하게 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올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상 항복 선언이었다. 엘리사가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말이 나를 움직였다. 평생 불행했던 삶이었다. 열심히 혼자서 발버둥 쳐봤지만 다가오는 건 외로움과 비웃음뿐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에서 나를 사랑하고 내 행복을 원하는 사람과 함께면 이번에는 괜찮지 않을까. 비록 나 자신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인 줄 알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을 추구하고 싶어졌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나를 껴안는 엘리사의 품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