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일일 데이트 주간 에리나
* * *
일일 데이트의 두 번째 날은, 에리나와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 언니! 오늘 하루는 잘 부탁드릴게요!”
“후후, 저야말로 잘 부탁해요, 에리나.”
항상 에리나를 만날 때는 에리자도 함께였는데, 이런 식으로 에리나와만 단둘이 만난 것은 처음이라서 조금 두근거리네요.
에리나도 저와의 첫 데이트에,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제 옆에 서서 물었습니다.
“아, 아그네스 언니는 어딘가 가고 싶은 곳이 있으세요?!”
“음…….”
사실, 일곱 분 모두와의 데이트 플랜을 하나씩 만들어 놓기는 했죠.
하지만 오늘의 데이트에서는, 에리나에게 전부 맡겨보는 게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에리나는 에리나답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그대로 할 때 가장 귀여우니까요.
“오늘의 데이트는 전적으로 에리나에게 맡길 테니, 저를 하루 동안 에스코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 제가 아그네스 언니를요?!”
에리나는 제가 예상하지 못한 말을 한 건지,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혹시 어려울까요?”
“아, 아니에요! 제가 아그네스 언니를 오늘 하루 동안 최고로 즐겁게 만들어 드릴게요!”
데이트 일정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에리나에게 맡긴, 살짝 불안하지만 기대되는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에리나가 저를 처음으로 데려간 곳은, 귀족 거리에 있는 한 식당이었습니다.
“여, 여기는! 이전에 에리자와 함께 온 적이 있는데요. 수프랑 파스타가 엄청 맛있는 식당이에요! 그래서 언니한테도 꼭 소개해 주고 싶었어요!”
에리나가 실망할 것 같아서 말하지는 않고 있지만, 사실 이곳은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니콜라스와 단둘이서 온 적이 두 번, 아리아나와 엘렉트라와 함께 셋이서 온 적이 여러 번입니다.
에리나의 말대로, 수프와 파스타가 굉장히 맛있는 가게니까요. 다만 한 가지 단점이라고 한다면…….
“줄이……조금 길지만요…….”
에리나의 말대로, 귀족들 사이에서 유명한 식당이다 보니 몇 개월 전부터 예약하지 않으면 항상 웨이팅이 있습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은 귀족도, 웃돈을 준다고 해도 가게의 방침상 새치기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이 가게의 규칙이죠.
하지만 갑작스럽게 정해진 오늘의 데이트에서 에리나가 예약해뒀을 리는 없고……줄의 길이를 보니 약 두 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할 것 같네요.
“죄, 죄송해요, 언니……. 다른 가게로 갈까요……?”
에리나가 저를 기다리게 하는 것에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네요.
“괜찮아요, 에리나. 에리나가 준비해 준 곳이잖아요? 기꺼이 기다릴게요.”
“네, 언니!”
다행히 줄을 기다리는 시간은, 그렇게 지루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에리나가 저와 데이트하는 시간에 잔뜩 신이 나서, 서로 이런저런 즐거운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으니까요.
한 시간, 그리고 두 시간쯤을 기다리고 나니, 저희 앞에는 단 두 팀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불길한 예상이 들었습니다.
에리나와 줄을 서서 대화하는 도중 싸한 느낌에 서둘러서 시각을 확인해 보니, 현재 시각은 2시 58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설마……설마 아니겠죠.
2시 59분이 되었을 때, 저희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 팀이 가게에 입장했고,
3시 정각이 되었을 때, 나머지 한 팀이 더 입장했습니다.
“어, 언니! 이제 다음이 저희 차례에요!”
에리나의 말대로 저희의 입장을 남겨둔 직전…….
「PM 3:00~5:00 BREAK TIME」
“어?”
직원이 가게의 문 앞에, 브레이크 타임을 알리는 세움 간판을 놓았습니다.
“……어, 어?!”
에리나가 당황한 모습이 보이네요. 아마 이건 예상하지 못한 것이겠죠.
이건 저도 실수했네요. 줄의 길이를 보았을 때 이렇게 될 거라고 예측을 해야 했는데…….
“어, 언니…….”
에리나의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에, 저 또한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저는 괜찮으니, 다른 곳으로 가서 식사하도록 해요.”
잠깐이지만 슬픈 표정을 지었던 에리나도, 제가 안내한 다른 식당에 들어가 맛있는 식사를 하니, 기분이 어느 정도는 회복된 모양이네요.
“언니, 죄송해요. 두 시간이나 기다리시게 했는데…….”
“저는 괜찮다니까요. 에리나의 마음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의 슬픈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이번에는 언니를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요!”
에리나가 그렇게 말하고 저를 데리고 간 곳은, 크레이프를 파는 디저트 가게였습니다.
“여, 여기도 줄이…….”
이 가게도 인기가 많은 가게니까요. 예약제도 없는 가게이다 보니 기다림은 필수입니다.
“여, 역시 두 번이나 줄을 서는 건 싫으시죠……언니?”
“에리나.”
에리나가 제 눈치를 보며 계획을 수정하는 것을 저는 원하지 않습니다.
“에리나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해요. 저는 얼마든지 따라줄 테니까요.”
에리나는 제 대답을 듣고 잠시 고민하다가,
“그, 그럼! 정말 죄송하지만 줄 서서 크레이프 먹어요! 여기의 딸기 생크림 크레이프는 언니에게 꼭 먹여드리고 싶어요!”
“후후, 그렇게 해요, 에리나.”
디저트 가게라면, 적어도 브레이크 타임으로 실패할 일은 없겠죠.
“오늘은 재료가 다 떨어져서 마감하겠습니다!”
“…….”
맙소사…….
확실히 점심을 먹는 게 늦어져서, 초저녁이라고는 하지만,
벌써 재료소진으로 가게가 문을 닫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저희 차례를 거의 직전에 두고 말이죠.
“우, 우으…….”
에리나는 다시 한번 좌절을 겪고 울상이 되었습니다.
어, 어떡하죠! 이번에는 정말로 에리나가 울어버리겠어요!
에리나가 오늘 데이트에서 좋은 기억을 갖지 못하면, 제가 말한 제안을 이루기 힘들어지잖아요!
하지만 이 상태의 에리나를 데리고 어딘가로 또 장소를 옮기기도 그렇고…….
“아그네스 님, 에리나 님.”
멍하니 가게의 문을 닫는 것을 보며 서 있던 저희에게, 몰래 사복 차림으로 호위를 하던 마리가 다가왔습니다.
양손에는, 딸기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든 상태로요.
“호위 중이라는 것을 깜빡하고 실수로 아이스크림을 두 개나 사버렸는데, 괜찮으시다면 두 분께서 받아주실 수 있을까요?”
이럴 때 마리가 제 사용인이라 정말 다행이네요.
장소를 옮겨, 저는 에리나와 함께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았습니다.
“…….”
아이스크림을 받고 잠깐은 기분이 좋아졌던 에리나는,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난 뒤에는 다시 말이 없어졌습니다.
두 번이나 실패를 겪은 데다가, 제게 폐를 끼쳤다는 생각이 들어서 풀이 죽은 것이겠죠.
위로하고 싶지만, 제가 어떤 말을 해도 지금의 에리나에게는 와닿지 않을 것입니다.
“흐으윽……흑…….”
“에, 에리나?!”
결국, 에리나는 복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죄, 죄송, 해, 흐윽……아그, 네, 스, 언……흐아앙…….”
에리나는 저와 다른 사람의 시선도 신경 쓰지 못한 채,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에리나. 괜찮아요……괜찮아…….”
“흐으윽……흐아아앙…….”
에리나의 감정이 진정될 때까지 안아준 후, 겨우 진정된 에리나에게 다시 말을 걸었습니다.
“에리나, 저는 에리나가 저를 사랑해주는 마음만으로도 항상 고마워요.”
“그, 그치만……그치마안…….”
에리나는 여전히 훌쩍거리며, 제게 고백하듯이 말했습니다.
“저는 항상 계획도 준비도 하지 않고, 아그네스 언니에게 폐를 끼쳐버려요. 에리자가 있을 때는 제 부족한 점을 메꿔주지만, 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고…….”
에리나의 덤벙거리는 성격은, 확실히 온전한 한 사람의 몫을 한다고 말하기에는 힘들지도 모릅니다.
“그게 뭐 어때서 그래요.”
하지만 그것 또한, 에리나가 가진 매력이니까요.
“네, 네?”
“혼자서 한 사람의 몫을 못 하는 게, 어때서 그래요. 대신 에리나는 곁에 저나 에리자가 있어 주기만 하면, 배 이상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잖아요.”
“그, 그렇지만……언니나 에리자가 언제까지고 제 곁에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고, 에리나의 곁에 있을게요.”
울먹이는 에리나를 안으며 말했습니다.
“저도, 에리자도. 언제까지고 에리나의 곁에 있을게요. 그러기 위해서 저는 일곱 명 모두를 사랑하겠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언제까지고, 함께 하기 위해서…….”
“아그네스, 언니…….”
“에리나는 에리나답게, 언제까지고 천진난만하게 웃어주면 돼요. 저도, 에리자도, 그리고 모두 그것을 바라고 있으니까요.”
에리나는, 제 품 안에서 비로소 웃는 얼굴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고,
저는 눈물로 엉망진창이 된 에리나의 얼굴을, 손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닦아주었습니다.
“에리나, 눈 감아볼래요?”
에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 말대로 살포시 눈을 감아주었습니다.
저는 그런 에리나의 얼굴이 무척 사랑스럽게 느껴져, 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고…….
“…….”
“…….”
에리나와 한 첫 키스는, 딸기 아이스크림의 맛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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