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학생회 회의 n회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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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토리아 왕립학교의 빈 교실, 누군가에 의해 접근할 수 없게 막힌 그 교실에서 일곱 명의 학생이 앉아 있었다.
또한, 한 명의 사용인 여성도.
“다들 바쁜 분들이실 텐데, 이렇게 모여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용인 여성은 먼저, 모여 있는 일곱 명의 학생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다.
“마리? 분명 학교는 사용인 출입 금지일 텐데.”
니콜라스는 사용인에게 의심을 표했고,
“마리 씨가 왕립학교에 들어오신 것을 알면, 아그네스 님에게 불이익이 가는 거 아닌가요?”
아리아나 또한 아그네스에게 부정이 될까 싶어 마리에게 우려를 표했다.
“괜찮습니다. 오늘 저는 사용인이 아닌 아그네스 님의 보호자 신분으로 온 것이니까요. 사용인 복장도 챙겨 오지 않았습니다.”
마리는 예상한 질문이라는 듯, 두 사람에게 준비된 대답을 꺼냈다.
“마리 선배가 직접 모으셨다는 것은, 역시 주인님에 관한 말씀이신가요?”
모인 사람 중 가장 마리와 관계가 깊은 엘렉트라가, 먼저 질문을 꺼냈다.
“네, 아그네스 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모시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여기저기 퍼트리시는 것은, 사용인 실격 아닙니까? 특히 영애님의 사용인이시라면 더더욱 몸가짐을 제대로 하셔야 할 텐데요.”
입이 무거운 것은 사용인으로서의 기본 소양이었기에, 파노스가 마리를 문책하듯이 이야기했다.
“당연합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 있는 것이 아그네스 님의 지시라면 파노스 왕자님께서도 이해하실 수 있으시겠죠?”
“영애님의 지시라면 뭐…….”
파노스는 멋쩍은 듯 마리의 시선을 회피했다.
“어, 언니가 전달하는 지시라고요?”
“에리나, 일단 앉아서 얘기를 들어.”
놀라서 일어난 에리나를, 에리자가 지적한 후 다시 앉혔다.
“아그네스 누나께서,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 처음 아니십니까.”
“아그네스라면, 보통은 본인이 직접 말했겠지.”
제이스와 니콜라스의 대화를 듣고, 아리아나가 무언가를 번뜩인 듯 중얼거리듯이 물었다.
“……아그네스 님께서 직접 말하기 힘들 정도로, 부담스럽거나 곤란한 이야기인가요?”
“근접합니다, 아리아나 님.”
“뜸들이지 말고 영애님이 전달하신 이야기로 넘어가는 게 어떻습니까?”
좀처럼 본론으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느껴진 파노스가, 서둘러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알겠습니다.”
마리는 숨을 가다듬고,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선, 아그네스 님이 최근 여러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신 것은 다들 알고 계시겠죠.”
“확실히, 아그네스의 호들갑이 조금 커지긴 했지.”
“이전과 같은 행동을 해도, 다른 반응을 보이실 때가 꽤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서 제가 말할 때마다 놀라는 일이 많아지셨죠.”
“조금씩 달라지는 것은 느끼고 있었습니다.”
“언니가……조금 이상해지긴 했어요.”
“약간이지만, 저희를 피하시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셨고요.”
“저도, 주인님께서 요즘 들어서 저를 부담스러워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일곱 명의 학생은, 각자 짐작이 가는 과거의 기억을 되새겼습니다.
“호, 혹시! 아그네스 언니가 저희를 싫어하게 되신 건가요?!”
“설마, 아그네스 누나께서 앞으로 저희들과 거리를 두고 싶다고 말씀하시거나…….”
“안 돼요! 아그네스 님 없이는 저는 한 달도 못 가서 죽어버릴 거라고요!”
“저도, 주인님이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조차…….”
“진정하세요, 여러분. 그런 이야기가 전혀 아니니까요.”
마리는 혼란에 빠진 인원들을 서둘러 진정시켰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아그네스 님은 여러분 모두를 한 명도 빠짐없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휴우…….”
“다행이네요.”
“만약 그랬다면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모두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와중, 마리가 말을 이었다.
“오히려 여러분들을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생긴 일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저희를 사랑해서 생긴 일이라고요?”
“우선 말씀드리면, 아그네스 님은 최근까지는 여러분이 주시는 사랑을 눈치 채지 못하고 계셨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열심히 표현했던 사랑을 눈치 채지 못하고 계셨다니! 그 말에 여기 있는 인원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으면서도,
“어렴풋이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들으니 충격이 크네요.”
“아그네스 언니…….”
“왠지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다들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너희들이 주는 사랑이 적으니까 아그네스가 알아챈 전적이 없는 거다. 나는 이미 아그네스에게 진심을 부딪쳐서 내 마음을 전한 이후로…….”
“니콜라스 왕자님도 포함해서입니다.”
“뭣…….”
덤덤했던 니콜라스의 표정도 당황해서 일그러졌다.
“푸흡, 사랑이 적어서 그런지 마음이 전달되지 않았네요?”
“형님, 영애님에게 진심을 부딪치셨다고요?”
“……둘 다 닥쳐.”
니콜라스는 머리를 감싸 쥐고 책상에 이마를 들이박았다.
“잠깐, 최근까지는 이라는 것은, 아그네스 누나가 지금은 알아채고 계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제이스 님.”
제이스에게 대답한 마리는, 마저 이야기를 진행했다.
“아그네스 님께서 최근에 어떤 하나의 계기를 겪은 덕분에, 여러분의 아그네스 님을 향한 마음은 드디어 전달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아그네스 님께서 여러분에게 보이는 태도가 달라진 것도 그때부터겠죠.”
“그럼……저희가 아그네스 언니에게 실례되는 행동을 한 건 아닌가요?”
“전혀 아닙니다.”
마리는 에리자의 염려를 부정하고 말을 이었다.
“아그네스 님은 여러분이 하는 행동이 자신을 사랑해서 그렇다는 것을 알고, 부끄러워져서 놀라거나 자리를 피하려고 하고 계십니다.”
“아!”
“정말인가요?”
“그래서 그랬던 것입니까.”
각자의 사람은 아그네스가 최근 보인 이상행동에 의문이 풀림과 동시에, 자신이 아그네스에게 잘못을 저질러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전해드려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리의 말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됐다.
“아그네스 님은, 여러분 일곱 명의 사랑에 전부 응해주지 못하실까봐 두려워하고 계십니다.”
“뭐?”
“네에?!”
“어, 언니가요?!”
모두가 놀라는 와중에, 파노스가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영애님은 마음씨가 착하시니, 받은 만큼의 사랑을 돌려주지 못한다면 죄의식을 느끼시겠죠.”
“아그네스 누나께서는 베푸는 것은 익숙하시지만, 받는 것은 서투르시니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 그런! 저는 아그네스 님께서 행복하시기를 바라고 대가 없이 사랑했을 뿐인데!”
“아까 아그네스 없이는 한 달도 못 가서 죽는다고 했던 사람이 누구더라?”
“닥쳐요, 니콜라스 왕자!”
니콜라스와 아리아나가 싸우는 도중, 엘렉트라가 갑자기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마리에게 물었다.
“마, 마리 선배? 그렇게 되면 혹시 저희 중에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낀 주인님께서, 저희가 모르는 곳으로 도망쳐버리시거나 아무도 선택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건 아닐까요?”
가장 곁에서 아그네스를 보면 아그네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있던, 엘렉트라다운 날카로운 고찰이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아그네스 님의 어머니인 로렌나 님께서, 장래에 아무도 선택하지 않겠다는 건 안 된다고 미리 못을 박으셨으니까요.”
“그, 그러시군요. 다행이네요.”
만약 아그네스가 자신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시종으로서 아그네스의 곁에서 평생을 보낼 생각이었던 엘렉트라는, 혹시나 다가올지 모르는 최악의 결말을 피해갔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잠깐, 선택이라고? 아그네스는 내 약혼자니까 당연히 내 배우자가 되어야 하는 거 아냐?”
“아그네스 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셨지만, 아그네스 님의 부모님인 렌드로 님과 로렌나 님께서는 아그네스 님의 감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뭐라고……?”
“저 또한, 아그네스 님의 선택을 존중하고 최대한 도와드릴 생각입니다.”
“약혼자라고 방심하고 계셨습니까, 형님.”
“하아…….”
이런 전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니콜라스가, 심란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아그네스 님께서는 여러분 중 누군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에 굉장히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계십니다.”
마리의 말이 끝나고, 각자는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그네스의 반려로서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아그네스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그네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자신이 양보한다는 것은 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만약 아그네스가 자신을 선택해 준다면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줄 자신을 저마다 갖고 있었으니까.
“내가…….”
침묵 속에서, 니콜라스가 결심한 듯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아그네스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줄 테니, 다들 양보하는 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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