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어머니의 조언을 들었습니다
* * *
어머니의 출산 이후, 앙겔로풀로스는 한층 떠들썩해졌습니다.
‘꼬옥’
“와! 와!”
제 동생에게 손가락이 잡힌 에리나가, 흥분하며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언니! 언니! 아이가 제 손가락을 잡았어요!”
“흥분하지 마세요, 에리나. 제 동생이 놀라겠어요.”
‘끄덕끄덕’
반강제적으로 이루어진 조기 출산이라서 조금 불안했지만. 2주 정도가 지나고 나니, 옹알이할 정도로는 건강해졌습니다.
물론 어머니도 무사하시고, 몸도 거의 회복되셨습니다.
“아그네스 언니, 어머니께서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고마워요, 에리자. 그리고 에리나도요. 여러분 덕에 모든 일이 무사히 끝났어요.”
제 동생이 태어난 이후로, 앙겔로풀로스에 방문하는 사람마다 제 동생을 보고 가곤 합니다. 니콜라스, 아리아나, 에리나와 에리자, 최근에는 낸시 선생님의 핑계를 대며 파노스도 방문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방문하는 시기가 은근히 아리아나와 겹치는 것을 봐선, 역시 아리아나를 만나려고 방문하는 게 맞는 것 같네요. 파노스의 말로는 니콜라스와 시간이 겹치지 않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고 있기는 하지만요.
“로렌나 님, 젖먹이를 하실 시간입니다.”
“알겠어요, 마리.”
세 시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동생의 식사시간이 돌아온 것 같네요.
“여러분, 로렌나 님께서 수유하셔야 하니, 모두 퇴장해주세요.”
마리가 어머니의 수유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퇴장시켰습니다.
요즘의 마리는 거의 어머니의 전속 사용인처럼 지내는 중이네요. 제 전속 사용인이긴 하지만, 제가 어머니를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드리기도 했고. 어차피 방학 중에는 엘렉트라도 있어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에리나, 에리자. 그리고 엘렉트라도 모두 어머니가 편하게 수유하실 수 있게 밖으로 나가죠.”
““네, 언니!””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리고 저도 다른 분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려는 중, 어머니께서 부르셨습니다.
“아그네스는 남도록 해요.”
“네?”
어머니가 무엇 때문에 저를 남으라고 하셨는지 의문이 들어 되물었습니다.
“아그네스도 곧 어머니가 될 거니까요. 수유하는 모습을 배워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아…….”
제 미래를 생각해서 하신 말씀이셨네요.
어머니께서는 아마 제가 졸업하자마자 니콜라스와 결혼하고, 바로 후계자를 나을 것으로 예측하고 계실 테니까요.
사실 그 이면에서 저는 니콜라스와 파혼하려고 술수를 부리고 있지만요.
“알겠습니다, 어머니.”
하지만 그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씀드릴 순 없으므로, 여기서는 어머니의 말을 따라야겠죠.
다른 사람들을 다 내보낸 후, 어머니의 요양실에는 저와 어머니, 마리, 그리고 새롭게 생긴 제 동생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와아…….”
꼬물거리는 작은 생명체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꿈틀거리는 모습은, 굉장히 신비로웠습니다.
“이러고 있으니, 아그네스가 아기였을 때가 생각나네요.”
어머니는 추억에 잠기시며, 과거의 이야기를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아그네스가 어렸을 때는, 두 시간마다 보채서 얼마나 피곤했는지 몰라요.”
“제가……그랬어요?”
“게다가 앞니가 나기 시작한 이후로는 젖을 빨면서 깨물기도 하고, 제 젖이 잘 안 나온다 싶으면 가슴을 찰싹찰싹 때려서 아프기도 했어요.”
“죄, 죄송해요……어머니…….”
비록 제 기억에서는 잊혔지만, 어렸을 때부터 제멋대로인 아그네스의 과거에 부끄러워졌습니다.
“괜찮아요. 아직 아기였을 때 일이고, 어차피 아그네스도 아그네스와 똑 닮은 아이를 낳으면, 그대로 다시 겪을 일일 테니까요.”
아그네스를 꼭 닮은 아이라니……조금 미래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네요.
“니콜라스 왕자나 파노스 왕자를 닮으면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제이스를 닮으면 얌전한 아이를 낳을 수도 있겠네요.”
“네……네?”
어머니의 입에서 갑자기 파노스나 제이스의 이름이 나와, 놀란 나머지 되물었습니다.
“저……파노스 왕자나 제이스의 이름이 왜 나오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야 다들 아그네스를 목숨처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요. 물론 저는 아그네스가 제대로 약혼자인 니콜라스 왕자와 혼인해주었으면 좋겠지만, 다른 사람을 선택하더라도 아그네스의 선택을 존중해줄게요.”
“네? 네에?!”
어머니께서도 마리와 같은 말을 하시는 것을 보고, 그만 혼란에 빠졌습니다.
“어, 어머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마치 선택권을 가진 것 같잖아요. 저는 니콜라스 왕자와 형식적인 약혼자 사이일 뿐이고, 다른 사람들도 제게 딱히 이성에게 느끼는 사랑을 하고 있지는 않은데…….”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아그네스?”
제가 당황하여 변론을 시작했는데, 오히려 어머니께서 더 진지하게 당황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로렌나 님. 아그네스 님께서는 주변에 계신 분들이 본인을 사랑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심지어는 약혼자인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 님에 대해서도요.”
“하아아…….”
어머니께서는 갑자기 피곤해지셨다는 표정으로 큰 한숨을 내뱉으셨습니다.
“니콜라스 왕자와 약혼한 이후로 얌전해졌다 싶었는데, 뒤에서는 이런 식으로 또 다른 걱정거리를 만들어 놓았었네요…….”
마리에게서 저로 시선을 옮기신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근데, 니콜라스와 약혼 이후로 얌전해졌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어, 어머니? 어머니께서는 설마 제가 니콜라스 왕자님과 약혼하기 전까지 제멋대로 행동하는 걸 알고 계셨나요?”
“당연하죠. 저와 렌드로 씨 앞에서만 어리숙한 표정을 짓는 것도 다 알고 있었어요.”
“그, 그런데, 왜……진작에 꾸짖지 않으셨어요?”
“믿고 있었으니까요. 언젠가 아그네스도 철이 들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요.”
어머니께서는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저를 훨씬 더 사랑하고 신뢰하고 계셨습니다.
“어, 어머니…….”
원작의 아그네스였다면 이런 어머니의 신뢰를 마지막까지 배반하고 국외 추방을 당하거나, 니콜라스의 스트레스 해소용 장난감이 되었겠죠. 처음으로 제가 아그네스가 되었다는 사실이 다행으로 여겨지네요.
“아그네스.”
“네, 어머니.”
“이제부터라도 당신의 주변에 계신 사람들이 당신에게 가진 감정을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하세요. 니콜라스 왕자, 파노스 왕자, 아리아나 양, 제이스, 에리나 양, 에리자 양, 그리고 엘렉트라 양까지요.”
“네에…….”
마리가 말할 때는 긴가민가했지만, 항상 현명하고 바른말만 하시는 어머니까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니, 덮어놓고 부정하기만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와 렌드로 씨는 아그네스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도와줄 거예요. 그것이 기존의 약혼을 무르고 파노스 왕자나 제이스와 혼인하는 것이든, 결혼하지 않고 아리아나 양이나 솔론 가문의 자매와 평생을 함께 지내는 것이든 말이에요.”
“네……어머니…….”
“단, 두 가지만 지켜주세요.”
어머니가 동생을 안고 있는 손이 아닌, 반대쪽 손을 들어 두 개의 손가락을 피고 보여주셨습니다.
“두 가지요?”
“첫째, 혼전 임신은 안 돼요.”
“호호호호호혼전 임신이라니요! 전혀 그런 건 생각한 적도 없어요!”
“아그네스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죠.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다른 걱정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그네스를 빼앗길까 봐 다급해진 아이들이, 아그네스와 억지로 기정사실을 만들려 들지도 모르니까요.”
“마, 만약에 니콜라스 왕자나 파노스 왕자가 저를 좋아해도, 설마 그렇게까지 하실 리가 없잖아요! 니콜라스 왕자가 약혼자를 혼전 임신시켰다는 소문이 돌면 입지가 나빠질 수도 있고, 파노스 왕자나 제이스는 더더욱 그러면 안 되니까요!”
“원래 사랑은 뇌를 마비시키는 거예요, 아그네스.”
어머니께서는 눈을 감고 다시금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제가 렌드로 씨를 유혹할 때도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으니까요. 저보다 열 살이나 많은 렌드로 씨가 제 감정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시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다른 귀족 영애분들에게 실례되는 짓도 많이 했었답니다. 결국, 렌드로 씨가 제 청혼을 받아주지 않으면 제 신변에 위기가 오는 상황까지 다가가서야, 렌드로 씨를 설득할 수 있었으니까요.”
당연히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프러포즈를 한 줄 알았는데, 어머니 쪽에서 아버지에게 매달리셨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만약 아그네스의 마음이 니콜라스 왕자에게 없다는 것을 알면, 니콜라스 왕자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더 적극적으로 아그네스를 노릴 테니까요. 항상 주의하도록 하세요. 마리 씨도 아그네스를 잘 보호해주시고요.”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저, 설마 생각보다 이미 신변이 많이 위험한 상황인가요?
“그리고 두 번째, 장래에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안 돼요.”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라면…….”
“모든 사람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면서, 모든 고백을 거절하고 혼자 외톨이로 쓸쓸하게 여생을 보내겠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그건 아그네스 본인을 상처입힐 뿐만 아니라, 아그네스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감정까지 배신하는 행위니까요.
만약 상대가 남성이라서 부담스러운 것이라면, 아리아나 양이나 솔론 자매를 선택하더라도 인정해드릴 테니, 함부로 선택을 포기하겠다고 말하지 마세요.”
“아, 알겠습니다, 어머니…….”
……장래에는 프레타리아에 가서 저를 모르는 남성분과 결혼하고 평범한 여생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어머니의 말씀으로 이 계획 또한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수유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시겠다던 어머니는, 다른 쪽으로만 실컷 제게 주의시키고 저를 내보내셨습니다.
아아, 이제 전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