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진실을 고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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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인연도 생기고, 크고 작은 이벤트도 많이 생겼던 아스토리아 기초학교의 3년도 종료되었고,
저는 일주일 후 있을 아스토리아 왕립학교의 입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엘렉트라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멜리나 영지로 보내 놓은 상태입니다. 듣기로는 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작년 중순부터 영지 경영이 안정화가 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원래 계획대로 올해 말까지만 일하고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고 얼마 전 엘렉트라에게 말해보았지만,
“……그렇다면, 평생 모시게 해주시겠다는 말씀은 거짓말이셨나요?”
“네? 아, 아니. 엘렉트라도 슬슬 자기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요. 멜리나 가문 영지 경영도 궤도에 오른 상태라서 엘렉트라가 더 이상 일 할 필요는 없잖아요?”
“돈이 필요해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만약 저에 대한 금전적인 지원이 부담되신다면, 무보수로 일하겠습니다.”
“네?! 하, 하지만 돈 문제가 아니더라도 왕립학교에 들어가면 수업도 더 힘들어질 텐데 도저히 제 시종까지 할 여유는…….”
“제가 3년간 한 번도 전교 2등을 놓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주인님께서 혹시라도 이런 식으로 제 성적을 염려하실까 봐 공부도 절대 뒤처지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전교 2등이라는 성적도 불만이시라면, 다음에는 니콜라스 왕자님을 이기고 증명하면 될까요?”
“그, 그럴 것까지는 없어요! 알겠어요!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정당한 보수를 받고 제 시종으로 일하세요!”
“감사드립니다, 주인님.”
이런 대화가 이어지고 결국 왕립학교에서까지 엘렉트라는 제 시종이 되기로 정해졌습니다.
이렇게 되면 엘렉트라는 왕립학교에서 이런저런 다른 공략대상, 특히 니콜라스와의 이벤트가 진행되기 힘들어질 텐데요…….
여전히 엘렉트라가 니콜라스인지, 파노스 왕자인지, 아니면 제이스인지 누구를 노리는지조차도 감이 안 잡히고 있고요.
아니면 공략 대상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서 솔로 베드 엔딩으로 가려는 걸지도…….
엘렉트라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오늘은 또 다른 제 시종에 관한 이야기를 할 차례입니다.
바로, 가장 오랫동안 저를 섬겨온 마리입니다.
“마리, 지금 밖에 있나요?”
“네, 아그네스 님.”
제 부름을 듣고, 마리가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주세요. 해야 할 말이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아그네스 님.”
마리가 제가 앉은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았습니다.
……이제, 마리에게만큼은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로 결심했으니까요.
마리는 제가 하는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표정의 변화 없이 들어주었습니다.
이 세계는, ‘사랑과 운명 ~아스토리아~’라는 이름의 가상으로 만들어진 세계라는 것.
세계의 스토리에 맞춰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것.
니콜라스가 처음 방문했던 날, 이 세계에 대해 전생에서 기억해냈다는 것.
약혼자인 니콜라스와는, 원래 약혼하고 싶지 않았던 것.
그가 미래에 아내인 저를, 매일 밤마다 고문하며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엔딩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매번 니콜라스 왕자와 파혼하려고 계획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던 것.
파노스 왕자와 친해진 것은, 그의 어린 시절을 몰랐기 때문에.
아리아나와 많이 만난 것은, 니콜라스를 좋아하는 아리아나를 이용하려고 했기 때문에.
제이스의 연구실을 만든 것도, 파혼에 가까워지려면 제이스가 연구하는 물약이 필요했기 때문에.
에리나와 에리자는 원래 제이스의 약혼자가 될 운명이었다는 것.
엘렉트라는 가상 세계의 주인공이고, 니콜라스도 파노스 왕자도 제이스도 엘렉트라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유혹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니콜라스가 아그네스를 파혼시키는 데는, 엘렉트라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억지로 학비를 전달하면서까지, 기초학교에 입학하게 만든 것.
엘렉트라를 시종으로 삼으면서까지 매일 괴롭혔던 것은, 엘렉트라에게서 제가 괴롭혔다는 증언을 받아야하기 때문에.
지난 과오를 속죄하는 기분으로, 마리에게 하나하나 과거에 있었던 제 행동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정말, 정말 미안해요, 마리……. 지금까지 저는 계속 마리를 속이고 있었어요……. 입으로는 마리를 신뢰한다고 말하고, 속으로는 믿고 있지 않았던 건지도 몰라요…….”
분명 제게 실망했겠죠.
제가 지금까지 했던 모든 행동들이, 사실은 제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했던 행동이었고,
남은 것은 주위의 다른 모든 사람들을 이용하는 이기적인 거짓말쟁이 한 명이니까요.
“아그네스 님.”
마리는 저를 낮은 목소리로 불렀습니다. 마리가 어떤 말을 할지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눈을 꼭 감고 가만히 앉아서 긴장했습니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마리가 저를 매도하는 말이 아닌, 따뜻한 온기였습니다.
“지금까지 혼자 고민하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리의 위로를 듣자마자, 눈에서 나오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마리의 품속에서 울어버렸습니다.
“…….”
“진정되셨나요?”
10분 정도를 마리의 위로를 받으며 울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네…….”
어느새 제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지저분해진 마리의 옷을 보고, 슬픔보다는 부끄러움이 더 커졌습니다.
“마리, 미안해요. 옷을 더럽혀버려서…….”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요. 그보다, 아그네스 님의 일이 더 중요하니까요.”
그, 그렇죠. 마리에게 제가 전생했다는 것을 고백한 것은, 단순히 속죄하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앞으로 왕립학교에 입학한 후, 어떻게 해 나가야 할 지에 대해 설명하고 상담하기 위해서입니다.
이후 본격적인 게임의 스토리를 혼자서 헤쳐 나가기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뭔가 제가 세우는 작전 같은 것들은……그다지 제대로 된 기억이 없으니까요.
마리가 제 편이 되어주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빨리 설명해줄 것을 그랬어요.
“우선, 아그네스 님은 니콜라스 왕자님과의 파혼을 원하시는 겁니까?”
“네, 맞아요!”
“그 이유는, 니콜라스 왕자님은 결혼 이후에 아그네스 님을 고문하시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 되어버리니까요?”
“그래요. 역시 마리는 이해력이 빠르네요.”
마리는 제 대답에 장고한 뒤,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그것이 걱정이라면, 약혼 파기는 하실 필요 없는 것 아닌가요?”
“네?”
“지금의 니콜라스 왕자님을 보면, 결혼 후 아그네스 님에게 그런 가학적인 행동을 하실 분이라고는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마리는 아직 원작 게임의 결과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그렇게 정해져 있는 걸요.”
“만약을 위해 물어보는 거지만, 혹시 니콜라스 왕자님의 외모나 지위 같은 것들이 맘에 드시지 않아서 파혼을 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어요? 니콜라스는 누가 봐도 절세미남에 못하는 것 없는 초인이고 겉으로 보이는 성격도 다정다감하잖아요. 게다가 지위는 제1 왕자에 사실상 미래의 국왕이 되는 것이 정해져 있는데, 여기에 불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굳이 단점이라고 한다면 동물들이 싫어해서 승마를 못하신다는 것 정도겠지만, 그 정도는 오히려 인간미가 느껴져서 마이너스는 아니에요.”
“하지만 원래 세계에서의 니콜라스 왕자님은 아그네스 님을 싫어하셔서 매일 밤마다 고문했던 것 아닌가요?”
“네, 맞아요.”
“그렇다면 지금 아그네스 님에게 완전히 감화된 니콜라스 왕자님은, 아그네스 님과 결혼하신 뒤 오히려 더 소중하게 여기시지 않을까요?”
“무슨 소리에요, 마리. 니콜라스가 절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
“네?”
제이스와 마찬가지로 눈치가 빠른 마리라면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런 면에서는 어벙하시네요.
“제가 첫 만남 때 니콜라스에게 했던 짓을 잊은 거예요? 인사 하나도 제대로 못 하냐면서 구박하고, 별 것도 아닌 교양으로 잘난 것처럼 으스대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며 니콜라스를 비꼬았잖아요? 대체 그걸 듣고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니콜라스 왕자님께서는 아그네스 님에게 제대로 빠져버린 나머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약혼을 진행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말했잖아요. 결혼 후에 니콜라스는 저를 채찍으로 때리고 바늘로 손톱 밑을 파고드는 잔인한 고문을 한다니까요. 약혼은 그걸 위한 초석이에요.”
“왕복 3시간 거리의 앙겔로풀로스 저택까지 매주 3번씩 몇 년이나 아그네스 님을 만나러 방문하신다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닌 것 같은데요? 바로 어제도 방문하고 가셨잖습니까?”
“그건 제 얼굴을 자주 보면서 혹시라도 처음 만난 날의 증오심이 옅어질까봐 꾸준하게 제 얼굴을 보고 상기시키는 거겠죠. 정기 증오의 시간을 갖고 계신 거예요.”
“니콜라스 왕자님께서 한 번이라도 아그네스 님에게 싫어한다거나, 증오한다거나, 결혼 후 복수하겠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나요?”
“전혀요. 대단하지 않나요? 어떻게 그렇게 큰 증오심을 갖고도 한 번도 티를 안 낼 수가 있는지요. 제게 전생의 기억이 없었다면 진작 속아 넘어갔을 거예요.”
“…….”
마리는 니콜라스에 행동에 관해 이것저것을 물어보더니, 제가 모두 설명해 주자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습니다.
마리도 니콜라스의 뻔뻔함을 알아듣고 놀라고 있는 중이겠죠.
“……정말, 중증이시네요.”
“맞아요. 중증이에요.”
니콜라스 왕자의 복수에 대한 집착이 중증이라는 것에 대해, 마지막에야 겨우 마리와의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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