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학생회 업무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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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으로 학생회를 설립하고, 각자의 직무까지 정해진 후 학생회 활동을 시작한 지 약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다소의 사무적인 대화를 제외하고는, 다들 학생회의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그네스 누나, 여기 총무 보고서입니다.”
“확실히 받았어요, 제이스.”
역시 제이스는 기대한 대로 총무 자리를 잘 수행해 주고 있네요.
평소에도 연구 때문에 이것저것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버릇이 남아 있어서인지, 총무 자리에서도 서무와 회계 자료들을 종합해서 한눈에 읽어보기 편하게 만들어 전해주고 있습니다.
보고서를 읽으면서 서무와 회계 보고서도 검토했습니다. 확실히 엘렉트라도 일 처리가 완벽하네요. 회계 업무의 에리나도 마찬가지고요. ……에리나의 글씨는 좀 난잡하기는 하지만요.
“주인님, 차를 더 따라드릴까요?”
“아, 고마워요, 엘렉트라.”
참고로 서무 업무를 맡은 엘렉트라는 일찌감치 자신의 업무를 전부 끝내고, 제 옆에서 시중을 들어주고 있었습니다.
“엘렉트라 양, 그렇게 열심히 사수한 자리이면서 매일 그렇게 앉아 계시지 않으면, 자리를 차지한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제 위치는 여기니까요. 그리고 제가 싫었던 것은 주인님이 제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닌, 주인님 곁에 다른 사람이 가까이 붙는 것입니다.”
“참…….”
파노스 왕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런 대화를 듣던 중, 회계 보고서에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에리나, 여기 ‘신입생 환영사교회’라고 적힌 지출 내용은 뭔가요? 혹시 제가 모르는 사이 학교 주최의 사교계 행사가…….”
“아그네스, 정말 미안하지만, 이것 먼저 처리해 줄 수 있어? 중간고사 학생들의 성적 순위표와 통계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데.”
제가 말하는 도중, 니콜라스가 급하게 저를 불렀습니다.
“알겠어요, 니콜라스. 그럼 회계 자료에 대해서는 나중에…….”
“어, 어어!”
니콜라스 왕자가 맡긴 일 처리를 하기 위해 잠시 읽고 있던 회계 보고서를 옆에 내려놓았는데, 제이스 쪽에서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제이스 님.”
“죄송합니다. 제 실수로 아그네스 누나의 차를 엎질러 버렸습니다.”
“조심해야죠, 제이스.”
그래도 교복에 얼룩이 생긴 사람은 없어서 다행이네요.
“엎지른 차는 제가 정리하겠습니다만……차 때문에회계 보고서가 엉망이 되어버렸네요.”
“에리나 양, 제 실수로 이렇게 되어 정말 죄송하지만, 회계 보고서를 다시 작성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다, 당연하지, 제, 제이스! 난 회계 보고서 자, 작성하는 게 제일 재밌더라!”
“에리자 양, 아그네스 님은 바쁘실 테니 회계 감사가 끝나면 다음 보고서는 제 쪽으로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아리아나 언니.”
역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라 대단하네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해도 다들 당황하지 않고, 체계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저도 열심히 해야겠죠. 그렇게 생각하며 학생들의 순위표를 보며 성적을 정리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무언가 하려고 했던 게 있었던 것 같은데……그게 뭐였죠?
엘렉트라가 엎지를 차를 치우고, 다시 모두가 학생회 업무에 집중했습니다.
오래 앉아서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조금 무료해진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이런 걸 받았거든요.”
며칠 전 제 서랍에 들어있었던, 봉납이 제거된 분홍색 봉투를 꺼냈습니다.
“편지에 발신인이 안 적혀있길래, 꺼내서 내용물을 읽어봤는데요. 오늘 날짜로 저녁 5시에 교사 뒤편으로 혼자 나와달라고 적혀 있…….”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니콜라스가 제 손에서 편지를 가져갔습니다.
“어떤 새……어느 분이 보낸 건지 안 적혀있다고?”
“그래요. 그래서 답변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장소로 나가야 할 것 같아서…….”
“나가지 마십시오, 영애님.”
파노스 왕자가, 제 발언을 막았습니다.
“어……그럼 어떡하죠? 제가 나가지 않으면 이분은 언제까지고 기다리고 계신 거 아닌가요?”
“이 편지는 결투장입니다.”
파노스 왕자가,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가설을 내세웠습니다.
“겨, 결투장이요?”
결투장이라니……그래도 최근에는 학생회 사람들 말고는 사교를 맺은 적이 없는데요.
……그러고 보니 조금 이상하네요. 작년까지만 해도 다른 가문의 자제분들과 대화를 하거나 친목을 나눴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뭔가 가벼운 인사도 나눈 적이 없는 것 같기도…….
“결투장이라고요? 하지만 전 최근에 여기 계신 분들 말고는 대화는커녕 인사조차 나눈 적이…….”
그렇다는 것은……설마……?
“설마……!”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저희 중에 범인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무, 물론 알고 있죠.”
순간적으로 상상한 이론을 내뱉기 전, 파노스 왕자가 일축했습니다.
“어쨌든, 이 장소에는 제가 대신 나가겠습니다. 확실하게 담판을 지어 놓을 테니, 아그네스 영애님은 마음 놓고 계셔도 됩니다.”
“저, 정말 그래도 괜찮겠어요? 파노스 왕자에게 너무 위험한 일을 시키는 게 아닐까요?”
“영애님을 위해서 기꺼이 나서겠습니다. 그리고 제 검술 실력은 아시지 않습니까.”
“그, 그럼 죄송하지만 부탁드릴게요, 고마워요, 파노스 왕자…….”
하마터면 위험한 장소에 나갈뻔한 걸, 파노스 왕자가 나서서 도와주셨네요.
“주인님에게 온 편지는 제게 주십시오. 혹시 상대가 나타나지 않으면 필적 감정을 통해서 알아내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지문도 채취해 놓겠습니다.”
엘렉트라와 제이스도, 각각 제가 겪은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주었습니다.
“엘렉트라도, 제이스도 고마워요……. 적극적으로 도와줘서…….”
“아그네스, 앞으로도 이런 종류의 편지를 받으면 제일 먼저 우리에게 상담해라. 알아서 정리해줄 테니까.”
“제1 왕자가 그렇게 말해주니 안심이 되네요.”
다들 이렇게까지 저를 위해서 움직여 주는 것을 보면, 그래도 이 세계에서의 인연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아으으~~!!”
오늘의 제 업무가 얼추 마무리된 후, 제자리에서 기지개를 켰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주인님.”
엘렉트라가 격려하며 제가 다 마신 찻잔을 정리했습니다.
아리아나는 아직 업무가 덜 끝난 것 같으니, 조금 기다렸다가 같이 돌아가도록 할까요.
다른 사람들도 아직 업무가 조금씩 남은 것 같네요. 저 대신 약속 장소에 나가주신 파노스 왕자만 자리를 비운 상태고, 여느 사람들은 자기 자리에서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문득, 서기인 파노스 왕자는 어떤 업무를 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회의록을 정리하는 것이 서기의 주된 업무겠지만, 최근에는 딱히 회의를 한 건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파노스 왕자는 어째선지 엄청 바쁘게 뭔가를 처리하고 계신 것 같고……자리에 없는 사이 살짝만 보도록 할까요.
다른 사람들이 업무에 집중하는 사이 몰래 자리에서 일어나, 파노스 왕자의 서기 자리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정리된 서류 뭉치의 가장 위의 장을 들어서 읽어보았습니다.
……응? 이건 대체 무슨 서류죠?
“마리안느 아나스타샤, 주의. 이사벨라 메르쿠리, 안전. 레오나르도 바르도, 위험…….”
영문을 모르는 서류를 읽고 있는 중, 갑자기 아리아나가 제 손에서 들고 있던 서류를 낚아챘습니다.
“아, 아그네스 님? 혹시 업무는 다 끝나셨나요?”
“네에……. 오늘 할 분량은 끝나서 잠시 도와드릴 게 없나 둘러보는 중이었어요.”
“아, 그러셨군요, 아하하…….”
아리아나가 왠지 어색한데요.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서류, 지금 필요한 거였나요? 제가 마무리하는 거 도와드릴게요.”
“아, 괜찮아요! 저도 방금 막 업무가 끝나서, 제가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거든요!”
아리아나가 그렇게 말해서, 남아 있는 서류라도 정리해주려고 했는데,
“아리아나 영애, 지금 파노스가 처리하던 업무가 당장 필요해서 그런데 건네주지 않겠나?거기 있는 것 전부.”
“여기요, 니콜라스 왕자!”
……마저 읽어보고 싶었는데, 니콜라스 왕자가 나머지 서류까지 전부 가져가 버렸네요.
“어떤 서류였어요? 언뜻 보니 2학년 학생분들 성함이 적혀있었던 것 같은데요. 안전은 뭐고 위험은 뭐…….”
“아, 아그네스 언니! 저, 이 정산표에 계산이 안 맞아서 그러는데 잠깐만 봐주세요!”
“제, 제가 검토해도 잘 모르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서류에 내용에 관해서 물어보고 있었는데, 에리나와 에리자 쪽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네, 지금 한가하니까 도와드릴게요.”
에리나와 에리자가 잘 모르겠다고 한 부분을 확인하니, 간단한 계산의 단위를 잘못 적었던 것이었습니다. 똑똑한 두 사람답지는 않은 실수였네요.
얼마 후, 파노스 왕자가 돌아오고, 오늘의 업무는 모두 끝났습니다.
……뭔가 잊어버린 게 있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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