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영애는 왕자님을 양보하겠습니다-65화 (65/86)

〈 65화 〉 직무를 정했습니다

* * *

2학년이 되고 4월 중순의 어느 날.

모든 수업이 끝나고, 평소처럼 아리아나와 엘렉트라와 함께 교실을 나섰습니다.

다만, 평소처럼 기숙사로 귀가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과 함께 새로운 장소로 향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학생회 활동이네요, 아리아나, 엘렉트라.”

파노스 왕자의 제안으로 시작된, 학생회 활동이 시작되기 때문이죠.

“네, 아그네스 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주인님.”

그러고 보면 ~사랑과 운명, 아스토리아~에도 학생회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구성원이 분명, 니콜라스와 파노스 왕자와 아리아나와……아.

여기까지 와서,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습니다.

원작에서의 학생회에는, 아그네스가 없다는 사실을요.

시, 실수했어요! 원래 원작 게임에서의 학생회는 엘렉트라가 공략 대상들과 만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기회의 장소잖아요!

그래서 공략 대상들과 엘렉트라, 그리고 주요 라이벌들이 소속된 것이 학생회라는 사실을 깜빡했습니다.

원작에서의 아그네스도 학생회에 들어가려고 하기는 했지만, 성적도 좋지 않고 대외적 평가도 별로였기에 니콜라스가 잘랐으니까요.

여기에서의 저는 성적도 나쁘지 않고 여러 가지 우연이 겹쳐 대외적 평가도 좋아졌으니, 학생회에 들어갈 자격이 충분해져 버렸고요.

그저 평일 오후에 남는 시간이 주체가 되지 않아서 한다고 한 거였는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어요…….

게다가 원작에서는 에리나도 학교에 다니지 않잖아요. 정확히는 에리자와 몰래 교대해서 일주일씩 다니기는 하지만, 어쨌든 두 사람이 같이 학생회에 들어왔다는 것은, 저와 에리나가 들어간 2자리만큼 원래 학생회에 들어가야 하는 인물이 빠져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원작 게임에서의 직책은 분명,

회장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

부회장 파노스 알렉산드로스

부회장2 엘렉트라 멜리나

총무 제이스 앙겔로풀로스

회계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

회계감사 에리자 솔론

서무와 서기에 들어갈 인물이 사라졌잖아요!

그러니까……네 번째 공략 대상이었던 분이 서기였고, 그 공략 대상의 약혼자인 라이벌 영애가 서무였었죠.

어쨌든 그 두 사람이 학생회에 들어오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하지만 이미 저와 에리나가 포함된 학생회는 조직되어 버렸고, 생각해 보니 그 두 사람과는 이 세계에서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어서 친분도 없는데…….

“아그네스 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걱정되시는 일이 있으시면 제가 보좌하겠습니다, 주인님.”

…….

…….

…….

아리아나와 엘렉트라의 말을 듣고, 정신이 들었습니다.

맞아요! 생각해 보니 니콜라스는 아리아나 혹은 엘렉트라에게 떠넘길 거니까, 오히려 다른 공략 대상이 있으면 방해가 될 수도 있겠네요.

인제 와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서 엘렉트라의 시선이 분산되면 귀찮아지니까요.

그리고 중요한 건 니콜라스, 아리아나, 엘렉트라가 같이 학생회에 있다는 사실이니까요. 나머지 구성원은 크게 문젯거리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기를 바라야겠죠.

두 사람과 학생회실의 문을 여니, 다른 학생회의 위원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습니다.

“오셨습니까, 아그네스 누나.”

“와 있었군요, 제이스.”

제이스가 먼저 저를 알아보고 반겨 주었습니다.

“아그네스 언니다!”

“학교에서 뵈는 건 입학식 이후로 처음이네요, 아그네스 언니.”

“에리나랑 에리자도 오랜만에 교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귀여워요.”

“헤헤헤…….”

“감사합니다, 아그네스 언니.”

에리나와 에리자도 역시 여자아이라서, 귀엽다는 칭찬을 좋아하네요.

“이쪽으로 와서 앉아, 아그네스.”

“고마워요, 니콜라스.”

니콜라스가 제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옆자리의 의자를 열어주었습니다.

참고로 니콜라스와는 작년 니콜라스의 탄생일 이후로 서로 존칭을 부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약혼자 사이였는데도 꽤 오랫동안 존칭을 사용하긴 했으니까요.

몇 년 뒤 파기할 약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약혼자 관계인 동안에는 어색하지 않게 보이는 편이 좋겠죠.

“잠깐, 형님. 뭘 자연스럽게 아그네스 영애님을 옆자리에 앉히시는 겁니까?”

제가 니콜라스 쪽으로 다가가자, 파노스 왕자가 태클을 걸었습니다.

“내 약혼자를 내 옆에 앉히겠다는데, 무슨 참견이냐.”

“당연히 참견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이곳은 학생회실입니다. 약혼자 이전에 각자의 직무가 있는 곳이고, 직무가 가까운 사람끼리 앉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파노스 왕자의 말도 맞는 말이네요. 어, 그런데 잠깐…….

“그러고 보니 저희 직무, 안 정하지 않았나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안건은, 직무 배분에 관한 안건입니다.”

파노스 왕자가 칠판에 학생회의 8개의 직무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아스토리아 왕립학교를 표방한 만큼, 학생회의 직무도 이 8가지로 하겠습니다.”

회장

부회장1

부회장2

서기

총무

서무

회계

회계감사

“그리고, 직무에 따른 좌석은 이렇습니다.”

부회장1 회장 부회장2

총무 □ □ □ 서기

서무 회계 회계감사

“우선, 희망하시는 직책이 있으신 분이 있습니까?”

엘렉트라가, 가장 먼저 손을 들었습니다.

“저는 항상 시종 업무를 해왔으니, 서무 업무를 하겠습니다.”

확실히 시종과 가장 관련된 직무는 서무이기는 하죠. 엘렉트라다운 직책입니다.

……원작에서는 부회장 자리였던 것 같은데요. 괜찮은 거겠죠?

“그럼 이견이 없으면 서무는 엘렉트라 양으로 결정하겠습니다.”

서무 – 엘렉트라 멜리나

“그다음은, 혹시 계십니까?”

…….

…….

…….

뭐죠? 이 조용한 분위기는?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다른 분들의 눈빛이 맹렬하게 오가고 있는데요.

“……안 계시면, 차례대로 선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회장은 누가 하시겠습니까?”

“회장으로는 아그네스 언니를 추천합니다!”

갑자기 에리나가 일어나서 제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 저요? 갑자기 왜 저를…….”

“아그네스 언니는 가장 아름답고 존경스러운 분이니까 학교 대표의 얼굴로 적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에, 에리나가 낯부끄러운 칭찬을…….

‘잠시만요, 에리나! 이 학생회의 목적을 잊은 거예요?’

‘아리아나 언니? 목적이라니 무슨…….’

‘……에리나. 이 학생회는 아그네스 언니의 매력에 반해 다가오는 사람을 막기 위한 조직이잖아요. 아그네스 언니를 간판으로 내세워서 홍보하면 어떡하자는 거에요.’

‘아, 그, 그랬었지!’

아리아나와 에리자가 발언한 에리나에게 무언가를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에리나에겐 미안하지만, 저는 회장은 부담스러우니 거절할게요.”

학생 대표라니, 그런 직책을 어떻게 맡겠느냐고요.

게다가 섣부르게 학생 대표를 했다가, 왕립학교 졸업식에서 니콜라스에게 파혼당하면 두고두고 전설로 남을 게 뻔하잖아요.

그런 전설이 되는 건, 개인적으로 사양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부회장정도의 직책이면 좋겠네요…….”

적당한 직책도 있으면서, 책임도 크지 않고, 할 일도 많지 않으니까요.

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 명의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회장을 해야 하겠군.”

“제가 학생회장을 맡겠습니다.”

“회장은 제가 하겠어요!”

니콜라스, 파노스 왕자, 아리아나였습니다.

1학년들은 규칙상 학생회장을 할 수 없으니, 이미 서무를 맡기로 한 엘렉트라를 제외하고 다른 전원이 입후보한 셈이네요.

“농담하지 마라, 파노스, 그리고 아리아나 영애. 제1 왕자인 내가 학생회장을 하는데 방해한다는 것은, 국가전복죄에 해당한다.”

“왕도 아니고 왕자면서 무슨 국가전복죄에요! 학생회장은 당연히 능력에 따라서 선발해야죠!”

“알렉산드로스 왕국은 절대왕정이다. 민주주의 국가를 원하면 스타렌스로 가는 게 어때, 아리아나 영애? 스타렌스 영주권도 있으니까.”

“지금 뭐라고 했어요?”

“그리고, 능력에 의한 선발도 당연히 내가 우위다. 전교 5등의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 영애.”

“……재수 없는 나르시시스트 왕자가.”

“형님의 말이 맞습니다. 알렉산드로스 왕국은 절대왕정이니, 최고 권력자가 학생회장을 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네가 무슨 속셈으로 나를 옹호하는 거지, 파노스?”

“전 그저 형님의 의견에 동의했을 뿐입니다. 다만, 왕국을 설립한 사람이 왕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학교를 설립한 사람이 학생회장이 되는 것이 이치에 맞겠다 싶어서요.”

“이 자식…….”

어째선지 세 사람은, 무언가 싸우기 직전 같은 분위기로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학생회에서는, 니콜라스가 학생회장이셨죠.

일단 학생회 인원 선발을 전부 니콜라스가 하기도 했고……게임의 메인 공략 대상이니 가장 중역을 맡았으니까요.

그러니 여기에서도 니콜라스가 학생회장을……그런데 생각해 보면 여기에서 학생회 임원을 소집한 건 파노스 왕자니까 파노스 왕자가 학생회장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조금 혼란스럽네요.무엇이 정답일지…….

“아그네스, 네 의견은 어때?”

“영애님의 의견도 묻고 싶습니다.”

“아그네스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네, 저, 저요?”

예상치 못한 제 의견 수집에 당황하며 대답했습니다.

“제 생각에는……니콜라스가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되네요.”

“역시.”

“어째서입니까, 영애님.”

“왜 저 재수없……니콜라스 왕자가 회장인가요!”

파노스 왕자와 아리아나가 제 대답에 불만을 느끼고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니콜라스 왕자가, 세 사람 중 가장 시간이 많으니까요. 학생회장이 되면 학교의 여러 주요 일정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학교 주최의 각종 행사에서도 많은 업무를 담당해야 하잖아요.

파노스 왕자는 국내의 주요 사교계 일정은 거의 참석하시느라 바쁘고, 아리아나도 일 년에 국경을 수십 번씩 넘어 다니면서 바쁜 일상을 보내니까요. 상대적으로 시간이 가장 많은 니콜라스가 하는 편이 맞겠죠.”

사실 최대한 원작의 스토리와 비슷하게 끌어가고 싶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까요. 이미 엘렉트라가 서무인 이상 많이 뒤틀어진 것 같긴 하지만요.

“그런 이유라면……어쩔 수 없군요.”

“히잉……알겠어요.”

두 사람 다 되게 실망한 것 같네요.

하긴, 학생회장이 로망이 있는 자리이기는 하니까요. 한 번쯤 권력의 정점에 서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파노스 왕자가 새롭게 정해진 직무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회장 –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

부회장2 –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잠시만요, 파노스 님.”

칠판에 저와 니콜라스의 이름이 적히는 것을 지켜보던 엘렉트라가, 파노스 왕자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왜 주인님께서, ‘부회장2’ 입니까?”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엘렉트라 양?”

“중요합니다. 주인님께서 부회장을 하시겠다는 의사 표현을 먼저 하셨으니, 당연히 부회장1이 주인님의 자리가 되는 것이 맞습니다.”

“직무는 차이가 없습니다. 부회장1도 부회장2도. 그저,자리만 바뀔 뿐입니다.”

“…….”

엘렉트라는 파노스 왕자를 노려보다가, 갑자기 니콜라스 쪽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

“……?”

“…….”

“……!”

뭐죠? 왠지 순식간에 니콜라스와 엘렉트라 사이에서 엄청나게 많은 눈빛이 오고 간 느낌이…….

“아그네스는, 부회장1 자리에 앉히겠다.”

니콜라스가, 갑자기 제 위치를 바꿨습니다.

“약혼자가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야, 능률이 오를 것 같거든. 학생회의 주축인 학생회장의 효율에 관련된 문제니까 거절하지는 않겠지?”

파노스 왕자는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짓다가,

부회장2 ­

적혀 있던 제 이름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직책을 적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부회장1 –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총무 – 파노스 알렉산드로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멋대로 무슨 짓입니까.”

“총무 자리만큼은 안 돼요!”

“빨리 지워주세요.”

파노스 왕자가 총무에 자신의 이름을 적으시자마자, 아직 직무가 정해지지 않은 다른 네 사람이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어차피 직무라는 건 학생회장을 제외하고는 다 거기서 거기인데……왜 저렇게들 경쟁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 뒤로도 몇 번의 설전이 오가고, 최종적으로는 이렇게 정해졌습니다.

학생회장 –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

부회장1 –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부회장2 –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

서기 – 파노스 알렉산드로스

총무 – 제이스 앙겔로풀로스

서무 – 엘렉트라 멜리나

회계 – 에리나 솔론

회계감사 – 에리자 솔론

직무 하나 정하는 데도 이 정도로 소란스러운데, 이 학생회가 앞으로 잘 굴러갈지 모르겠네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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