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학생회 회의 0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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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토리아 기초학교의 빈 교실, 누군가에 의해 접근할 수 없게 막힌 그 교실에서 일곱 명의 학생이 앉아 있었다.
남자가 셋, 여자가 넷.
상급생이 넷, 하급생이 셋.
“다들 모여 주셨군요.”
일곱 명의 학생 중 가장 키가 큰 남학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작정이냐, 파노스.”
키가 큰 남학생과 마찬가지로,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남학생이 물었다.
“또 무슨 꿍꿍이에요?”
하늘색 머리카락과 사파이어 빛 눈을 가진 영애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꿍꿍이라니요, 누가 들으면 제가 항상 이상한 계획만 세우는 것처럼 알겠습니다.”
“실제로, 그러시지 않습니까.”
파란 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 발언했다.
“아그네스 누나를 갑자기 안고, 아그네스 누나에게 처치 곤란한 선물을 주고, 이런 학교까지 만들어서 아그네스 누나를 만날 구실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파란 머리의 소년은 키가 큰 남학생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 구성원이라면, 아그네스 언니의 일인가요?”
연두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아이가, 조심스럽게 주제를 예측했다.
“잘 아시네요, 에리자 영애님.”
“진짜 아그네스 언니 일이에요?!”
키가 큰 남자의 말에 별로 집중하지 않고 있었던 자주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아이가, 아그네스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주인님에 관한 이야기를 주인님이 없는 곳에서 하시겠다는 건가요? 그런 자리라면 저는 빠지겠습니다.”
아그네스의 시종인 검은 머리를 가진 여학생이, 불쾌함을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가시겠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아마 들어 두시는 게 무조건 좋으실 겁니다.”
키가 큰 남학생의 자신만만한 말과 눈빛을 보고 결심을 거두었다.
“이 자리는, 저희끼리 힘을 합쳐서 아그네스 영애님을 지키기 위해 만든 모임입니다.”
키가 큰 남학생이, 마침내 회의의 주제를 꺼냈다.
“아그네스의 신변에 위협을 끼칠 만한 녀석을 발견했으면, 네 선에서 처리했어야지.”
“무슨 말씀이세요? 아그네스 님을 시기하는 사람이 대체 어딨다는 거예요. 오히려 사랑받으면 사랑받으셨겠죠.”
“맞아요! 아그네스 언니한테 누가 위협을 끼친다는 거예요! 아그네스 언니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어요!”
“바로 그겁니다.”
키가 큰 남학생이, 저마다 내뱉기 시작한 한마디를 끊고 말했다.
“위협에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에서 지키는 것입니다.”
“네?”
“주인님을…….”
“사랑에서 지킨다는 말입니까.”
“네, 사랑에서 지켜야 합니다.”
키가 큰 남학생의 말에, 모두의 머리맡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리고 오직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남학생만이 키가 큰 남학생의 말을 이해했다.
“이 이상으로 라이벌이 늘어나는 것을 막자고?”
“맞습니다, 형님.”
‘라이벌’이라는 단어에, 교실 내의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아그네스와 만나온 기간, 횟수, 관계의 차이는 있지만, 여기 있는 일곱 명의 사람의 공통점은 명백했다.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라는 한 여자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라는 것.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또 사람을 유혹해버린 아그네스 영애님의 매력. 그 매력에 추가로 걸려 들만한 사람은, 저희 선에서 최대한 협력하여 막자는 이야기입니다.”
“경쟁자의 수를……늘리지 않는다…….”
하늘색 머리의 영애는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도 몇 명 쳐내고 싶다만.”
“뭐라고요, 니콜라스 왕자?!”
“말씀이 심하시네요.”
“동의하는 의견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죠.”
키가 큰 남학생의 말에,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남학생은 벌레를 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로서도, 그런 짓을 시도했다가 아그네스 영애님을 화나게 해서 자진 탈락해주시는 것은 바라 마지않는 이야기이기는 합니다. 작년에 흙바닥에서 서로를 죽일 듯이 싸우시던 어딘가의 영애분들처럼요.”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진 영애와 흑발의 여학생이 동시에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여기 계신 여러분은 전부 최소한의 생각을 하실 줄 아는 분들이시니까, 그런 식으로 자진 탈락은 하지 않으시겠죠?
어차피 한동안은 같은 길을 걸어가게 될 운명이니, 저희끼리 칼을 겨누다가 아그네스 영애님을 화나게 하는 것보다도, 임시 협력으로 최소한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것만이라도 막자는 이야기입니다.”
파란 머리의 소년은 키가 큰 남학생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다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 구성원끼리로는 어떻게 서로 연락하고 협력이 되겠습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이렇다 할 공통점도 없고, 학년도 다르지 않습니까.”
“이렇게 제각각인 사람이 모이는 것도 힘들겠죠.”
“공통점이라면 있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 우수하다는 것이겠죠.”
2학년 성적 1위이자, 완전무결한 제1 왕자.
국내 국외로 넓은 인맥을 쌓고 많은 지지를 받는, 아스토리아 기초학교의 창립자인 제2 왕자.
4개 나라에 귀족 지위를 얻고, 일 년에도 수십 번씩 국경을 넘으며 무역을 주도하는 세이타리디스 가문의 외동딸.
획기적인 물약을 4년 사이 3가지나 발명한, 1학년 성적 1위의 천재 발명가.
1학년 성적 공동 2위이자, 물약의 제조 과정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만든 솔론 가문의 두 영애.
2학년 성적 2위이면서, 주어지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결하는 아그네스의 최측근 시종까지.
모두,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정도의 화려한 면면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어쩌다 보니 아그네스 영애님께서는, 우수한 사람들만 수집하셨으니까요. 원래부터 우수한 사람을 수집한 건지, 아그네스 영애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서 우수해지기 위해 노력한 건지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그런 공통점으로 뭘 하는데요!”
“학생회를 만들 겁니다.”
“……학생회요?”
학생회.
학생이 주체가 되어 학교의 정책이나 일정을 의논하고 결정하는 조직.
“신입생이 들어오면서 학년도 2개가 되었고, 슬슬 학생회를 창설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시기겠지요. 여기 계신 분들은 마침, 충분히 학생회에 들어오실 수 있을 정도로 우수한 사람들만 모여 있으니까요.”
“그렇군…….”
“만약 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으시겠다면, 이 회의실에서 나가셔도 됩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미 아그네스 영애님에게 학생회의 창립 멤버로 합류하겠다는 확답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파노스 왕자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내뱉었다.
“전 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손을 든 것은, 제이스였다.
가족이라고는 허나, 학년도 다르고 성별도 달라서 기숙사도 가깝지 않은 제이스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학교에서 아그네스 누나와의 접점을 늘릴 수 있는 수단이었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저도 할거에요!”
“……저도, 하겠어요.”
마찬가지로 아그네스와 학년이 다른 에리나와 에리자도, 찬성 의사를 내뱉었다.
“저도 주인님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주인님이 학생회에 창립 구성원으로 참가하시겠다는 의견을 내비치셨으니, 시종인 저는 당연히 따라가는 옵션입니다.”
엘렉트라는 지극히 아그네스의 시종다운 모습을 보였다.
“저도 아그네스 님의 추종자이니, 아그네스 님의 행보를 따라가겠어요.”
아리아나까지 동의 의사를 내비치고,
“나도,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니콜라스 왕자까지 참가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내 사랑스러운 약혼자를, 홀몸으로 짐승 소굴에 던져 놓을 수는 없으니까.”
“네? 학생회요?”
“그렇습니다, 아그네스 영애님.”
파노스 왕자는 평소에 있는 승마부 활동 중, 경기가 끝난 직후의 사담 시간에 아그네스에게 학생회 발족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학년도 2개가 되어서 학생 수도 늘었고, 아스토리아 왕립학교의 기초교육을 맡는 시설이니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 생각이니까요.”
아그네스는 잠시 고민했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승낙했다.
“좋아요, 재미있을 것 같네요.”
아그네스가 승낙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스토리아 기초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니콜라스 왕자와의 다과회나 아리아나와의 회의 등의 일정이 사라져서 여유로워졌기 때문이었다.
전생에서도 수능 직전까지 저녁이 없는 삶을 보냈고, 현생에서도 밀려드는 온갖 빠질 수 없는 일정 때문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던 아그네스는, 입학 이후 오히려 비어버린 오후 시간의 일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흥미로운 책을 닥치는 대로 읽거나, 뜨개질로 온갖 잡다한 것들을 만들어도 지루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새로운 일정을 만들어 주겠다는 파노스 왕자의 제안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또 하나는, 아그네스가 학생회에 가지고 있는 동경이었다.
그녀는 전생에도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공부만 하느라, 학생회는커녕 부나 동아리 활동조차 제대로 참여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다른 세계라고는 하지만, 모든 부 활동의 최고 정점이라고도 볼 수 있는 학생회 활동에 참여한다는 것은, 아그네스에게는 작은 소망이었다.
그렇기에, 파노스 왕자의 제안에 응했다.
“협력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애님.”
그 공간이, 자신을 감시하기 위한 비밀 조직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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