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월급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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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 시작된 이후로, 저는 매일매일 엘렉트라를 제 옆에 두며, 온갖 다양하고 귀찮은 방법으로 괴롭혔습니다.
예를 들면 외부 손님이 방문하는 어느 날은,
“엘렉트라, 오늘은 니콜라스 왕자가 방문하는 날이니, 응접실에 차와 다과를 준비해 놓으세요. 차는 열흘 전 제가 휴식시간에 먹었던 차로, 다과는 얼마 전 에리나와 에리자에 대접했던 것으로요.”
“알겠습니다, 아그네스 님. 말씀대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혹은 손님이 오지 않아 제가 여가를 보내는 날에도,
“엘렉트라, 오늘 오후에는 승마 연습을 할 테니까, 제 기수복을 꺼내서 다리고 헬렌을 빗질한 뒤에 안장을 설치해 놓으세요. 끝나면 헬렌에게 각설탕을 먹이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준비해 놓겠습니다, 아그네스 님. 여느 때처럼 평행횡목도 설치해 놓겠습니다.”
심지어는 잠들기 직전 목욕을 할 때도,
“엘렉트라, 오늘 목욕 시중은 세신을 부탁드릴게요. 어떻게 하는지는 저번에 마리한테 배워서 알죠? 세신 후 피부가 상하지 않게 욕탕에는 레몬으로 만든 입욕제를 풀어 놓으시고요.”
“……네, 아그네스 님. ……감사합니다, 아그네스 님.”
여름방학의 2개월 내내 하루도 쉴 시간 없이 엘렉트라를 적극적으로 부려먹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대단한 의지력이네요, 엘렉트라도. 역시 원작의 주인공답습니다.
일부러 기본적인 요구 사항에 추가로 한 가지씩을 덧붙이고 있는데도, 완벽하게 해낼뿐더러 전혀 싫어하는 기색조차 내비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런 표정 뒤에도 속으로는 알음알음 저에 대한 울분을 쌓아가고 있으시겠죠?
원작에서의 아그네스조차 엘렉트라를 방학 기간에까지 괴롭힌다는 발상은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리고 원래 아그네스의 괴롭힘은 생각보다 그렇게 강도가 높지는 않습니다.
엘렉트라의 교과서를 이리저리 찢어 놓는다거나, 교복에 상한 우유를 붓고 쓰레기통에 버린다거나, 칠판에 ‘엘렉트라의 가문은 거지 시골 자작’이라면서 모욕한다는 식이죠.
그런 괴롭힘은 그 순간은 상처를 받을 수야 있겠지만, 사실 그런 단순한 장난 같은 괴롭힘의 해결 방법은 생각보다 쉬우니까요.
찢어진 교과서는 새로 사면 되고, 오염된 교복은 세탁하면 되고, 칠판의 낙서는 지우면 됩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런 단순한 방식으로 괴롭히는 대신, 다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귀족의 자존심이 상하는 요소는 뭐니 뭐니 해도 당연히 교양과 집안을 지적하는 것이겠죠! 그렇기에 시골 귀족의 수준 낮은 교양, 가난한 집안 출신, 그리고 때때로는 모자란 기본 상식까지 지적하며 엘렉트라의 자존심을 긁는 아주 스마트한 괴롭힘만 해왔습니다.
이런 괴롭힘은 앞서 말한 단순한 괴롭힘과는 다르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정신력을 갉아먹기 때문에 더욱 마음의 상처가 쓰라리겠죠.
게다가 학교에서 뿐만이 아닌 저희 집안에까지 끌고 와서 괴롭혔으니 효과는 두 배, 아니, 정신력을 회복할 시간조차 주지 않을 테니 그 이상이겠죠! 솔직히, 무서울 정도로 저 자신의 업보가 두려워질 정도입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사악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엘렉트라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것은 다 제 ‘단죄 엔딩’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엘렉트라에게서 ‘괴롭힘 증언’을 뱉어내게 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하다가, 여름방학이 끝나기 일주일 전에 엘렉트라를 제 방으로 불렀습니다. 엘렉트라는 시종 차림도 제법 익숙해진 듯,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제 앞에 서 있는 상태입니다.
“엘렉트라.”
“네, 아그네스 님.”
엘렉트라에게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상자를 보여주었습니다.
“월급이에요, 받으세요.”
상자 안에는, 엘렉트라에게 줄 금화가 들어있습니다.
“네? 하지만 아직 9월까지는 일주일이나 남았는데요.”
엘렉트라가 조금 이르게 나온 자신의 수당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것 같네요.
“휴가에요. 당신, 1학기가 끝나자마자 저희 집안에서 일하느라 한 번도 집에 돌아간 적이 없었잖아요? 편지로 소식을 전한다고 해도, 가족의 처지에서는 얼굴을 봐야 안심이 되지 않겠어요?”
엘렉트라의 아버지인 오레른 멜리나 자작도, 벌써 반년 가까이 못 본 딸의 얼굴을 보고 싶으시겠죠. 오레른 자작이 영지를 부활시킬 수 있도록 버틴 이유는, 딸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도 크니까요. 주기적으로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면, 오레른 자작이 의지를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아그네스 님…….”
“당신 가문 영지까지 가는 마차는 수배해 뒀으니, 점심을 마치고 바로 출발하도록 하세요. 특별히 오늘 하루는 시종 엘렉트라가 아닌, 자작 영애 엘렉트라로 식사하는 것을 허용할 테니까요.”
“정말 그래도 되나요, 아그네스 님?”
“딱히 당신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저 반년 동안 시골 냄새나는 테이블 매너에서 얼마나 발전했는지 보고 싶을 뿐이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아그네스 님!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요!”
“알아들었으면 상 위에 놓인 당신 월급이나 가지고 가서, 빨리 드레스로 환복하고 식당으로 내려오세요.”
“네!”
그렇게 말한 엘렉트라가 상자를 들고 나가려는 순간,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그네스 님?”
“무슨 일이죠?”
“저……상자의 내용물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어째선지 지난달의 월급에 비해 배 이상 무겁게 느껴지고 있어요.”
“한 번 내용물을 열고 확인해 보지 그래요?”
엘렉트라가 상자를 열고 나니, 안에는 수백 개의 금화가 빼곡히 들어있었습니다.
“여, 역시 맞잖아요! 너무 많아요! 이렇게 많은 돈을 월급으로 받을 수는 없습니다!”
확실히 순순히 받아주지는 않는군요……뭐, 여기까지는 예상한 범주입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제가 단순히 보너스라도 주고 싶어서 당신의 월급 배 이상을 넣어드린 줄 아세요?”
“그, 그렇겠죠? 하지만 그럼 이 내용물은…….”
“당신의 다음 학기 등록금을 같이 담은 거예요.”
“그렇군요……네, 네?!”
엘렉트라는 이번에도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 아그네스 님이 제 학비를요?! 그러지 말아 주세요! 저에겐 아그네스 님께서 이렇게까지 해주실 정도의 가치가…….”
“하아……. 몇 번이고 일일이 놀라면서 제 말을 끊지 마세요, 엘렉트라.”
“죄,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해도 당연히 받지 않으려고 할 것도 예상했기에, 그에 맞는 적당한 핑계도 준비해 두었습니다.
“제가 공짜로 당신에게 그렇게 큰돈을 그냥 줄 정도로 선인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한참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건 아스토리아 기초학교에 있는 동안 당신의 사용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요.”
“제, 제 사용료요?”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에, 엘렉트라가 되물었습니다.
“학교 안에는 제 시종을 데리고 들어갈 수 없으니,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더라고요. 기숙사로 돌아오면 마리가 있긴 하지만, 학교 안에서는 여간 부자연스러운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같은 학생인 당신을 시종으로 고용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선생님들이나 관리자분들도 주의하라고 경고할 수 없겠죠. 알아들으셨나요?”
엘렉트라에게 자연스럽게 학비를 주면서, 덤으로 학교에서까지 괴롭힐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핑곗거리를 만들다니, 제가 생각해도 완벽한 작전이네요.
“혹여나 여름방학이 끝난 후 시종을 그만두겠다거나 하는 말을 하실 작정이라면, 어림도 없을 줄 아세요! 한 번 제 시종이 된 이상 당신은 평생 저를 모셔야 할 운명이니까요!”
제 말을 들은 엘렉트라가, 손에 든 월급 상자를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앞으로 몸을 숙이는 모습을 보니, 제발 철회해 달라고 빌어보실 작정이신가요? 그런 행동을 한다고 해도 저는 절대로 명령을 거둘 생각이…….
“평생에 걸쳐 아그네스 님을 모시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네?! ……아아, 당연히 그러셔야죠.”
예상했던 반응과는 조금 다르지만, 계획대로 잘 흘러간 것 같긴 하니까 괜찮겠죠……?
“그럼, 일주일 후에 봐요, 엘렉트라.”
“네, 신세 많이 졌습니다!”
엘렉트라가 멜리나 영지로 돌아가기 전, 모두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엘렉트라 덕에 우리도 많이 도움이 됐구나.”
“엘렉트라 양, 학교에서도 저희 아그네스를 잘 부탁해요.”
“안녕히 가십시오, 엘렉트라 영애님.”
“네! 감사합니다!”
여름방학 동안 엘렉트라를 괴롭히는 데 성공한 건지, 아니면 별 효과를 못 본 건지……이 반응으로는 잘 모르겠네요.
뭐, 일단 시종 일을 계속 시킴으로써 괴롭힐 기회를 만들었다는 데 의의를 둬야겠죠.
“아, 아그네스 님. 혹시 귀 좀 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엘렉트라가 마차에 타기 전 한 말을 듣고, 엘렉트라에게 다가갔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떠나기 전 엘렉트라는, 제 귀에 작지만 확실한 발음으로 속삭였습니다.
“평생 모시게 해주신다는 말, 취소하시면 안 돼요?”
……?
뭐죠, 갑자기 한기가…….
“다음에 뵐게요,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갑작스러운 한기에 굳어버린 저는, 멍하니 서서 마차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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