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시종 엘렉트라를 소개했습니다
* * *
“아그네스 영애.”
“네, 니콜라스 왕자.”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처음 돌아오는 첫 번째 요일, 니콜라스 왕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지금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저는 독심술사가 아니니, 당연히 니콜라스 왕자의 생각을 읽을 수 없습니다.
“수수께끼인가요? 힌트는 없나요?”
“굳이 힌트가 필요하다는 아그네스 영애의 천연덕스러움에는 정말 놀라울 정도이지만…….”
니콜라스 왕자가 잠시 고민을 하시네요.
“힌트라고 하면, 아그네스 영애의 뒤에 서 있는 분과 연관이 있습니다.”
“제 뒤에 서 있는 분이요?”
그렇다면 제 시종인 마리, 아, 아니죠. 지금은 엘렉트라였죠. 엘렉트라와 관련해서 니콜라스 왕자가 할 만한 생각이라면…….
“니콜라스 왕자도 이 쿠키가 맛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엘렉트라가 직접 만든 거예요!”
“그런 게 아닙니다!”
깜짝이야……. 니콜라스 왕자는 왜 화가 나신 거죠?
“놀랐잖아요.”
“……죄송합니다. 요즘 조금 불안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저 니콜라스 왕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뭐죠?
“아그네스 영애, 저번에 드린 제안을 다시 생각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저번에 했던 제안이라면…….”
“네, 왕궁에서 생활하시면서 예비 왕비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지 않으시겠냐는 제안 말입니다.”
왕궁에 불러서 24시간 감시역을 붙이겠다던 그 이야기였나요. 제정신이라면 그런 제안에 응할 리가 없잖아요. 왕궁에 들어갔다가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요.
“안 되는 걸 아시잖아요. 제이스의 연구도 돕고 있고, 물약 판매 때문에 매주 회의도 있으니까요.”
동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제 단죄 엔딩을 회피하기 위한 핑곗거리로 사용하겠습니다.
“고집은 그만 부리시죠, 니콜라스 왕자님.”
제 뒤에서 가만히 서 있었던 엘렉트라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그네스 님은 우아하고 자유로운 나비와도 같은 분입니다. 나비를 병 속에 담아서 키우면 며칠만 지나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것을 니콜라스 왕자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엘렉트라, 당신이 참견할 일이 아닙니다.”
“아니요. 아그네스 님은 지금 제 주인님이시니, 주인님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제 의무입니다.”
“어쩌면 하나같이 이런 귀찮은 사람들만…….”
니콜라스 왕자가 머리를 감싸 쥐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렇게까지 저를 단죄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라니……믿음직한 엘렉트라가 아니었으면 조금 위기일 수도 있었겠네요.
“그보다도, 아그네스 영애는 어떻게 저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엘렉트라 영애를 시종으로 삼을 수 있습니까.”
“제가 제 아래 사용인을 늘릴 때마다 일일이 니콜라스 왕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나요?”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시종은 아그네스 영애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 아닙니까? 무턱대고 고용했다가 오히려 아그네스 영애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어떡하려고 하십니까.”
“그 말은, 엘렉트라가 제 신변의 영향을 끼칠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아무리 니콜라스 왕자래도, 이 발언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네요.
“엘렉트라가 가난한 자작 출신이라고 무시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엘렉트라의 신변을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니콜라스 왕자는 다시 한숨을 쉰 뒤,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시종인 잭은, 일곱 살부터 왕가의 사용인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대대로 왕가를 모신 켈리스 가문의 장자이니, 자작이기도 합니다. 이런 능력도 신변도 완벽한 잭을, 아그네스 영애라면 시종으로 삼을 수 있으시겠습니까?”
“당연히 안 되죠.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잭은 남성이잖아요. 제 시종이면 저를 아침에 깨우고, 옷도 갈아입히고, 목욕 시중도 들어야 하는데 남성에게 어떻게 시킬 수 있겠어요.”
“바로 그겁니다!”
“네, 네?”
니콜라스 왕자가 갑자기 다 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니콜라스 왕자, 그 말씀은…….”
저는 제 뒤에 서 있는 엘렉트라를 올려보았습니다. 엘렉트라가 시선을 피하는 것 같네요. 엘렉트라도 뭔가 저에게 숨기는 게 있었던 건가요?
지금까지 제가 알지 못했던 사실에, 니콜라스 왕자가 염려하는 사실이라는 것이라는 건, 설마…….
“니콜라스 왕자, 설마 엘렉트라는…….”
조심스럽게, 하나의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남성이셨나요?”
“절대 아니에요!”
“……하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헷갈리게 말하지 말라고요…….
“뭐에요, 아그네스 님!”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첫 번째 돌아오는 두 번째 요일, 아리아나가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네? 무슨 일이 있나요, 아리아나?”
“왜, 엘렉트라 양이 여기 있냐고요!”
제가 시종으로 고용한 엘렉트라를 보고 놀란 것 같습니다.
“여름방학의 2개월 동안 제 시종으로 고용했어요.”
“어, 어째서요! 왜 제가 아닌 거예요!”
제가 아니라니……무슨 말이죠?
“설마, 아리아나도 엘렉트라를 시종으로 고용하고 싶었던 거에요?”
“그거 말고요!”
설마 아리아나도 엘렉트라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나 싶었는데, 안타깝게 예상은 빗나간 것 같네요.
“시종이 필요하시면, 저를 시종으로 삼으시면 되잖아요! 왜 저는 아그네스 님의 장난감으로도, 시종으로도 삼아주시지 않는 거예요!”
아리아나의 심리는……정말, 정말 이해하기 어렵네요. 벌써 4년 가까이 만나 왔는데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요. 대체 후작 가문의 외동딸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시종을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아리아나의 집안은 부유하니까 이런 부수적인 일을 할 필요도 없잖아요.”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에요! 오히려 돈을 내고서라도 하고 싶다고요!”
“자꾸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질투가 강한 친구라서,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것은 조금 피곤하네요.
“아그네스 님! 지금부터라도 좋으니까 저를 시종으로 삼아주세요! 청소도 세탁도 요리도 다 할게요! 방이 없다면 아그네스 님의 발치에서 자도 괜찮으니까…….”
“그만하시죠, 아리아나 님.”
아리아나의 고집을 한참을 듣고 있던 엘렉트라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그네스 님의 시종은 저 한 명으로 충분합니다. 기존의 아그네스 님의 시종인 마리 선배께서도 제 일 처리가 훌륭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그네스 님은 적재적소에 맞게 사람을 등용하신 것이니, 억지를 부리지 말아 주십시오.”
“뭐, 뭐에요, 엘렉트라 양! 지금 말 다 했어요! 아그네스 님을 등에 업고 지금 제게 한소리를 하신 건가요!”
“제가 드린 말씀에 틀린 것이 있다면, 생떼를 부리시는 대신 논리적으로 천천히 말씀해 주시죠?”
“이이익, 엘렉트라!”
……잠깐, 이 분위기는 설마…….
“아리아나, 엘렉트라.”
“아그네스 님?”
“네, 아그네스 님.”
“지금 두 사람, 혹시 싸워요?”
“……그럴 리가요, 아그네스 님! 엘렉트라 양, 좋은 임시 일자리를 구해서 한동안 거지 자작 영지에 돌아가지 않으셔도 되어서 좋으시겠어요!”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리아나 님.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시간을 내지 못하시는 아리아나 님과는 다르게, 시간이 여유로워서 아그네스 님을 가장 가까이서 뵐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다행히 싸우는 것은 아닌가 보네요.
“아그네스 언니? 왜 평소 언니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아그네스 언니의 시종이에요?”
“아그네스 언니, 마리 씨는 오늘 바쁘셔서 임시로 다른 사용인이 동행하신 건가요?”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첫 번째 돌아오는 여섯 번째 요일, 에리나와 에리자가 물었습니다.
“두 사람에게는 소개가 처음이죠? 엘렉트라 멜리나에요. 아스토리아 기초학교에서 사귄 제 친구인데, 여름방학 동안만 앙겔로풀로스에서 제 시종을 하기로 하셨어요.”
“처음 뵙겠습니다, 에리나 솔론 님, 에리자 솔론 님. 아그네스 님의 시종을 맡게 된 엘렉트라 멜리나입니다. 편하게 엘렉트라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네?!””
에리나와 에리자가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 저나 에리자를 시종으로 삼겠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거절하셨으면서!”
“아그네스 언니, 저희가 부족한 점이 있으면 고칠 테니 말씀해 주세요.”
“부, 부족하다니, 당치도 않아요.”
에리나와 에리자도, 엘렉트라가 제 시종이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 같네요.
“두 사람에게는, 제가 두 사람밖에 할 수 없는 일을 맡긴 거잖아요. 그리고 직원이 아무리 많이 생겼다고는 해도, 두 사람의 손이 가야만 하는 공정도 있어서 제 시종을 할 시간적 여유도 없지 않아요?”
“그, 그래도! 그래도!”
“하지만, 엘렉트라라는 분은…….”
여전히 두 사람 다 알아주지 못하고 있네요.
“엘렉트라가 두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저 언니는 아그네스 언니를 볼 때, 마리 언니가 아그네스 언니를 보는 눈이 아니라, 아리아나 언니가 아그네스 언니를 보는 눈으로 보잖아요!”
“저런 위험한 사람을 아그네스 언니의 시종으로 삼는 것은, 조금 걱정스러워요.”
보는 눈이라……저는 엘렉트라가 저를 보는 눈이 딱히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요……. 아리아나와 같은 눈으로 본다는 것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가 힘드네요. 애초에 에리나도 에리자도 모두 같은 눈으로 저를 보지 않으시나요?
“에리나, 에리자. 앞에 놓인 쿠키와 차를 드셔보시겠어요?”
“네?”
“쿠키와……차요?”
에리나와 에리자는 조금 의문을 가지면서도, 제 말대로 쿠키와 차를 먹어 주었습니다.
“와! 이 과자 맛있어요!”
“이 차도, 굉장히 여러 가지가 어우러진 깊은 맛이 나네요.”
“그것들은 사실, 여기 있는 엘렉트라가 만든 거예요.”
“두 분의 입맛에 맞으셨다니, 감복하였습니다.”
“아앗!”
“…….”
“이제 제가 왜 엘렉트라를 제 시종으로 고용했는지, 아시겠죠?”
““…….””
엘렉트라의 다과를 맛본 두 사람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과, 과자 정도 잘 만드신다고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물약을 만드는 기술은 저희가 훨씬 압도하고 있으니까요.”
어째선지 두 사람은 엘렉트라에게 적의를 불태우며 경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는 사이가 좋아지면 좋겠네요.
그리고, 여름방학 중의 어느 휴일.
별다른 일정이 없는 오후를 보내기 위해, 서고에서 읽을 만한 책을 찾던 도중 마리를 만났습니다.
“아, 마리.”
“평안하십니까, 아그네스 님.”
엘렉트라 덕에 휴가를 얻은 마리는, 요즘 부쩍 학구열이 불탄 것인지 서재에서 마주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공부하는 거예요? 열심히 하시네요.”
“아그네스 님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중입니다.”
제게 도움이 되는 공부라길래, 교양이나 언어에 관한 책을 읽는 줄 알았는데. 마리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은 수학에 관련된 서적이었습니다.
“수학이에요? 어려운 책을 읽으시네요.”
“네, 요즘에는 기하학에 관해 배우고 있습니다.”
기하학이라……예술적인 요소로도 활용되니까 교양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하필 그 여러 가지 지식 중 기하학을 고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기하학은 어디에 사용하시려고요?”
“정칠각형을 작도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정칠각형이요?”
굉장히 어렵고 마이너한 작도를…….
“정칠각형은, 갑자기 왜요?”
“정칠각형을 작도할 수 있으면, 도형을 정확히 일곱 등분 할 수 있으니까요.”
일곱 등분……?
“그거, 필요한 지식이에요?”
“저도 사용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쨌든, 마리의 공부도 혼인도 잘 풀렸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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