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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영애는 왕자님을 양보하겠습니다-57화 (57/86)

〈 57화 〉 절교했습니다

* * *

운동장의 한 가운데에서, 두 명의 여성이 검을 들고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한 명은 하늘색의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 사파이어 빛 눈동자를 가진 여성이고, 한 명은 검은색 단발머리와 흑진주 빛 눈동자를 가진 여성입니다.

네. 당연하지만 방금 손을 들었던 두 사람인, 아리아나와 엘렉트라 영애입니다.

분명 제가 사이좋게 지내달라고 얘기했는데, 왜 자꾸 이런 상황이 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이 대련은 체육 교사인 오디세우스 선생님의 입회하에 치러지는 데다가, 살상력이 없는 훈련용 검을 사용하는 안전한 대련이라고는 하지만, 두 사람의 눈빛을 보면 이미 사적인 감정이 한가득한 대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너무 격해지지만 않으면 좋겠네요. 대체 두 사람이 무엇 때문에 싸우는 건지 감도 안 잡히고…….

원작 게임에서 아리아나와 엘렉트라 영애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협력 관계도 있고, 한 명의 공략 대상을 두고 경쟁하는 대립 관계도 있습니다.우선, 협력 관계는 주인공이 파노스 왕자를 공략하는 방향일 때입니다.

원작에서는 자신의 약혼자인 파노스 왕자를 아리아나가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뭐, 지금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요. 아무튼, 원작에서의 아리아나는 파노스 왕자랑 파혼하기 위해, 엘렉트라 영애에게 협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파노스 왕자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뭔지, 파노스 왕자가 검술 수련을 하는 장소가 어디인지, 파노스 왕자의 생일 선물로 무엇을 주면 좋은지 등의 조언을 끊임없이 해줍니다. 주인공은 아리아나의 조언대로만 하면, 거의 무조건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파노스 왕자의 공략에 성공합니다.

반대로, 대립하는 관계는 니콜라스 왕자 루트를 탈 때입니다. 아리아나는 니콜라스 왕자를 좋아하니까, 엘렉트라 영애도 아그네스와 마찬가지로 걸림돌이 되니까요. 그래서 니콜라스 왕자를 공략하려고 하면, 간간히 함정에 빠뜨리거나 계획을 망치고는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아그네스까지 강력한 라이벌이 두 명이나 있으니, 니콜라스 왕자 루트가 가장 어려워진 이유가 되기도 하겠네요.

잠깐, 근데 오늘 니콜라스 왕자와 파노스 왕자의 경기 결과대로라면, 엘렉트라는 파노스 왕자 루트를 탄 게 아니었나요? 그런데 아리아나와 대치한다는 것은……설마 니콜라스 왕자 루트도 같이 타고 있는 건가요?

그만둬요, 엘렉트라 영애! ~아스토리아~에는 역하렘 엔딩이 없다고요! 애초에 상식적으로 제1 왕자와 제2 왕자를 동시에 유혹해버리면, 그 끝은 파멸밖에 없잖아요! 아무리 무지성으로 유혹해버렸다지만, 정도가 심하다고요!

“자세 잡아!”

걱정하는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엘렉트라 영애와 아리아나는 검을 쥐고 서로를 노려보았습니다.

“시작!”

오디세우스 선생님의 구령이 울리자마자, 대치하고 있던 두 사람이 너나 할 것 없이 동시에 서로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 품새는 남성분들의 경기에 비해 매우 어설펐지만…….

‘휘잉!’

‘탁!’

‘휙!’

‘타닥!’

한 번 한 번씩 부딪치는 검격의 긴장감만큼은, 그 어느 경기보다도 치열했습니다.

일단, 시중이 없는 멜리나 가문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고, 논에서 밀을 수확하거나 농장의 동물들을 돌보는 등의 일을 몇 년이나 해온 엘렉트라 영애는, 아리아나보다 체력이 강합니다. 그 힘의 차이는, 아리아나가 두 손으로 내려친 일격을, 한 손에 든 검으로 맞부딪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반대로 아리아나는 움직임이 빠르고 매끄럽습니다. 아마 세이타리디스 가문 특성상 무도회를 포함한 온갖 모임에 참석했을 것이고, 전 세계 곳곳의 다양한 춤을 섭렵한 결과겠지요. 엘렉트라 영애가 휘두르는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빈틈을 노려 공격하는 모습은, 마치 검무를 추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아그네스 영애.”

제 옆에서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니콜라스 왕자가 말했습니다.

“네, 니콜라스 왕자. 무슨 일이신가요?”

“왜 아그네스 영애에게 들러붙은 사람은, 하나같이 저런 사람들뿐입니까? 설마 일부러 선별하시는 겁니까?”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

제가 엘렉트라 영애에게 스토리 진행에 필요해서 일부러 접촉한 것은 있지만, 마치 니콜라스 왕자의 말은 제가 몇 번이나 그런 짓을 해왔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아름다운 꽃에 벌레가 많이 달려드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어느새 저희 옆으로 다가온 파노스 왕자가 말했습니다.

“너도 마찬가지다, 파노스.”

“설마, 형님 본인은 벌레가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닥쳐라, 파노스.”

여기는 여기대로 살벌한 형제간의 기 싸움이…….

두 왕자의 살기에 눌리기 전에 애써 관심을 끄고, 엘렉트라 영애와 아리아나의 전투로 다시 시선을 옮겼습니다.

두 사람의 검격은 벌써 2분 가까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검을 잡는 모습은 남성분들보다 엉성해도, 의지는 어지간한 분들보다는 훨씬 치열한 것 같네요.

“그만! 거기까지!”

오디세우스 선생님께서 과열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두 사람의 대련을 멈췄습니다. 하지만,

“이야아아아앗!”

“하야아아아아!”

두 사람은 전혀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네요. 흙바닥에 넘어지고, 앞머리에 눈을 찔려가면서까지 검을 놓지 않고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공방전을 펼쳤습니다.

“그만해! 두 사람 다!”

우렁찬 오디세우스 선생님의 호령에도 엘렉트라 영애와 아리아나는 전혀 듣는 척도 않고, 계속해서 공방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로부터 10번 정도의 검합이 더 이어진 후,

‘타차차차착!’

아주 강한 마찰음과 함께, 두 사람 다 손에서 검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무승부! 거기까지!”

그래도 두 사람 다 크게 다치지 않고 끝나서 다행이네요. 일단 여기저기서 구르고 다쳤을 테니 두 사람 다 치료를…….

“야아아아아아!”

“이이이이이익!”

검이 있고 말고는 신경을 쓰지도 않고, 갑자기 두 사람 다 주먹과 발차기를 사용한 난투극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멈춰! 두 사람 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멈추라고!”

저도 더는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기에, 서둘러 두 사람을 말리러 나갔습니다.

“아리아나, 엘렉트라 영애. 이제 그만해주세요.”

제가 하는 말이 들리지 않는 건지, 서로 머리카락과 옷자락까지 잡고 늘어지면서, 흙먼지가 날리는 바닥을 뒹굴었습니다.

“그, 그만하시라고요! 지금 두 사람을 몇 명이 보고 있는지 아세요?!”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바닥을 구르는 모습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보여주면 어쩌자는 거에요! 심지어 니콜라스 왕자랑 파노스 왕자도 보고 있는데! 하지만 제가 아무리 계속해서 말려 봤지만, 두 사람의 싸움은 전혀 멈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젠 못 참겠네요. 정말로.

“그만하라고 했잖아요!!!!”

…….

…….

…….

제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자, 운동장 전체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아, 아그네스 님?”

“아그네스 님, 언제 여기까지…….”

“아리나아도! 엘렉트라 영애도! 대체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두 사람 다! 선생님께서 두 사람한테 멈추라고 몇 번이나 말씀했는지 아세요?! 심지어 검까지 놓고 지금 이게 무슨 꼴이냐고요!”

“아, 아니에요, 아그네스 님.”

“저희는 그저 대련을…….”

“이게 어딜 봐서 대련이에요! 아무리 봐도 대련을 핑계 삼아 평소에 쌓인 감정을 서로에게 분출하고 있을 뿐이잖아요! 대체 누가 대련을 할 때 멱살을 잡고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냐고요!”

“아그네스 님…….”

“화, 화나셨어요……아그네스 님?”

“대체 왜 그렇게 두 사람은 매번 매번 싸우기만 하냐고요! 제가 사이좋게 지내 달라고 몇 번을 말씀드렸는지 아세요! 이제 제가 하는 말은 아무래도 좋다는 거예요?!”

“아, 아니에요, 아그네스 님. 그렇게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아그네스 님, 그런 생각으로 한 게 아니라…….”

“아아악! 이제 저도 몰라요! 두 사람이 어떻게 되든 이제 저는 신경 안 쓸 거니까, 맘대로 알아서 살던가 하세요! 절교에요!”

체육 수업이 끝나고, 두 사람은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 때문에 반성문을 쓰러 불려 나갔습니다.

마침 오늘은 다섯 번째 요일이고, 체육 수업이 마지막 시간이기에, 두 사람이 반성문을 쓰고 돌아오기 전 일주일의 모든 일과가 끝났습니다.

“니콜라스 왕자, 파노스 왕자, 다음 주에 봬요.”

“아그네스 영애, 오늘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신 것 같으니, 푹 쉬고 감정을 가라앉히십시오.”

“저도 영애님께서 오늘은 쉬시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 이건 재스민 향초인데, 마음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으니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니콜라스 왕자, 파노스 왕자. 신경을 쓰게 해드렸네요.”

그리고……평소대로라면 엘렉트라 영애나 아리아나 영애에게 다른 일이 생기더라도, 마지막까지 기다렸다가 인사를 하고 앙겔로풀로스로 돌아갔겠지만,

“출발하죠, 마리.”

“평소처럼 아리아나 님과 엘렉트라 님과의 작별 인사는 안 하십니까?”

“몰라요, 그런 사람.”

“……알겠습니다. 출발하시죠.”

그렇게 저는 마차를 타고, 마리에 어깨에 기대 지친 몸을 뉘었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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