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모두 입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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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이었겠죠. 파노스 왕자에게는.
일 년이나 본인의 발로 동쪽과 서쪽을 가리지 않고 오가며, 아슬아슬하게 늦지 않는 시기에 아스토리아 기초학교를 개교하였다 해도,
아리아나가 입학하지 않으면, 거기서 끝. 도박 실패. 본인은 기초학교에 다니는 것이 확정되어 있으므로, 이전에도 바빴던 파노스 왕자가 기초학교라는 빠질 수 없는 일정까지 생겨버리는 순간, 삼 년의 공백까지 생기고 그것은 곧 연애 시장의 탈락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그 입학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아리아나가 아닌, 저를 이용한 것에 대해서는 박수를 쳐 드리고 싶네요. 아이러니하게도, 친분이 없는 후작 영애보다는, 친분이 있는 공작 영애를 설득하는 것이 더 쉬웠을 테니까요. 쉽다고는 해도, 30번 문제를 푸느냐, 29번 문제를 푸느냐 정도의 차이였겠지만요.
결국, 운에 기댄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파노스 왕자 일생일대의 작전은, 보란 듯이 성공하고 제게서 입학원서를 받아가는 것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일은 제가 입학원서를 넣었다는 사실을, 니콜라스 왕자와 아리아나에 알리는 것.
가만히 두어도 파노스 왕자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제가 도움을 드리는 편이 조금 더 수월하시겠죠. 기초학교에 입학하기로 정한 순간부터, 이미 파노스 왕자의 작전에 어울려드리기로 마음먹었으니까요.
독을 먹는다면, 그릇까지 핥아 먹어드리겠어요.
파노스 왕자에게 직접 아스토리아 기초학교의 입학원서를 제출한 다음 날. 니콜라스 왕자와 매주 만나는 첫 번째 요일의 사교 모임에서, 기초학교에 대한 운을 띄웠습니다.
“니콜라스 왕자께서는, 아스토리아 왕립학교의 예비 교육 시설인, 아스토리아 기초학교에 입학하시나요?”
“푸으읍!”
1초 전까지도 여유로운 표정으로 국화차의 맛과 향을 동시에 느끼고 계셨던 니콜라스 왕자는, 입안에 든 한 모금을 미처 다 넘기지 못하고 내뱉었습니다.
……제 드레스에도 몇 방울이 튀었네요.
“지저분하게 뭐하시는 거예요.”
제가 가진 손수건으로 드레스에 튄 액체 방울을 닦았습니다. 다행히 노란색과 검은색이 섞인 드레스였기에, 얼룩이 져도 티가 나지는 않겠네요.
“죄, 죄송합, 콜록, 켈룩!”
“니콜라스 님, 괜찮으십니까?”
잭이 서둘러서 손수건으로 니콜라스 왕자의 얼굴을 닦고, 다른 손으로는 엉망이 된 테이블을 정리했습니다.
방금의 반응을 보니, 니콜라스 왕자는 아스토리아 기초학교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한 것일까요? 아니, 배다른 형제라고는 하지만, 동생이 저지른 일인데 모르실 리가 없죠.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건, 아스토리아 기초학교에 대한 정보를 제게 숨기고 계셨다, 가 맞겠죠. 이쪽이 더 신빙성이 있는 것 같네요.
“어, 어떻게 아스토리아 기초학교에 대한 소식을 아셨습니까?”
“그 말씀을 들으니, 일부러 얘기하지 않으셨던 게 맞는 것 같네요.”
파노스 왕자의 일생일대의 노력의 결실인데, 조금 투덕거리는 형제라고는 해도 니콜라스 왕자의 도량이라면 충분히 도와줄 법도 했을 것 같은데요.
“어제 파노스 왕자에게 직접 들었어요. 그건 그렇고, 왜 비밀로 하셨어요?”
생각해보면, 아스토리아 기초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니콜라스 왕자에게도 실보다는 득이 크니까요.
지금은 어찌어찌 약혼자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위치에 있는 아리아나를 가끔은 마주치는 기회가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아리아나와 만날 기회가 적은 것은 니콜라스 왕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에 저에게 기초학교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고, 들어가라고 설득을……아, 아니죠. 니콜라스 왕자가 입학해버리면 오히려 저는 당연히 따라서 들어가냐 하는 옵션이죠. 니콜라스 왕자와 저까지 입학한 이상, 아리아나도 당연히 입학하게 될 거고요.
그렇게 되면 니콜라스 왕자 또한 아리아나와의 접점이 많아집니다. 니콜라스 왕자와 파노스 왕자 두 사람 다 접점이 많아진다면, 당연히 원래 호감도가 높은 니콜라스 왕자가 유리하겠죠.
게다가 파노스 왕자는 최근 1년간 굉장히 바빴으니까, 출발 지점도 이미 많이 밀린 상황이고요. 아무리 봐도 파노스 왕자가 만들어 놓은 성과에 무단으로 입성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요.
“싫어서 그랬습니다.”
“무엇이 싫다는 말씀이신가요?”
“당신이, 제 약혼자가, 아그네스 영애가, 파노스와 정당하게 만날 수 있는 구실이 생기는 게 싫어서 그랬습니다.”
제가 파노스 왕자와 자주 만나는 게 싫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하시는 걸까요. 니콜라스 왕자의 관심은 아리아나에 가 있는 것이 아니었나요?
애초에 저를 약혼자로 삼은 이유도 실제로 저에게 반해서가 아닌, 처음 만난 날의 굴욕에 앙심을 품고 했던 약혼이잖아요? 오히려 제가 파노스 왕자와 만나는 것을 약점으로 삼아, 저를 파멸시킬만한 굴욕을 선사할 수도 있을 테고요.
……여기까지 생각하니까 갑자기 무서워지는데요. 정말로 이대로 기초학교에 입학해도 되는 거 맞겠죠?
어쨌든 그런 것까지도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니콜라스 왕자가 걱정하는 무언가가 분명 있다는 이야기겠죠.
제가 파노스 왕자를 정당하게 만날 구실이 생기는 게 싫다는 것은, 제가 파노스 왕자를 만난 것이 싫다는 이야기고. 제가 파노스 왕자를 만나는 것이 싫다는 것은, 제가 파노스 왕자와 친해지는 것이 싫다는 이야기고. 제가 파노스 왕자와 친해지는 것이 싫다는 것은……. 아. 그런 것이었군요.
수수께끼가, 잘 갈아졌어요.
니콜라스 왕자가 제가 파노스 왕자와 친해지는 것을 싫어할 만한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죠. 이 쉬운 것을 지금까지 오해하고 있었다니…….
“걱정하지 마세요, 니콜라스 왕자. 저는 니콜라스 왕자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을 테니까요.”
“……정말 그렇습니까?”
제가 파노스 왕자와 친해지면, 아리아나와의 관계를 방해하고 파노스 왕자와 이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죠.
물론 저에게도 아리아나에게도 있어서도 니콜라스 X 아리아나만큼 최고의 엔딩은 없으니, 저는 그렇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니콜라스 왕자에게 거짓말한 적이 있었나요?”
일부러 미움받을 만한 말만 골라서 하거나, 진실을 전부 전하지 않고 일부만 말하거나, 먼저 일을 저질러놓고 사후 통보를 한 적은 있었지만……그래도 거짓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어차피 안 통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니콜라스 왕자는 예리하고 감이 좋은 인물이니까요.
그래서 아슬아슬하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선에서 니콜라스 왕자 떠넘기기 작전을 실행하는 겁니다. 만약 한 번이라도 거짓말을 했다가 그것을 들켰을 경우, 니콜라스 왕자가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에게 갖고 있던 실낱같은 신뢰도 모두 사라져 버릴 것 같으니까요. 그렇게 되면 노말모드에서 헬모드로 직행이라고요.
게임에서라면 어느 정도 떨어진 신뢰도는 제이스가 판매하는 ‘믿음의 선약’으로 해결되는 문제지만, 아직 이 시점에서는 개발되지 않았으니까요.
“아그네스 영애는 믿지만……아그네스 영애 주변의 날벌레들은 아그네스 영애를 믿는다고 해결되지는 않으니까요.”
날벌레? 여름철이라 벌레가 신경 쓰이시는 건가요?
“아무튼, 어제 파노스 왕자에게 이야기를 듣고, 저는 기초학교에 입학원서를 제출했어요. 니콜라스 왕자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취소할 순 없는 겁니까.”
“파노스 왕자가 열심히 발품을 뛰며 만든 노력의 결실이잖아요. 제가 도와드리지 않으면 누가 돕겠어요?”
“……알겠습니다. 저도 조만간 입학원서를 제출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니콜라스 왕자의 눈에는, 약간의 분노가 서려 있었습니다. ……이렇게 흘러가도 되는 거, 맞겠죠?
“절대 안 돼요!”
“꺄악! 노, 놀랐잖아요, 아리아나.”
제가 아리아나에게 기초학교에 입학을 결정했다고 말하는 순간, 돌아온 대답에 그만 놀라버렸네요.
“이미 입학원서를 드렸는걸요? 그리고 니콜라스 왕자도 입학한다고 하셨어요.”
“어, 어째서…….”
아리아나가 마시멜로를 빼앗긴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니콜라스 왕자가 입학했다는 말을 들으면, 아리아나도 접점이 많아질 테니 당연히 좋아할 것으로 생각했는데요.
“왜 싫어하는 거예요. 아리아나?”
“그, 그치만! 입학하게 되면 파노스 왕자가 아그네스 님에게 시시때때로 다가올 거 아니에요! 안 그래도 한두 달에 한 번씩 만날 때마다 온갖 기행으로 아그네스 님을 곤란하게 하는데, 매일 만난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고요!”
“설마요. 파노스 왕자는 저한테는 관심 없을걸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인류의 절반은 이미 아그네스 님의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고요!”
아리아나도 과장해서 말하는 게 심해졌네요. 파노스 왕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걸까요.
이유를 들어 보니 아리아나가 싫어하는 것도 납득이 가네요. 입학하게 되면 본인과 니콜라스 왕자와의 접점도 많아지지만, 파노스 왕자와의 접점도 많아지는 게 싫은 것이겠죠.
연애 시장에서는, 5와 10의 차이보다 0과 1의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지니까요.
“어, 어쨌든! 빨리 취소해주세요! 아니면 제가 직접 왕궁에 침입해서 아그네스 님의 입학원서를…….”
“저는 아리아나도 당연히 입학해줄 줄 알고, 이런 것도 가져왔는데…….”
아리아나에게 아스토리아 기초학교 기숙사 신청에 관한 서류를 보여주었습니다.
“이게 뭔가요?”
“원래 기숙사는 1인 1실이 원칙이지만, 동성이면서 희망자에 한해 2인 2LDK도 가능하다고 들었거든요. 혼자면 쓸쓸하니까, 아리아나에게 같이 쓰지 않겠냐고 물어보려고 했죠. 부엌이랑 욕실을 공유하는 게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아리아나?”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리아나는 엄청난 속도로 2인 기숙사 신청에 관한 서류의 작성을 완료했습니다.
“아스토리아 기초학교에서도 잘 부탁드려요, 아그네스 님!”
“아, 그, 그래요. 아리아나.”
그렇게, 아리아나까지 입학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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