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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영애는 왕자님을 양보하겠습니다-50화 (50/86)

〈 50화 〉 일 년 만에 만났습니다

* * *

파노스 왕자가 제게 약속한 날인, 왕궁 정기 다과회의 날이 왔습니다.

왕궁 정기 다과회라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행사는 아니고, 귀족들의 친교를 위해 마련된 사교의 장 같은 것이네요. 특별한 사전 약속을 한 것이 아니라면, 일반적으로는 ‘불특정의 누군가라도 좋으니 친분을 쌓고 싶다’ 같은 의미가 강한 장소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없고, 그런 식으로 필요 이상의 인연이나 사건이 생겼다가는 원래 ~아스토리아~의 줄거리와 다른 전개가 발생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미 늦은 것 같기도 하지만요.

어쨌든, 파노스 왕자가 정기 다과회를 약속의 시간과 장소로 잡았으니, 오랜만에 직접 발걸음을 옮겨야겠죠.

“아그네스 님, 도착했습니다.”

몇 개월 만에 방문한 왕궁 내에서, 정기 다과회가 열리는 장소 장소인 서브 홀로 이동했습니다. 홀 안에 들어가니, 이미 거대한 사람의 무리가 하나 형성되어 있네요. 정확히는 대부분이 여성 분인 것 같기는 하지만요. 저 정도 인기라면 혹시, 니콜라스 왕자도 참여한 것일까요?

그런 생각을 하며 그곳을 지켜보니, 무리의 중심에서 살짝 튀어나온 눈과 마주쳤습니다. 중심에 있는 인물은 파노스 왕자였네요.

파노스 왕자는 사교계 활동이 왕성하기로 유명하니까요. 원래 인기가 많았던 니콜라스 왕자는 일주일의 절반의 시간을 저와 만나는 데 사용하시느라 상대적으로 파노스 왕자와 비교하면 사교 활동은 적어지셨고, 그 때문인지 인지도도 파노스 왕자보다 조금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습니다.

파노스 왕자는 파노스 왕자대로, 원래대로라면 니콜라스 왕자가 참여했을 법한 사교계 행사에 대신 파노스 왕자가 얼굴을 비추면서, 약혼자도 없는 파노스 왕자에게 니콜라스 왕자의 인기가 옮겨갔다는 소문이 저에게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최근 1년도, 제가 참여한 사교 활동에서 마주치지 못했을 뿐이지, 꾸준하게 대외 활동을 지속해서 하느라 바쁘다는 이야기도 편지로 들었고요.

“여러분,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저와 눈이 마주쳤던 파노스 왕자가, 십수 명의 영애들의 무리를 가르고 제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왔습니다.

“오셨습니까, 아그네스 영애님.”

“그간 격조했습니다, 파노스 알렉산드로스 왕자님.”

남자아이는 사흘만 지나도 눈을 크게 뜨고 봐야 한다고 하더니, 일 년 동안 만나지 못한 사이에 파노스 왕자는 키도 상당히 커져서 제가 올려다봐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니콜라스 왕자와 비교해도 약 10cm 정도는 더 클 것 같네요.

“이건 선물입니다, 아그네스 영애님.”

파노스 왕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손에서 붉은 장미꽃 한 송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손에 든 장미를 제 옆 머리에 달아 주시네요. 못 본 사이에 손재주가 더 늘어났습니다. 제 눈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라니…….

“파노스 왕자님! 저에게도 주세요!”

“저도요, 저도요!”

“왜 그분에게만…….”

다른 영애분들의 질투를 산 시선이 느껴지는데요. 파노스 왕자는 저를 곤란하게 만들어 놓고, 여유롭게 여성분들의 무리 주변을 거닐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영애님들. 이미 여러분은 제가 드린 선물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네?”””

파노스 왕자가 다른 영애분들의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난 뒤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영애들이 자신의 머리를 확인하니, 파노스 왕자의 말대로 모든 영애 분이 머리 장식으로 꽃을 꽂고 있었습니다. 파란 머리카락을 가진 영애분은 파란 아네모네 꽃을, 금발의 영애분에게는 노란색 프리지어 꽃을, 은빛 머리의 영애분에게는 은방울꽃을 달아 주는 섬세함까지 보이네요.

잠시 못 뵌 일 년 사이에 기교가 엄청나게 늘었네요. 저도 나름 파노스 왕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는데, 감쪽같은 속임수로 회장 내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손놀림으로 영애분들을 진정시키는 솜씨가 놀라웠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파, 파노스 님…….”

“의심해서 죄송해요, 파노스 님…….”

“언제나 너무 멋있으세요…….”

거의 신흥 종교인가요? 집단 최면이라도 걸린 듯 영애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붉어진 채 눈의 초점을 잃고 주저앉았습니다.

“아그네스 영애님, 이 틈에 나가도록 합시다.”

그 사이 파노스 왕자가 제 손목을 잡고 서브 홀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저렇게 내버려 둬도 되는 건가요?

파노스 왕자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왕궁의 장미 정원이었습니다.

“아그네스 영애님과 이곳에서 만나는 것은, 거의 3년 만이겠네요.”

분명 3년 전 무도회 날, 이곳에서 파노스 왕자를 처음 만났었지요. 그때의 파노스 왕자는 저보다도 키가 작고, 소심하고, 말도 더듬어서 굉장히 안쓰러워 보였었죠. 그때 그 안타까워 보이는 모습을 도와주려고 했던 것이, 지금까지도 인연으로 이어지게 된다니…….

“굳이 이곳으로 데려오신 이유는, 다른 분들의 앞에서는 하지 못할 이야기인가요?”

“그렇기도 하지만, 이곳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파노스 왕자는 장미 정원에 있는 벤치에 손수건을 깔고, 제게 손짓했습니다.

“앉아서 천천히 이야기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아그네스 영애님.”

이야기가 길어질 거라고 암시하였기에, 얌전히 파노스 왕자가 마련해 준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날도 이렇게 밝은 달이 떠오른 날이었지요. 은은한 달빛 아래에 비친 아그네스 영애님의 붉은 머리카락과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이 정원의 어떤 장미보다도 더 아름다운 모습이셨습니다.”

“너무 부끄러운 말씀을 하시는 게 아닌가요?”

기분이 나쁜 칭찬은 아니지만……뭔가, 뭔가 굉장히 답답한 기분이네요.

“아그네스 영애님을 그날 만난 이후로, 제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해도 절대 과장된 표현이 아니겠죠. 그야말로 그 이전까지의 저는 죽고,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났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죠. 아그네스 영애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년 전, 그 작고 소심한 아이가 영애님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제 모습이 될 수 있었을까요?”

“제가 스스로 말하는 것도 부끄럽지만, 제가 아니었다면 파노스 왕자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셨겠죠.”

실제로 그렇지 않기도 하고요. 열 살의 파노스 왕자를 게임에서 본 것은 아니지만, 이미 게임에서의 파노스 왕자와는 분위기 자체가 다릅니다.

여자를 설레게 하는 큰 키와 잔 근육 몸매, 색기 담당에 어울리는 눈빛은 게임에서의 파노스 왕자와 똑같지만, 무뚝뚝한 성격으로 포장된 소심한 성격과 니콜라스 왕자에 대한 열등감, 앞뒤 안 보고 체력 단련에만 의지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모습 등은 전혀 남아 있지 않으니까요.

특히 저 그윽하면서 여유로운 미소는 게임에서의 파노스 왕자라면 절대 짓지 않았겠죠.

“아그네스 영애님, 제가 아그네스 영애님 1회 이용권을 쓰기 전에,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들어보고 결정할게요.”

“우선, 아그네스 영애님은 열네 살이 되셨을 때, 아스토리아 왕립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확실하시죠?”

“그렇죠. 귀족 영애라면 당연히 다녀야 하니까요.”

아스토리아 왕립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했을 때, 명시적인 불이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세계의 귀족 사회에서는, 아스토리아 왕립학교를 졸업하는 것은 최소한의 교양으로 여기고 있으니까요.

특히 공작 영애인 제가 다니지 않으면, 두고두고 사교 활동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되겠죠. 저에서 그치지 않고 앙겔로풀로스 가문의 위상까지 먹칠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아스토리아 왕립학교 입학 이전에, 예비 교육을 받는 교육 시설이 생긴다면, 입학하시겠습니까?”

“예비 교육이요?”

“네. 기간은 3년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3년…….”

아스토리아 왕립학교의 교육 기간은 4년으로, 열네 살부터 열일곱 살까지 다니는 것이 보통입니다. 한국 나이로 치면 18~19세에 졸업하는 것이니, 사실상 고등학교나 마찬가지겠네요. 그렇다면 그 아래로 3년이라면 조금 이른 중학교와 비슷할까요.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 아마 다니지 않을 것 같네요.”

“그렇습니까? 그것은 어떤 이유 때문입니까.”

“우선, 제가 다닌다고 해도 다른 귀족분들이 같이 입학하는 게 아니라면, 사교계의 역할을 하지 못하므로 아스토리아 왕립학교와 비교하면 메리츠가 떨어지겠죠.

그리고 저는 공작 영애니까요. 대부분의 예비 교육은 우수한 교사를 초청하거나, 부모님의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더 효율이 높다고 생각되네요. 그렇다 보니 예비 교육의 질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을 것 같습니다.”

“역시 그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까.”

물론 파노스 왕자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로는, 괜히 그런 학교에 들어갔다가 원작 줄거리가 꼬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이유 중 하나겠네요.

“그렇다면……어쩔 수 없겠네요.”

파노스 왕자는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다가, 결심한 듯 두 장의 종이를 제게 내밀었습니다.

하나는 제가 2년 전 준 아그네스 1회 이용권이고, 다른 하나는……아스토리아 기초학교 입학원서라고 적힌 종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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