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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영애는 왕자님을 양보하겠습니다-48화 (48/86)

〈 48화 〉 아리아나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 * *

저와 파노스 왕자가 출전했던 유소년 부문 경마 경기가 끝난 뒤 선수 대기실,

“으읍~~~~~!!!!”

“가만히 계세요, 아그네스 님.”

헬렌과 함께 넘어졌을 때 생긴, 무릎에 난 상처를 마리가 소독해 주고 있네요. 마리는 능숙하게 깨끗한 물로 흙투성이의 상처 부위를 씻고, 소독약으로 상처가 덧나지 않게 소독한 뒤, 손수건을 묶어서 상처를 덮어주었습니다.

“차기 왕비가 될 공작 영애께서 이렇게 몸을 함부로 굴리시면 어떡합니까.”

“미, 미안해요, 마리이이이이?!”

“가만히 계시라니까요.”

팔꿈치에 난 두 번째 상처까지 마리의 처리가 끝났습니다. 화려한 낙마였는데도 이 정도 상처로 끝나서 다행이네요.

저를 데리고 같이 넘어지고, 그 뒤에도 열심히 달려준 헬렌은 프레타리아의 수의사분들에게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제법 크게 넘어졌으니까요. 이상이 없으면 좋겠네요.

“니콜라스 왕자님에게는 어떻게 둘러대실 생각이신가요.”

“……넘어졌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적어도 프레타리아 경마 경기에 나가서 낙마했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마십시오.”

확실히 프레타리아에서 이 정도의 소란을 일으켰다는 게 니콜라스 왕자의 귀에 들어가면, 저를 보호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왕궁으로 끌려갈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끌려간 그곳은 밧줄이 달린 침대가…….

“상처는 없으십니까, 영애님.”

“괜찮아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파노스 왕자도 시상식을 마친 후, 선수 대기실로 돌아왔습니다.

“3위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영애님. 사실, 낙마하셨을 때 바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알아요. 승부는 승부니까요. 제가 같은 상황이었더라도 끝까지 달렸을 거예요.”

그런 식으로 양보받아서 승부가 어영부영 지나가도, 저는 납득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양, 정말로 멋진 경기였습니다.”

파노스 왕자와 이야기를 하던 중, 낯이 익지 않은 소년이 프레타리아어로 말을 걸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성함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요르고스 디미트리어스 변경백의 자제인, 시에몬 디미트리어스입니다.”

아아, 기억났어요. 선수 소개를 할 때 첫 번째로 이름이 불린 사람이었죠.

“우승 축하드려요, 시에몬 디미트리어스 씨.”

“알아봐 주셔서 영광입니다.”

“아그네스 양, 저와도 인사를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엘리슨 후작 가문의 아자로프라고 합니다.”

“아그네스 양?”

“자, 잠깐만요. 한 사람씩 이야기해주시겠어요?”

갑자기 여러 사람이 동시에 인사하러 와서 정신이 없네요. 왜 지위가 더 높은 파노스 왕자가 아닌 저한테 인사를 하러 오시는 거죠?

“여러분,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영애님은 알렉산드로스 왕국의 제1 왕자인 저희 형님,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의 약혼자입니다. 알렉산드로스 왕국을 감당할 수 있는 분만 친분을 도모해 주시길 바랍니다.”

““““실례했습니다!””””

파노스 왕자가 니콜라스 왕자의 이름을 대자, 프레타리아의 영식 분들이 순식간에 흩어졌습니다.

“고마워요, 파노스 왕자.”

“형님의 이름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네요. 이 이상 귀찮은 상대가 늘어나면 곤란하니까요.”

너무 많은 사람과 한꺼번에 친분을 쌓는 것은 피곤한 일이기는 하죠.

“그런데 왜 성적도 더 좋고 지위도 더 높은 파노스 왕자가 아닌 저하고 다들 친분을 쌓으려고 하시는 걸까요.”

“원래 남자는 자신과 취미가 비슷한 이성에게 끌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애님이 오늘 보여주신 퍼포먼스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마음을 울리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마음을 울리다니, 과장이 심하시네요.”

그리고 그 영광은 제가 아닌 헬렌이 누려야죠. 저는 그저 헬렌이 하자는 대로 따라주고, 헬렌에게 몸을 맡긴 것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파노스 왕자, 제게 부탁할 것이 뭔가요?”

정신이 없어서 하마터면 잊을 뻔했네요.

“반드시 지금 말씀드려야 합니까?”

“그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언제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한 2~3년 정도 후로 예상합니다.”

생각보다 굉장히 느긋한 부탁이었네요. 파노스 왕자가 제게 부탁할 만한 것이라고는, 아마 아리아나와의 관계를 주선해 달라는 부탁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물론 저는 니콜라스 X 아리아나 파이지만, 그래도 연애 시장에서 저렇게까지 후발주자가 되려는 파노스 왕자의 움직임은 잘 이해가 되지 않네요.

“괜찮아요. 그때까지 잘 기억하셔야겠지만요.”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곧바로 마리에게서 헬렌도 이상이 없다는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파노스 왕자의 부탁이 무엇인지는 또 다른 의문으로 남은 채 선수 대기실을 나왔습니다.

경마 경기의 이후로도, 파노스 왕자와 아리아나와 함께 행동하다 보니, 결국 프레타리아의 온갖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부터 알렉산드로스 왕국의 대표로 온 파노스 왕자나, 프레타리아에 백작 지위가 있는 아리아나와는 다르게, 저는 두 사람의 친구일 뿐인데도 프레타리아 귀족들의 식사 만찬이나, 연말 무도회, 마지막의 타종 행사까지 참여하며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습니다.

무도회에서는 어째선지 파노스 왕자와 아리아나 두 사람하고만 계속해서 춘 느낌이 있지만요. 저야 프레타리아의 귀족분과는 면식이 없으니 상관없지만, 두 사람은 먼 프레타리아까지 와서 저하고만 추느라 질리지 않으셨나 모르겠네요.

모든 행사가 끝나고 아리아나의 저택으로 돌아오니, 어느새 새벽 한 시가 되었습니다.

“아그네스 님, 피곤하세요?”

“조금, 피곤하네요. 아리아나도 매년 이 행사를 소화하느라 힘들겠어요.”

알렉산드로스 왕국의 새해맞이 행사와는 차원이 다른 스케줄이네요. 이렇게 빡빡할 줄 알았으면 경마 경기에 참여하지 말 걸 그랬어요. 분명히 내일 아침에도 근육통이…….

“내일도 행사가 있나요?”

“프레타리아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소규모 모임은 몇 가지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종료에요. 아버지만 남으셔서 다른 귀족분들과 친분을 쌓으시고, 저희는 내일 오전에 돌아가기로 했어요.”

듣던 중 다행인 이야기네요. 내일까지도 이런 일정을 소화하라고 하면 도저히 불가능할 테니까요.

“아그네스 님, 정말 감사드려요. 저는 항상 아버지와 함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니, ‘아는 사람’은 많이 생겼지만,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친한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제 탄생일을 아버지 말고는 제대로 축하해 준 사람이 없었어요.”

매년 생일을 연고가 없는 타지에서 맞이한다는 것은, 말하지는 않아도 아리아나에겐 분명 서운한 일이었겠죠. 아무리 본가에서 다른 영애들과 친분을 쌓고 교류한다고 해도, 중요한 행사가 많은 연말에 몇 시간씩 걸려서 외국에 나가 생일을 축하해준다는 것 자체가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니까요.

아마 그런 외로움이 쌓이고 쌓여서, 게임에서의 아리아나가 니콜라스 왕자라는 모두의 관심과 동경을 받는 대상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 걸지도 모르겠네요.

“아리아나. 앞으로도 아리아나의 탄생일에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만큼은 반드시 축하해 드릴게요.”

게임에서의 아리아나 또한, 아그네스와 마찬가지로 어느 엔딩에서도 행복해지지 못하는 캐릭터입니다. 아그네스는 니콜라스 왕자의 스트레스 해소용 장난감이 되거나, 국외 추방. 아리아나는 파노스 왕자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끊거나, 니콜라스 왕자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가 혼기를 놓쳐 배우자 없이 쓸쓸하게 늙어가니까요.

“아리아나를 반드시 행복하게 만들어 드릴게요.”

어떻게든 니콜라스 왕자와 이어주고 행복한 미래를 맞이하게 해주겠어요.

“아그네스 님…….”

그렇게 그날 밤은, 제 품에서 울다가 지친 아리아나와 함께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알렉산드로스 왕국에 돌아가기 위해 별장 밖으로 나왔습니다. 세이타리디스 별장의 앞에는 저희 가문과 세이타리디스 가문의 마차 말고도, 한 대의 마차가 더 서 있었습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아그네스 영애님.”

누군가 했는데 파노스 왕자의 마차인가 보네요.

“파노스 왕자, 언제까지 따라붙을 거예요!”

“따라붙다니요, 알렉산드로스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영애님의 얼굴을 보려고 왔습니다.”

파노스 왕자도 적극적이네요. 아리아나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겠다고 별장 앞에서 기다리다니……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파노스 왕자의 의처증 속성이 눈떠버리겠어요.

“아, 마리. 준비했던 물건을 꺼내 줄래요?”

“여기 있습니다, 아그네스 님.”

마리에게서 포장된 선물을 건네받았습니다.

“아리아나, 탄생일 축하해요. 어제는 너무 바빠서 하루 늦게 줘서 미안하지만요.”

“아, 아그네스 님! 저는 제 탄생일에 축하해주신 것만으로도 괜찮은데…….”

아리아나가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주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제가 내키지 않으니까요.

“열어볼래요?”

아리아나가 포장지에 쌓인 물건을 열어보니, 붉은색 목도리가 나타났습니다.

“제가 직접 뜬 목도리에요. 조금 어설플지도 모르지만…….”

쿠키와는 다르게 목도리는 꾸준하기만 하면 실패할 일이 없으니까요. 원래는 겨울이 오기 전 니콜라스 왕자의 생일 선물로 준비한 물건이었지만…….

저번 쿠키의 반응으로 봤을 때, 니콜라스 왕자에게 제 수제품은 성에 안 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그래서 니콜라스 왕자에게 전해주는 건 포기하고, 대신 겨울이 생일인 아리아나에게 선물로 주기로 했습니다.

“저, 정말인가요?! 지금 사용해봐도 되나요?!”

“얼마든지요.”

“앨리스! 빨리 입혀주세요! 빨리요!”

“기쁘신 마음은 알지만, 그렇게 방방 뛰시면 감아드릴 수가 없어요.”

아리아나가 사용인에게 목도리를 입혀달라고 할 때, 파노스 왕자에게도 종이를 한 장 건넸습니다.

“파노스 왕자도 받으세요.”

“……제 탄생일 선물은 이전에 주시지 않았습니까?”

“누가 탄생일 선물이래요?”

파노스 왕자에게 건넨 종이에는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1회 이용권 (단, 상식적인 선에 한함)’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확실하게 문서화 해 두는 편이 좋겠죠.”

설마 저런 어버이날 선물 같은 것을 또 만들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만약 분실한다고 해도 재발급은 안 해드릴 거니까, 제대로 보관하세요.”

“제 목숨보다도 소중하게 갖고 있겠습니다.”

하여간 파노스 왕자의 표현은 매번 너무 과장이네요.

“아그네스 님! 어때요? 잘 어울리나요?”

아리아나는 어느새 제가 준 목도리를 감고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정말 잘 어울려요, 아리아나.”

“와~! 와~!”

신이 잔뜩 난 아리아나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누구랑은 다르게 선물을 받은 반응이 정말 좋네요.

“……아그네스 영애님.”

“왜 부르셨나요?”

“만약 이 이용권으로, 아리아나 영애가 감고 있는 저 목도리를 뺏어달라고 하면…….”

“그런 짓을 했다가는 평생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라고 말할 뻔했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왕자들은 하나같이 생각하는 게 음습하네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1회 이용권은 훨씬 더 중요한 곳에 사용하겠습니다.”

파노스 왕자가 말하는 의미를 그때는 잘 모른 채,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리아나와 함께 알렉산드로스 행 마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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