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헬렌과 달렸습니다
* * *
“헬렌. 오늘은 힘내주세요.”
“히히힝!”
저희 앙겔로풀로스의 마차를 끄는 말, 헬렌이 힘차게 울었습니다. 헬렌은, 오늘 저와 함께 경마 경기에 출전합니다.
프레타리아의 경마 경기는 개인 말이 없는 사람을 위해서 경기 때만 말을 대여해주는 서비스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호흡을 맞춰 온 헬렌과 함께 달리는 편이 더 좋겠죠.
다만, 아리아나의 별장에 있는 옷들은 말을 타기에는 적합하지가 않은 것들뿐이라, 조금 크기는 커도 어쩔 수 없이 남자아이용 기수복을 빌려서 입을까 생각했는데,
“아그네스 님. 혹시 이런 일이 생길까 싶어서 평소 입으시는 기수복을 가지고 왔습니다.”
유능한 마리가 제 기수복을 가지고 왔었네요.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해서 들고 온 건지, 아니면 원래 준비성이 좋은 건지…….
어쨌든, 마리 덕에 기수복 문제는 그렇게 해결되었습니다. 경가 경기의 시작 전, 헬렌과 함께 천막으로 된 선수 대기실에 들어갔더니, 다시 낯익은 얼굴이 있었습니다.
“파노스 왕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그네스 영애님.”
설마 파노스 왕자도 출전선수일 줄은 몰랐네요.
“영애님의 기수복을 입은 모습도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머리 모양도 바꾸셨군요.”
“평소의 머리 모양은 달리는 데 지장이 있으니까요.”
말을 타고 달리려면 말과 마찬가지로 ‘포니테일’이 되어야겠죠.
“파노스 왕자도 남자다운 옷차림이시네요. 프레타리아의 여성 분들을 전부 반하게 하실 생각인가요?”
파노스 왕자의 옷차림은 활동적인 남성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남성미를 내뱉는 동시에, 원래 잘생긴 얼굴까지 합쳐져서 여덟 살이란 나이인데도 ‘색기의 화신’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전까지는 파노스 왕자의 호의가 제게 있다고 생각했기에, 저런 파노스 왕자를 칭찬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파노스 왕자의 호의가 아리아나에 옮겨간 것을 알게 됐으니까요. 친분 도모를 위해서 어느 정도는 솔직하게 칭찬해 줘도 좋겠죠.
“제가 반하게 하고 싶은 여성은, 프레타리아의 국민이 아니지만요.”
그러시겠죠. 아리아나의 본가는 알렉산드로스 왕국이니까요.
파노스 왕자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 파노스 왕자가 데리고 있던 말에게도 눈길이 갔습니다. 저 생김새는 분명……,
“스피로?”
“히힝!”
오랜만에 만난 스피로는 저를 기억하고 있었는지, 제가 건넨 인사에 반갑게 대답해줬습니다. 저번에 니콜라스 왕자의 앞에서 한 번 타봤을 때는, 분명 똑똑하고 기운이 넘치는 말이었죠.
“스피로를 아십니까?”
“네, 저번에 한 번 타본 적이 있어요.”
만만찮은 경쟁이 되겠네요. 물론, 파노스 왕자의 승마 실력은 아직 모르지만, 스피로는 똑똑하고 힘이 넘치는 말이니까요.
“아그네스 영애님, 이렇게 된 것도 마침 기회인데. 내기를 하나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내기요?”
“네. 저와 영애님 중 순위가 높은 사람의 부탁을 순위가 낮은 사람이 하나 들어주는 겁니다.”
파노스 왕자가 조금 더 대회의 참가 의욕을 돋우고 싶은 것인지, 별안간 특별한 내기를 제안하시네요.
“……상식적인 선에서요?”
“물론입니다.”
어떡할까요. 파노스 왕자가 저에게 할 부탁이라면 모를까, 저는 딱히 파노스 왕자에게 할만한 부탁이 없는데요. ……아, 그건 어떨까요.
“좋아요. 그것도 소소한 즐거움이 되겠네요.”
만약 제가 이긴다면, 파노스 왕자에게 부탁으로 아리아나의 스토킹을 멈춰달라고 부탁을 드릴 수 있겠죠.
“그럼, 받아들이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유소년 부문 경마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가 프레타리아어로 경기 시작을 알리자, 많은 프레타리아 국민의 열화와 같은 성원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습니다. 조금 부담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먼저, 첫 번째 선수! 작년과 재작년, 유소년 부문 우승자! 과연 올해까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올해가 유소년 부문 마지막 출전인 시에몬 디미트리어스~~!!”
이름이 불리자, 한 명의 선수가 말을 끌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후로도 사회자가 한 명 한 명 선수들을 호명하고, 이름을 불린 선수와 그 말이 천막 밖으로 나가는 것이 반복됐습니다. 다섯 번째 선수인 파노스 왕자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다섯 번째 선수! 무려 알렉산드로스 왕국에서 먼 길을 행차해 주셨습니다! 알렉산드로스 왕국의 백마 탄 왕자님, 파노스 알렉산드로스~~!!”
지금까지의 반응보다 훨씬 더 큰 박수 소리가 들렸습니다.
“파노스 님~~!!”
“힘내세요, 파노스 님!!”
파노스를 열렬히 부르는 프레타리아의 팬들이 많은 것 같네요. 의외로 파노스 왕자는 외국에서 더 먹히는 스타일인 걸까요? 어쩌면 순수하게 외국인인 파노스 왕자가 자기 나라의 행사에 관심을 둔다는 것에 다들 기쁜 걸지도 모르겠네요.
“자, 드디어 유소년 부문의 마지막 선수입니다. 이 분도 마찬가지로 알렉산드로스 왕국에서 먼 길을 행차해 주셨습니다. 이번 대회의 유일한 여성 선수,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제 이름이 호명되고, 헬렌과 함께 천막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그네스 님~~!! 아그네스 님~~!!!”
맨 앞 좌석에서 아리아나가 열렬하게 응원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렇게까지 열렬하게 응원해주니 조금 부끄럽네요.
“그럼 선수분들은 준비하시고,”
헬렌의 고삐를 잡고,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수 있도록 준비를 했습니다.
“알치!”
출발을 알리는 깃발이 올라가자마자 여섯 명의 선수와 말이, 각자 근소한 차이를 보이며 모두 출발했습니다.
다섯 바퀴의 트랙 중 첫 바퀴의 절반이 지나, 대략적인 순위가 가시권에 보이기 시작하네요. 우선, 프레타리아의 선수로 보이는 사람이 1위, 파노스 왕자가 2위, 제가 근소한 차이의 3위로 따라가는 형태이네요.
파노스 왕자와 스피로는 조금씩 속도를 높여 나갔고, 한 바퀴 반쯤을 돈 때부터는 눈에 띌 정도로 저보다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제 뒤의 세 사람은 반 바퀴 정도 뒤처져 있고, 이대로만 가도 3위권이기에 평소라면 무리하지 않았겠죠.
하지만 오늘의 저는 내기가 걸려 있으므로,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어떻게든 파노스 왕자만큼은 이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직선거리에서의 속도는 명백하게 스피로가 헬렌보다 빠르네요.
급해진 저는 앞지르기 위해서는 코너를 빠르게 돌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두 번째 바퀴가 끝나기 직전의 코너에서 무리하게 속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스스스스슥, 쿠당탕!’
“아그네스 님!!”
제 말을 들어서 무리하게 속도를 올린 헬렌은, 그만 코너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리아나가 저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리네요.
제가 넘어진 직후 제 앞으로 제 뒤에 있던 세 명의 선수가 앞지르는 것이 보였습니다. 넘어져 버렸으니 내기고 뭐고 이건 어쩔 수 없이 탈락이겠네요.
…….
…….
…….
라고 생각할 무렵,
‘스르륵, 스르륵’
헬렌이 넘어진 그 자리에서 일어나고, 저와 눈이 마주친 후 울었습니다.
“히히힝!”
설마, 아직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건가요?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헬렌과의 눈빛 교환이 끝난 저는 다시 한번 헬렌의 등 위에 올라탔습니다. 제가 고삐를 다시 쥐자마자, 헬렌은 맹렬한 속도로 다시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어, 엄청나게 빨라요! 아까까지의 헬렌은 물론, 스피로보다도 빠르게 달리고 있어요!
하지만 이미 후발주자와도 반 바퀴, 파노스 왕자와는 한 바퀴 이상이 차이가 나는 데, 여기서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헬렌을 믿을 수밖에 없겠죠. 고삐를 꽉 쥔 채로 헬렌이 달리는 것에만 몸을 맡겼습니다. 세 바퀴 반을 돌았을 무렵, 가장 마지막 주자를 따라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던 겁니다. 말을 빨리 달리게 하는 데는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었네요. 역시 가장 빨리 달리는 법은 말 본체가 가장 잘 알고 있겠죠.
5등, 4등……한 사람씩 다시 앞질러가며 파노스 왕자를 따라갔습니다. 파노스 왕자와 스피로도 어느새 3위까지 내려와 있었습니다.
앞으로 한걸음, 아니, 반걸음만이라도 더 나아갈 수만 있다면! 이라고 생각한 순간, 다섯 번째 바퀴가 끝났습니다.
…….
…….
…….
정말로, 정말로, 아슬아슬했습니다.
“3위, 파노스 알렉산드로스! 4위,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아슬아슬하게, 파노스 왕자가 이겼습니다.
앞으로 한 뼘이었는데! 하다못해 한 바퀴만 더 돌았더라도! 제가 무리해서 넘어지지만 않았더라도!!
제가 저지른 실수로 인한 패배였기에, 안타까움에 자책을 했습니다. 잘 달려준 헬렌에게도 미안하게 되었네요.
“““아그네스! 아그네스! 아그네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경마 경기장의 사방에서 제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아그네스! 정말 아까웠어요!”
“넘어지지만 않았으면 순위권에 드셨을 거예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어요!”
……아마 두 바퀴를 돌기 직전에 넘어졌던 순간,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 대신 다시 올라타서 달렸던 것이 프레타리아 국민에게 긍정적인 작용을 한 것 같네요. 헬렌이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준 덕분에, 저에게도 좋은 평가가 따라붙었습니다.
파노스 왕자에게 진 것은 아쉽지만, 그렇게까지 나쁜 기분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아, 아그네스 님~~!! 아그네스 님~~!!!”
그 와중에도 눈물까지 흘리며 가장 열심히 응원해준 사람은, 당연히 아리아나였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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