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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영애는 왕자님을 양보하겠습니다-44화 (44/86)

〈 44화 〉 프레타리아에 도착했습니다

* * *

“아리아나, 이제 와서 묻는 것도 이상하지만, 이번에 프레타리아에는 왜 방문하는 거예요?”

프레타리아로 이동하는 마차 안, 궁금해진 제가 아리아나에게 물었습니다.

참고로, 저희 집안의 마차는 세 명 정도가 만석이라서, 저와 아리아나, 마리와 아리아나의 사용인까지 네 사람이 타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사람을 나누어야 할지 고민하는 중…….

“제가 마차를 운전하며 세이타리디스 가문의 선행 마차를 따라갈 테니, 세 분이 마차에 탑승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리가 이렇게 말해준 덕에 적절하게 나눠 탈 수 있었습니다. ……그 대신에 원래 저희 운전사는 세이타리디스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 되어버렸지만요. 요즘 마리에게 시키는 일이 점점 많아졌는데……늘어난 용돈으로라도 마리의 월급을 조금 올려주라고 아버지에게 말씀드려 봐야겠네요.

“프레타리아의 새해맞이 대명절 때문에 방문해요.”

“새해맞이는 알렉산드로스 왕국에도 있는 명절 아닌가요?”

“프레타리아는 새해를 맞이하는 날을 명절 중 가장 중요한 대명절로 보니까요. 알렉산드로스 왕국도 새해맞이는 하지만, 프레타리아만큼 막중한 의미를 갖진 않잖아요.

각 나라의 주요 명절에는 얼굴을 비춰야 나중에 교역에도 이점이 되는데, 새해맞이에 관해서는 알렉산드로스 왕국이나 다른 나라의 새해맞이 명절보다는 프레타리아의 새해맞이 대명절에 참여하는 편이 더 이점이 크다고 아버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외국인이 우리나라의 문화를 이해해 주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이니까요. 전생에도 추석 특선방송 같은 데서 외국인 연예인이 한복을 입고 나오거나, 유명한 해외 스타가 방한했을 때 문화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던 것을 생각하면,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가 보네요.

“그렇다면 아리아나는 이전에도 새해맞이를 프레타리아에서 하셨겠네요. 매번 먼 길을 여행하는 건 힘들었겠어요.”

“평소에는 아버님과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가니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피곤할 때는 아버님의 무릎을 빌려서 잠시 잠을 청하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니 에드워드 님을 뵈지 못한 것 같은데, 다른 마차에 타고 계신 건 맞나요?”

“아버님은 어제 선행 준비가 있으시다고. 먼저 출발하셨어요.”

다행이네요. 하마터면 제가 한 요구 때문에 아버지와 딸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한 줄 알았어요.

“그 덕분에 아그네스 님과 이렇게 같이 있을 수 있지만요.”

아리아나가 그렇게 말하며 제 어깨에 몸을 기댔습니다. 역시 사랑스러운 아이네요. 그러니까 니콜라스 왕자에게도 관심을 끌게 된 거겠죠?

그 뒤로도 아리아나와 프레타리아에 관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가, 두 나라의 국경에 도달했습니다. 프레타리아는 알렉산드로스 왕국과 우호국이라서, 형식적인 검문 절차만 끝내니 마차를 들여보내 주시네요.

국경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수많은 가축이 방목된 농장이 잔뜩 보였습니다. 소, 돼지, 닭, 양, 그리고 말까지. 알렉산드로스에서는 이 정도로 큰 규모의 목축업은 본 적이 없네요.

“프레타리아는 사시사철 온화한 기후라서 곡식 생산량이 많으니까, 사람이 먹고 남은 나머지 곡식을 가축에게 먹였더니 가축의 성장이 빨라지는 것을 발견했다는 것 같아요. 그래서 목축업도 같이 발전하게 됐고, 신선한 달걀이나 유제품을 구하기도 정말 쉬워요.”

아리아나의 프레타리아 강의는 여러모로 유용하네요. 달걀이나 유제품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그렇게나 빵이나 과자 같은 간식이 발달할 수 있었던 거겠죠. 곡식 생산량이 많다고 하니 밀이나 귀리 같은 재료도 당연히 풍부할 테고요.

“자연환경에 축복받은 나라네요. 확실히 어른이 되면, 이런 곳에서 평생 여유롭게 일생을 보내는 것도 행복할 것 같아요.”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그네스 님!”

아리아나가 제 생각에 강하게 동의해 주었습니다. 이런 환경까지 고려해서 저의 니콜라스 왕자와의 파혼 이후를 염려해 주었다는 것이 너무 기쁘네요.

닭과 소들이 산책하고 있는 목장 길을 마차를 타고 몇 시간을 더 지나가다 보니, 어느새 사람이 제법 많은 도시까지 도달했습니다.

“여기가 프레타리아의 수도인, 카 팔리오예요.”

아리아나가 도시의 이름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성문 안으로 들어간 후에는 평민들이 사는 거주구역, 시장이 많은 골목, 연회장으로 사용되기도 하는 큰 공원 등에 관해서 설명해 줬습니다.

“공원에서 한창 준비 중인 것은 내일 있을 새해맞이 대명절 준비인가요?”

“그렇죠. 새해맞이 대명절에는 이 공원에 수도 사람의 반 이상이 모여서 초읽기를 하니까요. 아, 마리 씨, 잠시 마차를 멈춰 주실 수 있나요?”

“알겠습니다.”

아리아나의 부탁에 마리가 잠시 마차를 멈췄습니다. 마리가 마차가 멈췄다는 신호를 전하니 선행 마차도 정차하네요. 아리아나가 마차의 문을 열고 내리기에, 저도 궁금해져서 같이 따라갔습니다.

“아버님~!”

아리아나가 에드워드 세이타리디스 후작을 발견하고 달려갔습니다. 선행 준비라는 게 이것을 의미하셨던 모양이네요.

“아리아나, 도착했구나. 아, 아그네스 님도 오셨군요.”

“격조했습니다, 에드워드 님.”

아리아나의 아버님에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에드워드 님의 주변으로 프레타리아의 귀족으로 보이는 분들이 다가왔습니다.

“에드워드 씨, 자녀분입니까? 아리아나 양은 몇 번인가 뵈었지만, 이쪽의 영애분은 처음 뵙는군요.”

낯선 귀족분이 프레타리아어로 말을 거셨습니다. 지금이 갈고 닦아온 프레타리아어 실력을 발휘할 때인 것 같네요.

“처음 뵙겠습니다, 여러분,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입니다. 아리아나 영애의 친구로서 아리아나의 탄생일과 프레타리아의 새해맞이 대명절을 지내러 왔습니다.”

“아, 이분이 그 유명한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님이시군요. 대단한 프레타리아어 실력이십니다.”

……제가 유명하다고요? 프레타리아에는 딱히 제 이름이 알려질 만한 일이 없지 않았나요?

“화상 치료의 물약을 개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대단하시군요.”

아……외국에는 제가 화상 치료의 물약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보니, 개발까지 제가 했다고 알려진 것 같네요.

“죄송하지만, 화상 치료의 물약은 제가 아닌 제 남동생, 제이스 앙겔로풀로스의 작품입니다. 제이스의 양보로 화상 치료의 물약의 권리가 제게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발자가 제 남동생이라는 것만큼은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습니까, 실례를 저질렀군요.”

제이스가 만든 작품인데 제이스의 명예까지 제가 가져가는 건 양심에 찔리니까요. 어린아이인 제 말에도 바로 발언을 정정해 주시는 것을 보니 프레타리아의 이 귀족분은 상당히 호인인 듯하네요.

“그나저나, 화상 치료의 물약 판매는 언제부터 하실 예정입니까?”

“얼마 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공방이 지어졌으니, 약 두 달 정도 뒤부터는 판매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때가 되면 여기 계신 세이타리디스 상회를 통해 판매할 예정이니, 프레타리아에서도 구하기 어렵지 않으실 겁니다.”

사실 앞으로 한 달 정도만 지나면 충분히 상시판매가 가능한 물량으로 전환될 예정이긴 합니다. 하지만 기한을 넉넉하게 잡으면 중간에 돌발상황이 생겨도 충분히 수습할 시간도 있고, 예정보다 빠르게 끝났을 때 먼저 물량을 일부 빼서 팔아주는 것처럼 생색을 낼 수도 있으니까요. 부모님께서 생일 선물로 주신 책에 적힌 외교 방법의 하나입니다.

“그건 좋은 소식이군요. 제 지인분께서도 몇 개월 전 다리에 화상을 입었으니까요. 아무쪼록 이른 시일 내에 판매가 되면 좋겠습니다.”

“저도 지인분의 빠른 쾌차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습니다.”

제이스의 화상 치료의 물약은 확실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네요. 원작 게임에서는 나온 적이 없는 물약이라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원작 게임에서도 제이스에게 화재 이벤트가 있었고, 실제로 화상도 입었는데 왜 개발하지 않았을까요?

“아버님, 그러면 저희는 저택으로 먼저 들어가 있을게요.”

마침 아리아나도 에드워드 님과의 이야기가 끝난 것 같네요.

“그래, 이곳은 아그네스 님에게는 타지니까 잘 안내해 드려야 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마차로 돌아가요, 아그네스 님.”

“그렇게 할까요.”

다시 마차에 올라타고 나니, 아리아나가 제게 말했습니다.

“아그네스 님, 프레타리아어 실력이 대단하셨어요!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배우셨나요?”

“프레타리아어를 잘 가르치는 강사님을 구했으니까요. 아직 읽고 쓰기까지는 힘들지만, 말하고 듣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니콜라스 왕자의 경선식 영어단어처럼 가르치는 방식은 분하지만, 솔직히 너무 효율적이니까요.

선행 마차는 도시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여러 중앙 귀족의 저택으로 보이는 건물들 사이에서 멈췄습니다. 아리아나가 멈춘 저택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곳이 저희 세이타리디스 가문의 별장이에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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