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 * *
“제, 제 방에서 주무신다는 말씀입니까.”
“네, 그래요.”
이불은……딱히 가져오지 않아도 되겠죠? 같이 덮기에는 충분한 크기니까요.
“혹시 아그네스 누나 방에 벌레라도 나왔습니까. 제가 잡아드리면 될까요.”
“아니에요. 지금 제 방에서 에리나랑 에리자가 자고 있으니까 제가 여기로 온 거예요. 제가 끼어들면 피로에서 회복해야 하는 두 사람이 깰 수도 있잖아요. 감기가 옮을 수도 있고요.”
거의 나은 모습이기는 하지만, 혹시라도 두 사람이 나은 상태에서 제가 옮아버리면 지금까지의 고생도 허사가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것이라면 아그네스 누나의 사용인과 같이 주무셔도 되지 않습니까.”
“마리요? 하지만 마리의 침대는 조금 좁고……무엇보다 자는 시간까지 제 시종을 들게 하면 미안하잖아요.”
안 그래도 오늘 에리나와 에리자에게 본의 아닌 블랙 노동을 시켰던 사실 때문에 미안한데, 마리에게도 비슷한 행동을 할 수는 없죠.
“아, 생각해 보니 제이스도 제가 있으면 불편할 수도 있겠네요.”
“그, 그렇지 않습니다, 아그네스 누나.”
“정말요? 혹시 제 생각을 해서 거짓말을 하거나, 아니면 제 눈치를 보려고 그런 말을 하는 거라면…….”
“전혀 아닙니다. 저도 아그네스 누나와 같이 자, 잠자리에 드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믿을게요. 하던 일이 있으면 마저 해도 괜찮아요. 끝날 때까지 기다릴게요.”
“괜찮습니다. 마침 거의 끝났었습니다.”
제이스가 양초의 불을 끄고, 제 옆에 나란히 누웠습니다. 같은 침대에 누워 같은 이불을 덮고, 남매의 온기를 느끼며 같이 잠들 수 있다니……정말 행복하네요.
일 년 정도만 지나면 제이스도 에리나나 에리자와 약혼을 하게 될 거고, 그렇게 되면 저를 제외한 세 사람이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겠죠. 이 세계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생긴 남동생과 여동생들을 모두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게 되면, 조금 외로워질 수도 있겠네요.
“제이스.”
“네, 아그네스 누나.”
“제 남동생이 되어 줘서 고마워요.”
“저야말로……아그네스 누나가 제 누나라는 것에, 하루도 빠짐없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순간은, 이 남동생을 가진 기쁨을 즐기도록 하죠.
“잘 자요, 제이스.”
이불 속으로 제이스의 오른손을 왼손을 잡아, 제 오른손과 깍지를 끼었습니다. 제이스의 손이 제 손에서 잠깐 벗어나려고 했지만, 결국 제이스도 제 손을 맞잡아 주었습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아그네스 누나.”
다음 날 아침,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일찍 잠에서 깨었습니다. 일찍 일어나서 먼저 준비를 해 둬야, 에리나와 에리자를 준비시킬 시간이 생길 테니까요.
“아으으~~!!”
침대에서 일어나 힘껏 기지개를 켰습니다. 침대가 바뀌었는데도 푹 잔 것 같네요.
“일어나셨습니까, 아그네스 누나.”
마침 옆에 누워 있는 제이스도 물었습니다.
“아, 미안해요. 혹시 깨웠나요?”
“……정확히 말하면 깨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제이스도 저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났나 보네요.
“제이스도 슬슬 일어나서 준비할 거죠?”
“……1시간 정도만 자고 일어나겠습니다.”
별일이네요. 제이스가 늦잠을 자다니요. 에리나와 에리자가 걱정돼서 밤잠을 설친 걸까요.
“그러면 저는 제 방으로 돌아갈게요. 너무 늦잠자지는 마세요.”
“……네, 알겠……쿨…….”
다시 잠든 제이스를 두고, 조용히 방을 나왔습니다.
아침 식사를 끝낸 후, 본격적으로 어제 못한 회의를 하기 위해 에리나와 에리자, 두 사람과 함께 응접실로 향했습니다. 기술의 원천인 제이스에게도 자문할 수 있을까 싶어서 식사 도중 물어보았지만,
“말씀은 감사하지만……너무 피곤해서 오늘은 조금만 더 자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방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제이스가 저렇게 피곤해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네요. 알게 모르게 어지간히도 두 사람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었나 보네요.
그렇기에 제이스는 제외하고, 에리나와 에리자 두 사람만을 데리고 응접실로 돌아왔습니다.
“아그네스 언니! 저희 일주일 동안 물약 엄청 많이 만들었어요!”
“지금 이대로의 생산속도라면, 아마 1개월 내로 기존의 예약된 물량을 소화하고 본격적인 상시판매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에리나, 에리자. 두 사람에게 먼저 해야 할 말이 있어요.”
두 사람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제 설명이 부족해서, 두 사람이 지쳐 쓰러지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해요.”
““아, 아그네스 언니?!””
정확하게 기준을 정하지 않고 화상 치료의 물약을 만들어 달라고만 말한 것 때문에, 두 사람을 무리하게 해버렸으니까요. 어떤 식으로도 변명할 수 없습니다.
“아, 아그네스 언니, 왜 그래요?!”
“저희는 아그네스 언니에게 사과를 받을만한 이유가 없어요. 오히려 저희 병시중을 해주신 아그네스 언니에게 저희가 사죄를 드려야 해요.”
“제가 ‘만들 수 있는 만큼’ 만들어 보라고 한 것 때문에……두 사람이 일주일 내내 식사도 수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결국 쓰러지게 만든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어요.”
“아니에요, 아그네스 언니…….”
“저희는……아그네스 언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뿐인데…….”
제 사죄에 도리어 에리나와 에리자가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이렇게 착한 아이들이니 오늘 기준점을 제대로 정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지난 일주일 동안 발생한 일이 반복되겠죠.
우선은 두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고, 조금 진정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두 사람이 저를 위해서 노력해줬다는 사실은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그네스 언니…….””
“하지만 두 사람이 자신의 몸을 소모품처럼 사용하면서까지 제가 맡긴 일을 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어요. 제가 두 사람에게 이 일을 맡긴 이유가, 단순히 ‘두 사람의 능력이 좋아서’뿐이었나요.”
“아니에요…….”
“그렇지않아요…….”
“두 사람을 믿고 두 사람의 능력도 도움이 되지만, 저는 두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도 원했기 때문에 두 사람에게 맡긴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에리나와 에리자가 일하는 양을 줄일 필요가 있어요.”
“네…….”
“알겠어요…….”
단위 기간당 생산량과 일 근로시간, 적어도 이 두 가지는 확실하게 제한을 두는 편이 좋겠죠.
“에리나, 지난 일주일간 만든 화상 치료의 물약이 총 몇 개죠?”
“357개에요! 그런데 그저께 공정을 줄일 수 있는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아마 다음 주에는 400개까지도 만들 수…….”
“100개까지 줄이도록 하세요.”
제이스가 일주일간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만들 수 있는 화상 치료의 물약이 50개니까요. 에리나와 에리자 두 사람이라면 상한선으로 100개 정도면 여유롭겠죠. 사실은 조금 더 줄이고 싶지만요.
“그건 너무 적어요!”
“에리나의 말대로, 얼마 전 발견한 에리나의 방법을 사용하면 저희가 무리하지 않고도 300개까지의 물량은…….”
“90개.”
““네?””
“두 사람이 무리해서 자꾸 ‘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 개수를 줄이겠어요.”
“90개면 지난주 만든 개수의 반의반밖에 안 되잖아요!”
“100개도 너무 적은데…….”
“80…….”
““90개로 할게요!””
고집을 부리던 에리나와 에리자가 가까스로 타협에 응해 주었습니다.
“아그네스 언니, 만약에 90개를 너무 빨리 만들어버리면 어떡하죠?”
“지난주의 일정을 생각해봤을 때,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을 것 같아요.”
“그것에 대해서도 지금 설명해 드릴게요.”
두 사람의 일 근로시간도 엄격히 제한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리자, 지난주 두 사람의 지난 일주일 생활 방식을 얘기해 주시겠어요?”
“0시부터 말씀드리면 될까요?”
“0시…….”
설마 했던 24시간 근무였나요…….
“우선, 0시경에는 하임프 열매를 중탕해서 추출물을 뽑아냈어요. 이 작업을 두 시간 정도 진행해서 나온 추출물들을 얇은 나무판에 펼쳐서 식혔어요. 다음으로는 물에 불린 석이버섯에 묻은 먼지와 모래를 깨끗이 씻어내고, 넓게 펼쳐서 실내에서 말렸어요. 그리고는 막자사발에 희토류 토양에서 뽑은 에카붕소를 곱게 갈았어요. 마찬가지로 희토류 토양에서 뽑은 이트리아에서 터븀을 추출하고요. 그 작업이 끝나면 아침 8시 정도가 되니까……햇볕에 말려야 하는 충분히 식은 하임프 추출물을 마당에 있는 건조대로 옮기고요. 9시쯤에 오시는 희토류 생산지에서 온 마차에서 희토류 토양이 든 자루를 받아요. 그러면 그 받은 토양에서 에카붕소와 이트리아를 구분해내고, 그 작업이 끝나면 12시쯤이니까 어제 말린 석이버섯을 태워서 순수한 석이버섯으로 만든 재를 만들고요. 한 시부터는 네펜티아 씨앗에서 기름을 뽑아요. 네펜티아 기름은 1시간 이내로 산화되니까, 제가 뽑은 네펜티아 기름에 에리나가 서둘러서 석이버섯 재를 섞어 산화를 방지하고, 두 시에는 유리 공방에서 가져다 주신 물약병을 받아서 증류수로 깨끗이 씻어요. 세 시에는 네펜티아 기름에 하임프 추출물과 에카붕소를 섞어서 고온 압축으로 반응시키고…….”
“……거기까지만 해 주세요.”
처음에는 끝까지 들으려고 했는데……제가 두 사람에게 저지른 짓에 괴로워져서 차마 더 듣지는 못할 것 같네요.
“에리자, 지금 본인이 말하면서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어요?”
“…….”
“방금 그 일정에 식사시간은 대체 어딨어요?”
“그, 그건……비가 오면 하임프 추출물을 건조대로 옮기지 못하니까……그때 식사를…….”
비가 오는 날에만 식사를 한다고요? 선인장이에요?
“그럼 비가 오지 않는 날은요?”
“……마차가 정확한 시간에 오지는 않으니까……그때 시간 동안 빵을 조금…….”
“충분히 먹고 있는 게 맞아요? ‘식사시간’이 정확히 어느 정도에요?”
“5, 5분 정도…….”
“평균 20초입니다, 아그네스 님. 그마저도 거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듣던 중 참지 못하고 레나가 끼어들었습니다. 5분이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가 어지러웠는데 그것마저 부풀린 거였다니…….
“식사는 그렇다 치고, 잠은 얼마나 자고 있어요?”
“두 시간씩 에리나와 번갈아서…….”
“한 번에 최대 15분, 하루 최대 한 시간 정도만 주무십니다, 아그네스 님.”
“레, 레나! 그걸 말하면 안 돼요!”
말하면 안 된다고 하는 걸 보면, 본인도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나 보죠?
“제대로 말해줘서 고마워요, 레나.”
24시간 근무……식사시간은 20초에 끼니를 거르기도 부지기수……수면시간이 하루 최대 한 시간…….
이 상태로 일주일이라도 더 진행됐으면, 틀림없이 둘 다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산 회의를 하자고 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네요.
두 사람의 근무시간은, 대대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겠네요.
“앞으로 두 사람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일하는 것으로 할게요. 만약 두 사람이 힘들면, 근무시간을 줄여도 괜찮아요. 하지만 늘리는 것은 절대로 안 돼요.”
“아, 아그네스 언니!”
“너무 적어요! 이렇게 되면 오후 일곱 시부터 시작하는 수정초의 계량을 내일로 미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생산 기간이 너무 길어져서……”
“오후 5시. 까지만 일하는 것으로 할게요. 알겠죠?”
““……네.””
“그리고, 중간에 반드시 한 시간은 점심시간으로 사용해야 해요. 만약에 식사를 빨리 끝내게 되면, 그 시간은 낮잠을 자던가 쉬는 식으로 사용하세요. 어떤 방식으로든, 점심시간에는 절대로 일하는 것은 금지하겠어요.”
“네에…….”
“알겠어요…….”
이렇게 말해 놓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 불안하네요. 제가 옆에서 두 사람을 지켜봐 주면 좋겠지만, 일정이 바빠서 도저히 그럴 시간은 없고…….
“레나는 가능하다면, 매주 있는 정산 회의 때마다 두 사람과 같이 와서 제가 말한 대로 지키고 있는지 보고해줄 수 있나요?”
“알겠습니다, 아그네스 님.”
“만약에 두 사람이 제가 말한 것을 지키지 않았거나, 편법을 사용해서 제가 만든 규칙을 어기려고 하면 최대한 막아주세요. 두 사람도 알겠죠? 꼭 지켜주셔야 해요.”
“알겠어요…….”
“지키도록 할게요…….”
뭔가 계속해서 기운이 없는 대답이네요. 이렇게 말해도 제가 감시할 수는 없으니 강제성이 없고, 레나도 시종의 입장이니까 두 사람이 고집을 부리면 강경하게 나가지는 못하겠죠.
“제가 솔론 영지에 자주 방문할 수 없기에……두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저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제가 알 방법은 없어요. 하지만 만약 에리나와 에리자가 제 말대로 따라주지 않고 정해진 개수 이상으로 생산하거나, 일하는 시간을 지켜주지 않으면…….”
““그러면요?””
……뭐라고 말해야 하죠? 일단 운을 띄웠는데, 페널티로 줄 만한 무언가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네요. 두 사람에게 체벌하는 것도 가슴이 아프고…….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제가 두 사람에게 조금 실망해서……슬퍼지겠죠.”
“절대로 지킬게요, 아그네스 언니!”
“아그네스 언니를 슬퍼지게 만들지 않을게요!”
마땅히 할 만한 이야기가 없어서 어영부영 내뱉은 말이었는데, 두 사람은 의외의 반응을 보여주었습니다.
역시 착한 아이들이네요. 자신들의 몸이 망가지는 것보다도 제 사소한 감정이 나빠지는 것을 더 신경 써주는 거겠죠.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에리나, 에리자.”
그런 두 사람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양팔을 벌려 두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습니다.
““아그네스 언니!””
제 품으로 한가득 들어온 에리나와 에리자에게, 사랑을 담아 꽉 껴안았습니다. 지금 제가 두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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