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니콜라스 왕자의 약점을 들었습니다
* * *
“아그네스 영애? 방금 무슨 말씀을 하신 겁니까?”
“그 퍼석퍼석하고 맛없는 쿠키를 감히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 제1 왕자님의 입에 들어가게 만들어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신지…….”
끝까지 모르는 척을 하시다니 정말 뻔뻔하시네요. 뭐 좋아요. 제가 만든 쿠키를 어쩌다 보니 니콜라스 왕자가 먹게 된 것은 괜찮아요. 어차피 왕궁의 재료를 빌려서 만든 거니까 엄밀히 따지면 소유권은 니콜라스 왕자에게 있다고 해도 할 말은 없겠죠.
그런데 그걸 먹어 놓고 낯짝 두껍게 마치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척, 제가 보는 앞에서 조롱하는 건 참을 수가 없다고요! 결과적으로 전해주지는 못했지만 저는 만들 때 니콜라스 왕자를 위해서 몇 번이고 실패해서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상태까지 만들었던 건데!
“잭? 어떻게 된 거야? 그 쿠키 잭이 만든 게 아니었어?”
“저는 분명히 그날, 누가 만들었냐는 말씀에 대답으로‘비밀입니다’라고만 말씀드렸습니다.”
게다가 잭도 너무하잖아요. 분명히 본인 스스로 입이 무겁다고 말해서 도움을 부탁했던 건데, 결국엔 니콜라스 왕자의 사용인이라는 거죠?
“나는 당연히 잭 네가 실패한 요리를 둘러대는 핑계인 줄 알았다고!”
“이제야 말씀드리지만, 그 쿠키는 아그네스 님이 빈 주방에서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만드신 작품이었습니다.”
흔적도 없이 치워놓겠다고 말해서 믿고 있었는데, 제 실책을 몰래 가져가서 니콜라스 왕자와 조롱거리로 삼다니……역시 사이코패스 왕자의 사용인 자격이 충분하시네요.
“그걸 어떻게 알겠냐고, 대체 어느 공작 영애가 왕궁 주방을 몰래 빌려서 쿠키를 만든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아그네스 님 아니겠습니까…….”
아까부터 두 사람이 계속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제가 수치스러워하는 표정을 봐서 만족했다는 이야기인가요? 아니면 추가로 제 심장을 후벼팔 만한 적절한 말을 찾고 있나요?
“아그네스 영애, 정말 죄송합니다. 설마 아그네스 영애가 만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당연히 모르고 계셨겠죠. 알고 계셨으면 이렇게 약혼자의 바로 앞에서 비아냥댈 기회가 사라져 버릴 테니까요.”
“절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입이 무거운 사용인을 두셔서 부럽네요. 니콜라스 왕자와 죽이 잘 맞으셔서 좋으시겠네요.”
“아그네스 님, 오해이십니다.”
“알아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어린 영애의 기막힌 상상력이라는 거죠?”
“그런 뜻으로 드린 말이 아니라…….”
대체 이 사람들은 얼마나 더 저를 놀려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거죠?
“아그네스 영애, 일단 진정해주세요. 심호흡, 심호흡하시지 않겠습니까.”
“…….”
“아그네스 영애가 저번에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진정된 후에 이야기하는 게 좋다고.”
“…….”
“자, 제가 말하는 것에 따라서,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머리가 조금 식은 것 같네요.
“지, 진정되셨습니까?”
“……그런 것 같네요.”
평소에 다른 사람들이 당황하거나 흥분하고 있을 때 제가 사용했던 방법이었는데, 제가 받게 될 줄은 몰랐네요. 생각해 보면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가 된 이후로 이 정도로 화가 난 적도 없었던 것 같고요.
“아그네스 영애, 정말로 모르고 한 말이었지만, 그것이 아그네스 영애의 기분을 상하게 해드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알렉산드로스의 이름에 맹세하고 잭은 그 쿠키가 아그네스 영애가 만든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비밀을 지켰습니다. 그것 때문에 결과적으로 제가 아그네스 영애의 약점을 빈정거린 것처럼 되어버렸지만, 제 본심이 아니었습니다.”
“……뭐든지 잘 하시는 니콜라스 왕자는, 제가 저지른 실수가 재미있으셨겠죠.”
날뛰던 감정은 어느 정도 진정됐지만, 제 기분이 좋아졌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아그네스 영애, 잠시 산책하러 나가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렇게 되어, 니콜라스 왕자와 저, 그리고 잭은 앙겔로풀로스 저택의 마당으로 산책을 나왔습니다.
“아그네스 영애는 제가 뭐든지 잘 한다고 말씀하셨죠?”
“그렇네요.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능숙하시잖아요.”
바로 저번 무도회에서 제 춤을 따라올 때도 그랬었죠.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결국 한 번도 본 적 없을 제 춤을 맞춰주셨으니까요.
“잭, 스피로를 데리고 와줘.”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잭은 마차를 세워둔 저택의 뒤편으로 사라졌습니다. 스피로가 누구죠? 설마 니콜라스 왕자 말고 다른 방문자가 있었나요? 저는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얼마 뒤 돌아온 잭이 데리고 온 것은, 니콜라스 왕자의 마차를 끄는 흰색 말이었습니다.
“스피로는 저희 마차를 끄는 말의 이름입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스피로는 왜 데리고 오셨죠?”
“아그네스 영애에게 제가 못하는 것을 보여드리려고요.”
니콜라스 왕자가 그렇게 말하는 사이 잭이 스피로의 등에 안장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고마워, 잭.”
그렇게 말한 니콜라스 왕자는 스피로의 등에 올라탔습니다.
“가자, 스피로!”
니콜라스 왕자를 등에 태운 스피로는 몇 걸음을 움직이더니, 갑자기 앞발을 들고 등에 탄 니콜라스 왕자를 떨어뜨렸습니다.
“으악!”
니콜라스 왕자가 낙마하고, 저와 잭이 서둘러서 넘어져 있는 니콜라스 왕자에게 다가갔습니다.
“니콜라스 왕자!”
“괜찮으십니까.”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에 당황한 저와는 달리, 잭은 늘 있는 일이라는 듯한 태도로 니콜라스 왕자의 옷에 묻은 흙먼지를 닦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낙법 실력만 늘고 있습니다.”
니콜라스 왕자를 떨어뜨린 스피로는 코웃음을 치고 여유롭게 뒷발로 땅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니콜라스 왕자, 방금 무엇을 한 건가요?”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 하면, 승마입니다. 보란 듯이 떨어져 버렸지만요.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저는 승마를 전혀 하지 못합니다.”
확실히 그건 의외인 이야기네요. 게임에서의 니콜라스 왕자는 그야말로‘백마 탄 왕자’의 이미지니까요. 확실히 CG나 스틸컷으로도 니콜라스 왕자의 승마 장면은 안 나왔던 것 같기도 하고요.
“승마뿐이 아니라,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 님께서는 동물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체질이십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민망한 이야기라서 말한 적이 없으니까요.”
동물들은 감이 좋다고 하니까, 니콜라스 왕자의 음습한 기운을 눈치채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잘 믿기지는 않네요. 오늘은 이러시고 며칠 뒤에는 그림처럼 완벽하게 타실 수도 있잖아요.”
“처음 연습을 시작하고 일 년 가까이 되어 가는 중입니다.”
일 년이면 니콜라스 왕자와 제가 약혼한 시기와 거의 비슷하네요. 아, 혹시 스피로가 유난히 난폭한 말인 것은 아닐까요?
“아그네스 영애?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스피로의 등에 올라타서 고삐를 잡았습니다.
“스피로, 출발하세요.”
제가 신호를 주자, 스피로는 힘차게 뛰면서 마당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히히힝!”
좋네요. 저희 가문에 있는 헬렌을 탔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네요. 게다가 헬렌은 잘 알아듣지 못했던 동작도 굉장히 능숙하게 하네요. 역시 왕가의 말이라서 더 품종이 좋은 걸까요?
스피로와 함께 5분 정도 달리고 나니 아까까지의 우울했던 기분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스피로에 올라타 있는 채로, 니콜라스 왕자와 잭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와 내려왔습니다.
“확실히 스피로가 특별하게 난폭한 건 아니고, 니콜라스 왕자가 잘 못 타시는 게 맞는 것 같네요.”
“……아그네스 영애는 승마도 할 줄 아십니까?”
“몇 주 전부터 알아두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운동 목적입니다. ……요즘 아리아나가 가지고 오는 과자가 너무 맛있었거든요.
“스피로는 저희 헬렌보다 조금 더 똑똑한 것 같네요.”
온순하기야 저희 헬렌이 더 온순하지만요.
“하하…….”
“뭐, 괜찮지 않아요? 어차피 마차를 타고 다니실 테니 굳이 직접 말을 모시는 법을 알 필요는 없잖아요? 아니면 혹시 직접 말을 몰아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있었습니다만, 방금 사라진 것 같습니다.”
제 기분이 풀린 대신, 이번에는 니콜라스 왕자가 풀이 죽은 것 같네요.
“제가 죄송했어요.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니콜라스 왕자에게 결점을 이야기하게 만들어 버렸네요.”
“아닙니다. 아그네스 영애가 화를 내신 것도 제 탓이니까요. 그래도 아그네스 영애 몰래 능숙하게 승마를 할 수 있게 되면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조금은 아쉽네요.”
승마를 배우는 것을 제게 비밀로 할 이유가 있나요? 일반적으로 특별한 일이 있는 게 아니면 스스로 말을 타야 할만한 경우의 수가……한 가지 있겠네요.
혹시라도 제가 국외로 도망치거나 하면 말을 타고 쫓아올 계획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차 대 마차로는 추격이 힘드니까요. 니콜라스 왕자는 제가 당연히 마차를 탈 것으로 생각하고 말을 타고 쫓아오려고 했던 겁니다. 일부러 그 순간까지 비밀로 했다가 방심하고 있던 저를 사로잡아 절망감에 빠지게 하는 것도 니콜라스 왕자에게는 소소한 즐거움이겠죠.
하지만 제가 승마를 할 줄 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말을 탄다고 해도 추격이 힘들기에 이유가 사라졌다고 말씀하신 거네요.우연히 시작한 운동이었는데……더 열심히 배워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오늘은 정말로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귀빈으로 방문하신 니콜라스 왕자님을 상대로 감정도 조절하지 못하고, 공작 영애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니콜라스 왕자가 돌아가기 전, 마차 앞에서 니콜라스 왕자에게 다시 한번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사과를 드렸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제 잘못입니다. 다만, 그게……아그네스 영애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답해드리겠습니다.”
“이전의 아그네스 영애는 자신의 조금 부족한 모습이 보이더라도, 언제나 당당한 태도를 보이셨는데, 오늘은 어째서 그렇게 화를 내셨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요리야말로 공작 영애의 필수 덕목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전 대체 뭐에 그렇게 화가 나 있던 거죠?
“아마도…….”
“아마도?”
“처음 그 쿠키를 만들었을 때. 원래대로라면 니콜라스 왕자에게 줄 선물로 만든 쿠키였는 데……실패해 버렸다는 사실을 들키고, 받을 사람이었던 니콜라스 왕자가 조롱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네?”
아, 아니.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요. 이렇게 말해버리면 제가 마치니콜라스 왕자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진 것같잖아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변덕이었던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제 대답이 니콜라스 왕자에게는 나쁘지 않았던 건지, 미소를 지으며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것으로 알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