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물약 제조 의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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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나와 에리자에게 ‘화상 치료의 물약’을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에리나 양과 에리자 양을 떨어지게 하지도 않고, 제 시종으로 고용하지도 않고, 후에 제이스와 두 사람을 이어주는 방법, 그것이 ‘화상 치료의 물약’의 위탁 제조입니다.
머리카락의 색을 바꾸어서 쌍둥이임을 감추는 것은, 그저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화상 치료의 물약을 위탁 생산하게 되면 외부에 얼굴을 드러낼 일이 많아질 테니까요.
“괜찮으십니까? 에리나와 에리자는 며칠 전 겨우 일곱 살이 되었을 뿐인 아이들입니다.”
“미래에 놀랄 정도로 명석하게 자랄 아이들이겠죠.”
에리나 양과 에리자 양의 잠재적인 능력은 벌써 보이니까요.
“우선, 에리나 양에 대해서 제가 느낀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머리카락을 자주색으로 염색한, 예의는 조금 부족하고 대신 지식에 대한 열망이 높은 쪽의 쌍둥이입니다.
“에리나 양은 지식에 대한 열망이 정말 높은 아이입니다. 처음 만난 날에도 호기심이 많아서 저희 가문의 저택을 탐험했었죠. 머리카락을 염색할 때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해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염색이 진행되는 네 시간 동안 제가 하는 잡학 지식 이야기를 빠짐없이 듣기도 했고요.”
“저희 에리나는 확실히 호기심이 많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똑똑하다고 말씀하시는 건 과찬이 아니십니까?”
“에리나 양, 왕궁에서 다이아몬드를 가공할 때 어떤 방법으로 하나요?”
“다이아몬드 가루를 묻힌 틀에 맞춘 뒤, 돌려서 갈아내는 방식으로 가공해요! 그리고 그때 생긴 다이아몬드 가루로는 다른 다이아몬드를 가공할 때 사용하고요!”
“메이드들의 복장은 왜 항상 긴 치마일까요?”
“알렉산드로스 왕국의 일곱 번째 군주인 스테파니아 여왕님이 일하는 여자의 복장은 발목이 보이면 안 된다고 하셨기 때문이에요!”
“돌격부대인 제7 기사단의 상징은 왜 캥거루인가요?”
“캥거루는 후진할 수 없으니까 후퇴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요!”
예상은 했지만 역시 대단하네요. 4시간 동안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도 에리나 양은 놀랍게도 전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방금 제가 에리나 양에게 물어본 것들은, 머리카락의 염색을 하는 중 ‘단 한 번’ 만 말해준 이야기입니다. 즉, 에리나 양은 호기심이 많을 뿐만이 아니라 그 호기심을 자신의 지식으로 갖추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요.”
“……저는 에리나가 조금 자유분방한 아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그네스 님은 벌써 거기까지 파악하고 계셨군요.”
“저도 에리나의 어머니인데, 저런 재능을 가진 아이인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 부끄럽네요.”
빅토르 님과 디아나 부인이 에리나 양이 갖고 있던 특별한 재능에 굉장히 놀란 것 같으시네요.
“그리고 에리자 양은 굉장히 예의가 바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입니다. 지난주에 제가 방문했을 때, 네 사람이 앉아 있던 위치를 기억하십니까?”
이번에는 머리카락을 염색하지 않은, 연두색 머리의 예의가 바르고 얌전한 쪽의 쌍둥이에 관하여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와 제 아내가 한쪽 소파에 앉고, 제 맞은편에는 아그네스 님이, 아그네스 님의 왼편에는 에리자가 앉았었죠.”
“이 나잇대의 어린아이라면 누구보다 어머니와 함께 있으려고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게다가 그 날 나중에 들어온 에리나 양은 응접실에 들어온 이후 내내 디아나 부인의 곁에 있었지만, 에리자 양은 제가 떠나는 순간까지 제 옆에서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손님인 제 표정을 살피면서 불편한 것이 있는지 계속 확인해주었고, 식사 예절도 전혀 손색이 없었습니다.”
“에리자는 에리나와는 다르게 일찍이 사교계에 많이 데리고 다니면서 예절 지식을 많이 가르쳐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두 사람의 가능성을 보고 맡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식의 흡수가 빠른 에리나 양이라면 화상 치료의 물약에 대한 제조법도 쉽게 배우고 금방 스스로 만들 수 있게 되겠죠. 하지만 다소 주의력이 산만한 에리나 양에게만 맡기기에는 조금 불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에리자 양이 옆에 있어 준다면, 조금 불안한 에리나 양이 실수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에리나 양도 에리자 양이 옆에 있어 준다면 다른 쪽으로 주의력이 흩어지지는 않을 것 같으니까요.”
덤으로는 두 사람에게 제조법을 맡겨서 함께 만들게 한다면, 바빠서 사교 활동도 적어질 테니까요. 혹시라도 제이스와 약혼하기 전 다른 영식과 눈이 맞아 약혼이 진행되어 버리면 제이스가 불쌍하잖아요.
“하지만 그것만이라면, 아그네스 님이 맡길 수 있는 다른 기술자에게 맡기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에리나와 에리자의 능력을 높게 사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아직은 일곱 살의 어린아이입니다.”
“제가 화상 치료의 물약을 에리나 양과 에리자 양에게 맡기려고 하는 이유는, 적어도 다섯 가지는 더 있습니다.
첫째, 저는 ‘화상 치료의 물약’의 생산만을 위탁하는 한정된 계약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제 동생인 제이스는 이미 다섯 살 때 두근거림의 묘약을 만들고, 앙겔로풀로스에 입양된 후 반년 만에 화상 치료의 물약이라는 성과를 만들어 낼 정도의 우수한 아이입니다.
틀림없이 앞으로도 신약 개발을 계속해주겠죠. 저는 앞으로도 새롭게 개발되는 물약들도 가능하면 같은 사람에게 위탁 제조를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만들게 될 다른 물약들의 제조법들도 배우고도 원래 배웠던 물약의 제조법도 잊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좋겠죠. 에리나 양의 능력은 그것에 최적이라고 생각하고요. 이것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둘째, 솔론 남작 가문의 영지의 특수성 때문입니다. 빅토르 님은 이전에 희토류가 많이 섞인 토양이 농사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도자기를 만드는 등에는 유용하다고 하셨죠?
물약의 제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약에 제조에 들어가는 재료는 약초나 식물의 기름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광물의 가루도 물약의 재료가 됩니다. 그런 광물들은 솔론 남작 가문 영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희토류에 특히 많이 포함되어 있죠. 즉, 솔론 가문에서 직접 생산을 맡아주시면 물약의 원가율이 낮아지기에 더 많은 이득을 볼 수 있겠죠. 이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셋째, 솔론 남작 가문과 저희 앙겔로풀로스 공작 가문은 오랫동안 교류해 온 사이이기 때문입니다. 화상 치료의 물약이 상상 이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켜, 구매 의사를 내비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협력하여 같이 생산하자는 제의도 많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섣부르게 아무 귀족분의 제의를 받아버리면, 선택받지 못한 다른 귀족들에게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겠죠.
그런 면에서 솔론 가문은 ‘화상 치료의 물약’이 개발되기 이전은 물론이고, 제가 니콜라스 왕자님과 약혼하기 이전부터도 교류해 온 가문입니다. 그렇기에 제가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고, 저희 앙겔로풀로스 가문으로서도 솔론 가문에게 의뢰를 맡기면 ‘자기 사람 챙기기’ 가 됩니다. 귀족들 사이에서 자신과 친한 세력에게 편의를 봐 주는 행위는 당연한 현상이니까 불만의 목소리도 많이 줄어들겠죠. 이것이 세 번째 이유입니다.
넷째, 제조한 물약의 판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현재 밀려 있는 ‘화상 치료의 물약’의 예약분을 모두 판매하고, 물량이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면 ‘화상 치료의 물약’은 상시판매로 전환할 예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판매를 도와줄 수 있는 세력이 필요한데, 그 부분으로는 제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화상 치료의 물약’이 발명되기 이전부터 저와 오랫동안 교류한 세이타리디스 가문에게 맡길 예정입니다.”
이미 아리아나에겐 이번 주 두 번째 요일에 말해 놓았으니까요. 물론 동의도 받았습니다.
“그 세이타리디스 가문의 영지는 솔론 가문의 영지에서 멀지 않습니다. 판매하기 위한 운송 비용이 절약되겠죠. 게다가 상업 귀족인 세이타리디스 가문의 장사 수완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으시죠? 이것이 네 번째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솔론 가문의 부흥을 제가 원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전에 답례로 받은 유리로 만든 오르골……아름답기도 정말 아름답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정교하고 많은 부분에서 노력과 기술이 엿보였습니다. 빅토르 님은 집안 곳곳에 솔론 남작 가문에서 생산한 예술품을 장식하실 정도로 이 영지에서 생산되는 예술품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계십니다.
만약 영지가 빚으로 인해 다른 귀족에게 팔려갔을 때, 그 귀족분께서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예술품에 대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이 영지에 계신 많은 장인 여러분의 기술이 손실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와의 협업을 통한 수익으로 빚을 갚고, 영지의 운영을 계속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영지가 다른 곳에 팔려나가지 않는다면, 에리나 양과 에리자 양을 급하게 다른 귀족에게 팔려가듯이 약혼시키는 대신,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그녀들에게 맞는 약혼자를 찾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이것이 마지막 이유입니다.”
……저 실수하지 않고 잘 말한 거 맞죠? 아직 재능이 개화되지 않은 에리나 양과 에리자 양에게 이 업무를 맡기고 싶어서 억지로라도 최대한 많은 이유를 생각해왔습니다. 그리고 틀리지 않고 제대로 논리적으로 말하기 위해 대본으로 쓰고 몇십 번이나 다시 읽어봤고요.
일단 화상 치료의 물약에 관해서는 제 머릿속에서는 에리나 양과 에리자 양에게 맡기는 것보다 좋은 계책은 없습니다. 그리고 한시바삐 물약 생산을 시작해서 날아오는 편지 세례를 줄이는 것이 급하기도 하고요. 벌써 하루에 5시간 이상 잔 게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고요. 만약 이 정도의 이유를 말했는데도 받아주시지 않는다면 전 어떡해야 하죠…….
“아그네스 님.”
빅토르 님이 진지한 얼굴로 제게 말했습니다. 표정만으로는 아직 어떤 대답을 하실지 짐작할 수 없네요.
“진심으로 아그네스 님의 말씀에 감동했습니다. 아그네스 님은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미래 지향적으로 많은 이유를 생각하여 합리적이면서도 저희 가문을 위한 선택을 해주셨다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아그네스 님의 선택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맡겨 주신 의뢰를 반드시 완벽하게 수행해 내겠습니다. 에리나, 에리자, 너희들도 아그네스 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겠니?”
“물론이에요! 아그네스 언니의 말씀이니까요!”
“저도 아그네스 님의 세심한 말씀에 감동했습니다.”
다행히 무사히 받아주시는 것 같네요. 그러면 구체적인 계획의 틀이 잡혔으니, 몇 주간 기술 이전을 해고, 몇 개월간 공방을 짓고, 1~2년 내로 생산을 시작하면 됩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정도로 느긋하게 일이 진행되었다가는 저는 밀려오는 편지의 산에 파묻혀서 진작에 죽어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기술 이전을 위해 오늘 에리나 양과 에리자 양을 저희 저택으로 데려가도 될까요. 아마 다음 주 첫째 요일 아침에는 기술 이전이 끝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공방의 설계도도 드릴 테니 최대한 빠르게 생산을 시작할 수 있도록 공방을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최대한 빠르게 모든 일을 진행해서 적어도 다음 주부터는 생산을 시작해야 합니다. 설계도는 이미 제이스에게 검수도 받았으니까요. 화상 치료의 물약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시설과 재료에 대해서는 대부분 적혀 있습니다. 솔론 가문에서 구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하는 물건들과 첫 생산분의 재료는 기술 이전이 끝나는 날 아침에 에리나 양과 에리자 양을 통해서 같이 보낼 예정이고요.
“그렇게 하시죠. 저희도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침 빅토르 님도 일을 빠르게 진행하고 싶은 모양이시네요. 솔론 남작도 빚이 많으니, 가능한 한 빨리 수익을 내서 빚을 갚고 싶으실 테니까요.
“그럼 에리나 양, 에리자 양. 앞으로 이틀 밤 정도 앙겔로풀로스 가문에서 지낼 때 필요한 짐을 챙겨서 와주세요. 오늘 저녁은 앙겔로풀로스에서 먹을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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