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시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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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자 양이나 에리나 양을 시종으로……생각해 본 적 없는 이야기네요.
우선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에리자 양도 에리나 양도 우수하게 성장할 가능성이 크기에 나쁜 이야기는 아닙니다.
쌍둥이이지만 두 사람은 내면은 유의미하게 차이가 납니다. 에리자 양은 다른 귀족에게 시집을 보낼 생각이었기에 교양과 예절, 사교댄스 같은 것을 먼저 교육했고, 에리나 양은 영지를 물려줄 생각이었기에 정치, 경제, 외국어 같은 것을 먼저 교육했으니까요.
그래서 에리자 양은 예의가 바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읽는 대신, 전반적인 지식은 조금 부족합니다. 반대로 에리나 양은 배운 지식을 직관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난 대신 예의는 조금 부족하고 정신이 산만하죠.
두 사람 다 시종으로 삼기에는 장단점이 있지만, 모자란 부분은 교육으로 메울 수 있습니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생성된 성격까지 바뀌지는 않겠지만요.
장점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두 사람 중 한 명을 시종으로 삼게 되면 단점도 존재합니다.
가장 걸리는 것은, 마리가 너무 우수하다는 거겠네요. 제 메이드로서의 역할도 언제나 완벽하게 해 주면서, 유사시에는 마차도 운전할 줄 알고, 성인 남자 몇 명 정도는 혼자서 상대할 수 있는 경호 실력도 갖추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잊어버린 물건이나 약속을 알려준 적도 많고, 제가 저지른 일을 수습한 적도 많습니다. 게다가 입도 무겁고요. 저희 가문에서 고용하기 전까지는 왕궁에서 일하기 위해 교육을 받았다고 하니까요. 어떤 연유로 앙겔로풀로스에 흘러들어오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어쨌든 이런 올라운드형 메이드를 두고 다른 사람을 추가로 고용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이야기죠. 물론 에리자 양이나 에리나 양을 고용해서 마리의 일을 줄이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 교육은 마리의 몫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온전한 시종 일을 깨우칠 때까지는 오히려 마리에게 더 부담될 수도 있겠죠. 그리고 마리의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이미 마리의 수준 높은 서비스에 눈이 높아진 제가 만족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에리자 양과 에리나 양 중 한 명만 고용하는 것도 별로 좋지는 않습니다. 에리자 양과 에리나 양의 자매애는 꽤 깊으니까요. 제가 고용해서 억지로 갈라지게 만드는 것보다는, 제이스가 두 사람을 받아들여 주기를 기다리는 편이 좋겠죠. 두 사람 다 제 시종으로 고용하는 것은 다른 부담이 되고요.
그렇기에 일 년 정도만 기다리면 에리자 양과 에리나 양을 모두 제이스가 책임질 테니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정당한 근거 없이 그런 말을 확답처럼 드릴 수는 없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제이스에게 말하지 않고 제가 멋대로 정해버려도 안 될 일이고요.
“일주일 정도만 대답을 기다려주실 수 있을까요?”
일단 이 자리에서 제가 혼자 정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선 조금 더 생각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 만약 시종으로 고용한다고 해도 부모님과 상의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아무쪼록 좋은 대답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그럼 다음 주 이 시간에 오겠습니다.”
“잘 가요! 아그네스 언니!”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아그네스 님.”
“네, 에리나 양도 에리자 양도 안녕히 계세요.”
선물로 받은 오르골을 갖고 마리의 마차에 올라탔습니다. 제가 올라탄 것을 확인한 마리가 말을 몰기 시작하고,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나며 저택에서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솔론 가문의 저택이 시야에서 사라질 무렵, 마리가 제게 말했습니다.
“아그네스 님이라면 당연히 시종으로 데려오실 줄 알았는데, 의외시네요.”
“제가요? 하지만 그런 걸 제가 그 자리에서 혼자 정할 수는 없잖아요. 만약 고용한다고 해도 두 사람 중 누구를 시종으로 고용할지도 고민해야 하고요.”
“아그네스 님은 신의 실수를 차별하지 않으시니까, 당연히 두 사람 다 고용하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욕심도 많으시잖아요.”
“……욕심이 많다니요. 확실히 예전의 저는 사치품을 밝히고 이기적인 영애였지만, 최근에는 과거의 저를 반성하고 낭비를 부리지 않고 원활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려고 하고 있어요.”
“가까이서 지켜본 감상을 말씀드리면, 수집하는 것이 사치품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바뀐 것이라고만 생각되네요.”
다른 것이라니 무슨 말이죠? 그런데 듣고 있으니 마리는 내심 제가 쌍둥이 영애를 시종으로 고용하기를 원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제가 모르는 사이 마리에게 무리를 시켰던 걸까요. ……아니면, 설마.
“마리, 혹시 제 전속 사용인 그만둘 거에요?”
“어떤 과정에서 그런 생각에 도달하신 건지 모르겠지만, 당분간 그런 예정은 없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래도 혹시 그만둘 거라면 미리 말해 주세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마리가 없으면 매주 세 번씩 찾아오는 니콜라스 왕자를 상대할 때 불안하단 말이에요. 뭔가 최근에 니콜라스 왕자는 방문하시면서 일부러 제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하거나, 가까이 붙어서 귓속말로 공포심을 유발하고 있으니까요.
만약 마리가 그만둘 예정이 있다고 해도, 에리나 양이나 에리자 양을 시종으로 삼는 것은 불안 요소가 남겠네요. 사용인으로 데려온 에리나 양이나 에리자 양이, 제이스와 눈이 맞아 약혼자가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만약 그렇게 되면 전 한동안 전속 사용인이 없이 니콜라스 왕자와의 회담을 진행해야 한다고요. 응접실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왕자 측 사용인밖에 없으면 니콜라스 왕자가 저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아요.
“직접 만나 뵈고 나니, 에리나 양과 에리자 양은 신의 실수라고는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닮지는 않았군요.”
혹시라도 마리가 사라졌을 때를 가정하여 몸을 떨고 있으니, 이번에는 마리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빅토르 남작이 처음부터 다른 목적으로 기른 아이들이니까요. 겉모습은 순간적으로 구분하기 힘들어도, 한두 마디만 대화하면 아마 누구든지 구분할 수 있을 거예요.”
“겉모습이 아주 조금만이라도 달랐으면, 연년생 자매라던가 입양한 아이라고 핑계를 댈 수 있었을 텐데요.”
“그렇겠죠. 빅토르 남작이 신의 실수를 극복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다른 사람의 눈만 조심하면 되니까요. 두 사람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이라는 첫인상을 줄 수 있으면……아.”
에리나 양이나 에리자 양을 시종으로 삼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솔론 가문의 저택에 방문한 다음 날, 제이스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제이스, 있어요? 들어가도 될까요?”
“아그네스 누나십니까. 들어오셔도 됩니다.”
제이스의 허락을 받고 연구실에 들어왔습니다. 제이스는 무언가 약초로 보이는 것을 재단하면서, 다른 곳에는 버섯같이 생긴 것을 말리고 있고, 연구대의 한쪽 끝에서는 거름망에 어떤 혼합물을 거르면서 액체를 추출하고 있네요.
“오늘은 어쩐 연유로 오셨습니까. 혹시 화상 치료의 물약 제작 때문입니까.”
“그것 때문은 아니에요. 그냥 어떤 식물에서 성분을 좀 추출하고, 말려서 가루 형태로 만들려고 하는 데 제이스의 도움을 받으려고 왔어요.”
“그런 것이라면 얼마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제이스가 믿음직스럽네요. 식물이나 약을 다루는 방면에서는 저보다 훨씬 자세히 알고 있으니 믿을 수 있겠죠.
“그래서 어떤 식물에서 어떤 성분을 추출하시는 겁니까.”
“이거에요.”
제이스에게 마리가 가지고 온 상자에 가득 찬 헤나 잎을 보여줬습니다.
“이건, 헤나 잎입니까.”
“와, 제이스는 보기만 해도 알아요?”
“헤나는 식용 색소로 많이 사용합니다. 제가 처음에 ‘두근거림의 묘약’을 만들 때도 사용했습니다. 무색보다는 붉은 색소를 조금 섞어서 분홍색의 느낌이 드는 것이 조금 더 ‘두근거림의 묘약’ 다우니까요.”
그러고 보면 ‘물약 상인’ 제이스가 파는 물약들도 모두 색이 다르네요. 제작진이 구분하기 편하게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뒤편에는 제이스의 이런 섬세한 과정이 숨어 있었네요.
“헤나 잎에서 추출하는 성분이라면, 역시 붉은 염료입니까.”
“네, 맞아요. 염색에 사용하려고요.”
“그렇다면 제가 한번 해 본 적이 있으니, 그 과정대로 설명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부탁할게요, 제이스.”
이럴 때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좋네요. 원작에서의 아그네스와 제이스 사이였다면 상상도 못 할 광경이겠죠. 제 오지랖과 실수로 몇 가지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이 생기기도 했지만, 적어도 제이스와 아그네스가 누나 동생 관계로 사이가 좋아진 것은, 아직은 좋은 방향으로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네요.
“우선, 헤나는 붉은 계열 염료이므로 강산성 용액을 사용해서 추출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선 0.1M 농도의 염산 수용액을 사용해서…….”
그 이후로는 제이스의 도움으로 큰 어려움 없이 헤나에서 붉은 색소를 뽑아낼 수 있었습니다. 조금 많이 뽑은 것 같기도 하지만, 모자란 것보다는 낫겠죠.
“이제 용액을 넓은 판에 펼쳐서 말리면 됩니다. 그렇게 수분을 빼고 분쇄하면 가루 형태의 헤나 염료가 됩니다.”
“말리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12시간 정도면 충분히 빠지기는 하지만, 완전히 건조하려면 48시간 정도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 정도면 여유롭네요. 고마워요, 제이스. 연구하느라 바쁠 텐데 시간을 뺏어서 미안해요.”
“……저야말로 바쁜 아그네스 누나의 시간을 뺏어서 죄송합니다.”
“어……무슨 이야기인가요?”
“제가 선물로 드린 화상 치료의 물약의 권리 때문에 요즘 일이 많아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했어야 했는데, 선물을 잘못 드린 것 같습니다.”
제이스는 제가 최근 무차별적으로 날아오는 편지의 답장을 쓰느라, 제대로 된 생활이 안 되는 것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제이스가 제게 양도한 화상 치료의 물약 때문에 요즘 바빠진 것은 맞지만……그래도 제이스가 앙겔로풀로스에 온 뒤로 처음 개발한 연구 성과를 온전히 제게 준 것 아닌가요? 그 마음 자체가 저는 너무 기쁘니까요.
그리고 언제나 저보다는 제이스의 연구가 우선이니까요. 니콜라스 왕자를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기 위해서는 제이스의 물약은 필요합니다. 정식으로 결혼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니콜라스 왕자가 저와 결혼하기 전인 10년 내로 어떻게든 승부를 봐야 하니까요. 차라리 지금 10년 정도만 고생해 놓고 미래의 60년을 행복하게 사는 편이 훨씬 낫죠.
“마음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리고 제이스 덕분에 화상 치료의 물약에 관한 이야기는 가까운 시일 내에 해결될 것 같으니까요.”
“제가 무언가 한 게 있습니까.”
“후후, 비밀이에요.”
어디까지나 계획대로 잘 풀렸을 때의 이야기지만요. 그때까지만 수험생으로 돌아간 기분으로 야간 자율학습, 아니, 야간 답장학습을 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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