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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영애는 왕자님을 양보하겠습니다-29화 (29/86)

〈 29화 〉 쿠키를 구웠습니다

* * *

“그럼, 시작해보죠.”

잭에게 안내를 받아 들어온 곳은, 왕궁의 주방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왕궁에서 사용하는 여러 개의 주방 중, 오늘은 사용되지 않는 주방입니다. 지금 이 장소에서 니콜라스 왕자에게 줄 선물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아그네스 님. 이곳에서 무엇을 하실 생각입니까?”

“쿠키를 만들 거에요.”

제가 그렇게 말하자 잭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그네스 님은 쿠키 만드는 게 취밉니까?”

“아니요. 오늘 처음이에요.”

“그렇다면 대체 왜…….”

“어제 저와 니콜라스 왕자가 했던 얘기, 잭도 듣고 있었죠?”

“……무슨 이야기를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입이 무거운 건 사실인 것 같네요. 우선은 잭에게 제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니콜라스 왕자에게 탄생일 선물을 줘야 하는데, 급하게 오느라 그만 앙겔로풀로스에서 가져오지 못했던 일을 말입니다.

“그래서왕궁 내에서 준비할 수 있는 직접 구운 쿠키를 선물로 드릴 생각이에요.”

“그렇다면 대답으로는 편지가 아닌 선물을 드리기로 하셨군요.”

“역시 어제 듣고 있었잖아요.”

“……무엇을 들었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니콜라스 왕자의 전속 사용인다운 뻔뻔함이네요.

“아직 결정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준비는 해 둬야 할 거 아니에요. 선물을 드리기로 해 놓고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돌멩이를 줄 수는 없잖아요.”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하니까요.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 님께서는 아그네스 님에게 받는 선물이라면 길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라도 정말 기쁘게 받으실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요.”

대체 누가 돌멩이를 받고 기뻐한다는 거예요. 이상한 성벽이라도 갖고 있어요?

“그런데 아그네스 님의 말씀대로라면, 결국 쿠키도 왕궁의 재료와 왕궁의 시설로 만든 물건이 아닙니까?”

“원래 주려고 했던 선물은 다음에 만날 기회 때 드릴 거에요. 지금 만드는 건 니콜라스 왕자에게 드릴 대답으로만 사용할 거니까요. 임기응변이라는 거죠.”

저도 설마 약혼반지라는 선물을 받아 놓고 쿠키 정도로 때울 생각은 아니거든요. 그래도 지금은 어쩔 수 없잖아요.

우선 쿠키를 만들려면 밀가루를 준비해야겠죠. 적당히 밀가루처럼 보이는 걸 그릇에 담았습니다.

“강력분을 사용하십니까?”

“네? 이게 밀가루 아닌가요?”

“밀가루 중에도 강력분이 있고 박력분이 있습니다. 강력분은 빵을 만들 때 사용하고, 박력분이 쿠키를 만들 때 사용됩니다.”

“……이미 부어버렸는데 그냥 써도 괜찮겠죠.”

이다음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었더라……일단 뭉쳐야 하니까 액체를 사용해야 하는데, 아마 우유를 부으면 되겠죠? 전생에 만들었던 컵케이크는 우유를 붓고 만들었던 거 같은데요.

“계란이 아니라 우유로 반죽하시나요?”

“……계란도 넣으려고 했어요.”

“그렇게 두 가지를 다 넣으시면…….”

잭이 옆에서 계속 방해하는 것 같지만, 일단 무시하고 진행하죠. 일일이 끌려다니면 진행이 안 되니까요. 계란을 넣고 반죽을……너무 질척거리는데요. 밀가루를 더 넣어야겠네요.

“이게 박력분이라고 했죠?”

“지금 섞어도 의미가 없습니다.”

“제 요리니까 신경 쓰지 마요.”

“그러면 절 대체 왜 데려오셨습니까.”

“당연히 시식 때문이죠. 니콜라스 왕자가 좋아할 만한 맛은 알고 있을 거 아니에요.”

밀가루를 더 넣으니까 제법 반죽다워졌네요. 그런데 뭔가가 빠진 것 같기도 하고……아, 설탕! 설탕을 안 넣었었네요.

“이미 반죽이 다 된 상태에서 설탕을 넣으면 어떡합니까.”

“반죽에 수분기가 있으니까 충분히 섞일 거에요.”

“애초에 버터도 안 넣으셨습니다.”

“……지금 넣으면 되죠.”

“그러니까 이미 반죽이 다 된 상태에서…….”

사사건건 불만이 많네요. 어차피 반죽 상태에서는 다 섞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반죽도 다 된 것 같으니, 이제 얇게 밀어서 모양을 뜨면 되겠네요.

“반죽 숙성은…….”

“과정마다 일일이 참견하지 마요.”

“시식 안 하면 안 됩니까?”

반죽을 밀대로 밀어서 모양틀로 모양을 내니 제법 그럴싸하네요. 이제 화로에 넣고 굽기만 하면 완성입니다.

“170도에서 13분입니다.”

“그럼 300도에서 7분 30초 정도네요.”

“대체 무슨 계산법입니까.”

“170×13은 2210이잖아요? 300×7.5면 2250이니까 대충 맞죠.”

“차라리 용광로에서 1분을 구우시죠?”

“바보예요? 그러면 쿠키가 타잖아요.”

“…….”

이상한 헛소리를 하는 잭의 말은 뒤로하고 오븐에 쿠키를 넣었습니다. 정확히 7분 30초 후 쿠키를 밖으로 꺼냈습니다.

……이것이, 제가 만든 건가요?

“차라리 반죽하기 전 밀가루 상태일 때가 더 쿠키에 가깝겠네요.”

“……겉은 이래도, 맛은 의외로 괜찮을 수 있잖아요.”

“저는 시식 안 하겠습니다.”

잭의 말은 무시하고 구워진 쿠키를 충분히 식혔습니다. 적당히 식은 쿠키를 하나 들고……큰맘 먹고 입에 넣었습니다.

이, 이 맛은!

“…잭…미안…하지만…어딘가 뱉을……욱!”

“그럴 거 같아서 준비해 두었습니다.”

잭이 건네준 일회용 손수건을 재빠르게 받아 서둘러 내용물을 뱉었습니다.

“……고마워요. 하마터면 돌이킬 수 없을 뻔했네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 아닙니까?”

겉은 타고, 속은 반죽 상태 그대로에, 설탕이 씹히고, 식감도 제멋대로고……여러 가지로 최악이네요. 이런 걸 선물로 줬다가는 현장에서 채찍을 맞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제과라는 것은 정확한 계량과 제대로 된 순서가 필수입니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이번에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안 돼요. 그러면 제가 만든 선물이 아니게 되잖아요.”

“어차피 아그네스 님이 혼자 만드신 것도 선물용은 아닙니다.”

“처음 걸로 무엇이 문제인지 알았으니까 괜찮아요. 다시 시도하면 제대로 만들 수 있어요.”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처음 것보다는 괜찮아지긴 했네요.”

“……그렇죠?”

“배설물에서 음식물쓰레기 정도로 괜찮아졌습니다.”

“……칭찬하는 거 맞아요?”

“칭찬하는 거 아닙니다.”

잭과는 대화를 많이 나눌 기회가 없었는데, 어째선지 익숙한 대화의 느낌이 드네요.

“그래도 발전했으니까 의외로 괜찮을 수도 있잖아요. 맛을 보면……우욱!”

“손수건 여깄습니다.”

두 번째 시도도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어떡하죠. 슬슬 만들지 않으면 시간이 부족할 텐데요.

“아그네스 님. 저는 지금 갑자기 쿠키가 만들고 싶어졌으니까, 여기 있는 재료를 사용해서 만들겠습니다. 어쩌면 만드는 방법을 말하면서 만드느라 신경이 쓰이실 수도 있지만, 미리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해요.”

두 번이나 실패했으니까, 여기서 고집을 부리면 안 되겠죠. 잭이 만드는 걸 보고 그대로 따라서 만드는 수밖에요.

“우선 그릇에 버터를 100g 풀어야겠네요.”

“버터 100g…….”

그리고 다시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조리대에는 완성된 쿠키가 올려진 두 개의 플레이트가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제 것이고, 하나는 잭이 만든 것입니다.

“대체 왜……이번엔 그대로 따라 했는데…….”

“제가 생각해도 의문이네요. 왜 아그네스 님이 만든 쿠키는 망……이렇게 되었는지요.”

이번에 만든 쿠키도 실패였습니다. 혹시나 해서 완전히 똑같은 과정으로 만든 잭의 쿠키도 먹어봤는데,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맛있게 구워져 있었습니다.

“아그네스 님, 저는 입이 무겁습니다.”

“고마워요. 이 실패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내지 않아 줘서…….”

이런 방사성 물질을 만드는 영애라고 소문이 나면 창피해서 얼굴도 들고 다니지 못합니다.

“물론 그 비밀도 지켜드리겠습니다. 근데 그것이 아니라, 제가 만든 쿠키를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 님에게 드리는 건 어떻습니까?”

“네?”

잭에 입에서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었던 제안이 튀어나왔습니다.

“쿠키에 이름이 적힌 것도 아니고, 제가 만든 것인지 아그네스 님이 만드신 것인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그건 안 돼요.”

“비밀은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순간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러 버렸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계속되는 실패와 시간 압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해요, 소리를 질러서.”

“아닙니다, 아그네스 님.”

“……니콜라스 왕자는 제게 진심을 고백해주셨는데, 제가 그 대답으로 거짓말투성이 선물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원래 드리려고 했던 선물을 못 전하게 된 것도 죄송스러운데, 그런 과정은 엉망이고 결과만 좋게 끝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선물을 드리는 건 해선 안 될 일이에요.”

“저야말로 생각이 짧았습니다. 면목 없습니다, 아그네스 님.”

이제 시간도 없고, 지금 만들어도 전야제 전까지는 완성하기 힘들겠죠. 다시 만든다고 성공할 거라는 보장도 없고…….

“아그네스 님. 일단 오늘은 전야제 준비를 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이 장소는 제가 아무 흔적 없이 정리해 놓겠습니다.”

“알겠어요. 미안해요, 잭.”

결국에는 다시 소득이라고는 없이, 시간만 소모한 채 주방을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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