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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영애는 왕자님을 양보하겠습니다-27화 (27/86)

〈 27화 〉 납치당했습니다

* * *

제이스가 방금 내뱉은 말에 순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그네스 누님에게는, 이 ‘화상 치료의 물약’에 대한 모든 권리를 드리겠습니다.’

농담이겠죠? 제이스가 앙겔로풀로스에 와서 처음 만든 성과인데요. 혹시 ‘모든 권리’에 대해서 잘못 알고 말한 게 아닐까요?

“제이스, ‘모든 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나요?”

“‘화상 치료의 물약에 대한’ 저작권, 제조법, 총판권, 홍보권, 독점권, 그 외에 이것으로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권리입니다. 당연히 물약에 관한 기술 이전도 하겠습니다.”

……잘 알고 있네요. 심지어 저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화상 치료의 물약은 제이스가 앙겔로풀로스에서 처음 만든 연구 성과잖아요. 제 탄생일 선물이라고 해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발명품을 제게 주면…….”

“처음으로 만든 특별한 의미가 있는 발명품이기에 드리는 겁니다.”

완고하네요. 하지만 정말로 받아도 될까요…….

“아그네스 누나, 부디 받아주세요.”

이 이상 거절하는 것은 제이스에게도 실례겠죠. 진심인 것 같으니 어쩔 수 없겠네요.

“감사히 받을게요. 의미 있는 선물을 줘서 정말 고마워요.”

생각해보니 이 물약에 대한 권리를 제가 받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네요. 이 정도의 홍보를 했으니 앞으로 화상 치료의 물약에 주문이 엄청나게 들어올 테고, 연구하느라 바쁜 제이스보다는 제가 권리를 가지고 있는 편이 대응하기가 좋겠죠.

하지만 여기 계신 분들이 화상 치료의 물약의 효과를 진짜로 믿을지는 모르겠네요. 제가 화상이 난 것처럼 낙서하고, 제이스가 그냥 비눗물로 씻겨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저도 이 물약의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요.

“그리고 오늘 아그네스 누님의 탄생일 잔치에 참석해준 내빈 여러분에게는, 이 ‘화상 치료의 물약’을 1인당 1병씩 무상으로 드리겠습니다. 사용 방법은 화상으로 흉터가 난 부위에 보셨던 것처럼 상처를 씻어내듯이 흘려주면 됩니다.

화상 부위에 다른 복합적인 상처가 있으면 효과가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화상 부위가 너무 큰 경우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이스가 화상 치료의 물약에 대해서 손님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확실히 직접 사용해 볼 수 있게 하면, 의심하는 말도 많이 줄어들겠죠. 역시 빈틈없이 준비해 놨었네요.

제이스가 화상 치료의 물약을 나눠주는 데 시간이 많이 소모되어서, 결국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모든 행사가 끝이 나게 되었네요. 손님 대부분은 거의 다 돌아가셨고, 니콜라스 왕자, 파노스 왕자, 아리아나 정도만 마지막까지 남아주었습니다.

“다들 마지막까지 물약을 나눠주는 데 도움을 주셔서 고마워요. 니콜라스 왕자는 또 내일부터 바쁘실 텐데…….”

“이미 준비는 다 해 놓고 왔으니까 염려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다 같이 했으니 이제라도 끝난 게 아니겠습니까.”

“전 아그네스 님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밤도 샐 거에요.”

세 사람의 도움 덕에 행사가 빨리 끝났으니, 내일의 일정을 위해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네요.

“아그네스 영애,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겁니다만, 제 탄생일 축제에는 참여하십니까?”

니콜라스 왕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약혼자인 제가 제1 왕자의 탄생일 축제에 참석하지 않을 리가 없죠. 니콜라스 왕자가 제 탄생일에 오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감당할 수 없는 풍문이 돌아다닐 테니까요.

“당연히 전날인 내일부터 참여하겠죠. 마차가 많아서 왕도도 혼란스러울 테니 아침 일찍 출발할 생각이에요.”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 저희와 함께 가시고, 왕궁에서 하룻밤을 주무시는 건 어떻습니까.”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했더니,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디어인데요? 원래 세계에서도 명절 당일에 차가 막히는 걸 대비해서 하루 일찍 내려갔던 것을 생각하면, 니콜라스 왕자의 제안은 타당해 보이네요. 내일부터 사흘간 니콜라스 왕자의 탄생일 축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데, 첫날부터 피로가 쌓이면 힘들기도 하고요.

“좋은 생각이네요. 그럼 그렇게 할까요.”

“그럼, 지금 당장 출발합시다.”

그렇게 말한 니콜라스 왕자는 갑자기 제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습니다.

“네, 네?!”

저도 얼떨결에 손을 잡힌 채 니콜라스 왕자와 함께 뛰었습니다. 아직 정리해야 할 게 많은데요?!

“자, 잠깐만요. 부모님께 설명해 드려야……”

“제가 미리 말해 두었습니다.”

“저희 마차도 꺼내야 하고……”

“제가 타고 온 마차에 타시면 됩니다.”

“마리……가 아니라 저희 사용인이 없으면 내일 치장하는 데 문제가……”

“왕궁에는 몸단장만 전문으로 하는 사용인만 해도 열 명이 넘습니다.”

“파노스 왕자는요? 기다려야 하지 않나요?”

“처음부터 마차를 두 대 가져왔습니다.”

니콜라스 왕자는 제가 물어본 문제를 하나씩 하나씩 반박했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저는 얼떨결에 니콜라스 왕자와 마차에 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차 문이 닫히기 전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형님, 잠시 기다리십시오!”

“니콜라스 왕자! 아그네스 님을 놔주세요!”

“아그네스 누나, 그 마차에 타면 안 됩니다!”

급하게 저와 니콜라스 왕자를 쫓아오고 있는 세 사람이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빠른 파노스 왕자가 저와 니콜라스 왕자가 탄 마차에 도착하기 직전,

“잭! 빨리 출발해줘!”

“이미 달리고 있습니다.”

마차는 아슬아슬하게 세 사람을 따돌리고 왕궁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니콜라스 왕자와 단둘만 남았습니다. 니콜라스 왕자가 앙겔로풀로스에 방문하는 날에도 둘이서만 이야기하지만, 그래도 마리와 잭은 항상 동석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마리도 없고, 니콜라스 왕자의 사용인 잭은 마차를 운전하느라 전혀 뒤쪽을 볼 생각이 없는 듯하네요.

“겨우 따돌렸습니다.”

“따돌리다니요……다 같이 가면 소란도 일으키지 않고 좋잖아요.”

이 좁은 공간에 목격자도 없이 니콜라스 왕자와 둘뿐이라니, 뭔가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알아서 잘들 따라오실 겁니다. 앙겔로풀로스에서 왕궁으로 가는 길은 하나뿐이니까요. 아그네스 영애에게는 죄송하지만, 왕궁으로 가는 몇 시간이라도 좋으니 아그네스 영애와 단둘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요. 일주일에 세 번씩 와서 떠들면서도 아직도 할 이야기가 남았나요?

“아그네스 영애는, 처음 만난 날 이런 말씀을 하셨죠.”

……뭔가 느낌이 심상치가 않은데요. 처음 만난 날이라고 하면 제가 시작부터 끝까지 니콜라스 왕자에게 시비를 건 내용밖에 없잖아요! 지금 단둘이 남은 이 순간 그 얘기를 꺼냈다는 것은……설마 결혼하기도 전에 단죄 장면이 시작되는 건가요?!

“어, 어, 어떤 말을 했을까요, 제가? 하하하…….”

니콜라스 왕자의 눈을 피해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좀 더 당당하고 일곱 살 다운 뻔뻔함을 가진 사람이 취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꺄악! 틀림없어요! 저 말을 꺼냈다는 것은 100% 이 자리에서 복수하기 위해 뭔가 할 작정이에요!

어차피 결혼 후의 일이라고 너무 방심하고 있었어요. 언제든지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했어야 했는데!

“그런 말씀을, 드렸던 것 같기도 하네요.”

일단 기억이 안 나는 척 부정을 해 보았습니다.

“아그네스 영애의 그 말을 듣고, 저는 이전과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어리광도 부리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른 사람에게 제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부탁을 드리는 것도 이제는 망설이지 않습니다.

지금의 저는 어떻습니까. 아그네스 영애가 말씀하신, ‘당당하고 일곱 살 다운 뻔뻔함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까?”

……어떻게 말하는 게 정답일까요. 뭐라고 말해야 그나마 덜 아픈 고문으로 끝날까요.

‘그래요, 정말 일곱 살에 맞는 당당하고 뻔뻔한 왕자님이 되셨네요.’ →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아그네스 영애는 제게서 도망가실 리가 없으시겠네요.’ → ‘니콜라스 왕자? 그 채찍은 어디서 나온 물건이죠?’ → ‘오늘부터 매일같이 아그네스 영애에게 저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앙겔로풀로스에 다시 돌아가실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 단죄 엔딩.

……아니면,

‘겨우 그 정도로 제가 인정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 ‘그렇습니까? 그럼 아그네스 영애가 말하는 당당하고 뻔뻔한 사람은 이런 것입니까?’ → ‘니콜라스 왕자? 그 채찍은 갑자기 왜 꺼내신 거죠?’ → ‘지금부터 아그네스 영애의 ‘이상형’에 맞게 되기 위한 물건입니다.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 단죄 엔딩.

……어느 쪽이든 단죄 엔딩 아닌가요? 그렇게 노력했는데 결국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의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건가요?

“어떤 의도로 그런 걸 물어보시는 건가요?”

우선, 시간 벌기입니다. 시간을 벌고 정보를 수집해서 최대한 니콜라스 왕자가 바라는 정답을 찾아내야 합니다.

“저는 이제 이틀 뒤에는 여덟 살이 됩니다. 앞으로 이틀만 지나면 아그네스 영애가 말씀하셨던 ‘일곱 살 다운 뻔뻔함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아그네스 영애를 제 약혼자로 삼기 위해 아그네스 영애의 의견도 듣지 않고 제 마음대로 약혼자로 발표했던 것은 아직도 죄송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나름대로 기준을 세웠습니다. 제 여덟 살 생일이 다가오기 전까지 아그네스 영애의 이상형이 되지 못한다면, 미련을 갖지 않고 당신을 놓아드리기로 말입니다.

만약 아그네스 영애 측에서의 약혼 파기가 곤란하시다면, 제가 파기한 약혼이라고 공표하겠습니다. 그러니 저에 대해서 솔직하게 평가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입니다.”

……이 말, 진심인가요? 설마 아니겠죠. 여기서 제가 니콜라스 왕자의 말에 속아 약혼을 파기하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갑자기 표정을 바꾸면서 ‘제게서 도망치실 생각을 했습니까’라고 말하고…….

“…….”

니콜라스 왕자의 긴장한 표정을 보니, 진심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간단하네요. 지금 당장 ‘니콜라스 왕자는 제 취향이 아니에요’라고 말하기만 하면 약혼도 파기되고, ~아스토리아~의 줄거리에서도 퇴장할 수 있습니다. 그토록 바랬던 제 목표가 이루어졌어요.

“니콜라스 왕자…….”

‘죄송하지만, 저랑은 맞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한 문장만 말하면 됩니다. 딱 한 번만, 지금 말할 수 있으면…….

하지만 어째서인지, 입이 전혀 떨어지지 않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실 수 있나요?”

……우선 저에게도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얼마나 드리면 되겠습니까.”

“이틀 뒤, 니콜라스 왕자의 탄생일 당일에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대답을 드리는 방법은…….”

아마 탄생일 축제 당일은 니콜라스 왕자도 바쁠 테니 따로 만나서 이야기할 시간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한 번, 제가 니콜라스 왕자와 만나는 행사가 있습니다.

“니콜라스 왕자에게 제가 약혼자 신분으로 선물을 드리는 행사 때, 드리는 물건을 대답으로 삼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만약 제가 니콜라스 왕자를 인정하면 준비한 선물을 드리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편지만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틀 뒤, 그것으로 대답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 난 후, 마차는 왕궁에 도착했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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