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남동생의 약혼자(예정)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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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나의 아버지와 이야기를 끝낸 뒤, 다시 오늘 해야만 하는 일을 시작해야겠죠. 제이스와 솔론 남작 가문의 영애가 인사를 나누게 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약혼자가 될 사이이므로 제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원래 제이스와 솔론 남작 가문의 영애는 첫 만남 이벤트는 오늘 발생합니다.
원작에서 아그네스와 제이스는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아그네스의 일방적인 괴롭힘 때문이고요. 아그네스는 제이스를 자꾸 귀찮게 굴거나 연구를 방해하고, 제이스는 인간불신 때문에 그런 사실을 부모님에게 알리지 않아서 감정의 골이 점점 깊어집니다.
그래서 제이스는 아그네스의 탄생일 잔치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그네스가 바빠서 괴롭히지 못할 테니, 연구하기 좋은 날이라 생각하여 연구실에 틀어박힌 채 나오지 않고 연구에 집중합니다.
여기서 아그네스의 탄생일 잔치로 방문한 솔론 남작 가문의 영애는, 처음으로 자신의 집과 다른 환경에 호기심이 생겨서 아버지인 빅토르 솔론 남작 몰래 앙겔로풀로스의 저택을 돌아다닙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제이스의 연구실에 들어가게 되고, 집중하여 연구하고 있는 제이스의 모습에 관심을 가집니다.
제이스는 불청객이 자신의 연구실에 들어온 것에 대해 처음에는 화를 내지만, 고집스러운 남작 영애에게 져서 결국 자신의 연구를 지켜보는 것을 허락합니다. 그리고 딸을 잃어버린 솔론 남작이 찾으러 올 때까지 몇 시간이나 질리지도 않고 자신을 지켜보는 남작 영애의 순수함에, 제이스도 약간 마음을 엽니다.
이것 때문에 인간불신이던 제이스도 약혼자가 솔론 남작 가문의 영애로 정해졌을 때, 크게 반발하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결론을 말하면, 남동생이 약혼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오늘 제이스와 솔론 남작 영애와의 만남 이벤트를 진행해야 합니다.
물론, 제이스 루트는 제 단죄 연출하고는 별 상관이 없기에 그냥 제이스가 아무하고 약혼해도, 약혼하지 않아도 제 줄거리에 미치는 영향은 없습니다. 하지만 세 가지 이유로, 가능하면 솔론 남작 영애와의 약혼을 진행해 주기를 바랍니다.
첫째는 앞서 말한 귀족 가문 간의 정치 문제겠네요. 앞서 말한 히에로 가문, 메르쿠리 가문, 솔론 가문이 아닌 다른 가문의 영애와 제이스가 약혼하게 되면, 어떤 특정한 귀족과의 유착이 있다는 소문이 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위의 세 가문 중 하나와 약혼을 진행하는 것이 좋고, 세 가문 중 현재 약혼의 진행이 가능한 가문은 솔론 가문뿐입니다.
예외적으로 최근 급격하게 사이가 가까워진 세이타리디스 가문의 아리아나와 약혼한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아리아나는 니콜라스 왕자 중독이라서 약혼자를 만들지 않으려고 하니까 이것도 자연스럽게 제외되겠죠.
둘째는 제이스를 위해서일까요. 제이스에게도 『사랑과 운명 ~아스토리아~』의 공략대상답게 단죄 연출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제이스의 단죄 연출을 유일하게 소화할 수 있다고 할만한 등장인물은 솔론 남작 가문의 영애뿐입니다. 물론 제이스가 결혼하지 않으면 단죄 연출도 없겠지만, 그래도 전 제이스가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니까요.
마지막으로는 솔론 남작 가문의 영애를 위해서입니다. 솔론 남작 가문의 영애는 귀족 사회에서 치명적인 비밀을 가지고 있는데, 제이스는 그 비밀을 끝까지 지켜주고, 마지막의 단죄 연출을 통해서 해결해주기까지 합니다. 그 과정이 다소 과격하기는 하지만……어쨌든 솔론 남작 가문의 영애는 그 결말을 행복해하니까요. 보기에는 조금 꺼림칙하지만, 서로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이어주는 게 맞겠죠.
그래서 오늘은 두 사람을 우연한 만남을 가장하여 만나게끔 해줘야 하는데, 문제는…….
“아그네스 누나, 슬슬 다음 행사를 준비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연구실에 있어야 하는 제이스가, 지금 제 옆에 있다는 것일까요.
원작에서의 제이스는 아그네스를 원수 보듯이 대하지만, 현재의 제이스는 저와 사이가 나쁘지 않기 때문에 제 탄생일 잔치에 기꺼이 참석하여 준 것입니다. 그 마음은 정말로 고맙지만, 스토리의 진행에는 조금 번거로워지겠네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서요.”
연구실에서의 우연한 만남까지는 힘들더라도, 이 홀 안에서라도 서로 인사를 시켜야겠죠. 그래서 빅토르 솔론 남작이나, 함께 왔던 솔론 남작 가문의 영애를 찾고 있는데, 전혀 눈에 띄지 않네요.
“혹시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님을 기다리십니까.”
“네?”
“계속 두리번거리면서 누군가를 찾고 있지 않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니콜라스 왕자와 파노스 왕자에게도 초대장을 보냈었죠.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 가까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역시 니콜라스 왕자의 탄생일 축제 때문에 바쁘겠죠. 니콜라스 왕자의 약혼자라고는 해도, 겨우 공작 영애인 제 탄생일과는 다르게 니콜라스 왕자의 탄생일 축제는 임시공휴일로 지정될 정도의 국가 행사니까요.
“아, 아니에요. 니콜라스 왕자가 아니라, 다른 일이에요.”
“아무리 바쁘다고는 해도, 약혼자인 아그네스 누나의 탄생일에 방문하시지 않은 건 조금 너무하지 않습니까.”
“니콜라스 왕자도 본인의 탄생일 축제 준비로 바쁘겠죠. 제 탄생일에 방문을 요청하는 것은 어리광이에요.”
“그건 어리광이 아니라 약혼자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니콜라스 왕자님은 사실 아그네스 누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번 일을 구실 삼아서 니콜라스 왕자님과 파혼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순간 놀랐습니다. 역시 제이스는 똑똑해서 날카롭네요. 어떻게 니콜라스 왕자가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제가 니콜라스 왕자와 파혼하고 싶다는 걸 간파했을까요.
“파혼이라는 건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에요.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도 따르고, 저한테도 공작 영애로서 치명적인 꼬리표가 달릴 거에요.”
“파혼으로 인해 뒤따르는 문제도 아그네스 누나도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머리가 좋다고는 해도 이런 고집적이고 귀여운 행동이 역시 일곱 살 어린아이답습니다.
“빈말이라도 듣기 좋네요.”
“빈말이 아닙……”
제이스가 니콜라스 왕자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도중, 찾고 있던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아그네스 님. 잠깐 여쭤볼 게 있습니다만…….”
빅토르 솔론 남작이 제게 다가왔습니다. 덕분에 찾을 수고를 덜었네요.
“무엇을 물어보려고 하시나요, 빅토르 님?”
“제 딸아이……에리자 솔론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잠깐 머뭇거린 사이,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솔론 남작의 영애가 미아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짐작 가는 장소야 뻔하니까요. 아마 솔론 남작 영애는 제이스의 연구실로 올라갔겠죠. 원작 게임에서의 이벤트가 바뀌지 않는 한 말입니다.
제가 전생의 기억을 되찾은 이후 솔론 남작 가문과 연관될만한 행동은 한 번도 하지 않았으니, 솔론 남작 영애의 움직임도 그대로 진행되는 것이 당연하겠죠. 지금 당장 제이스와 만나게 하지 않으면 이후의 바쁜 일정 때문에 약혼자로 정해지기 전까지 만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서둘러 데려오도록 하죠.
3층. 제이스의 연구실에 도착했습니다. 에리자 솔론 남작 영애는 이 문 뒤에 있습니다.
“에리자 솔론 영애, 아버님이 찾으십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에리자 솔론 영애를 불렀습니다.……왜 이렇게 조용하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네요.
“에리자 솔론 영애? 숨바꼭질하고 계신 건가요?”
이름을 부르며 제이스의 연구실을 구석구석 찾아봤지만, 에리자 영애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떡하죠. 제이스의 성격이 바뀐 것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영향을 끼친 건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에리자 영애가 사라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제이스와 에리자 영애가 만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진짜로 미아가 되어버린 에리자 영애를 찾아야 합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옆 방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습니다.
혹시? 하는 생각에 연구실의 옆방인 있는 제 드레스룸의 문을 열었습니다.
드레스룸의 안에 있던 사람은, 진열되어있는 옷과 장신구들을 동경 어린 눈빛으로 둘러보고 있는 여섯 살 여자아이였습니다.
“에리자 솔론 영애……맞나요?”
“에리자요? 전 에리자가 아니라……아! 아니에요! 아니, 맞아요! 제가 에리자 솔론이에요.”
밝은 녹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는 제가 부른 이름을 몇 번 어색하게 번복하다가, 자신이 에리자 솔론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에리자 영애가 제이스의 연구실이 아닌 여기에 있는 이유는, 제가 제이스의 연구실 위치를 바꿔버렸던 게 원인이겠죠. 생각해보니 원작 게임에서는 지금의 제 드레스룸의 위치가 제이스의 연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제이스의 연구에 적합하지 않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서 연구실의 위치를 옮겼고, 에리자 영애는 원래 들어갔어야 할 연구실이 아닌 제 드레스룸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제가 모르는 곳에서 이벤트가 바뀐 것은 아니라 천만다행이네요.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여기 있는 옷, 다 언니 거에요?”
에리자 영애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는 제 드레스룸이니까요.”
“와아, 공작 영애는 이렇게나 옷이 많구나…….”
원작에서도 에리자 영애는 호기심이 많은 성격으로 그려집니다. 오늘이 사교계에 발을 디딘 첫날일 것이고, 다른 집안에 방문한 것도 처음이라서 자신의 집과는 다른 앙겔로풀로스의 저택을 탐험하고 싶어졌겠죠. 원작에서 제이스의 연구실까지 도달하게 되는 과정도 이와 같은 이유일 테고요.
에리자 영애는 계속해서 드레스룸에 있는 여러 가지 옷을 구경했습니다. 솔론 남작 가문은 빈곤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풍족하지도 않은 가문입니다. 에리자 영애로서는 이렇게 많은 옷을 가져본 적이 없었겠죠.
마침 제 드레스룸이 최근 좁아지기도 했고, 좋은 기회다 싶어 미래의 새 여동생에게 작은 선물을 하기로 했습니다.
“에리자 영애, 혹시 마음에 드는 옷이 있나요?”
“네? 아……그게…….”
쉽사리 말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눈길이 하나의 옷에 집중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옷을 한번 입어보실래요?”
“……정말로 입어 봐도 돼요?”
“그럼요. 혼자 입는 건 어려울 테니까, 제가 도와드릴게요.”
귀족 영애의 예의와 여섯 살 여자아이의 욕심 중 후자가 이겼네요. 이 나잇대의 여자아이에게 이 정도 욕심은 귀여운 정도입니다.
아직 어린아이라서 여러 가지 장식이 많은 드레스를 혼자 입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하고, 에리자 영애의 옷을 손수 갈아입혀 주었습니다. 갈아입히고 나니, 분홍색 드레스가 어울리는 귀여운 여자아이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이 드레스는 제가 선물로 드릴게요.”
에리자 영애는 순간 기쁜 얼굴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거절 의사를 표했습니다.
“죄송해요. 정말 정말 감사하지만, 안 받을래요.”
표정을 보면 선물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선물을 받는 것이 실례라고 생각해서 거절한 것이라면, 받은 선물을 거절하는 게 더 실례일 테고요. 에리자 영애가 왜 거절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중요한 사실을 하나 잊고 있었던 것을 기억했습니다.
그 드레스가 여기쯤 있을 텐데……아, 찾았습니다.
“잠시만요, 에리자 영애.”
드레스룸의 많은 옷 사이에서 한 벌의 드레스를 발견했습니다. 지금 에리자 영애가 입고 있는 드레스와 완전히 똑같은 디자인이지만, 색만 하늘색으로 다른 드레스입니다.
“이 드레스도 같이 드릴게요. 에리자 영애가 입고 있는 것과완전히 똑같은 드레스에요. 색은 조금 다르지만,에리자 영애는 하늘색도 좋아하죠?”
그제야 에리자 영애가 고민이 풀린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네, 좋아해요. 고맙습니다. 그, 저, 언니.”
“아그네스 언니라고 부르면 돼요.”
“아그네스 언니!”
언니라고 불러 주는 게 기분이 좋네요. 제이스와 이 아이가 약혼하게 되면 아그네스 언니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겠죠. 벌써 기대가 되네요.
“에리자 영애, 이제 돌아갑시다. 아버님께서 걱정하고 계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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