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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영애는 왕자님을 양보하겠습니다-22화 (22/86)

〈 22화 〉 초대장을 썼습니다

* * *

“어떡하죠…….”

니콜라스 왕자도 아리아나도 방문하지 않고, 제이스의 연구를 도와줄 일도 없는 어느 날의 오후, 저는 제 방 테이블에 놓여 있는 두 가지의 편지 봉투와 그 안에 들어갈 편지지들을 보며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 두 가지의 편지 봉투와 편지지는 아직 수신인조차 적지 않은 새것입니다. 수신인을 적지 않은 이유는 이 두 개의 편지에 들어갈 내용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부터가 고민이기에 그렇습니다.

요즘 들어서 작성한 편지는 대부분이 파노스 왕자에게 온 연애 편지의 답장이지만, 오늘 쓸 내용은 그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약 일주일 뒤 있을 제 탄생일 잔치, 그 잔치에 초대하는 내용을 담을 초대장입니다.

초대장은 어차피 양식이 정해져 있고, 번거로운 미사여구나 과도한 격식을 차릴 필요도 없습니다. 보낸 사람과 초대 사유, 날짜와 시간을 무례하지만 않게 적어서 전달하면 끝나는 간단한 편지입니다.

다만, 그 초대장을 전달해야 하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지금부터 써야 할 초대장의 수신인 중 한 명은 제 약혼자인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 제1 왕자고, 다른 한 명은 파노스 알렉산드로스 제2 왕자이니까요.

니콜라스 왕자는 제 약혼자이므로 당연히 초대해야 합니다. 그래서 초대장을 써야 하지만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니콜라스 왕자와 제 생일이 단 이틀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거죠.

이미 니콜라스 왕자는 지난주 다섯째 요일을 마지막으로 열흘 가까이 방문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날, 니콜라스 왕자 본인의 탄생일 축제 준비가 너무 바빠서 끝나기 전까지는 앙겔로풀로스에 방문이 힘들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요.

하다못해 제 생일이 니콜라스 왕자의 이틀 뒤였다면, 니콜라스 왕자의 탄생일 축제가 끝난 뒤이므로 평범하게 참가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제 생일이 이틀 먼저 다가옵니다. 니콜라스 왕자의 탄생일 축제는 전야제도 있어서 제 탄생일 잔치에 참여하려면 굉장히 빠듯한 일정으로도 힘들겠죠.

실제로 원작 게임에서도 아그네스의 생일에 니콜라스 왕자가 찾아오는 일은 한 번도 없습니다. 원작의 니콜라스 왕자가 아그네스를 귀찮아해서 일부러 피하는 것이 주된 이유겠지만,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나지 않았던 것도 한 부분을 차지했겠죠.

괜히 초대장을 썼다가 ‘제1 왕자님의 탄생일 축제 준비가 한창인데 눈치가 없는 약혼자’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편지를 안 쓰면 반대로 ‘진심으로 애정도 없으면서 공작의 권력욕만으로 성사된 약혼’ 같은 소문이 돌 수도 있고요. 이래저래 귀족 사회에서의 처세는 까다롭네요.

마지막으로 만났던 지난주 다섯째 요일에 탄생일 잔치 참석이 가능한가를 미리 물어봤어야 했는데요. 그랬다면 미리 말을 맞추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 텐데요.

편지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다가 한 달 전쯤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습니다.

‘앞으로도 니콜라스 왕자에게 요구하는 게 많아질 수도 있으니 각오하세요.’

‘얼마든지 바라는 바입니다.’

분명히 그때부터 니콜라스 왕자에게 무리한 요구를 자꾸 해서 진절머리가 나게 하자는 작전을 생각해놓고, 제대로 떼를 쓰거나 칭얼거린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그렇게 보면 이건 꽤 질리게 하기에는 괜찮은 건수가 아닐까요?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님에게

평안하신가요, 니콜라스 왕자님.

이번 아홉 번째 달의 세 번째 주, 여섯 번째 요일에 있을 제 탄생일 잔치에 꼭 참석해주시기를 바라며 편지를 보냅니다.

앙겔로풀로스 본가에서 오후 2시부터 시작할 예정이며, 바쁘신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하나뿐인 약혼자의 부탁이니 거절하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하고 있겠습니다.

당일의 제 옷차림과 어울릴 수 있는 흰색이나 파란색 정복을 입고 참가해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약혼자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올림」

이 정도면 괜찮겠죠. 조금 지나치게 어린애 같은 요구를 한 것 같지만, 이 정도는 해야 그 능구렁이 왕자도 느낌을 받을 것 같습니다.

초대장으로 인해 강한 자극을 받아서 만약에라도 탄생일 잔치에 참석하면, 참석하는 쪽으로 쓸데없는 소문이 생길 일이 없으니까 좋습니다. 반대로 편지를 받고 니콜라스 왕자가 ‘바빠 죽겠는데 눈치도 없긴’이라고 생각해서 기분이 나빠지면, 그건 그것대로 파혼에 가까워지니까 좋습니다. 주변 귀족들 시선 같은 건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죠.

니콜라스 왕자에게 쓸 초대장은 이 정도면 됐고, 이제 더 큰 문제가 남았습니다. 파노스 제2 왕자를 상대로 초대장을 쓰느냐 마느냐겠죠.

파노스 왕자와는 무도회에서 만난 이후로 지속하여 편지로 교류하고 있지만 실제로 만나서 친교를 쌓은 것은 단 한 번에 불과하고, 그 만남도 비공식 만남이라서 공적인 자리에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가 파노스 왕자에게 초대장을 쓰는 순간 저는 얼굴도 모르는 왕족 남자에게 편지를 쓰는 영애가 되어버리겠죠. ‘니콜라스 왕자를 두고 바람피우는 영애’라던가, ‘딸을 이용해서 권력을 탐하는 공작 가문’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닐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보내지 않으면 보내지 않는 대로 미래에 폭력적인 사람으로 성장하는 파노스 왕자의 보복도 두렵고……이쪽도 저쪽도 난감하네요.

일단 니콜라스 왕자와는 완전히 상반된 느낌으로 적어보는 건 어떨까요.

「파노스 알렉산드로스 제2 왕자님에게

제 약혼자의 혈육이신 파노스 알렉산드로스 제2 왕자님에게 인사드립니다.

저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가 앙겔로풀로스 가문을 대표하여 파노스 알렉산드로스 제2 왕자님에게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의 여덟 번째 탄생일 잔치에, 시간 여유가 있으면 참여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날짜는 아홉 번째 달의 세 번째 주, 여섯 번째 요일이며, 장소와 시간은 앙겔로풀로스 본가에서 오후 2시부터 시작할 예정입니다.

방문하실 때는 앙겔로풀로스 가문의 위치를 잘 알고 계신, 제 약혼자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 제1 왕자님과 함께 방문하시길 권유드립니다.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올림」

이 정도의 표현이 최선이겠죠. 제2 왕자라서가 아닌, 제 약혼자인 니콜라스 왕자의 혈육이므로 보낸다.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가 보냈지만, 앙겔로풀로스 가문을 대신하여 썼을 뿐이다. 가능하면 제 약혼자인 니콜라스 왕자와 같이 참석하시길 바란다. 와 같은 내용을 포함했으니, 이 정도면 이상한 소문이 돌아도 편지의 내용을 통해 큰 의미가 없었음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파노스 왕자도 왕족이니까 니콜라스 왕자의 탄생일 축제에 참여해야겠죠. 니콜라스 왕자가 오지 못하면 명분이 없는 파노스 왕자도 못 올 가능성이 큽니다.

“마리, 이 편지들을 부쳐주세요.”

“니콜라스 왕자님과 파노스 왕자님에게 보내는 초대장입니까. 알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에게는 초대장을 안 보내시나요?”

“아리아나에게는 얼마 전에 왔을 때 직전 건네줬으니까 괜찮아요.”

“그렇게 해도 세 분…….”

“…….”

“아그네스 님은 받는 사랑에 비해 인간관계가 넓지 못하시네요.”

“요즘 마리는 저에 대한 실례에 거리낌이 없으시네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오늘도 마리가 신랄한 소리를 하며 퇴장했습니다.

……저는 상처받지 않았어요. 어차피 인간관계는 넓이보다는 깊이니까요. 아리아나 같은 둘도 없는 친구만 있으면 되니까요.

니콜라스 왕자와 파노스 왕자에게 편지를 보낸 후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드레스는 어떤 것으로 하시겠습니까.”

“분홍색 드레스가 좋겠어요. 자수가 과하지 않고 프릴이 적당히 달린 것으로요.”

“화장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전체적으로 화사하게 한 상태에서 눈만 강조해주세요. 입술은 밝고 선명하지만, 너무 진하지는 않은 색으로 칠해주세요.”

마리와 시종들이 분주하게 제 몸단장을 해주고 있습니다. 제 모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여덟 번째 탄생일 잔치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변해갔습니다.

제 일곱 살까지의 탄생일은 단순히 공작 영애의 탄생일 잔치였기에 아버님과 친분이 있었던 귀족분 몇 분 정도만 방문하셨지만, 올해부터는 조금 이야기가 다릅니다. 제1 왕자의 약혼자 탄생일이므로 이전보다 더 중요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사용인들도 작년보다 더 큰 규모로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고요.

탄생일 잔치의 시작 시각인 오후 두 시, 시종들의 도움으로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드디어 메인 홀 문 앞에 섰습니다.

“아그네스 님, 지금 나가시면 됩니다.”

마리의 신호를 듣고 회장의 문을 열고 나니, 방문한 손님들의 시선이 제게 모이는 것이 느껴지네요. 내빈들의 박수 소리를 들으며 무대 위로 올라섰습니다.

“오늘 제 생일을 맞이하여 방문해 주신 귀빈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저에게도 기쁜 날이지만 여러분에게도 오늘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으실 수 있도록 앙겔로풀로스에서 성심성의껏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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