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화해를 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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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접실에서 전운……이라고 할만한 것이 감돌고 있네요. 제 맞은편에 앉은 니콜라스 왕자, 제 왼쪽에 앉은 아리아나, 그리고 사이에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는 저까지 한동안 응접실은 침묵에 잠긴 채 눈빛만이 오갔습니다.
세 명의 사용인, 두 명의 귀족, 한 명의 왕족 중 제일 먼저 침묵을 깬 건 니콜라스 왕자였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 영애.”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요.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 제1 왕자.”
“당신과의 인연은 그날로 마지막이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거라면 신경 쓰실 필요 없으실 것 같네요. 전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 제1 왕자가 아닌, 아그네스 님과의 인연을 쌓으러 방문한 거니까요.”
아리아나가 쌀쌀맞은 말투로 니콜라스 왕자에게 대답했습니다. 저런 대답을 하면 니콜라스 왕자와 사이가 불편해질 텐데요.
“그것보다도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 왕자는 왜 오늘 여기 계신 거죠?”
“약혼자의 얼굴을 보러 오는 데 특별한 이유가 필요합니까?”
“그래도 사전 약속 없이 방문하시는 건 잘못된 거 아닌가요?”
“그건 제 배려가 부족한 게 맞습니다만, 그렇다면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 후작 영애는 사전에 약속하고 방문하셨습니까?”
“당연하죠! 매주 두 번째 요일은 저와 아그네스 님의 시간이에요!”
니콜라스 왕자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그네스 영애,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 영애의 말이 사실입니까?”
“……네. 무도회 날 이후 아리아나와는 친목을 다지고 있습니다.”
단두대에 머리를 들이민 사형수와 같은 심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애초에 니콜라스 왕자에게 눈밭 속에서도 빛나는 동백꽃과도 같은 아그네스 님은 어울리지 않아요! 나르시시스트 왕자는 아그네스 님을 괴롭히지 말고 어딘가의 수수하고 존재감 없는 영애나 약혼자로 삼으세요!”
“누가 나르시시스트 왕자입니까! 그리고 전 아그네스 영애를 괴롭힌 적 없습니다! 아리아나 영애야말로 아그네스 영애한테 모욕을 줬던 주제에 어쩌면 그리도 뻔뻔하게 제 약혼자와의 관계를 방해하는 겁니까!”
점점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의 사용인도 당황하는 계시네요. 그리고 마리는……놀랍도록 평화롭네요. 제가 싸우는 게 아니니 관계없다는 건가요?
어쨌든 니콜라스 왕자와 아리아나의 사이를 중재하지 않으면 계획에 차질이 생깁니다.
지금 당장 싸움을 멈추는 방법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제가 지금부터 ‘계속해서 두 분이 싸우신다면 저는 지금 당장 아버님께 말씀드려서 니콜라스 왕자와의 약혼을 억지로라도 파기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리아나 영애와는 모든 관계를 끊고 앞으로 일절 교류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면 해결되겠죠.
니콜라스 왕자는 저와의 결혼을 사용한 복수가 목적이므로 약혼 파기는 바라는 일이 아닐 테고, 아리아나도 저와의 교류가 사라지면 니콜라스 왕자와의 약혼이 어려워지니 번거로우시겠죠. ……지금 니콜라스 왕자와 핏대를 올리며 싸우는 모습을 보면 정말로 니콜라스 왕자를 사모하고 있는지는 의문이지만요.
어찌 되었든, 그런 식으로 지금 당장 사이를 좋게 만들어도 결국은 가짜 화해입니다. 관계의 불편함을 해소하려고 주먹구구식으로 넘어가는 가짜 화해는 나중에 다시 다른 갈등으로 재발하거나, 서로가 앙금을 가진 채로 끝까지 상대방을 인정하지 못하게 됩니다.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면 다툼의 원인을 이해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진짜 화해를 시켜야겠죠.
이런 사람들을 화해시키는 데 아주 좋은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전생의 TV 프로그램에서 알려준,“그랬구나”대화법입니다.
“아그네스 영애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그네스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단, 두 사람 다 진정해주세요. 너무 흥분하셨으니까, 천천히 호흡해주세요.”
두 사람 다 흥분해서인지 숨이 거칠어졌습니다. 우선 충분히 숨을 고르고 진정하게 하죠.
“니콜라스 왕자와 아리아나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서로 손을 맞잡아 주세요.”
“싫습니다. 제가 왜 아리아나 영애와 손을 맞잡아야 합니까.”
“제가 할 말이에요! 니콜라스 왕자에게 닿으면 나르시시즘이 옮는다고요!”
“서로 손을 잡아 주세요.”
제가 진지하게 말씀을 드리니, 두 사람이 잠시 멈칫하고 마지못해 손을 맞잡았습니다.
“지금부터 한 사람씩 상대방에게 화가 난 이유나, 아쉬웠던 점을 말할 거에요. 대신, 듣는 사람은 대답으로 그러셨습니까, 그러셨군요, 라고 대답한 뒤 상대방이 했던 말을 그대로 다시 말해야 해요. 이해하셨어요?”
“……알겠습니다.”
“네…….”
“우선 니콜라스 왕자가 먼저 아리아나에게 아쉬웠던 점을 말씀해 주세요.”
“아리아나 영애.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당신이 저와 제 약혼자인 아그네스 영애 사이의 관계에 들어오는 것에 화가 났습니다. 당신이 멋대로 저와 아그네스 영애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이 안타깝고, 아그네스 영애에게 상처를 주었던 당신이 이렇게 아그네스 영애에게 다시 다가오는 것이 괴롭습니다.”
“……그러셨군요. 제가 아그네스 님과 니콜라스 왕자 사이의 관계 사이에 들어가는 것에 화가 나셨군요. 제가 아그네스 님과 니콜라스 왕자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셔서 안타깝고, 한 번 잘못을……저지른 제가 아그네스 님에게 다가가는 것이 괴로우셨군요.”
“이번엔 아리아나의 차례에요. 니콜라스 왕자에게 아쉬웠던 점을 말씀해 주세요.”
“니콜라스 왕자가 비록 아그네스 님의 약혼자라는 것을 이유로 삼아, 아그네스 님을 니콜라스 왕자가 마음대로 다루시려고 하는 것을 저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아그네스 님에게도 아그네스 님만의 일정과 계획이 있으신데, 니콜라스 왕자가 언제든지 아그네스 님을 자기 뜻대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속상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제가 아그네스 영애의 약혼자임을 구실로 삼아, 적절한 선을 지키지 못하고 아그네스 영애를 제 마음대로 다루는 듯한 모습을 참을 수 없으셨습니까. 제가 아그네스 영애의 일정과 계획은 무시하고……제 뜻대로 다룰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속상하셨습니까. 이제 아리아나 영애가 화를 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니콜라스 왕자가 아그네스 님을 걱정하셨기에 화를 내셨다는 것을 알겠어요”
아리아나와 니콜라스 왕자 두 사람이 서로의 진솔한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달랐던 생각을 공유하면 가시처럼 보이던 날카로운 감정도 기어처럼 잘 맞물려서 화해할 수 있습니다.
……어째선지 두 사람 다 제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아마 제가 잘 듣지 못한 거겠죠.
“저는 제 약혼자인 니콜라스 왕자님과 제 친구인 아리아나가 조금 더 좋은 사이로 지내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하게도 모든 사람의 의식과 가치관은 일치할 수 없고, 그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겠죠. 하지만 이렇게 상대방에게 자기 생각과 마음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면, 서로를 조금은 이해해서 싸우는 일도 적어지지 않을까요.”
“네, 맞아요…….”
“……지당한 말씀입니다.”
“두 사람 다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모의고사에서 수학 가형 30번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시원해진 기분이네요. 저는 순간적으로 너무 기뻐서 두 사람을 껴안았습니다.
“아, 아그네스 님?!”
“아그네스 영애?!”
“앞으로도 두 사람은 사이좋게 지내주시는 거예요. 아셨죠?”
왼쪽 품에 안긴 아리아나와 오른팔로 감싸진 니콜라스 왕자를 같이 끌어안았습니다.
“네, 네에……그렇게 할게요…….”
“무, 물론입니다, 아그네스 영애.”
화해를 성공적으로 시켜서 다행입니다. 하마터면 두 사람을 이어주지 못할까 봐 조마조마했어요.
결국, 오늘은 세 명이 함께 이야기하다가 두 사람 모두 늦지 않은 시간에 돌아갔습니다. 이야기 중간에 계속 두 사람이 눈빛을 교환하는 것으로 봐선 니콜라스 왕자도 아리아나에게 관심이 생긴 징조겠죠.
“오늘은 가보겠습니다, 아그네스 영애. 다음에는 갑작스러운 방문은 자제하겠습니다.”
“저도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했어요. 다음 주에 뵐게요, 아그네스 님.”
“두 사람 다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저택의 입구에서 두 사람이 돌아가는 것을 배웅했습니다. 마당을 통해 저택의 입구로 두 사람이 점점 멀어지고 있네요.
“니콜라스 왕자는 아그네스 님의 약혼자니까, 고작 추종자인 저보다 아그네스 님을 자주 만나시는 건 이해할게요. 하지만 매주 둘째 요일은 오롯이 저와 아그네스 님의 시간이에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저도 니콜라스 왕자가 방문하는 시간에 맞춰서 마음대로 방해하겠어요.”
“만족하지는 않지만, 저도 그 타협안에 동의하겠습니다. 아그네스 영애의 화난 모습은……저도 다시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마차로 돌아가는 길에 두 사람이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멀어져서 대화의 내용은 들리지 않지만, 사담을 나눌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는 건 그만큼 친해졌다는 이야기겠죠.
두 사람이 각자 타고 온마차가 출발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저도 저택 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들어가죠, 마리.”
“아그네스 님.”
마리가 저택으로 들어가기 전 제게 말했습니다.
“반으로 갈라져서 돌아가시는 일은 없기를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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