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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영애는 왕자님을 양보하겠습니다-19화 (19/86)

〈 19화 〉 니콜라스 왕자에게 발각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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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스 루바스가 제이스 앙겔로풀로스로 성이 바뀐 날로부터 이틀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흘러 첫째 요일이 되었고, 오늘은 언제나처럼 니콜라스 왕자가 방문하는 날이네요.

“오랜만입니다, 아그네스 영애.”

“사흘 전에 방문하지 않으셨나요?”

“그렇습니까? 어째선지 굉장히 오랜만으로 느껴져서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니콜라스 왕자를 굉장히 오랜만에 본 듯한 느낌이 드네요. 어째서일까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남동생이 생기셨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네, 맞아요. 이틀 전 제이스 루바스, 지금은 제이스 앙겔로풀로스인 제 동생이 저희 가문의 장남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앙겔로풀로스 가문의 대를 이을 사람이 생겼으니, 이제는 아그네스 영애를 제 아내로 데려가도 아무 문제가 없겠군요.”

……오늘의 니콜라스 왕자는 만나자마자 굉장히 살벌한 이야기로 시작하는데요? 평소에는 잡담이나 교양 지식의 교류로 하루를 보냈는데 어째선지 오늘은 처음부터 적극적인 애정 표현……이 아닌 복수심이 가득한 말을 꺼냈습니다.

“오늘은 적극적이시네요. 심경의 변화가 생길 만한 일이 있으셨나요?”

“소문을 하나 들어서 말입니다. 제 약혼자에게 연애 편지를 보낸 사람이 있다는 소문입니다.”

니콜라스 왕자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습니다. 저 표정, 분명히 게임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아스토리아 왕립학교에서 주인공을 입학 이후부터 집요하게 괴롭혔던 흑막이 아그네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표정과 완전히 똑같습니다.

즉, 아그네스 영애를 앞으로 어떻게 담가버릴까 고민하는 표정입니다. 눈앞의 존재에게서 생명의 위기를 느낀 저는 서둘러 사과를 표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니콜라스 왕자.”

“아그네스 영애가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그네스 영애는 피해를 보신 쪽이 아닙니까.”

“제가 니콜라스 왕자를 상대로 처신을 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라고 이 얘기를 꺼낸 건 아닙니다.”

아마 니콜라스 왕자는 이 사건을 빌미로 제 약점을 끄집어낼 생각이시겠죠. 어느 정도의 정보를 알려주면 눈감아줄까요. 바퀴벌레를 무서워하는 것? 당근을 먹지 못하는 것? 어머니의 찻잔을 깨뜨리고 감춰둔 것?

“아그네스 영애는 아름답고 지혜로우니 연애 편지를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 편지를 쓴 사람이 의문이라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제 동생, 파노스 알렉산드로스와 만난 적이 있으십니까?”

파노스 알렉산드로스. 얼마 전 제게 열렬한 연애 편지……가 아닌 잠재적 살인 예고장을 보낸 제2 왕자네요. 소심한 성격에 여자는커녕 낯선 사람과의 대화도 힘든 파노스 왕자가 연애편지를 썼다는 것은 확실히 니콜라스 왕자에게 의문점으로 남았겠죠.

“왕가 주최의 개국 기념일 무도회가 있던 날입니다.”

니콜라스 왕자의 분노를 거두게 하기 위해서는 어설픈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는 진실을 밝히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이 사디스트 왕자가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것 같지도 않고요.

“제가 아리아나에게 니콜라스 왕자님을 부탁드리고, 잠시 바람을 쐬러 정원으로 나간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니콜라스 왕자님과 닮은 한 소년을 만났습니다. 그때는 파노스 알렉산드로스 제2 왕자님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그날 뵌 파노스 알렉산드로스 제2 왕자님은 조금 수줍음을 타시고, 말을 하실 때 살짝 더듬거리셨습니다. 그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져 제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지식으로 수줍음을 타는 성격과 말을 더듬지 않는 방법을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헤어질 때 그 소년이 파노스 알렉산드로스 제2 왕자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파노스 알렉산드로스 제2 왕자님을 만난 기억은 그날의 것이 전부입니다.”

최대한 진실만을 말하면서, 니콜라스 왕자가 자극받을 만한 이야기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습니다. 파노스 왕자와 손을 잡고 눈을 마주쳤던 일이나, 다음의 춤 신청을 거절하지 않았던 이야기 등은……구태여 꺼내지 않는 편이 안전하겠죠.

“그렇다면 파노스에게 말을 건 이유는 저와 닮아서 그랬다는 말씀입니까?”

“처음의 계기는 그렇습니다.”

니콜라스 왕자가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이제야 요즘 생각했던 의문이 풀리는 느낌입니다. 수줍음을 많이 타던 제 동생이 스스로 사교댄스 수업을 들으려 하고, 왕궁의 여러 행사에 제2 왕자 신분으로 참여하고, 말도 더듬지 않게 된 것이 신기했습니다만, 아그네스 영애의 덕분이었습니까.”

“의문이 해소되셨다니 다행이네요.”

니콜라스 왕자의 눈빛이 살짝 누그러졌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일단은 알겠습니다.”

“아직 화가 덜 풀리셨나요?”

“전 화난 적 없습니다. 오히려 다행인 일 아닙니까. 저도 아버지도 제 동생의 성격을 많이 걱정했었는데, 아그네스 영애 덕에 고쳐졌으니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니콜라스 왕자의 목소리 톤이 다시 평소처럼 돌아왔습니다. 일단은 안심해도 될까요?

“그러고 보니 제 남동생 얘기만 했습니다. 아그네스 영애의 남동생에게 아직 인사를 못 했는데, 괜찮으시다면 오늘 얼굴을 익혀도 괜찮겠습니까?”

이번에는 니콜라스 왕자가 제이스를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네요. 제이스는 어제 연구실 청소를 끝내고 오늘부터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니콜라스 왕자를 만나게 해 주는 것도 좋겠지만, 첫날부터 연구를 방해하고 싶지는 않네요.

“죄송합니다, 니콜라스 왕자. 제이스에게는 오늘 일정이 있어서, 다음에 오실 때 제가 미리 말을 해 둬서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요.”

니콜라스 왕자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래도 제 남동생 이야기 덕에 방금까지의 살벌한 표정은 많이 풀어졌네요.

지금이라면, 오늘 준비한 비장의 카드를 꺼내도 될 것 같습니다.

“니콜라스 왕자에게 한 가지 말씀드려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저는 니콜라스 왕자에게 제 오른손의 화상 자국을 보여드렸습니다. 이틀 전 제이스가 일으킨 화재를 진압하다가 입은 그 화상입니다.

“아그네스 영애, 그 상처는 어떻게 된 겁니까!”

니콜라스 왕자가 흔치 않은 당황하는 표정을 보이시네요. 그야 당연하겠지요. 니콜라스 왕자가 저를 약혼자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제가 차기 왕비로서 가문이나 교양, 외모 등에 모자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 오른손에 흉한 화상 상처가 남았다는 것은 차기 왕비로서는 치명적인 결점이니까요. 니콜라스 왕자의 입에서 약혼 파기를 꺼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 화상을 입은 정도는 오히려 좋은 일이 되겠죠.

“주방에서 불을 잘못 다뤘다가 그만 상처를 입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숨기기 힘든 결점이 생겨버렸네요.”

제이스가 일으킨 화재를 진압하다가 생긴 상처라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잘못해서 이 얘기가 제이스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자신을 자책할 수도 있으니까요.

“……안타까운 일이군요. 제가 그 순간 옆에 있지 못했던 것이 통한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 상처라면 차기 왕비로서는 실격 아닐까요?”

슬쩍 약혼 파기에 관해 운을 띄웠습니다. 니콜라스 왕자는 어떻게 대답할까요.

“아그네스 영애는 자신의 가치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 상처는 아그네스 영애가 가진 가치 중 만분의 일도 떨어뜨리지 못합니다. 걱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아그네스 영애는 제가 반드시 책임지겠습니다.”

“말씀만이라도 정말 감사합니다.”

본인이 입힌 상처도 아닌 데 뭘 책임지겠다는 건가요. 역시나 생각처럼 쉽게 놓아줄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긴 결혼하고 나면 이 정도 화상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의 흉터를 잔뜩 남길 생각이니 본인은 대수롭지 않겠죠. 채찍 자국이나 바늘로 찌른 상처, 촛농이 흐른 자리에 남는 화상……상상만 해도 벌써 몸에 한기가 드네요.

약혼 파기가 아니더라도 최악의 경우에는 프레타리아로 야반도주라도 실행할 수 있게 열심히 공부하는 편이 좋겠네요. 프레타리아어를 잘 아는 사람에게 정기적으로 만나서 배울 수 있다면 제일 좋을 것 같지만……아!

지금, 엄청나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니콜라스 왕자는 처음 뵀던 날 이미 프레타리아어를 배우셨다고 말씀하셨죠?”

“그러고 보니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군요.”

처음 만난 날 제가 니콜라스 왕자에게 시비를 걸기 위해 스타렌스어로 문제를 내고, 니콜라스 왕자가 낸 프레타리아어 문제를 대답하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이 결과적으로는 니콜라스 왕자가 저에 대한 복수심을 갖게 해서, 저를 구속하는 약혼으로 이어진 최악의 결과가 된 제 흑역사입니다.

“니콜라스 왕자에게 폐가 되지 않는다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프레타리아어를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신가요?”

“제가 아그네스 영애에게 말입니까?”

“네. 독학으로 배워보려고 했지만 난도가 있어서요. 저는 아무래도 ‘에나스 일리디오스 포우 제레이 포노 포스 나 프로스피이테’인 것 같으니까요.”

니콜라스 왕자가 처음 만난 날 제게 했던 ‘아는 척 밖에 할 줄 모르는 멍청이’의 프레타리아어입니다. 첫날 제게 저지르셨던 모욕을 상기시켜드렸으니, 아마 니콜라스 왕자도 쉽게 거절할 수 없겠죠.

“물론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가르쳐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마지못해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했던 반응과는 다르게 니콜라스 왕자는 굉장히 기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제가 바쁘신 와중에 무리한 부탁을 드리는 건 아닌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아그네스 영애가 제 약혼자가 되어 주신 이후로 처음으로 부탁을 해 주셨다는 사실에 감동하고 있습니다.”

“처음…이었나요?”

“제 부탁을 아그네스 영애가 들어주신 적은 많지만, 그 반대는 처음입니다.”

그러고 보면 무도회 참석 여부나 무도회에서 연속해서 춤을 췄던 것 등 니콜라스 왕자가 부탁했던 것을 들어준 적은 여러 번 있었는데, 그 반대인 제가 니콜라스 왕자에게 무언가를 요구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기도 하네요.

어쩐지 약혼 파기의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니콜라스 왕자는 제가 귀찮게 굴지 않으니까 약혼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기억을 찾기 이전의 고집스럽고 오만하고 욕심 많은 아그네스 영애로 돌아가면 니콜라스 왕자가 진절머리가 나서 약혼을 파기해 줄 가능성이 올라가지 않을까요?

“앞으로도 니콜라스 왕자에게 요구하는 게 많아질 수도 있으니 각오하세요.”

“얼마든지 바라는 바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니콜라스 왕자에게서의 정기적인 프레타리아어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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