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제이스 루바스 : 앙겔로풀로스에서의 첫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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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이스 루바스, 루바스 백작 가문의 3남 1녀 중 3남이다.
내가 앙겔로풀로스에 가고 있는 이유는 간악한 첫째 형과 멍청한 가족들 때문이다. 루바스 서재에 있는 지식을 활용하여 ‘두근거림의 묘약’을 만들었더니, 빌어먹을 첫째 형은 그걸 자신의 성과로 가로채버렸다.
단순한 가족들은 첫째 형이란 놈의 말만 믿고 내가 만들었다는 사실은 전혀 믿어주지 않았다. 저 아둔한 자식은 기껏 훔쳐 놓고 제조법 없이는 스스로 만들 줄도 모른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이간질뿐인 저런 놈팡이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는 가족들까지 신물이 났다.
하지만 저 뻔뻔한 태도도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나게 될 것이다. 내가 새로운 약을 개발하기만 하면 ‘두근거림의 묘약’을 내가 만들었다는 것도 믿을 것이고, 쓰레기 같은 첫째 녀석은 내 공로를 도둑질한 대가로 루바스 가문에서 추방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먼저 추방된 것은 첫째가 아니라 나였다.
“제이스, 널 앙겔로풀로스 공작 가문에서 양자로 입양하기로 결정되었다.”
분명 망할 첫째 자식이 거짓말이 들통나는 것이 두려워 가문 정치로 나를 다른 가문에 팔아넘겼을 것이다. 내가 만든 ‘두근거림의 묘약’을 팔아서 호의호식하는 주제에. 하지만 모든 것을 빼앗긴 내가 저항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결국엔 가져올 수 있는 짐만 챙긴 채 쫓겨나듯 앙겔로풀로스로 향하는 마차에 몸을 실은 것이 오늘 아침의 일이다.
마차를 탄 상태로 생각했다. 어째서 공작이나 되는 집안이 가문 정치에 밀린 백작 3남을 입양한 것인가. 백작 3남이 아닌 나라는 인물에게서 원하는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닐까.
결론은 어렵지 않게 도출할 수 있었다. 루바스 백작의 ‘두근거림의 묘약’은 유명하니까, 3남인 나 또한 제조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 내가 직접 만들었다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할 테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오히려 이용하면 좋다. 앙겔로풀로스에 도착하자마자 내 연구실을 만들고, 정기적으로 ‘두근거림의 묘약’을 어느 정도 만들어 주기만 하면 그들도 만족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새롭게 만들어 갈 작품에 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을 생각이다. 또다시 성과를 도둑질당할 순 없으니까.
앙겔로풀로스에 도착하고 나니, 아마 앙겔로풀로스 공작 가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맞이했다. 아마 성인 남성과 여성이 양부모님일 테고, 영애는 내 누이일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제이스 루바스입니다.”
“환영한다, 제이스.”
“앙겔로풀로스에 온 걸 환영해요.”
“이쪽은 아버지인 렌드로, 어머니인 로렌나, 그리고 저는 누나인 아그네스예요.”
“렌드로 님, 로렌나 님, 아그네스 님.”
일단은 어떤 태도로 나타날지 모르기에 극존칭으로 대답했다. 너무 섣부르게 거리를 줄였다가는 나를 얕잡아 볼 수도 있고,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꿀 수도 있으니까.
“너무 어려워할 필요 없다. 이제 가족이니까.”
“저도 어머니라는 느낌으로 편하게 대해 주세요.”
“저도 아그네스 누나라고 불러 주세요.”
일단은 위선적인 타입으로 보인다. 저런 식으로 좋은 사람인 척 상대를 안심하게 하고 긴장이 풀렸을 때 이용하려고 들 것이다. 적당히 속은 척을 하면서 넘어가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네…아버지, 어머니, 아그네스 누나.”
그들이 내 긴장이 풀린 줄 알고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그네스, 제이스를 방으로 안내해 주겠니? 위치는 알고 있지?”
“당연하죠. 제이스, 제 손을 잡고 따라오세요.”
“네, 아그네스 누나.”
아그네스라는 영애의 손을 잡고 2층 계단을 올라갔다. 역시나 공작 영애다운 고생 한번 한 적 없는 부드러운 손이었다. 포크와 나이프보다 무거운 걸 들어본 적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여기가 제이스가 쓸 방이에요.”
계단에서 오른쪽 두 번째 방인가. 내 방의 위치는 알았으니 이제는 내 목적인 연구실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실로 사용할 빈방의 위치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그네스 누나. 괜찮으시면 저택 안내를 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제이스가 피곤하지 않다면 얼마든지요. 우선 방에 짐을 놓고 편한 실내복으로 갈아입어 주세요. 저는 잠시 방 밖에서 기다릴 테니까요.”
“네. 금방 끝내겠습니다.”
서둘러서 짐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었다. 점심 전에 빠르게 저택의 구조를 파악해둬야 하니까. 문을 열고 나오니 아그네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됐습니다. 안내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1층부터 하도록 하죠.”
저택의 구조를 파악하면서 앙겔로풀로스의 사람들에 대해 몇 가지 사실을 알았다. 먼저, 믿기지 않으나 아그네스는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 제1 왕자의 약혼자라는 사실이다. 본인도 본인이 약혼자라는 사실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제 파악은 하는 것 같다. 아마 앙겔로풀로스라는 공작 가문의 지위 때문에 성사된 약혼일 것이다.
그리고 양부모님들은 아직 금실이 좋은 모양이다. 침실이 아닌 공간에서도 사랑을 나누다가 흔적을 들킨 적이 있다고 했다. 사용인들의 숙소는 있는데 후처나 첩의 숙소가 없는 것을 봐선 아마 확실한 것 같다.
1층부터 3층까지 온 저택을 둘러보고 나서야 내가 원하던 것을 찾아냈다. 3층에 사용할 예정이 없는 빈방이 하나 있던 것이다. 위치적으로도 내 침실과 멀지 않고, 이곳에 연구실을 만들면 좋으리라 생각하여 아그네스에게 말했다.
“빈방을 제가 사용하고 싶은 용도로 사용해도 됩니까.”
“어떤 용도로 사용할 건가요?”
여기선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는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어차피 바라는 게 있는 이상 내가 연구실을 만드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을 테니까. 이 가문 사람들은 내가 만드는 ‘두근거림의 물약’을 원하고 있다.
“제 개인 연구실로 사용하고 싶습니다.”
“죄송하지만 그 용도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어째서인가. 앙겔로풀로스는 내가 만들 ‘두근거림의 묘약’이 목적이 아니었던 건가. 원래대로라면 연구실을 만들어서 새로운 물약을 개발할 생각이었는데, 이대로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어째서 안 되는 겁니까.”
“우선 물어보겠는데, 그 연구실에서는 칼이나 불을 사용하죠?”
여섯 살이라고 칼이나 불을 다루지 못하리라 판단하는 모양이다. 이미 칼과 불은 실컷 사용해서 만들어낸 것이 ‘두근거림의 묘약’인데, 아그네스는 그것을 내가 만들었다고는 헤아리지 못한 상태인 듯하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전 이미 세 살 때부터 칼을 사용해서 약초를 손질하고 네 살 때는 램프로 불을 피웠습니다. 여섯 살의 어린아이라고 생각해서 제가 연구실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아, 아니에요. 제가 조금 설명이 부족했어요.”
그렇게 말한 아그네스는 다른 이유가 있다면서 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가 말한 건 빈방이 연구실로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에요. 제가 빈방이 왜 연구실로 적합하지 않은지 하나씩 설명할게요.”
아그네스는 그렇게 말한 후 빈방의 출입문을 가리켰다.
“우선, 문이 하나뿐이에요. 연구실에서는 불을 사용할 거잖아요? 그렇다면 화재 발생의 위험이 있어요. 하지만 화재로 인해 하나뿐인 출입구가 막히면 대피할 수 없습니다.”
뭔가 했더니 겨우 그런 이유였나. 불을 잘못 다뤄서 화재를 일으키는 것은 멍청이들이나 하는 행동이다.
“불은 제가 조심해서 다루겠습니다. 그리고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언제든지 소화할 수 있게 물도 준비해 놓겠습니다.”
“아무리 조심해서 다룬다고 해도 실수를 하지 않을 수는 없어요. 그리고 기름에 불이 붙으면 물을 부어도 꺼지지 않습니다.”
물을 부어서 해결한다고 했으면 어지간하면 넘어갔을 텐데, ‘두근거림의 묘약’을 만드는 데 기름이 많이 사용된다는 것과 기름에 붙은 불이 물로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걸 보니 그저 멍청한 영애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더욱 주의할 테니…….”
“그리고 그것뿐만이 문제가 아니에요.”
이번에는 방문을 열고 방의 내부 공간을 보여줬다. 두 평 정도의 조금 좁은 공간이 나타났다.
“연구실로 사용하기엔 비좁아요. 불과 약품, 칼을 사용하는 공간이 이렇게 비좁으면 지나다니면서 몸으로 물건을 쓰러뜨리거나 깨뜨리는 사고가 생길 수도 있어요.”
무슨 얘기인가 했더니 아무것도 아닌 주의였다. 아그네스는 신중하지 못한 사람이 하는 부주의한 실수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런 건 신중하지 못한 사람이나 하는 행동입니다. 제가 언제나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면 발생하지 않을 일입니다. 아그네스 누나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걱정하시는 사람입니까.”
애초에 일어나지 않을 일을 걱정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 아니에요. ‘일어날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닙니까.”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마지막 문제가 있습니다.”
아그네스가 이번에는 빈방의 문 건너편 벽을 짚으며 말했다.
“이 방은 창문이 없어요.”
“아.”
창문. 연구실에선 확실히 중요하다. 약품을 많이 쓰는 연구인 데다가 화학반응이 일어나면 가스에 중독될 수도 있으니까. 애써 무시하고 있었는데 정면으로 말해버리니 순간적으로 반박할 수 없었다.
“약품을 다루는 연구실이면 환기가 중요합니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중독으로 몸이 안 좋아질 수 있어요. 먼지가 쌓이면 목에 좋지 않은 것도 당연하고요.”
처음으로 이 여자가 조금은 머리가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하나같이 맞는 말이다. 확실히 이 문제는 내가 주의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면 전 연구실을 가질 수 없는 겁니까…….”
기분이 침울해진 상태로 말하니, 갑자기 아그네스가 이상한 말을 시작했다.
“제이스의 연구실은 만들 거에요. 문이 2개 이상 있고, 공간이 넓고, 창문이 많아서 환기가 잘 되는 방으로요.”
“그런 곳이 있습니까. 다른 방은 전부 사용 중인 것 아니었습니까.”
설마 아직 안내가 끝나지 않았던 것인가 생각했더니, 아그네스는 옆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은 바로, 제 드레스룸이에요!”
“아그네스 누나의 드레스룸 말입니까.”
이 영애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여자들이 목숨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개인 공간 중 하나가 드레스룸 아닌가. 그런데 그 방을 사용하겠다고 말하니 믿기지 않았다. 나를 시험하고 있는 건가.
“하지만 드레스룸은 아그네스 누나의 중요한 공간이 아닙니까.”
“물론 제 드레스룸의 물건은 모두 옆에 있는 빈방으로 옮길 거에요.”
“그래도 저 좁은 방은 누님에게 불편하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제 드레스룸을 없애버리면…….”
아마 이것이 정답일 것이다. 내 드레스룸을 빈방으로 옮기면 창문도 있고 공간도 제법 넓은 방을 연구실로 사용할 수 있다. 나는 옷도 적고 드레스룸이 중요하지도 않다. 아그네스가 처음에 자신의 드레스룸을 말한 것도 아마 이 대답을 유도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거절하겠어요. 제이스의 드레스룸은 문이 하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면 제이스의 드레스룸에 이미 넣어놓은 물건들을 빈방으로 다시 옮겨야 하는데, 여러 번 짐을 옮기면 번거롭잖아요.”
어째선지 내 의견은 거절당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아그네스는 자신의 드레스룸을 옮기려고 하기 시작했다.
“자, 사용인분들에게 제 드레스룸에 있는 물건을 옮기고 제 원래 드레스룸은 청소를 부탁드리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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