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 : 무도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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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은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 일곱 살. 세이타리디스 후작 가문의 장녀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외국과의 교역을 통해 큰 수익을 내시는 상업 귀족입니다. 그렇기에 후작이지만 공작을 포함한 변변한 귀족 중에서는 매우 많은 자산을 가진 가문 중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어렸을 때부터 사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에 대해서 부족함 없이 자라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가문을 물려받게 될 수 있으므로, 저를 아버지가 일하시는 여러 곳에 데리고 다니시며 많은 사람과 인사를 나누게 시키셨습니다. 그렇게 여러 나라의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일곱 살인 지금은 알렉산드로스 왕국을 포함한 네 개의 나라의 언어와 102개의 사교댄스, 수많은 나라와 지방의 역사와 교양 지식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작년에는 아버지를 따라 왕궁에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첫눈에 반한 상대가 생겼습니다.
상대는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 제1 왕자. 찰랑거리는 금발 곱슬머리와 밝고 맑은 바다색 눈, 시간이 멈춘 듯한 미소가 아름다운 분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이 이야기를 말씀드리니 아버지께서는 니콜라스 왕자님과 제가 만나서 이야기를 할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제가 4개 국어를 할 수 있다는 점과 세이타리디스 가문이 상당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으로 ‘차기 왕비’의 능력을 호소하였습니다. 또한, 각 지방의 여러 가지 재미있는 교양을 통해 왕자님이 그 시간 동안 즐겁게 지내게 해드렸습니다.
자리가 끝나고, 니콜라스 왕자님께서는 ‘지금까지 만난 영애 중 가장 우수하고 교양이 많으십니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제가 왕자님의 차기 약혼자가 되었다는 사실로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니콜라스 왕자님의 약혼자가 정해졌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당연하게도 제 이름이 나오리라 생각했지만, 상대는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공작 영애였습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분명히 제가 더 왕자님의 약혼자에 어울릴 텐데! 분명 그 여자가 공작 가문의 지위로 억지로 성사시킨 약혼이 틀림없습니다. 가엾으신 왕자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압력에 짓눌려 약혼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왕자님을 그 사악한 영애에게서 구출하기로 했습니다. 그 영애의 앞에서 직접 격의 차이를 보여주고, 스스로 자신의 분수를 깨닫고 물러나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공작 영애와 만날 일정이 필요했는데, 마침 아버지께서 ‘왕가 건국 기념일 무도회’에 참석하지 않겠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왕가 주최의 무도회라면 니콜라스 왕자님은 제1 왕자로서 참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니콜라스 왕자님의 파트너는 당연히 약혼자인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영애일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아그네스 영애에게 수치심을 주고, 스스로 약혼자 자리에서 물러나게끔 하는 작전입니다.
그리고 무도회 당일, 왕궁에 도착했습니다. 가장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가장 아름다운 화장을 하고, 가장 매혹적인 향수를 뿌렸습니다. 니콜라스 왕자님의 파트너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듯, 왕자님은 혼자서 여러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지금 왕자님에게 말을 걸어도 좋지만, 오늘의 목적은 사악한 아그네스 영애에게 수치심을 주는 것이므로, 우선 그녀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니콜라스 왕자님이 직접 맞이하러 가는 영애를 보고, 그녀가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라고 확신했습니다.
하늘색 파스텔 색조의 수수한 드레스,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얕은 화장, 심지어 향수는 뿌리지도 않은 것 같았습니다. 저런 밋밋한 여자가 니콜라스 왕자님의 약혼자라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영애에게 수준의 차이를 알려주기 위해 왕자님과 영애 앞에 섰습니다.
“안녕하신가요, 니콜라스 제1 왕자님.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입니다.”
일부러 약혼자를 무시하고 니콜라스 왕자님에게만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왕자님께서는 자신의 약혼자를 소개했습니다.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 후작 영애. 오늘 무도회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은 제 약혼자인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공작 영애입니다.”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입니다,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 영애.”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입니다,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영애.”
확실하게 이 여자가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공작 영애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수수한 옷차림에 옅은 화장인 것을 보니, 아마 무늬만 공작인 몰락 귀족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외모도 교양도 집안도 모두 우세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즉, 니콜라스 왕자님에게 더 어울리는 사람은 분명 저입니다.
“니콜라스 제1 왕자님께서는 혹시 괜찮으시면 이후 무도회에서 파트너가 없다면 저와 춤춰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렇게 생각을 하고 니콜라스 왕자님에게 파트너 신청을 했습니다. 니콜라스 왕자님은 옆에 있는 아그네스 영애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아리아나 후작 영애, 마음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 파트너와 시간을 보내고 있으므로······.”
당연히 정식 파트너로 초대받은 약혼자를 두고 제 제안을 받아들일 순 없을 겁니다. 하지만 거기까지도 상정 내입니다. 원래 계획대로 아그네스 영애가 스스로 수치스러움을 깨닫고 물러나게 하려고 하는 순간,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니콜라스 왕자님의 상대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리아나 영애?”
다행히, 아그네스 영애는 제 모습을 보고 자신의 주제를 깨달은 것 같습니다. 저도 수고를 덜어서 다행이네요. 이로써 정식으로 약혼자에게 파트너 자리를 양보받았습니다.
“물론이에요, 아그네스 영애.”
“알겠습니다. 늦지 않게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아그네스 영애.”
무도회의 음악이 시작되고, 춤을 추기 위해 니콜라스 왕자님의 손을 잡고 무대 중앙으로 나갔습니다. 슬픈 듯 멀어져가는 아그네스 영애의 뒷모습을 보면서.
첫 번째 음악이 나오고, 니콜라스 왕자님의 손을 맞잡고 춤을 추었습니다. 때로는 이끌리고, 때로는 이끌면서 밀고 당기듯이 완벽한 호흡으로 춤을 추었습니다. 춤을 추는 도중, 니콜라스 왕자님이 말을 걸었습니다.
“아리아나 영애, 재밌는 움직임을 하시네요.”
니콜라스 왕자님의 춤을 추는 도중 말을 걸었습니다. 재밌는 움직임이라는 것이 ‘춤’에 관한 것인지, ‘파트너 자리를 빼앗은 것’에 관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요.
“아버님께서 가르쳐주셨어요.”
저도 중의적인 말로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이번 움직임에 대해서 세이타리디스 후작에게 물어봐야겠네요.”
니콜라스 왕자님의 반응으로 보면 아마 춤에 관하여 물어보겠다는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니콜라스 왕자님이 제 아버님에게 여쭤보실 것은 단 하나, 저를 약혼자로 들여도 되겠냐는 사실일 겁니다.
계획대로 순조롭게 흘러가는 기분이 들어, 순간적으로 표정에서 미소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즐거우신가요, 아리아나 영애?”
“니콜라스 왕자님은 어떠신가요?”
“글쎄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마 저와 같은 두근거리는 감정을 표현하기 힘든 것이겠죠. 귀여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하는 사이 첫 곡이 끝났습니다. 왕자님께서는 출입문 쪽을 살펴보셨습니다. 아마 아그네스 영애가 돌아온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겠죠.
“니콜라스 왕자님의 파트너께서는 아직 돌아오시지 않은 것 같네요. 괜찮으시다면 한 곡 더 추실 수 있으신가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십니까?”
약혼자의 자리를 약탈한 것에 대해 감당할 수 있겠냐는 물음일 것입니다. 저는 당연히 ‘물론이죠’라고 대답했습니다.
두 번째 곡이 시작했을 때, 니콜라스 왕자님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아리아나 영애, 저는 지금 화가 많이 나 있습니다.”
“알고 있어요.”
억지로 성사된 약혼에 화가 나신 것이겠죠.
“알고 있으시다고요? 제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난지도 알고 계십니까?”
“앙겔로풀로스의 제멋대로인 영애가 가문의 힘을 빌려 억지로 성사시킨 약혼 때문이죠. 공작의 심기를 거스르게 될까 봐 어쩔 수 없이 니콜라스 왕자님은 응하셔야만 했고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니콜라스 왕자님의 행복을 방해하는 사람은 제가 쫓아내 드릴 테니까요.”
갑자기 맞잡은 오른손이 강하게 압박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산뜻한 미소 뒤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제가 화난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하나, 지금 제 약혼자가 제 눈앞에 없는 것. 둘, 당신이 제 약혼자를 무시한 것. 그리고 마지막은, 오늘 처음으로 춤을 출 기회를 당신에게 빼앗긴 겁니다.”
“……네?”
니콜라스 왕자님에게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왔습니다. 대체 어째서 그 공작 영애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하는 건지, 순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대체 누가 제 행복을 방해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지금 제 행복을 방해하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입니다.
아그네스 영애가 앙겔로풀로스 가문의 힘을 빌려 억지로 성사시켰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제가 억지로 성사시킨 약혼이었는데, 뒤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돌고 있었습니까?
그녀가 수수한 드레스를 입고 있으니 몰락 귀족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화장이 옅어서 외모가 추하다고 느끼셨습니까? 향수를 뿌리지 않아서 사랑받지 못한다고 헤아리셨습니까?”
당신 같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사람을 판단하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안하무인인 사람은 왜 그녀가 오늘 저런 모습으로 나타난 건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겁니다. 만약 제 약혼자가 오늘 당신 같은 옷차림을 하고 나타났다면, 그녀는 제 약혼자가 아니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한 왕자님은, 헤어짐의 인사도 없이 두 번째 곡이 끝나자마자 제 손을 뿌리치듯이 놓으셨습니다.
“당신과의 인연은 오늘로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품에서 향수를 꺼내 다시 몸에 뿌리셨습니다. 마치 제 향기를 지우기라도 하듯이.
그 모습을 보고 슬퍼져서, 저는 그만 홀에서 나오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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