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울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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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스 제2 왕자와 헤어지고 메인 홀로 돌아가는 중 게임의 줄거리를 되짚어봅니다. 설마 그 아이가 파노스 왕자였다니, 원작에서는 파노스 왕자의 어린 시절 모습이 전혀 나오지 않아서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게임에서의 파노스 왕자는 방금의 소심한 모습과는 괴리감이 있기도 하고요.
파노스 알렉산드로스 제2 왕자. 『사랑과 운명 ~아스토리아~』 의 공략대상 중 한 명입니다. 후궁의 아이인 파노스 제2 왕자는 어렸을 때부터 니콜라스 제1 왕자와 비교되면서 자랐고, 그로 인해 항상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 제1 왕자를 상대로 열등감을 품고 있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첫째인 니콜라스 왕자와의 검술 대련 중 딱 한 번 파노스 왕자가 니콜라스 왕자를 이기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 승리는 사실 니콜라스 왕자가 전날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해 몸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얻은 승리였지만, 파노스 왕자는 자신이 처음으로 형에게 이겼다는 사실에 집착해 검술 수련에만 몰두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근육계 캐릭터로 성장하고, 일반적인 왕족으로의 교양이나 지적 수준은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지게 됩니다. 또한, 여자를 대하는 방법을 전혀 몰라 자신의 약혼자를 힘으로 다루려고 하는 모습이 많이 보여주고요.
결과적으로는 주인공이 파노스 왕자와 이어지게 되면 충분한 사랑을 받은 파노스 왕자가 일편단심 애처가가 되는 결말이 되지만……주인공이 파노스 왕자의 공략에 실패하거나, 다른 캐릭터를 공략하게 되면 파노스 왕자는 자신의 약혼자에게 더욱더 집착합니다. 그 약혼자가 바로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 후작 영애이고요.
아리아나 영애는 어렸을 때부터 제1 왕자인 니콜라스 왕자를 사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주인공이 파노스 왕자를 공략할 때는 오히려 경쟁자가 아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파노스 왕자의 공략을 실패하게 되면, 파노스 왕자는 자신과 헤어지려고 했던 아리아나 영애에게 분노하고, 결혼 뒤에는 처음으로 아리아나 영애에게 손찌검하기 시작합니다. 폭력의 수위는 점점 강해져서 나중에는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고, 배를 발로 차고, 목을 조르며 협박도 합니다.
결국, 단죄 장면에서 아리아나 영애는 파노스 왕자의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겁을 먹은 채 매일 매일을 공포에 떨면서 지내다가, 지속적인 폭력과 이상향과의 괴리감, 제1 왕자를 사모하는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결국 후계를 낳고 얼마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참혹한 결말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아리아나 후작 영애를 니콜라스 제1 왕자와 이어주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원작에서는 아리아나 영애가 마지막 순간까지 니콜라스 왕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표현이 나오니까요. 두 사람을 이어준다면 만약 아리아나 영애가 니콜라스 왕자에게 단죄 장면에서 고문을 받더라도 목숨을 끊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하진 않을 테고요. 오히려 사랑하는 니콜라스 왕자에게 받는 고문이라면 아리아나 후작 영애도 즐기지 않을까요.
아무튼 그렇게 잘 풀리게 되면 저도 파혼으로 구원받고, 게다가 아리아나 영애가 목숨을 끊은 뒤 후회하게 될 파노스 왕자까지 구원받습니다. 여러모로 완벽한 계획입니다만, 그렇다고 파혼한 제가 파노스 왕자와 이어지고 싶냐고 물으면 절대 사절입니다.
게임에서 아리아나 영애는 정말로 강인합니다. 니콜라스 왕자의 지속적인 거부와 아그네스 영애의 괴롭힘에도 굴하지 않고 다가오며,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 또한 대단합니다. 정신력만은 아그네스보다도 강하다고 보는 게 맞겠죠. 그런 아리아나 영애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의 고통인데 제가 견딜 수 있을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역시 괜한 일에 참견해버리고 말았던 것 같네요. 더는 니콜라스 왕자와도 파노스 왕자와도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 이대로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고 싶지만, 제가 이대로 사라지면 이 세계의 부모님에게도 폐를 끼치고, 사용인인 마리도 문책을 받게 되겠죠.
전생에서도 수험 스트레스만 받다가 죽어버렸는데, 왜 이번 생에서까지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 건지, 문득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니, 눈물이 나왔습니다.
“아, 손수건…….”
하지만 이런 꼴을 함부로 남에게 보이면 안되겠죠. 눈물을 흘렸다는 것을 남에게 보이면, 누군가에게는 약점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소문이 되니까요. 서둘러서 벽에 붙어 손수건을 꺼냈습니다. 빨리 닦아내고 기운을 차려야……
“아그네스 공작 영애?”
“……네?”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드니 아리아나 후작 영애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잠깐, 아리아나 영애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설마……. 손발이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며 주변을 살피자, 아리아나 영애가 말했습니다.
“니콜라스 왕자님께서는 안 계세요. 메인 홀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계시니까요.”
“……그렇군요.”
서둘러 눈물을 훔치고 표정을 고쳤습니다. 목격자가 아리아나 후작 영애 한 명 뿐이라면 수습할 수 있습니다. 니콜라스 왕자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문제가 되었겠지만요. 서둘러서 '안 운 척'을 시도했습니다.
“아그네스 영애는 왜 울고 계셨나요?”
“울지 않았어요.”
“바람을 쐬러 나가신다고 하시고 여기서 울고 계셨나요?”
“전혀 아니에요.”
“제가 니콜라스 왕자님과 어울렸던 게 슬퍼서 그런가요?”
“당치도 않아요.”
‘안 운 척’을 고집했는데도, 아리아나 영애는 집요하게 물어왔습니다. 아마 이번에 운 것을 약점으로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겠죠. 니콜라스 왕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 정보를 전달할지도 모릅고요. 다소 비겁하더라도 앙겔로풀로스 공작의 힘을 빌려 침묵하게 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저,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공작 영애는 전혀 운 사실이 없습니다. 정말로 바람을 쐬고 왔어요. 그리고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 후작 영애가 저보다도 더 니콜라스 왕자님에게 어울린다고도 생각하고 있어요.”
공작 영애가 말하는 데 감히 후작 영애가 부정하지 말라고 에둘러서 전했습니다. 니콜라스 왕자를 미끼로 삼아서 환심을 사는 것도 잊지 않았고요.
“말도 안 되는 말씀하지 마세요. 약혼자는 아그네스 공작 영애님이시잖아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제게 니콜라스 왕자님은 감당하기 힘들지도 모르는 분이니까요. 아리아나 영애가 아마 저보다 더 사랑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런 말씀은…….”
“아리아나 영애는 계속해서 자신의 사랑은 관철하면 좋아요. 전 언제든지 니콜라스 왕자님이 원하면 파혼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요. 힘들거나 불가능한 사랑이라고 생각해도, 제가 도와드릴게요.”
물론 제게 도움이 되니까 도와주는 거죠. 파노스 제2 왕자는 나중에 생각하더라도, 우선 모든 계획은 니콜라스 제1 왕자와의 파혼에서 시작해야 하니까요.
“오늘 이야기는 필요하다면 전부 잊으셔도 괜찮아요.”
그렇게 말한 뒤, 저는 메인 홀로 돌아갔습니다.
메인 홀로 돌아오자마자 니콜라스 왕자가 저를 발견하고 다가왔습니다.
“아그네스 영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시나마 외롭게 만들어서 진심으로 송구스럽습니다.”
“아니요, 저야말로 죄송합니다.”
“그럼 늦었습니다만, 저와 함께 춤춰주시겠습니까.”
“저로 괜찮으시다면, 기꺼이.”
니콜라스 왕자는 제 손을 잡고, 새로운 곡이 나오자 왕자는 무대의 중앙으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음악에 맞추어 저희 둘은 춤추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영광입니다. 이 순간을 위해서 얼마나 많이 연습했는지 모르실 겁니다.”
“명예롭네요, 니콜라스 왕자.”
스텝에 맞추어 왕자의 움직임을 따라갑니다. 절대 제가 춤을 선도하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아닌 왕자를 돋보이게 해서 다른 영애들의 눈에 더욱 띄게 하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한 곡이 끝나고 나니 니콜라스 왕자가 말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다음 곡도 같이 춰주실 수 있으신가요.”
“물론이죠. 저는 니콜라스 왕자님의 파트너니까요.”
두 번째 곡도 니콜라스 왕자의 인도에 맞춰 따라갔습니다. 호흡을 맞춰 서로의 움직임을 공유하는 게, 생각보다 기분이 좋네요.
“다음 곡도 같이 추시겠습니까?”
두 번째 곡이 끝나기 전 니콜라스 왕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몇 곡을 저하고만 추실 생각인가요?”
“처음에는 두 곡만 출 예정이었습니다만……아리아나 영애와 이미 두 곡이나 추어버렸기에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적어도 다섯 곡은 추고 싶습니다.”
제가 아리아나 영애를 이용해서 자신의 눈 밖으로 도망쳤던 것에 대한 앙금이 남은 모양이네요. 그래서인지 이제는 춤을 이용해 저를 확실히 벗어날 수 없게 붙잡아두려는 속셈이고요. 그리고 저와의 관계를 확실히 선전해서 아리아나 영애 같은 사람을 다시 사용하지도 못하게 하려는 계략이겠죠.
“니콜라스왕자님께서 원하신다면요.”
뻔한 수법이지만 응해드리죠. 이런 상대에게는 육체적으로는 날 붙잡을 수 있어도 정신은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보여주어야 하니까요. 두 번째 곡이 끝나고, 세 번째 곡이 끝나고, 네 번째 곡을 추고 나니 니콜라스 왕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혹시 지치셨습니까? 잠시 쉬는 건 어떠십니까?”
이런 말을 꺼내는 걸 보니 니콜라스 왕자도 지친 것이 틀림없네요. 니콜라스 왕자가 먼저 패배를 인정하고 휴식을 요청하면, 처음에 말했던 ‘한 시도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들어준다’라는 약속을 어긴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니콜라스 왕자를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하나 늘어나게 되겠죠.
다소 힘들기는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순 없습니다. “괜찮아요.”라고 말한 뒤 니콜라스 왕자의 귀에 다가가 절대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속삭였습니다.
“누가 이기는지 해보자고요.”
이 말이 니콜라스 왕자의 승리욕을 자극했는지, 결국엔 둘 다 그만둘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무도회의 대단원까지 총 8곡을 추었습니다. 게다가 니콜라스 왕자는 끝나고 나서도 지친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마 한두 곡만 더 추었다면 제가 먼저 쓰러졌겠죠. 결과적으로는 아슬아슬하게 무승부로 끝나서 그나마 다행이네요.
다음 날, 마리가 오랜만에 늦잠을 주무신다면서 비웃었습니다. 근육통 때문에 일어나지 못한 것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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