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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영애는 왕자님을 양보하겠습니다-4화 (4/86)

〈 4화 〉 무도회에 초청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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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달의 두 번째 주, 다섯 번째 요일의 오후입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매주 다섯 번째 요일은 오전 중에 스타렌스어 교육을 받고, 식사 후에는 가볍게 정원을 산책한 뒤, 제 방의 테라스에서 따뜻한 햇볕과 함께 다과를 즐기는 것이 제 일과였을텐데요…….

“오늘 아침에는 날씨가 아주 좋지 않았습니까? 덕분에 왕가 정원에 붉은 장미가 아주 활짝 피었습니다. 아그네스 영애의 머리카락처럼 아주 붉고 아름다운 장미입니다. 한 다발 꺾어서 가져오고 싶기도 하였지만, 역시 정원을 직접 보여드리고 싶어서 그대로 두었습니다.”

“잘 생각하셨어요. 장미꽃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때 가장 좋은 향기를 내니까요.”

당신의 그 예정, 응접실에서 니콜라스 왕자를 맞이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불행히도 니콜라스 왕자의 이런 방문은 이번이 처음인 것도 아닙니다.

니콜라스 왕자와의 약혼이 정해진 후에 한 달 정도가 지난 후, 이 왕자는 어째서인지 일주일에 세 번씩 앙겔로풀로스에 방문하고 있습니다.

왕자의 얘기는 대부분이 잡담과 교양 지식의 교환이지만, 그렇다고 무시하며 내쫓을 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니콜라스 왕자의 방문을 좋아하시고, 사용인들도 니콜라스 왕자를 만난 후 제 성격이 변했다면서 왕자에게 감사하고 있다고 하니까요. 니콜라스 왕자를 제 성격이 바뀌는 핑곗거리로 이용할 생각이었는데, 어째선지 뒤바낀 기분이 드네요.

그리고 원작에서는 니콜라스 왕자와 아그네스 영애가 이렇게 자주 만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그것도 니콜라스 왕자 쪽이 아닌 아그네스 영애가 찾아가고, 그때마다 왕자는 왕족 교육 때문에 사적인 자리에서는 거의 만나지 못했다는 설정으로 기억하는데요.

“그건 그렇고 요즘 되게 자주 방문하시는군요. 왕족 교육으로 바쁘실 텐데요.”

“아버님께 말씀드려서 주 2회로 줄였습니다. 제가 부린 첫 어리광이라고 좋아하셨습니다.”

원작에서도 왕자가 너무 완벽해지는 데 열중한 나머지 성장하면서 감정을 잃어가는 걸 왕이 걱정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니 이상할 건 없긴 하지만……잠깐, 왕궁에서 앙겔로풀로스는 마차로 두 시간은 걸리는데, 주 2회로 줄였다는 것은 결국 주말을 제외하고는 교육이 없으면 무조건 앙겔로풀로스에 방문한다는 뜻 아닌가요? 이 왕자는 사생활이 없나요?

“혹시, 제가 자주 방문하는 게 귀찮으십니까?”

니콜라스 왕자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내용물이 사디스트 왕자라지만 아직 일곱 살의 버려진 강아지 같은 표정에는 쉽게 나쁜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럴 리가 있겠어요. 제 가족도 사용인들도 모두 왕자님의 방문을 환영하고 있어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선에서 왕자가 듣고 싶을 만한 대답을 했습니다. 제 가족과 사용인들은 실제로 니콜라스 왕자의 방문을 좋아하니까요. 제가 혼자서 껄끄러울 뿐이고요. 왕자는 이 대답에 안심하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귀엽네요.

하지만 이 미소 뒤에 어떤 본심을 숨기고 있는지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아마 처음 만난 날 너무 심하게 자존심에 균열이 생긴 니콜라스 왕자가, 아예 저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평생을 괴롭히려고 하는 것이겠죠.

결혼한 뒤에 본색을 드러내고 매일같이 온갖 고문을 하며 처음 만난 날의 복수를 하겠죠. 자주 방문하는 것도 저에 대한 복수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설명이 됩니다. 이런 결과가 될 줄 알았으면 니콜라스 왕자를 자극하지 않고, 조용히 거절 의사를 내비칠 걸 그랬네요.

그래도 아직 방법은 있습니다. 원작에서 니콜라스 왕자는 진정한 의미로 왕자님 그 자체입니다. 우수한 성적, 우아한 기품, 빼어난 외모, 왕족 혈통까지 견줄 사람이 없는 완벽 초인 그 자체인 니콜라스 왕자에게, 온갖 벌레가 꼬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래서 게임 내에서도 니콜라스 왕자에게 구애하는 영애는 끊임없이 나오고, 그것을 재력과 가문의 힘으로 막아내는 것이 아그네스의 역할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그네스인 제가 나서서 처리하지 않으면 니콜라스 왕자는 알아서 다른 영애들과의 접점이 엄청나게 늘어나겠죠. 그중에는 니콜라스 왕자의 마음에 드는 다른 영애가 있을 수도 있고, 아그네스의 많은 방해에도 뚝심 있게 니콜라스 왕자에게 구애하는 집요한 영애도 있습니다.

그런 영애들과 이어지는 것을 도와주면서 약혼 파기를 니콜라스 왕자 스스로 말하게끔 하면 별 문제는 없겠죠. 이도 저도 안되면 마지막에는 주인공 캐릭터와 이어주어도 되고요.

“그래서 어떻습니까? 아그네스 공작 영애.”

······니콜라스 왕자와의 약혼 파기 방법을 생각하다가, 그만 니콜라스 왕자가 말하던 이야기를 놓쳤습니다. 우선 홍차를 마시면서 생각을 하는 척 시간을 끌고 있으니,

“일주일 뒤 왕가 주최의 개국 기념일 무도회에 니콜라스 왕자님의 파트너로 참석하지 않겠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리가 귓속말로 방금까지의 이야기를 전달해 주었습니다. 역시 마리에요. 고맙다는 눈인사를 하며 찻잔을 내려놓았습니다.

“좋은 이야기네요. 꼭 참석하도록 하죠.”

왕가 무도회라는 것은 일단 유력한 귀족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니까요. 아마 니콜라스 왕자를 노리는 다른 유력 가문의 영애들도 참석하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제가 참석해서 빈틈을 보이면, 왕자를 노리는 다른 귀족 영애들이 왕자의 약혼자 자리를 빼앗기 위해 비집고 들어오기 쉬워질 테고, 그 영애 중 한 명에게 니콜라스 왕자를 자연스럽게 떠넘기면 ~아스토리아~의 줄거리에서 슬그머니 퇴장할 수 있겠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아그네스 공작 영애.”

니콜라스 왕자는 새삼 밝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저 표정을 그대로 믿을 수만 있었으면 정말 행복했겠죠.

그 뒤로도 니콜라스 왕자는 두 시간을 거의 혼자 말하고는 돌아갔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지칩니다.

“잘되셨네요, 아가씨. 니콜라스 제1 왕자님의 약혼자임을 알리는 공식적인 자리가 정해졌네요.”

니콜라스 왕자가 돌아간 뒤, 저와 둘만 남았을 때 마리가 말했습니다.

“그렇겠죠. 사교계에 처음 데뷔했을 때 이미 제1 왕자의 약혼자니까요. 이보다 화려할 순 없겠죠.”

“드레스는 어떤 것으로 준비할까요. 아가씨가 좋아하시던 붉은색 드레스에 검은색 프릴이 달린 드레스로 준비할까요?”

그 드레스······전생의 기억이 돌아오기 전에는 좋아했었지만, 이제 입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디자인인데요. 게다가 그런 존재감 넘치는 드레스는 니콜라스 왕자를 다른 영애에게 떠넘기기에 방해만 될 것 같고……. 최대한 눈에 띄지 않고,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옷이 좋겠네요. 그래야 경쟁자들이 니콜라스 왕자에게 다가올 때 느끼는 압박이 줄어들겠지요.

“최대한 수수한 드레스가 좋겠어요. 색은 파스텔 색조에, 장식은 적고, 눈에 띄지 않는 것으로 준비해주세요. 화장도 최대한 간소한 편이 좋겠네요.”

“네, 그렇게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마리는 내가 수수한 드레스를 말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는지, 일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가씨는 생각이 비범하시네요.”

“당연하죠.”

파혼을 위해서라면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건 활용해야죠. 어떻게든 많은 가능성을 열어 두고 하나라도 얻어걸리기를 바라는 수밖에요.

무도회 당일 오전까지 어머님에게 무도회에서의 예절을 배우고, 왕성에서 잠시 일한 경험이 있는 마리에게는 사소한 왕궁의 은어를 몇 가지 배웠습니다. 중간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리를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식사와 물을 섭취하지 않는 것도 잊지 않고요.

예정한 대로 장식이 적은 수수한 파스텔 색조의 드레스를 입고, 간소하고 얇은 화장을 하자 어머니께서는 ‘자주 입던 화려한 드레스는 입지 않니?’라고 물으셨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지금은 (약혼 파기를 위해서는)필요 없으니까요’라고 대답하자, 어머니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끄덕이셨습니다.

저와 마리를 태운 마차는 두 시간 뒤, 무도회를 주최한 왕궁에 도착했습니다.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공작 영애. 오늘 왕가 주최 무도회에 참석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갈색 머리와 고동색 눈을 가진 나이가 많은 사용인의 인사를 받으며 왕궁으로 입장했습니다. 외모를 보니 니콜라스 왕자의 전속 사용인과 머리카락과 눈 색이 비슷한 것 같은데요. 아마 왕가를 대대로 섬기는 사용인 집안의 높은 사람이 아닐까요.

추측일 수밖에 없는 게, 니콜라스의 사용인인 잭에게도 어느 정도 공식 설정은 붙어 있지만, 저는 서브 캐릭터들의 이력을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았으니까요. 너무 세세한 설정이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는 잘 모릅니다. 그렇게 이름 모르는 사용인의 안내를 받아 메인 홀로 이동했습니다.

“저는 사용인 대기실로 가보겠습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호출해 주세요.”

“수고했어요, 마리.”

메인 홀에 입장하자 니콜라스 왕자가 맞이해 주었습니다. 평소에 보던 청색이나 적색 계통의 양복이 아닌 흰색 양복에 붉은색으로 포인트를 준 의상이 어울리네요. 평소에 보던 옷과는 다른 복장이, 일곱 살인데도 생각보다 멋있……지 않습니다. 멋있지 않습니다. 멋있지 않습니다. 정신 차려요, 아그네스. 오늘의 목적을 잊으면 안되니까요.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영애. 오늘 무도회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렉산드로스 왕가의 이름을 걸고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한 시도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들어 드리겠다고 약속드립니다.”

오늘의 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서 제 약점을 찾아내 절 마음대로 다루는 방법을 알아내겠다, 라고 말하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니콜라스 제1 왕자. 오늘은 왕가의 봉사를 받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기회이니 기대가 되네요.”

제가 만족하지 못했을 때는 각오하라는 대답을 돌려주도록 하죠.

“그건 그렇고 아그네스 영애, 오늘은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 정말 매력적이십니다.”

혹시라도 ‘오늘은 정말 아름답습니다’라고 말했으면 ‘이전까지는 아름답지 않았다는 말씀이신가요?’라고 대답해서 심술을 부릴 생각이었는데, 과연 빈틈이 없이 치밀하네요.

“평소에 보던 제가 아니라서 수수하다고 느끼지 않으신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아그네스 영애가 제가 생각했던 모습과 다르게 나타나지 않아서 안심했습니다. 혹시 오늘의 의상은 사용인들이 준비해주셨습니까?”

“제가 직접 고른 의상입니다. 화장도 제가 이렇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뭐죠? 지금 제게 의상을 고르는 감각이 없다고 돌려서 말하는 건가요? 하지만 이걸 따지면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내뱉은 말이기에 그림이 이상해지겠죠.

사실 가장 좋은 방법 하나는 니콜라스 왕자 본인이 제 수수한 모습에 실망해서 호감도가 떨어지는 것입니다만, 생각해 보니 니콜라스 왕자는 애초에 아그네스를 싫어하고 있으니 호감도가 떨어질 일이 없겠네요.

제가 니콜라스 왕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주변에서 조금씩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지금까지는 니콜라스 왕자의 화려한 외모와 의상 때문에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영애들이 수수한 제가 왕자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눈치를 보는 모양이겠죠

그리고 그 영애들 안에서, 단연 눈에 띄는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안녕하신가요, 니콜라스 제1 왕자님.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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